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곡동성당 게시판

눈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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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진 [petrojin] 쪽지 캡슐

2004-03-05 ㅣ No.3139

눈에 대한 단상(2004. 3. 5 때아닌 폭설을 맞이하여)

어제 저녁 눈이 많이 와서 설경을 제대로 만끽하고 있습니다. 저녁 늦게 집에 들어가면서 사진기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을 여럿 보았습니다. 그 중에 어떤 연인은 제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을 하더군요. 그래서 멋진 사진사가 된 기분으로 성심 성의껏 최선을 다해 찍어드렸습니다. 좋아하는 두 분의 모습이 참 보기 좋았습니다. 행복을 찍어주는 사진사가 된 기분이었습니다.

하늘에서 눈발이 내릴 때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어서겠지요. 저도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누구에게 전화를 걸지... 주임신부님께 걸까? 아니야 너무 늦은 시간이라 주무시겠지... 부모님께 걸까? 아니야, 부모님도 주무시겠지...

그래서 생각난 게 역시 주님밖에 안 계셨습니다. 마음으로 전화할 수 있는 분! 나의 주님이 계셔서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했습니다. 역시 주님께서 바로 제 마음을 받아주시더군요.

 

지금은 거실에 앉아 조용한 음악과 함께 나뭇가지에 살포시 걸터앉은 그 흰 자태를 구경하고 있습니다. 그 눈들을 치우지 않고 계속 보았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었는데... 아쉽네요. 눈을 치운 대가로 빵을 한 조각 얻어 먹었지만, 차라리 굶어도 좋으니 계속 눈구경을 하는 게 더 좋았는데... 왜냐하면 그 눈들이 제 눈을 맑게 해 주는 것 같아서였습니다. 심지어 제 영혼까지도...

흰 눈처럼 제 마음도 희어지기를 소망해 봅니다. 뭐라구요? 너무 지나치다구요....

 

눈은 언제나 주님께서 만들어 주신 세상을 새 하얗게 만들어 줍니다. 마치 이미 색칠해져 있는 그림에 하얀 덧그림을 그리듯이 말입니다. 이 세상의 더러운 구석구석을 깨끗하게 덮어주는 눈이 참 좋아요. 물론 눈을 치워야 하고 운전을 하시는 분들에게는 지나친 감상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하얀 눈이 좋은 걸 어쩌겠어요.

 

어제 내리는 눈을 보면서 제 마음에도 눈이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간절히 했답니다.

가슴에 묻을 건 묻고, 지울 건 지우고, 덮을 건 덮고, 다시 환한 세상을 환한 마음으로 보고 싶었습니다. 제 가슴으로 느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답니다. 제 마음에, 이 세상에 눈을 펑 펑 내려 주십사하고요.

 

아마 올 겨울 이런 눈을 못 보았다면 전 스프레이 눈이라도 뿌렸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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