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필독][영광] NAB 요한 복음서 10,17에서 in order to 가 사용된 것은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so_that_ 1988_ glory 112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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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24 ㅣ No.2205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1. 들어가면서

 

게시자 주 1: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나해 부활 제4주일 (착한 목자 주일)에 미사 중에 봉독되는 복음 말씀(요한 복음서 10,11-18)에 포함되는 요한 복음서 10,17에 대한 졸고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4.htm 

 

1-1. 다음은 NAB(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 전문인데,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XI.HTM 

(발췌 시작)

“This is why the Father loves me, because I lay down my life in order to take it up again.”

 

"바로 이것이 성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이유인데, 왜냐하면, 내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하여, 내 목숨을 내가 내놓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우선적으로, 요한 복음서 10,17은,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매년 부활 제4주간 월요일 복음 말씀(요한 10,11-18)나해 부활 제4주일 복음 말씀(요한 10,11-18)에 포함됩니다.

 

1-2. 질문 1: 그런데 바로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영어본 요한 복음서 10,17 전문을 가만히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하여 [앞의 제15-16절에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심이라는, 당신의 자유 의지(free will)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행사(行使)가(T2), 성부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는 이유이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는데,

 

그러나, 만약에 이 영어 번역문에 번역 오류가 없다고 한다면,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시는지 이해가 되는지요???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5월 9일]

1-3.

1-3-1. 다음은 "새 대중 라틴말 성경", 요한 복음서 15,10b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t_evang-ioannem_lt.html#15 

(발췌 시작)

..., sicut ego Patris mei praecepta servavi et maneo in eius dilectione.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1-3-1: 바로 위에 발췌된 "새 대중 라틴말 성경", 요한 복음서 15,10b에서, 라틴어 명사 "dilectio"의 격변화인 "dilectione"가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 단어 "dilectio"가, 그 사용에 있어, 다음의 제1-4항에 발췌된 바에서 기술하고 있듯이, "애덕의 행위"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음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1-3-2. 다음은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5,10b 전문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839/__PXN.HTM 

(발췌 시작)

"..., just as I have kept my Father's commandments and remain in his love."

(이상, 발췌 끝)

 

1-3-3. 그리고 다음은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15,10ㄱ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들]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즉, 그분의 사랑의 행위(dilection)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

(이상, 발췌 끝)

 

1-3-4.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the love of God"[하느님에 대한 사랑(dilectio)] 및 "the love of our neighbor"[이웃에 대한 사랑(dilectio)]에서 사용되고 있는 라틴어 명사 "dilectio""사랑의 행위"를 의미함을 밝히고 있는 졸글/논문[제목: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to love, amo) 라는 동사의 의미; 게시일자: 2015-07-02]] 읽을 수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 전문 필독 권고

(발췌 시작)

4-2. 그리고 사랑(love, amor)을, amor(love of concupiscence), amicitia(love of friendship), dllectio(dilection), 혹은 caritas(charity, 애덕), 이렇게 넷으로 구분하는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신학 대전(Summa Theologica), Ia IIae, q26에 주어진 설명 전문(우리말 번역문 포함)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74.htm [우리말 번역문 포함] <---- 또한 필독 권고

 

4-3. 바로 위의 주소에 있는 글에서 우리는, 특히, 이들 넷 중에서 amor(love of concupiscence)delectio(dilection)사랑의 행위(act)를 나타냄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영어로 "the love of God"로 번역되고 "the love of our neighbor"로 번역되는 표현들은, 왜냐하면 여기서 "love(사랑)""dilectio(dilection)"이기 때문에, 우리말로 각각 "하느님에 대한 사랑 행위(dilectio)" 그리고 "우리의 이웃에 대한 사랑 행위(dilectio)"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

 

그리고 여기서의 "dilectio(dilection, 사랑 행위)"은 위의 제3-2항에서의 설명과 위의 제3-4-3항에 의하여, 바로 "애덕(charrity)의 실천"이라는 행위(act)를 말함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이상, 발췌 끝)

 

1-4. 따라서, 바로 위의 제1-3항에서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영어본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이, 위의 제1-3-4항에 발췌된 요한 복음서 15,10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신 인과 관계에 있어서의 근거/이유와  전혀 부합하지(conform, fitting) 않은 영어 번역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21년 5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2. 유관 사료/자료 분석 I

