송파동성당 게시판

"벌은제게주시고 복은 자식에게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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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중 [kjj6502] 쪽지 캡슐

2004-01-23 ㅣ No.2322

육십 평생 처음으로 올린 어머니의 기도

 

 

 

                                        ohmynews 조호진(mindle21) 기자     

 

 

 

 

 

 

 

다시 겨울이 옵니다. 얼어죽은 걸인도 없는 겨울이 옵니다. 가출한 에미들은 여전히 달아나고 술 취한 애비들은 또 다시 술에 취하는 겨울이 옵니다.

 

 

 

연탄불은 꺼지고 배급 밀가루마저 떨어지던 유년, 새마을 고등공민학교를 중퇴한 형은 구로공단 공원이 됐고 노점상 아버지는 단속에 걸려 영등포경찰소 유치장에서 날을 새웠습니다.

 

 

 

하꼬방 지붕 위 루핑이 가난보다 더 서럽게 울던 엄동추위였습니다. 벽지도 없는 흙담 벽 틈새로 윗풍이 파고들고 솜이불 밖으로 모가지를 내놓으면 새 하얀 입김이 단칸방을 얼어붙게 하는 겨울이었습니다.

 

 

 

뚝방동네 공동펌프가 얼면 시레기도 얼고 뚝방에 갈겨 싼 똥도 얼고 새들도, 쥐들도 얼고 뚝방 웅덩이에서 잠자다 동사한 걸인 노인을 덮은 가마니도 얼고, 웅웅 울며 애도하던 전선줄도 얼고, 볏짚에 불을 지르던 아이들의 손도 얼고, 새마을 취로사업에 나선 주민들의 어깨도 얼고….

 

 

 

애비들은 왜 술에 취해야 했을까? 술에 취한 아버지는 보름달이 뜰 때면 오목교 뚝방을 허위허위 저으며 ’고향 갈란다, 고향 갈란다’면서 ’오마니 오마니….’를 불렀습니다. 삼 형제는 울며불며 ’아버지 북한 공산당한테 가면 큰일나요….’ 실성한 아버지의 팔을 이끌고 돌아올 때마다 휘영청 밝았던 보름달….

 

 

 

에미들은 왜 밤 도망을 갔을까? 무슨 부귀영화 누리려고 자식새끼 버렸겠느냐만, 지겨운 가난과 주먹질은 견딜 수 없어 밤 봇짐을 쌌다고 합니다. 돈 벌어 돌아 오마던 에미는 소식도 없더니 주소도 없는 소포에 학용품과 옷가지가 담겼고 동네 사람들은 처마 밑 햇살에 쪼그려 부산서 식모살이 한다더라 전라도 어디선가 술집을 한다더라….

 

 

 

송곳 같은 고드름을 아삭아삭 깨물던 뚝방 아이들은 철조망을 뚫기 위해 구로공단을 기웃거렸습니다. 운 좋은 날은 훔친 고물을 팔아 짜장면을 사먹었지만 철조망을 뚫다 잡힌 날은 시퍼렇게 두들겨 맞았습니다.

 

 

 

공장이 지긋하다던 누나들은 술집에 가고 차장이 됐습니다, 상하이 트위스틀 추며 병나발 소주를 들이키고, 팔목에 피를 그으며 가난에 깨지지 않겠다고 맹세하던 형들은 소년원에 가고 구두를 닦았습니다.

 

 

 

망치부대가 집을 부수면 돌을 던졌고 부순 자리에 움막을 짓고 잠을 잤습니다. 동네 주민을 모아놓고 밀가루 배급하던 통장은 법을 어기면 안 된다고 일장연설 했지만 부서진 아이들은 더 부서지지 않기 위해 주먹을 쥐고 각목을 들고 불 깡통을 돌리며 깽판을 죽였습니다.(졸시, ’교도소, 차장, 공장, 짜장면을 위하여’ 전문)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어머니께서 두 며느리와 함께 명태 전을 부치고 나물을 볶고 두부 국을 끊이며 차례상을 차립니다. 먼 데서 온 자식, 가까운 곳에서 온 자식들을 위해 정성껏 상을 차리는 어머님의 표정이 상기되었습니다. 상에 둘러앉은 삼 형제와 가족을 위해 어머님이 난생 처음 기도를 했습니다.

