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골 자유 게시판

짝사랑이야기5

인쇄

권진성 [greenbee] 쪽지 캡슐

2000-06-05 ㅣ No.835

부제. 18년간의 짝사랑이야기.

 

 

오월 달이 20일을 먹었다. 4학년 이상의 고학년들은 반 별로 제각기 체육대회 준비로 부산

했다. 5학년 1반도 예외가 아니었다. 체육대회는 이틀에 걸쳐 치루어진다. 축구, 야구, 발야

구, 피구, 그리고 씨름의 종목에서 반 대항으로 경기를 가진다. 7반까지 있던 이 학교는 토

너먼트 형식으로 경기를 치루었다. 한 종목이라도 우승을 한 반에게는 공책이나 필기구 등

반 전체의 학생들에게 상품이 돌아 갔다. 학생들이 열을 낼 만 했다. 그것보다 담임들의 기

싸움까지 벌어져 학교 내 체육대회치고는 상당한 열기가 있었다. 피구는 여자들의 종목이다.

그리고 발야구는 남녀가 동반으로 팀을 만들어 경기를 치루었다. 반 학생들 모두가 참여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한 학생이 두 종목에 참여하는 것을 금지 시켰다. 세 개의 종목 중 신

청자가 가장 몰리는 것은 야구였다. 작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한 것이 한 몫을 했다.

철민의 반에서 종목별로 선수들을 뽑았다. 담임이 조례를 마치고 학생들의 신청을 받기 시

작했다. 가장 인기가 있는 야구부터 신청자를 받았다.

"야구가 가장 인기가 있고, 또한 상품도 푸짐하니까 실력이 좋은 사람들을 가려 뽑겠다. 야

구 선수 할 사람."

여기 저기서 손을 들었다. 밝히는 선생 답게 어머니들의 치맛바람이 거센 학생들부터 선수

로서 칠판에 적기 시작했다. 철민은 투수로서 학생들에게 인정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

로 철민은 손을 들지 않았다.

"얌마, 너 왜 손 안들어?"

철민의 짝꿍인 동엽이가 소곤 거렸다.

"나는 발야구 할거야. 혹시 모르잖아."

"뭘 혹시 모른다는 거야?"

"발야구는 여자들하고 같이 하잖아."

"너, 지윤이랑 놀고 싶어서 그러는거냐?"

"너 죽을래."

철민의 마음속에는 현주랑 같이 발야구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있었다. 뒤에서 반장이 일어

서 소리쳤다.

"선생님, 철민이가 야구를 잘 합니다. 우리 반 투수는 철민이가 했으면 좋겠습니다."

’저 새끼가 진짜.’

철민은 기분 나쁜 눈짓으로 뒤를 돌아 보았다.

"철민이가 진짜 공을 잘 던져? 철민이는 손을 안 들었는데?"

교탁에 있던 담임이 철민에게 눈짓을 주었다.

"저는 발야구 하고 싶은데요."

"철민이는 발야구 한다는데? 철민이가 진짜 야구 잘하냐?"

"네."

철민이의 귀가 번쩍 튀였다. 네,라고 대답한 목소리는 자신이 너무나 가슴에 품고 있던 소녀

의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철민이는 또 뒤를 돌아다 보았다. 현주가 자신을 쳐다 보고 있음을

알아 차리고 부끄러워 다시 고개를 돌렸지만 얼굴엔 미소가 맺혀 있다.

"너 진짜 야구 잘하잖아."

뒤에서 지윤이도 물었다. 하지만 그 소리는 철민의 귀에 들어 오지 않았다. 철민은 번쩍 손

을 들었다.

"저 야구하겠습니다."

"그래. 그럼 철민이가 투수해라."

철민은 히죽거렸다. 괜히 기분이 좋은가 보다.

야구 다음으로 축구 선수를, 다음으로 발야구, 그리고 여자들이 참여하는 피구 선수를 뽑았

다. 맨 마지막으로 씨름 선수를 선발했다. 씨름 선수들은 야구나 축구에 포함되지 못했던 남

학생 나머지들이었다. 동엽이는 씨름 선수에 포함이 되었다.