 

2-1. [번역 오류]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NAB 요한 복음서 10,17에서, 특히 ‘in order to’를 사용하고 있는데, 그러나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다수의 영어본 성경들의 요한 복음서 10,17과 비교/검토를 해 보면, 바로 이 ‘in order to’의 사용이 독자들을 헷갈리게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m_bible/john10_17.htm <-----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라

 

무슨 말씀인고 하면, NAB 요한 복음서 10,17에서 ‘in order to’가, 이들 대다수의 영어본 성경들의 요한 복음서 10,17에서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는 "[so] that ... may/might ..." 대신에 사용되고 있음이, 매우 부적절함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즉, 번역 오류임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2-2. 그래서 바로 이 문장의 일부가 본문 중에 발췌 인용되고 있는, 다음에 발췌된,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06항의 마지막 문장과 얼마나 부합하는지 정밀하게 비교/검토를 해 보면,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1O.HTM 

(발췌 시작)

“The Father love me because I lay down my life,” (Jn 10:17) said the Lord, “[for] I do as the Father has commanded me, so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I love the Father.” (Jn 14:31).

 

"성부께서는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냐하면 내가 내 목숨을 내놓기 때문이며" (요한 복음서 10,17)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 "[왜냐하면] 성부께서 나에게 이미 명령하신 대로 내가 행하기 때문인데, 그리하여 그 결과(so that) 내가 성부를 사랑함을 이 세상이 알 수도(may) 있을 것이다." (요한 복음서 14,31).

(이상, 발췌 끝)

 

NAB 요한 복음서 10,17에서 ‘in order to’의 사용하면서 말하는 바, 즉, "내 목숨을 다시 얻기 위하여"가,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06항의 마지막 문장에서 제시하고 있는 이유, 즉, “[for] I do as the Father has commanded me, so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I love the Father.” (Jn 14:31) [졸번역: "[왜냐하면] 성부께서 나에게 이미 명령하신 대로 내가 행하기 때문인데, 그리하여 그 결과(so that) 내가 성부를 사랑함을 이 세상이 알 수도(may) 있을 것이다." ([RSVCE] 요한 복음서 14:31)](*)

 

매우 동떨어진 내용임을 알 수 있습니다.

 

-----
(*)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611년에 초간된 영어본 성경인 King James Version을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가, 현대 영어 어법에 맞게 공동으로 개정하여, 1966년에 가톨릭용으로 출판된, RSVCE (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 요한 복음서 14,31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rsv/john.htm

(발췌 시작)

[31] but I do as the Father has commanded me, so that the world may know that I love the Father. Rise, let us go hence.

(이상, 발췌 끝) 

-----

 

따라서,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어권 개신교회 측에서 존중을 받고 있는, 1611년에 초간된 King James Version 및 그 개정판인 Revised Standard Version 영어본 성경들의 요한 복음서 10,17의 문장 구조를 가진 다수의 영어본 신약 성경들의 요한 복음서 10,17들에서, 앞과 뒤의 문장을 연결하여 해석하여서는 아니 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so] that" 앞에 ","의 사용과 함께,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so] that ... may/might ..." 대신에, NAB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의 사용 없이,  ‘in order to’이 사용된 것이 매우 부적절함을 추가적으로 확인하였다는 생각입니다.

 

2-3. 그리고 이것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 요한 복음서 10,17을 들여다보더라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https://www.newadvent.org/bible/joh010.htm 

(발췌 시작)

Propterea me diligit Pater: quia ego pono animam meam, ut iterum sumam eam.

(이상, 발췌 끝)

 

2-4. 그리고 또한 이것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1979년), 요한 복음서 10,17을 들여다보더라도 알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bible/nova_vulgata/documents/nova-vulgata_nt_evang-ioannem_lt.html#10 

(발췌 시작)

17 Propterea me Pater diligit, quia ego pono animam meam, ut iterum sumam eam.

(이상, 발췌 끝)

 

2-5. 그러나, 다음에 발췌된 바는, 미사 중에 독서들을 발췌하는 허락을 교황청 유관 부처로부터 얻지 못하여오로지 개인 학습용 성경으로 남아 있는,(*) NABRE (New American Bible Revised Edition), 요한 복음서 10,17 전문인데,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1970년에 그 초판 발행된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과 여전히 정확하게 동일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bible.usccb.org/bible/john/10 

(발췌 시작)

17 This is why the Father loves me, because I lay down my life in order to take it up again.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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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의 2011년 1월 6일자 공지 사항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75.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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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바로 이러한 번역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교황청 경신성사성 문헌[제목: Liturgiam authenticam, 2001년 5월 7일]의 제41항 지침 정면으로 위반되는, 즉, 교회법적으로 적법하지 아니 한 번역(illegal transation)이라는 생각입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0.htm 

[주: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한 후에, 제일 마지막 부분을 보라.] 

