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전라도에 우익은 없는가(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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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landpia21] 쪽지 캡슐

2008-08-17 ㅣ No.7469

전라도에 우익은 없는가


나는 전라도 사람이다. 전라도 중에도 B백, 선운사 동백숲과 복분자 술이 유명한 전라북도 고창이 내 고향이다.


B백이란 이름은 군대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내 군 시절, 전라도 하면 모두 ‘따불백(개인 사물을 담는 백)’이라 불렀었다. 아들이 근무하는 부대로 면회 온 전라도 아버지가 고생하는 아들을 보다 못해 따불백에 넣어서 데리고 가다가 걸렸다는 이야기에서 우리 전라도 출신 군입대자들은 모두 ‘따블백’으로 불리웠다.


그 중에서도 전남 출신이 좀 심했던 모양. 전라남도는 오리지널 A백으로, 우리 전라북도는 B백으로 구분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나는 전라도  B백이다.


우리 근현대사에서 전라도는 이름만 들어도 한(恨)과 애증(愛憎)이 교차되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멀리로는 동학혁명부터 광주학생독립운동을 거쳐, 가까이로는 5.18 민주항쟁과 호남 차별론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탄압에 이르기까지 그 영욕(榮辱)의 역사는 오직 분노와 슬픔으로 채색되어 있다.


마을 너머 공음면으로 가는 길, 칠암 마을 시내에는 녹두장군 전봉준이 군사 훈련을 시켰다는 곳도 있었고, 손화중이 비결서를 꺼냈다는 선운사 마애불 배꼽도 보면서 나는 성장하였다. 특히 고창읍 모양성 성벽에 올라 떠오르는 달을 보면서 백제 가요 ‘방등산가’의 무대가 되었던, 방장산을 바라보던 안개 낀 밤마실의 추억.


그러던 내가 호남차별에 대해 극도로 분노했던 것은 고교시절이다. 나는 70년대 초 대전에서 충남고등학교를 나왔다. 그러나 티 없는 가슴에 내게 전라도 사람이라는 슬픔을 준 사람들은 모두 가까운 사람들이었다. 가르치는 선생님도 수업 도중에 ‘나는 전라도 사람들이 싫어’ 하셨고, 친구들도 나를 ‘넌 전라도 놈이지.’하면서 멸시(蔑視)어린 눈초리를 보내기도 하였다.


역전 마라톤 대회가 열리자, 응원을 위해 길가에 도열해 서 있던 우리는 저만치 달려오는 마라톤 선수 중에 전라도 선수가 뛰어오는 것을 보았다. 그러자 바로 앞에 친구가 이렇게 말하였다.

“저 새끼, 전라도 아니야?”


내가 오랫동안 대전을 찾지 않게 된 사건이 하나 있다. 대학 입학 예비고사를 마치고 우리는 본고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누나가 그동안 사귄 내 친구들에게 대접을 하고 싶다고 하여서 나는 친한 친구 몇 사람을 불렀다. 우리는 맛있게 저녁을 먹었다. 식사가 끝나고, 친구 중 하나가 말한 한 마디를 듣고 나는 두 번 다시 대전을 찾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전라도 광주로 돌아왔다.


“그동안 너를 전라도 사람으로 보았더니, 지내고 보니 좋은 놈이었어.”

라고 말한 친구는 나를 그동안 전라도라는 멸시의 대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다. 내 잘못에 의해서가 아니라, 누군가가 악의적으로 가르친  편견에 의해서 혹은 선입견에 의해서 내가 판단되고 평가되었다는 슬픔.


당시는 그랬었다. 그런 전라도가 마침내 한으로 뭉쳐지고, 결국 5.18 민주 항쟁으로 절정(絶頂)에 이를 때, 우리는 소외되고 차별되는 슬픔에 몸서리칠 수밖에 없었다. 5.18이 끝나고 부여로 답사를 가던 길이었다. 어느 음식점에서 ‘전라도 사람은 나가라’며 음식점 아주머니가 우리를 밖으로 내쫓던 경험을 잊을 수 없다. 그것은 우리 전라도 사람이라면 잊으래야 잊을 수 없는 처절한 기억이었다.


심지어 그 무렵, 10대  대기업에 과장 승진자가 하나도 없다고 발표했던 전남대 석사 학위 논문을 나는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런 시절을 거쳐 우리는 김대중과 노무현 시대를 만났고, 이어 우리는 또 하나의 오명(汚名)을 듣고 있었다.

‘전라도는 좌파가 지배하는 곳’


그러나 전라도는 좌파만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지내온 고통스런 설움 속에서도 자유민주의 가치를 잊지 않았고, 대한민국 건국정신을 놓치지 않았다. 나와 내 벗들은 끝내 우익의 길을 가고자 하였고 지금에 이르렀다.


어린 시절 빨치산에 의해 무려 130명에 이르는 동네어른들이 돌아가셨다. 죽창으로 찔러서 그랬는지 아직은 덜 죽은 부들부들한 시신을 파묻은 생매장터를 보면서 무서워하던 시절. 무서운 공포만큼 우리는 공산당을 싫어하였다.


그래서 나는 전라도 B백 출신이면서도 자유민주 가치를 숭상하는 사람, 김정일을 싫어하는 우익이다. 그러나 지금 전라도 우익은 잔별처럼 살아가는, 실낱같은 산소호흡기에  지탱하는 존재들이다.


전라도 전체가 좌파에 의해 점령당한 지금, 우익의 목소리는 작다. 모였다 하면 좌석의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좌파들이다. 모든 정책과 현상에 대한 가치 판단도, 어린애를 향한 밥상머리 학습도 좌파의 영역 속에 들어있다. 이제는 전라도 전체가 좌파가 이끄는 거대한 물결 속에 들어있고, 거대한 군중심리를 이루고 있다. 거기에서 우익은 흔들리는 조각배처럼 작고 초라한 존재들일 뿐이다.


필자(筆者)는, 소위 대운하 반대론이 전라도 백성들 저변(低邊)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목격하고 있다.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정이 앞세워지고, 여기에 좌파들의 정치적 음모가 가공(加工)되어 이명박 정부에 대한 증오로 발전되고 있다. 한마디로 좌파적 논리와 선동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해방구 현상이다.


그러므로, 이명박 정부는 정책의 효율적인 집행을 위해서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그 중에서도 인적 자원에 대한 지원과 회생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좌파가 지배하고 있는 전라도 내부의 행정, 문화, 경제, 교육, 방송 등 각 분야에 그동안 모진 세월을 버티며 살아남아 있는 우익세력을 찾아 하나하나 심어야 한다.


전라도 우익세력들이 호남 정책 수행의 중심에 들어서게 되면, 자연히 주변에 힘과 사람들이 모이게 마련이다. 이어 뜻을 숨기고 살고 있던 우익의 목소리가 살아날 것이고, 자유민주를 향해 좌파를 버리고 뭉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 다시 노무현과 같은 무리가 호남을 찾지 않도록, 우리는 우익의 깃발을 높이 들어야 한다.


전라도, 외로운 우익의 길.

진정 원군(援軍)은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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