"아무래도 나 찍혔나봐."

야구만 빼놓고 동엽은 계속 손을 들었었다. 하지만 담임이 눈길을 주지 않았다.

"넌 씨름선수 처럼 생겼어 임마."

현주는 발야구에도 피구에도 손을 들지 않았다. 부반장이라고 응원 단장을 한다고 그런다.

지윤은 피구 선수로 출전할 것이다.

 

철민의 집에는 글러브랑 야구 배트가 있었다. 사학년 때 삼월 달 월말 시험에서 전과목 만

점을 받고 아빠에게 선물로 받은 것이 있다. 그 선물을 받으려고 철민은 국민학교 교내 월

말 시험이었지만 코피 터져 가며 공부를 했었다. 조금 게으른 성격이었지만 마음먹고 시도

한 것에는 상당한 집중력이 있었다.

종례를 마치고 집으로 가기전에 철민이가 동엽이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동네 가서 내 공 좀 받아라."

"나도 씨름 연습해야 돼."

"야이. 나도 너 씨름하는데 상대 해 줄게."

"그럴까?"

"그래 임마."

"너네 둘이 가는데 나도 따라 가면 안되니?"

지윤이가 동엽이와 철민이가 하는 소리를 가만히 듣다가 물었다. 가방을 다 챙기고 철민이

에게로 벌써 와 있다.

"니가 왜 가는데?"

철민이가 퉁명스럽게 대답을 했다.

"너네 동네 여기서 가깝잖아. 나 체육을 못하거든, 나 피구하는 것 좀 가르쳐 줘."

"야, 기집애들하고 놀아. 피구는 기집애들이 하는 거잖아."

"좀 가르쳐 주라. 응. 너네들 연습하는 거 구경하는 것도 잼 있을 것 같아."

"우리 배구공은 없어."

"가면서 사면 돼."

철민과 지윤이 주고 받는 대화를 듣다가 동엽이가 끼어 들었다.

"같이 가자. 지윤이는 너 애인이잖아."

얼굴이 다소 붉어진 지윤이는 철민의 가방에 두들겨 맞는 동엽이를 바라 보며 웃었다.

세명이서 결국은 같이 가기로 했다. 교문 앞으로 벗나무들이 꽃을 지우고 있다. 그 사이 길

로 학생들의 퇴교 모습은 즐거운 영상이었다. 철민이 걷고 있는 저 앞에서 현주가 친구들과

재잘거리며 걷고 있다.

현주와 같이 걷는 아이들 중에는 남학생도 둘이가 있었다. 다 잘 나가는 엄마의 아들들이다.

재잘거림으로 인해서 걸음 속도가 늦었다. 철민 일행은 얼마 안가서 그들을 따라 잡았다.

"현주야 잘가. 현철이도."

지윤이는 그들과 친했다. 철민은 현주에게 애써 시선을 주지 않고 그냥 지나치고 있다.

"야, 김철민. 잘해 보자."

반장인 현철이가 그냥 지나치는 철민에게 인사를 건넸다.

"알았어."

"너 공 진짜 빠르더라."

현철이의 칭찬하는 말에 철민은 고개를 돌렸다. 얼른 현주에게 시선을 주었다가 눈이 마주

치기 전에 현철이에게 웃음으로 답을 했다.

"허허."

"현철인 참 착한거 같아. 작년에 쟤가 던진 공에 맞고서도 칭찬하는 걸 보면."

현주가 허허, 웃는 철민에게 찬물을 끼얹는 대답을 했다. 철민은 현철이는 이름이 불려지고,

자신은 그냥 대명사로 호칭 되어 진다는 사실에 거리감을 느꼈다. 작가(내가 근데 작가 맞

나?)의 생각으론 일년 전에 자신이 공을 던진 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언가 기쁨을

느낄 만도 하건만.

"아니 뭐. 내가 착한 것은 사실이지만 쟤가 공을 잘 던지는 것도 사실이야."