(발췌 시작)

다음은,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의, 전례문, 성경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의 지역 언어로의 번역 지침서인, 교황청 경신성사성 문헌 [제목: Liturgiam authenticam2001년 5월 7일] 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rc_con_ccdds_doc_20010507_la_en.htm

출처 2: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말 번역문)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va2001trans_guide.htm

(발췌 시작)
41. The effort should be made to ensure that the translations be conformed to that understanding of biblical passages which has been handed down by liturgical use and by the tradition of the Fathers of the Church, especially as regards very important texts such as the Psalms and the readings used for the principal celebrations of the liturgical year; in these cases the greatest care is to be taken so that the translation express the traditional Christological, typological and spiritual sense, and manifest the unity and the inter-relatedness of the two Testaments.[34] For this reason: 

41. 번역문들이, 전례에서의 사용에 의하여 그리고 교부들의 전통에 의하여 전해 내려오고 있는 성경 구절들에 대한 바로 그 이해에 합치됨(be conformed to), 특히 시편들과 전례력의 주된 경축들을 위하여 사용되는 독서들 등과 같은 대단히 중요한 본문들에 관련하여, 확실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기울여져야 하며, 그리고 이들 경우들에 있어 번역본이 전통적인 그리스도론적(Christological), 예형론적(typological) 및 영성적(spiritual) 의미(sense)를 표현하기 위하여, 그리고 두 계약들(two Testaments)[34]의 단일성(unity)과 서로 관련되어 있음을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하여 최대한의 주의가 취하여져야만 합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a) it is advantageous to be guided by the Nova Vulgata wherever there is a need to choose, from among various possibilities [of translation], that one which is most suited for expressing the manner in which a text has traditionally been read and received within the Latin liturgical tradition; 

a) [번역에 있어서의] 다양한 가능성들 사이에서, 그 안에서 어떤 본문이 라틴 전례 전통 안쪽에서 전통적으로 읽혀지고 그리고 받아들여 온 방식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적절한 바로 그 한 개를 선택하여야 할 어떤 필요가 있는 장소 어디에서든새 대중 라틴말 성경(the Nova Vulgata)에 의하여 인도되는 것이 유익하다;

 

b) for the same purpose, other ancient versions of the Sacred Scriptures should also be consulted, such as the Greek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commonly known as the “Septuagint”, which has been used by the Christian faithful from the earliest days of the Church;[35] 

b) 동일한 목적을 위하여, 교회의 가장 초기의 시기들부터 그리스도교의 열심 신자들에 의하여 사용되어 오고 있는, 통상적으로 "칠십인 역"으로서 알려져 있는 구약 성경의 그리스어 번역본 등과 같은, 성경 본문들에 대한 고대 본들은 또한 참고되어져야만 한다;[35] 

 

c) in accordance with immemorial tradition, which indeed is already evident in the above-mentioned “Septuagint” version, the name of almighty God expressed by the Hebrew tetragrammaton (YHWH) and rendered in Latin by the word Dominus, is to be rendered into any given vernacular by a word equivalent in meaning.  

c) 위에서 언급된 "칠십인 역" 본에서 정말로 이미 분명한, 기억에 없는 전통과 일치하여, 히브리어 tetragrammaton (YHWH)에 의하여 표현되는 그리고 라틴어로 Dominus 라는 단어로 옮겨지는, 전능하신 하느님의 이름은, 의미에 있어 동등한 한 개의 단어에 의한, 어떤 정해진 자국어(any given vernacular)로 옮겨져야 한다.  

 

Finally, translators are strongly encouraged to pay close attention to the history of interpretation that may be drawn from citations of biblical texts in the writings of the Fathers of the Church, and also from those biblical images more frequently found in Christian art and hymnody.

