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원동성당 게시판

거룩한 헌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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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배 [kimpaul25] 쪽지 캡슐

2004-05-02 ㅣ No.2989

거룩한 헌금

 

‘성모의 밤’ 봄바람이 하염없이 머리카락 흔드는 그윽한 밤이다.

‘얼마를 해야 하나?’ 옆에 서 계신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나를 지긋이 쳐다보시면서 두런거리시는 말씀이다. ‘형편껏 하시지요.’ 손에 굳게 쥐신 만 원짜리 한 장, ‘성모님께 드리는 것인데…!’ 혼자 말을 하시며 봉투에 넣는다. 할머니의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쳐다보았다. ‘어려운 할머니 같은데!’

 이십여 년 전, 압구정 성당 건축 때의 일이 문득 떠오른다.

 미사 끝나고 신부님 앞에 나간 어머니는 봉투 하나를 신부님께 덥석 내어놓으신다. 돌아서는 어머니께 여쭈었다. ‘신부님께 사십만 원 드렸다.’ 내가 봉급 이십만 원이나 될까 하는 때이다. 봉급보다 이자가 많은 어려운 찌든 생활 속에서 고이 모아 둔 돈을 내어놓으셨단다. 나는 한편으로 참으로 서운하였다. 의논 한 마디 없이 그러한가. 사실 마음속으로는 아까운 마음이 가득하였다. 그러나 어머니는 기쁜 마음뿐이었다.

 어머니 병고 13년, 병상에서 혼몽한 나날을 보내시는 어머니이시다. 쌍 촛불 켜놓고 밤이나 낮이나 9일기도 드리던 그 모습이 선하다.  내가 이만큼 사는 것도 모두 우리 어머니가 성모님 치맛자락을 움켜잡고 하신 기도가 우리 주님께 통하신 것이리라.

 엄마, 엄마, 엄마! 얼마나 좋은 이름이냐. 늙어갈수록 좋은 이름이다. 세상의 모든 좋은 것을 다 감추신 엄마가 아닌가. 엄마의 젖가슴에 얼굴 파묻고 잠에 빠진 아가를 영원히 잃을 수 없다.

 ‘엄마의 엄마이신 성모님께 드리는데 무엇인들 아끼겠나.’ 초라한 할머니의 만원이 어느 가난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신 예수님께 이르러 수백만의 물고기가 되겠지!

 

 성모님의 머리 위에 화관을 올려놓으시는 늙으신 신부님의  손이 떨리신다. 우리 신부님의 엄마는 우리 엄마보다 더 늙으셨던데, 망백을 앞두시고 돌리시는 묵주기도의 줄을 타고 사제의 길을 묵묵히 걸으시는 우리 신부님의 그림자가 선명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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