"얘?"

"네."

"너 왜 자꾸 현주가 묻는 말에 네라고 답하는 거니? 저번에도 그러더니."

철민이가 현주가 자신을 부르는 말에 얼떨결에 경칭으로 답을 하자 지윤이가 입을 삐죽거리

며 물었다.

"쟤가 나보다 키가 훨씬 커잖아."

"뭐야? 내 키 큰 거에 네가 보태준 거 있니? 지윤아 너 쟤들하고 같이 가는 거니? 기분 나

빠 진짜."

현주가 뭔가 철민에게 말을 하려다 철민이 생각 없이 던진 말에 화를 내고는 가던 길을 가

버린다. 잠시 섰던 현주의 일행들도 그냥 인사만 하고 현주 따라 철민이를 떠나 갔다. 철민

이는 다소 멍한 표정으로 현주의 뒷모습을 바라 보았다. 동엽은 아무 말 없이 서 있다가 입

을 열었다.

"우리도 가자."

"그래. 근데 쟤 왜 저러는거냐?"

"현주는 키가 큰 것에 상당히 민감해. 솔직히 너무 크잖아."

옆에 있던 지윤이가 철민의 물음에 답을 해 주었다. 철민은 머리를 긁으며 몹시 무안해 하

는 표정이다.

"그래도 말하는 투가 맘에 안든다."

"맞아. 나 쟤들 다 맘에 안 들어. 너무 자기 맘대로구, 다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애들이야."

동엽이가 한 말에 지윤이가 거들었다. 철민은 험한 인상으로 동엽을 바라 보았다.

"너 현주랑 친하잖아."

"친하긴 한데, 맘에 안드는게 많아. 배려하는 마음은 많은 것 같은데, 잘 삐쳐."

"허허, 너 상당히 똑똑한 애 같다."

말하는 것이 자기 주위 애들과 조금 틀리자, 그러니까 누나들이나 하는 소리를 자기 반 친

구에게 들으니까 감복하는 투로 동엽이가 지윤이에게 대답을 했다.

"니가 좀 모자라니까 그렇게 보이는 거야. 얘가 뭐가 똑똑하냐? 야, 현주하고 친하게 지내."

"친하게 지낼거야. 근데 정이 가는 애는 아니야."

철민은 아니꼬운 눈빛을 지윤에게 한 번 보이고는 그도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철민이가 집에서 글러브와 공을 가지고 나왔다. 지윤은 철민의 집을 유심히 바라 보았다.

"아담하고 좋다."

"그럼, 우리 아버지가 직접 지었는데."

"우리집도 좋은데."

동엽이가 지윤을 보며 한 마디 독백식으로 내 뱉었다. 그들은 인근 운동장으로 갔다.

"너 배구공 안 사?"

"나 돈 없어."

"이거 바보 아냐?"

 

"으라차차차!"

"야, 철민이 잘한다."

"내가 이겼으니까 또 내 공 열번 받아."

 

"퍽!"

"야, 철민이 공 빠르다."

"손 아퍼, 열 번 받았으니까. 또 씨름 한 번 해."

 

"으라차차차!"

"야, 철민이 잘한다."

"내가 이겼으니까 빨리 내 공 받을 준비해."

 

"씨융. 퍽!"

"야, 철민이 폼 멋지다."

"아이씨, 손 아프다. 또 씨름 연습해."

 

"으라차차차!"

"야, 철민이 또 이겼다."

"너 씨름 선수 맞어?"

"내가 되고 싶어 되었냐. 나 선생님에게 찍혔나봐."

"그럼 니가 공 한번 던져라."

 

"아우웅."

"동엽이 공 너무 느리다."

"철민이 공이 빨라서 그렇게 느껴지는거야."

"우우우!"

 

봄 하늘의 햇살이 서쪽 산으로 기울고 있다. 따스한 기운이 도는 운동장엔 먼지가 날리고

국민학생 세명은 이마에 땀이 흐르고 있었다.



46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