 

끝으로, 번역자들은 교부들의 저술들에 있는 성경 본문들의 인용(citations)들로부터그리고 또한 그리스도교 예술(art)과 찬미가(hymnody)에서 더 자주 발견되는 바로 그 성경적 묘사(biblical images)들로부터, 도출될 수도 있는, 해석의 역사(the history of interpretation)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것이 강하게 독려된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 유관 자료/사료 분석 II: NAB 요한 복음서 10,17에 있는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 "in order to"의 문제점에 대한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적 및 성서 신학적 고찰

 

3-0.

3-0-1. 우선적으로 위의 제2-2항에서,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에서 "in order to"가 사용된 것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06항에 제시된, 성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시는 이유[즉, 내가 성부께서 나에게 이미 명령하신 대로 내가 행하기 때문("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15,10ㄱ; 위의 제1-3항 참조)]와 매우 동떨어졌음은, 이미 함께 고찰하였습니다.

 

3-0-2. 만약에, 어느 특정 지역 교회에서,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바와 같이 요한 복음서 10,17을 이해한다면(가정법 과거),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49항의 가르침은 본문 그대로, 그 지역 교회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한 개의 진리로서, 제시될 수 없을 것임에 반드시 주목하십시오:

 

출처 1: http://www.vatican.va/archive/catechism_lt/p122a5p2_lt.htm#Paragraphus 2 TERTIA DIE RESURREXIT A MORTUIS

(출처 1로부터 1997년에 초간된 라틴어 정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49항 발췌 시작)

649 Filius autem Suam propriam operatur Resurrectionem virtute Suae potentiae divinae. Iesus annuntiat Filium hominis multa pati debere, mori et deinde resurgere (sensu activo verbi 578). Ceterum Ipse affirmat explicite: « Ego pono animam meam, ut iterum sumam eam. [...] Potestatem habeo ponendi eam et potestatem habeo iterum sumendi eam » (Io 10,17-18). « Credimus quod Iesus mortuus est et resurrexit » (1 Thess 4,14).

(이상, 발췌 끝)

 

출처 2: https://www.vatican.va/archive/ccc_css/archive/catechism/p122a5p2.htm#649 

(출처 2로부터 1997년에 초간된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49항 발췌 시작)

CCC 649 As for the Son, he effects his own Resurrection by virtue of his divine power. Jesus announces that the Son of man will have to suffer much, die, and then rise.517)

Elsewhere he affirms explicitly: "I lay down my life, that I may take it again. . . I have power to lay it down, and I have power to take it again."518 "We believe that Jesus died and rose again."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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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 Cf. Mk 8:31; 9:9-31; 10:34.
518 Jn 10:17-18.
519 1 Thess 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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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3-0-2: 바로 위에 발췌된 영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49항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는 영어본 요한 복음서 10,17-18은, NAB (New American Bible)로부터가 결코 아니고, 아래의 제3-1항에 제시된 출처에 있는, 그리고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아는 한, 교황청에서 봉헌되는 미사 중에 영어본 독서들이 발췌되어 봉독될 때에 사용되는, RSVCE (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으로부터임에 또한 반드시 주목하라.

 

따라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0-3. (이 글의 결론 2)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영어로 번역 과정에,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so] that ... may/might ..." 대신에, "in order to"가 도입되어 사용된 것이 심각한 수준의 한 개의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0-4. 따라서 이번 항에서는,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영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so] that ... may/might ..." 대신에, "in order to"가 사용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와 대단히 동떨어져 있어, 그리하여 그 결과, 어느 정도까지 멀리 있는지, 즉, 얼마나 부합하지(conform, fitting) 않는지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3-0-4: 그러니까,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성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사랑하신다"에서 말해지고 있는 "사랑하다(to love)"라는 동사(verb)가,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하느님의 뜻/의지(will)의 동사형"임을 상기할 때에,(*1) "하느님의 뜻/의지(will)를 실천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부활하게 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음"(T1)이라는, 성부 하느님의 계시(Revelation of The Father)(A)인, 인과 관계(T1)를 나타내기 위하여 "... [so] that ... may/might ..."라는 문장 구조가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사용된 것이며,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i) 바로 이 인과 관계(T1)를 이미 만족시킨, 그리하여 그 결과, (ii) 피조물인 인간들이 바로 이 인과 관계를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길/도(道)(the Way)을, (iii) 당신 고유의 구속(救贖)/속량 위업(B)을 통하여, 마련해 주신, 새 아담(new Adam)(*2)임에(C),(*3)(*4)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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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글[제목: Ia q20 하느님의 사랑 < 하느님의 속성들; 게시일자: 2011-06-21]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 필독 권고

