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용서하기 위하여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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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훈 [p0o9i8] 쪽지 캡슐

2004-02-25 ㅣ No.5670

 

용서하기 위하여 - 2

 

1950년대, 2차 세계대전의 여파로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던 유럽 인들을 노래로써 위로한 유명한 샹송가수가 있었다.

뤼시앵 뒤발이라는 예수회 신부였다.

그가 얼마나 유명했는지는 그가 한 해 받아오는 공연료와 그가 속한 프랑스 관구 전체 예수회원이 받아오는 총 사례금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었다.

그가 받아 오는 돈이 다른 신부들의 수입 전체의 몇 배가 되었으니까.

그러나 그는 불행히도 알코올 중독자였다.

그가 속한 공동체 원장 신부님은 저녁마다 냉장고에 포도주와 맥주병이 몇 개 남아 있는지 확인하였다.

때로는 뒤발 신부가 술을 마시지 못하도록 냉장고를 자물쇠로 채워 놓기도 하였다.

뒤발 신부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고 수없이 결심했지만 자기도 모르는 새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였다.

그럴 때마다 자신에게 너무나도 부끄러워 발걸음을 돌리지만 한편으로 밀려드는 느낌은 ‘나는 그렇고 그런 놈이 아닌가’ 라는 자괴심이었다.

‘술을 먹으러 여기까지 왔는데, 이미 술 앞에 무릎을 꿇은 것이 옛날인데, 이제 와서 방으로 간다고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다시 냉장고 문을 열고 술병을 꺼내 술병 뚜껑을 땄다.

그리고 원장 신부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조금만 마셨다.

그리고 냉장고 문을 닫고 가려고 하다가 다시 ‘이미 버린 몸, 이제 와서 아껴 봤자 뭐 하랴’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이 몰려와 냉장고 안에 있는 술이란 술은 밤새 다 마셔 버렸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자 뒤발 신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절망감에 빠져 자살을 기도한다.

다행히 뒤발 신부와 친한 동창 신부가 그를 죽음에서 건져낸다.

뒤발 신부가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기 시작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이 나이에 이르러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나는 뤼시앵 뒤발이고 알코올 중독자란 사실입니다.”

뒤발 신부는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왜 술을 마시게 되었는지?’를 추적하였다.

맨 처음 머리에 떠오른 사람들은 수도회 장상들과 동료 신부들이었다.

그들은 단 한 번도 뒤발 신부의 공연에 관심을 가진 적이 없었다.

게시판에 초청장을 붙여 놓아도 노는 사람이 있기는커녕, 공연이 끝나고 공동체에 돌아와도 누구 하나 관심을 갖고 물어보지도 않았다.

장상이나 동료 신부들은 ‘수도자가 무슨 딴따라야?’ 하는 비난의 눈초리로만 볼 뿐이었다.

이어서 밀려온 아픔은 ‘수도자는 청빈을 살아야 한다’ 는 명목으로 자동차를 사주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래서 앰프니 기타니 하는 많은 악기를 오토바이에 실어 날라야 했다.

그가 동연 수입으로 갖고 오는 돈은 엄청났건만 수도회는 수입금만 챙길 뿐 아무것도 도와주지 않은 것이었다.

뒤발 신부는 이런 식으로 수도회 장상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린 시절까지 자기에게 상처를 준 사람이나 사건들을 돌아보았다.

어린 시절 그가 받았던 가장 큰 상처는, 오랫동안 모은 돈으로 아코디언을 사러 갔는데, 가게 주인이 그에게 고물 아코디언을 속여 판 것이었다.

이렇게 상처를 더듬는 가운데 뒤발 신부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깊이 깨달았다.

자신이 알코올 중독자가 된 것은 누가 자기에게 상처를 준 때문도, 그 누구의 잘못 때문도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러니 누구의 도움에 의지할 것이 아니라 홀로 일어서야 하며 자신만이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열쇠를 가졌다는 점이었다.

데이비드 A. 시맨즈는, 우리가 어떤 상처를 받든 그 상처의 궁극적 책임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생은 마치 베틀로 짜여진 복잡한 무늬의 융단과 같다.  

유전적인 요소, 환경적인 요소, 부모로부터 받은 영향,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영향, 친구로부터 받은 영향, 인생의 모든 장애물들, 이 모두가 베틀의 씨줄이 되고 그 위를 당신이 날줄이 되어 왔다 갔다 하면서 당신의 반응에 따라서 인생이라는 융단이 짜여지게 된다.

당신은 당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이 있다.

당신이 다른 사람을 비난하는 것을 그치고 자신의 책임을 시인하기 전까지는 당신의 손상된 감정을 절대로 치료받지 못할 것이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나를 아프게 한 상대방을 이해해야 한다.

이런 고통스런 기억이 사라지기 위해서 꼭 필요한 조건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니만큼 내게 상처 준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용서에 큰 도움이 된다.

그 사람의 성장 배경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그가 어떤 상황에서 그런 일을 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이다.

우리가 상대방에 대해서 이해하면 할수록 용서는 쉬워 진다.

용서한다는 것은 관계를 깨뜨린 상대방을 다시 받아들이는 것이다.

다시 받아들인다는 것은 베푸는 행위이다.

관계의 틈이 벌어졌을 때 회복을 위해 베풂의 행위를 하려면 상대방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런 의미에서 이해는 용서의 시작일 뿐 아니라 용서의 원천이기도 하다.

우리가 이해하고 이해했음을 보여줄 때 우리는 상대를 용서할 수 있고, 벌어졌던 관계는 호전될 수 있다.

우리는 이해하며 깨닫는다.

우리가 이해할 때 자비심을 갖게 되며 자연히 고통을 풀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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