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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모두 읽어보세요(3) -사제와 주일학교 교사의 유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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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훈 [hdoubleo] 쪽지 캡슐

2000-06-03 ㅣ No.965

제 글이 많은 분들께 읽히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쁨으로 느껴집니다.

많은 분들에게 제가 올리는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여기에 계신 모든 분들이 하늘에서 별처럼 빛나실수 있기를...

 

 

3. 사제와 주일 학교 교사의 유사성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빛 가운데로 인도해 주신 하느님의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1베드 2,9).선택된 민족이고 또 왕의 사제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 이러한 말씀은 구약 성서에서 인용된 것이다.

 

  하느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사용하신 말씀이다. "사막에 물어 대어 주고 광야에 줄기를 끌어들이리니, 뽑아 세운 내 백성이 양껏 마시고 승냥이와 타조 같은 들짐승들이 나를 공경하리라. 내가 친히 손으로 빚은 나의 백성이 나를 찬양하고 기리리라."(이사 43,20-21).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내가 뽑아 세운 백성이라고 말씀하셨다.

 

  신약성서에는 "하느님의 백성 이스라엘"(갈라 6,16)과 그리스도인은 이 타락한 세상으로부터 선택된 백성이라고 쓰여 있다. 예수님은 내가 당신들을 뽑아 세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인은 사제이며 사제는 하느님에게 봉사하기 위해서 뽑힌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앞에 살아 있고 거룩한 사제로서 부름을 받은 것이다.

 

  구약성서 출애굽기 19장 5-6절에 이스라엘이 사제의 직책을 맡은 나라,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는 약속과 소명이 기록되어 있다. 종교적 의식은 사제의 손에 의해서 행해졌으며, 일반 사람들은 사제를 중재로 하느님과의 만남을 이룬다. 하느님께서 믿는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귀중한 자격을 허락하신 데에는 커다란 목적이 있다. 그 목적은 "여러분은 어두운 데서 여러분을 불러내어 그 놀라운 능력을 널리 찬양해야 합니다."라는 말과 같다.

 

  주일 학교 교사는 구약 시대의 사제와 매우 흡사하다. 여기서 사제의 자격에 관해서 다시금 성서를 살펴보기로 하자.

 

  구약성서 레위기 8장을 보면 사제의 임명식에 대한 기사가 기록되어 있다. 또 출애굽기 40장을 보면 초막을 짓는 일과 기름을 붓는 일, 아론 사제를 성별(聖別)하는 일 등 세 가지 명령이 있다. 그것에 계속되는 이야기는 레위기 8장에 있다.

 

  첫 번째로, 물로써 그들을 씻어 깨끗하게 한다.(레위8,6).사제는 물로 씻겨져서 깨끗해진 자, 즉 마음이 깨끗해지고 거룩해진 자이며, 주님의 봉사를 위해서 자기를 봉헌해야만 했다. 다음으로, 옷을 입힌다.(레위 8,7). 세 번째로 소명의 기름을 붓고 마침내 사제가 되는 것이다.

 

  구약 시대에 사제가 되기 위해서는 아론의 가족이 되어야만 했었다. 아론은 사제직에 있어서는 참된 대사제이며 그리스도의 모형이다. 이 참된 대사제직은 실로 존귀한 직무이며 인간이 자기 마음대로 이 존귀한 직무를 맡을 수는 없다. 아론은 특별히 하느님께 부르심을 받아 힘을 얻게 된 것이다.

 

  "대사제는 누구나 사람들 가운데서 뽑혀 사람들을 대표하여 하느님을 섬기는 일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대사제는 속죄를 위해서 예물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입니다. 대사제는 자기도 연약한 인간이므로 무지하거나 유혹에 빠진 사람들을 동정할 수 있습니다. 그는 또 이렇게 연약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의 제물을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영예로운 직무는 자기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론처럼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서 얻는 것입니다."(히브 5,1-4).

 

  오늘날의 교사도 하느님의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느님의 가족이 되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사랑에 의해 재생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그래서 하느님을 닮은 새로운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더욱이 성령에 의해서 성별(聖別)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제가 헌신해야만 하는 것과 같이 교사도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설사 경험이 없다 하더라도 하느님으로부터 부름을 받고 헌신하게 되면 하느님은 축복해서 도구로 써주실 것이며 제아무리 주일 학교에서 교육하는 방법이 능숙하더라도 헌신하고 있지 않는 교사는 이미 자격을 잃어버린 것이다.

 

  사실 하느님의 가족, 아론의 가족인 사제는 헌신뿐만 아니라 백성을 하느님에게로 이끄는 희생도 해야만 했다. 주일 학교 교사도 어린이들을 하느님 곁으로 이끄는 희생을 해야 한다. 교사는 하느님 가족의 일원이 되어서 특별히 선택되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음을 자각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따라서 복음을 선포하고 영원히 남을 열매를 얻도록 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모든 사람에게 이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느님의 가족으로서 헌신하도록 특별한 소명을 받은 자의 참된 의미는 복음을 전하고 결실을 맺는 것이다. 물론, 주일 학교 교사로서만 헌신하고 전교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영적인 면을 지도하는 것이다. 때문에 열고 성을 다해서 헌신해야 할 것이다. 교사의 대부분은 활동(개인적인 생활)하면서 가르치고 있다. 헌신하게 되면 아무리 활동이 바쁘거나 힘들더라도 예수님과 닮은 생활을 할 것이다. 그러나 헌신하지 않으면 이러한 점이 깨어져 버릴 위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어린이들에게까지 나쁜 영향을 주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주일 학교 교사로서 아이들 앞에 섰을 때는 연령으로나 신앙적으로 미숙하고 자격이 없었지만, 그 당시 우리 주일 학교에서는 교사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교사가 되었다. 세례를 받고 하느님 가족의 일원이 된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성서 지식 또한 부족한 나였지만 교사가 되었을 때의 기분은 나쁘지 않았었다.

 

  수업시간에는 조그만 종이에 작은 글씨로 한 자, 한 구절을 써서 성서 사이에 끼워 이야기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중요하게 꼭 해야 할 중심이 되는 말을 빼먹기도 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기도 하는 등 언제나 실수뿐이었다. 이런 날들이 얼마 동안 계속되었는데 그러는 동안에 나는 나 자신에게 "틀렸다. 나는 주일학교 교사를 할 수 없는 자다!"라고 자책하고 신부님에게 하소연하여 사퇴해 버렸다.

 

  내가 스스로 그만둔 그때의 생각은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슬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지금은 내가 할 수 있기 때문이라기보다 주일 학교 교사로서 헌신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에게 어떤 어려움이 없어진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헌신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실패도 시련도 많지만 헌신한 후는 어떤 시련도 감사하게 되었고 지금은 누가 주일 학교 교사를 그만두라고 하더라도 그만둘 수 없게 되었다.

 

  평소 아이들을 좋아하는 교사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을 통하여 아이들을 하느님 곁으로 인도하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거나 성서를 연구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도 사랑으로 대하지 않으면, 일을 할 때는 그것에만 몰두하다가도 어떤 때에는 육체의 피로를 느끼는 때가 종종 있었다. 또 어머니로부터 꾸중을 듣기도 하고 비신자로부터 험담을 듣기도 하였으나 그것과 싸워 이겨왔다.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그것이 기쁨이 되었고, 봉사하는 일에 의해서 하느님께서 나를 지탱해 주고 있다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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