 

(*2)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새 아담"(new Adam)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new_Adam.htm <----- 필독 권고

(*3) 게시자 주: 이들 (A), (B), 그리고 (C)에 대하여서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을 학습하도록 하라:

 

출처: http://www.vatican.va/archive/ENG0015/__P1L.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Characteristics common to Jesus' mysteries

 

[CCC 516 그리스도의 전체 지상에서의 삶은 성부의 거룩한 계시(Revelation)이다] 

516 Christ's whole earthly life - his words and deeds, his silences and sufferings, indeed his manner of being and speaking - is Revelation of the Father. Jesus can say: "Whoever has seen me has seen the Father", and the Father can say: "This is my Son, my Chosen; listen to him!"177 Because our Lord became man in order to do his Father's will, even the least characteristics of his mysteries manifest "God's love. . . among us".178

 

[CCC 517 그리스도의 전체 삶은 한 개의 속량(redemption) 신비이다] 

517 Christ's whole life is a mystery of redemption. Redemption comes to us above all through the blood of his cross,179 but this mystery is at work throughout Christ's entire life: -already in his Incarnation through which by becoming poor he enriches us with his poverty;180 - in his hidden life which by his submission atones for our disobedience;181 - in his word which purifies its hearers;182- in his healings and exorcisms by which "he took our infirmities and bore our diseases";183 - and in his Resurrection by which he justifies us.184

 

[CCC 518 그리스도의 전체 삶은 한 개의 총괄복귀(recapitulation) 신비이다] 

518 Christ's whole life is a mystery of recapitulation. All Jesus did, said and suffered had for its aim restoring fallen man to his original vocation:

 

When Christ became incarnate and was made man, he recapitulated in himself the long history of mankind and procured for us a "short cut" to salvation, so that what we had lost in Adam, that is, being in the image and likeness of God, we might recover in Christ Jesus.185 For this reason Christ experienced all the stages of life, thereby giving communion with God to all men.186

(이상, 발췌 끝)

 

(*4) 게시자 주: 또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용어의 우리말 번역에 대하여; 게시일자: 2012-09-08]을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54.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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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요한 복음서 10,17를 지역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 [so] that ... may/might ..." 대신에"in order to"를 도입하여 사용하게 되면, 심지어 예수님처럼 "장차 부활하고자 희망하는", 즉, "자기 자신을 위한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을 받고 있는"(*4), 피조물들인, 그리스도교 신자들인, 우리들이라고 하더라도, 당신의 자유 의지(free will)의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행사(行使)(T2)만을 오로지 인지할 수 있을 뿐이지, 위의 제1-2항에서 "질문 1"의 형식으로 이미 지적하였듯이바로 이 인과 관계(T1)를 제대로 인지할 수 없음을 또한 반드시 주목하여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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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게시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글[제목: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과 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 게시일자: 2016-04-30]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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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만약에 바로 이 문제가 특정 지역 언어로의 번역 과정에서 발생하였다면,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이라고 지적하지 아니 할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3-0-4 끝)


3-1. 위의 제1항 및 제2항에서 지적한 바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요한 복음서 10,17-18에 대한,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이 또한 뒷받침합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east_4.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17] For this reason the Father loves Me, because I lay down My life, that I may take it again.

 

[17]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성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냐하면 [앞의 제15-16절에서처럼] 내가 나의 목숨을 내놓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that) 내가 그것을 다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

 

17-18. Jesus shows that of His own free will He will give Himself up to death for the sake of the flock (cf. John 6:51). Having been given supreme authority, Christ is free to offer Himself as a sacrifice of expiation, and He voluntarily accepts His Father's commandment, in an act of perfect obedience.