 

 

 

"하느님 아버지, 모처럼 온 가족이 모여 설날을 지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식을 버렸던 저의 죄로 인해 아들들의 마음에 상처가 많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 마음에 미움과 분노를 없게 해 주세요. 올해에는 자식들의 가정을 화목하게 해주시고 형제끼리 서로 사랑하게 해주세요. 벌을 주시려거든 다 제게 주시고 자식들에게는 복을 가득 주시고 사는 날까지 자식들에게 짐이 되지 않게 해주세요…."

 

 

 

난생 처음 듣는 당신의 기도가 온가족을 숙연하게 했습니다. 당신의 기도는 백수 건달로 정처 없이 사는 큰아들, 자학과 원망으로 깨고 부수며 혼자 살아온 큰아들, 그 큰아들을 버렸던 자신의 죄를 용서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명절과 제삿날이면 채워지지 않던 빈자리…. 동생들 볼 면목이 없어 늘 겉돌던 큰아들이 모처럼 두 동생과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는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님은 달뜬 표정입니다. 당신은 큰아들이 좋아하는 명태전을 곁에 놓아주고 어색한 분위기를 달래려고 옛 이야기도 꺼냈습니다.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 밝고도 거룩한 천국에 거룩한 백성들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거기서 거기서 기쁘고 즐거운 집에서 거기서 거기서 거기서 영원히 영광에 살겠네"

 

 

 

온 가족이 ’보아라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여느 명절과 달리 집안이 환해졌습니다. 당신의 큰아들은 어머니가 드린 용서의 기도와 찬송가가 무척 어색한지 몇 잔의 소주잔을 비웠습니다.

 

 

 

동생들이 모두 돌아간 명절 끝자락, 술기 오른 얼굴로 슬며시 나타나 버림받은 인생을 원망하던 큰아들이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게 당신은 고맙기만 한 것입니다. 당신의 마지막 소망은 큰아들이 방황을 끝내고 가정을 꾸려 오손도손 사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기도가 눈물로 젖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북에 또 다른 아내와 자식을 두고 온 당신은 명절이면 "견우와 직녀도 일년에 한 번은 만나는데…"라며 북에 두고 온 어머니를 애타게 그렸습니다. 분단의 철조망으로 인해 재가되어 하늘 나라로 떠난 아버지는 아들과 아내의 화해와 남과 북의 화해를 간절히 바랄 것입니다.

 

 

 

당신의 큰아들이 동생 집에서 처음으로 하루를 묵었습니다. 제수씨는 시아주버니의 머리 손질을 해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당신과 큰아들은 밤새 일본과 한국의 축구 경기를 보면서 두런두런 정담을 나누었습니다. 수십 년 갈등의 실타래가 한가닥 한가닥 풀리는 밤이었습니다.

 

 

 

회한(悔恨) 많은 인생이었습니다. 열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나는 이북 사내를 만나 살림을 차린 당신은 노점상과 여관 조바, 막걸리 장사 등 육십 평생을 편할 날 없이 맨몸으로 살아왔습니다. 하지만 보증을 잘못 서는 등 벌어논 돈 늘그막에 다 털어먹고 오갈 데 없어지고 만 당신은 드세던 기갈을 누르고 둘째 자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어머님은 불화(不和)로 살아온 세상과 화해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 중 첫째는 자식들과의 화해입니다. 자식을 잠시 버린 죄로 인해 상처난 자식들의 인생과 험한 세상을 지나오면서 쌓인 한(恨)과 죄(罪)의 무게를 다 떨쳐내고 싶은 것입니다.

 

 

 

당신은 몇 해 전, 생일을 맞아 미리 유언을 남겼습니다. 의학 발전이라는 큰 뜻보다는 하늘 같이 많은 죄를 육신으로나마 씻고 싶다는 게 시신을 기증하는 당신의 작은 뜻입니다. 그래서 "형제간의 우애가 넘치고 자식들의 가정이 화목해지게 해 달라"는 소망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입니다.

 

 

 

섬진강변 둘째 아들 집에 사는 당신은 모처럼 평온을 누리고 있습니다. 채마밭에 쑥갓과 열무 김치를 손수 심어 삼겹살도 굽고 김치도 담그며 며느리와 손주를 뒷바라지에 즐거워 하십니다. 자식에게 못 다한 사랑을 손주 뒷바라지로 쏟아부으며 이풍진 세상의 아픔을 뜨게질로 달래고 계십니다.  

 

 

 

oymynew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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