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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영혼 [61.106.109.*]

2005-01-29 ㅣ No.3237

 

   안녕하세요. 자매님, 공적으로도 개인적으로도 저에게 인연이 깊은 정씨 성을 가지셨군요. 반갑습니다.

   먼저 그 인연을 간략히 설명드릴께요. 제가 지금 나이가 4학년 5반입니다만, 과거 미혼때에 정씨 성을 가진 자매를 깊이 외사랑하다가 손목한번 못잡아보고 눈물 흘리더니 어느날부터인가 어린시절 아무것도 모르고 어른들을 따라하던 성호경을 긋기 시작하였고, 현재의 옛날식 깊은 반지한 연립인 이집에서, 즉 당시의 인근 성당 건립중의 보좌신부님 관사로 흘러들어와 글을 쓰고 있답니다. 아무튼 이집 윗층에도 호랑이 아줌마가 사시는데 냉담중이라 하시더군요. 윗층에는 당시 정수녀님이 기거하셨는데, 90년도에 돌아온 신앙인으로서의 성체조배중이셨던 정수녀님과의 만남의 순간도 참 극적이었던듯 합니다.

 

인근 성당은 ''성모성심''을 주보로 모시는 응암동 성당이었어요. 정수녀님께선 저의 고독한 사연을 오로지 들어주시고는 교황성하께서 주신 당신의 묵주를 제 손에 꼭 쥐어주셨고, 이튿날 ''천주성심''을 주보로 모시는 미리내 성당 축성 미사에 저를 안내하시고는 저의 등뒤에 오시어 깊은 기도를 이루어주셨는데 참 감사한 일이었지요. 그리고 저는 기도의 기쁨을 몰라 몇년뒤 이 귀한 묵주를 한바퀴도 돌려보지 못하고 잃어버려야 했답니다.

 

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모든 신앙인에게 하느님께선 그러시는것 같아요, 기도생활과 공부생활과 성사생활과 봉사생활과 공동체 생활의 조화를 꿈꾸시라구요. 저는 이 대목에선 참으로 부끄럽고 염치없는 죄인이지만 자매님 역시 이것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신분이라 여겨집니다.

 

그런가하면 종교단체를 위시한 보편 단체에서는 처음에 꿈의단계 그리고는 한동안 잘나가다가 갈등의 단계를 거쳐 하느님께서 밀과 가라지를 솎아내시는 조정 극복의 단계를 거치는데 역시 자매님께서도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서 계신것 같아요.

 

제가 앞서 장황하게 말씀드린 정씨에 대한 인연을 거론한 것에는 작은 ''성모신심'' 같은것이 숨어있답니다. 저희 요안나 어머니와 연세가 같으신 금년 75세 되시는 정수녀님께서는 ''매괴성지(묵주성지)''에 계시며 이제 내일 모래 2월이 되면 또 어느 이름모를 장미 언덕으로 영전(이동)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역시 사는게 바빠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생명''가꾸기보다는 ''돈''''명예''''집''''밥''등에 애착을 놓치 못하는 자신이 가련해 보일 때가 많답니다.

 

하여 저는 요사이 더욱 평일 미사에 참례하고 있어요. 어느날인가 가톨릭 교회에서 완전한 기도라 홍보해주시는 미사 참례를 하기가 부끄럽거나 게으른 마음이 올 때면 자매님의 그것처럼 잠시 뒤의 미사 참례시의 평화를 더듬을 수 있기에 억지로라던가, 무거운 발걸음을 옮김으로써 미사는 역시 내 영혼의 위안을 주기에도 충분하였답니다.

 

세상 누구나 하느님의 모상을 닮은 그 무엇이 존재하기에 지금의 내가 가짜 나일 수 있고 내안의 ''깊은나''이신 주님을 만나기위해 마음을 집중하고 또 겸손의 성체로써 섬기러 오신 그분을 배알하러 내려가는 여정은 참으로 뜻깊고도 의미있는 여정이 아닌가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안에 계신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하고자 자매님의 그 자연스러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자주 회심이 요구되기도 할 것입니다. 집중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는 가식과 충돌하게 되며 치료되기를 원하는 상처와 충돌하기도 할 것입니다. 이같은 충돌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를 시작하기 위해서 필연적인 것입니다.

 

가능하시다면 내안의 깊은 나이신 그분과 시간이 아까운 지우개의 만남이라던가, 건전지나 꽃처럼 닳거나 시들면 버리는 아쉬운 만남이 아닌, 특히나 생선처럼 비린내를 풍기는 최악의 만남이 아닌, 서로 땀을 닦아주는 손수건의 만남을 이루시길 바래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답니다. 이웃안의 깊은 주님, 그리고 하느님을 만나는 말씀과 영성체가 함께하는 미사 참례를 더욱 성실히 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면 되요. 미래가 아니고 현재의 자신을 열어야 하기에 마음을 써야할 당면 과제는 오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진정 사랑인지 살펴봐야 할 것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는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사랑의 행위이기에 그러므로 기도는 반드시 사랑의 결실을 맺어야 하기에 사랑을 청하는 것이 바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용서를 청하는 것 역시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성장에 감사드리는 것도 분명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매님의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따라서 자매님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에 태어나 생명을 얻으셨기에, 또한 자매님의 어머니가 땅에서의 자매님의 최초 수호천사셨기에 딸로써 어머니를 용서해 드리는 것도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사실 용서(얼굴용, 마주할 서/얼굴을 마주하는 것) 또한 하느님께 의탁하면 더욱 바람직하겠으나 어디 우리 인간에게 그것이 쉬운 일이던가요? 그러나 기도하면 너무 쉬울수도 있답니다.

 

자매님도 저랑 비슷하여 뭇사람들의 단정론(?), 판결론(?), 분심거리를 회피하시려는 경향이 엿보이는데 그럴때는 어두운 침묵이 아니라 밝은 침묵을 위하여 능동적으로 그분들 가운데 깊은 주님과 함께하며 침묵을 공부해 보세요. 하느님을 만나는 첫번째 조건이 ''듣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뭔가 우리가 바라는 서정적 삶을 통한 경건이라는 간이역을 향하는 삶의 이정표도 더욱 반겨 주시리라 믿습니다.

 

앞서 이야기 해주신분이 참 좋은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깊이 음미하셨을줄로 믿고, 돌아오는 미사때에는 우리를 위하여 매일 필연적으로 죽으시는 예수님 사랑의 미사를 보기보다는 참례하겠다는 의지로 먼저 그리스도의 제대를 바라보시기 바레요.

 

계속하여 제가 부끄럽게도 오늘(2005년 1월의 마지막 주간 토요일) 특전미사 제1독서 당번인데, 역시 자매님께도 보약이 되는 좋은 말씀일것 같아 예습할겸 올려 드릴려 했었는데, 시간이 얼마 안남았군요.

 

자매님이 대신 스바니야 예언서 2, 3;3절하고, 12~13절을 펴서 읽어주심 좋을것 같아요.

 

저는 그럼 잠시후 자매님께도 들리도록 감히 경건한 마음으로 제대위로 올라 봉독을 해 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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