 

17-18. 예수님께서는 덩신의 고유한 자유 의지(free will)가, 이 양떼를 위하여(요한 6,51 참조) 죽음에 이르기까지 완전하게(up to) 당신 자신을 장차 내놓으실 것임을, 보여주십니다. 지고한 권한(supreme authority)이 이미 주어졌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속죄(expiation)의 희생 제물로서 당신 자신을 자유롭게 제공하시고, 그리고 당신의 성부의 명령을, 완미한 순종(perfect obedience)의 행위(act) 안에서, 자발적으로 받아들이십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3-2. 그리고 또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요한 복음서 10,17에 대한 올바른 이해는,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i) 십자가형(ii) 부활 및 승천이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심(glorification of Christ)의 두 양상(aspects)들임에 대하여서 매우 잘 기술하고 있는,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이방인들의 사도인 성 바오로의 서간문들 중의 하나인, 필리피서 2,6-11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htm <----- 필독 권고

 

3-3. 특히, 바로 위의 제3-2항에 안내된 주소에 있는 글 중에 발췌된, 성무일도/시간경매달 첫 번째 주일 저녁 기도(Vesper prayer)로서 바쳐지고 있는, 한 개의 찬가(Canticle)인 필리피서 2,6-11에 대한 2003년 11월 19일자 교리 교육용 수요일 일반 알현 강론 말씀[제목: 하느님의 종이신 그리스도(Christ, Servant of God)]에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psalter/jp2_b16_commentaries.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htm <----- 특히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 전공자들의 필독 권고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2. On the other hand, there is the triumphant ascension which takes place on Easter Day, when the Father reinstates Christ in the divine splendour and he is celebrated as Lord by the entire cosmos and by all men and women now redeemed. We are placed before a magnificent re-reading of Christ's mystery, primarily the Paschal one. St Paul, along with proclaiming the Resurrection (cf. I Cor 15: 3-5), defines Christ's Paschal mystery as the "exaltation", "raising up", "glorification".(*)

 

2. 다른 한 편으로, 성부께서 그리스도를 신성적 광채(divine splendour) 쪽으로 복위시키시는(reinstates) 그리하여 그분께서, 천체 우주에 의하여 및 이제 구속(救贖)을 받은(now redeemed) 모든 사람(men)들과 여자(women)들에 의하여, 주님(Lord)으로서 경축되는 때인부활절 주일(Easter Day)에 발생하는 승리의 오름(triumphant ascension)이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우리는, 주되게 파스카 신비인, 그리스도의 신비에 대한 한 개의 장엄한 다시 읽음(re-reading) 앞에, 놓여져 있습니다. 성 바오로는, 당신의 부활을 선포함과 함께(1코린토 15,3-5 참조),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즉, 구속(救贖) 신비]"고양"/"높이 들어올림 받음"(exaltation), "일으켜 세워짐"(raising up), "영광을 받음"(glorification)이라고 정의합니다(defines).(*)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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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바로 이 근거로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대희년인 2000년 5월 24일자 교리 교육용 수요일 일반 알현 강론 말씀에서 또한 다음과 같이 가르치셨음을 알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vatican/hf_jp-ii_aud_20000524.html  

(발췌 시작)

1. The mystery of Christ's Passover involves the history of humanity, but at the same time it transcends it. Thought itself and human language can in some way grasp and communicate this mystery, but do not exhaust it. For this reason, the New Testament, although speaking of "resurrection", as attested by the ancient Creed(*1) which Paul himself received and passes on in his First Letter to the Corinthians (cf. 15:3-5), also uses another expression to explain the meaning of Easter.

 

1. 그리스도의 과월/파스카(passover) 신비[즉, 구속(救贖(Redemption) 신비](*1)는 인류의 역사를 감싸나(involves), 그러나 동시에 이 신비는 이 역사를 초월합니다. 사유(thought) 그 자체 및 인간의 언어는 바로 이 신비를 어떠한 방식으로 붙잡을(grasp) 수 있고 그리고 전달할(communicate) 수 있을 것이지만, 그러나 이 신비를 남김없이 논하지(exhaust) 못합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신약 성경은, 바오로 자신이 받아들였고 그리고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자신의 첫 번째 서간에서 전하는(passes on)(1코린토 15,3-5 참조) 고대 신경(the ancient Creed)(*2)에 의하여 입증되듯이, 비록 "부활"에 대하여 이야기함에도 불구하고, 과월/파스카(Easter)의 의미를 설명하기 위하여 다른 표현을 또한 사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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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추가 일자: 2021년 4워 28일]

(*1)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집에 제시된 유관 설명을 학습할 수 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88.htm <----- 필독 권고

(발췌 시작)

3-1.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증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용어 사전에 주어진 "파스카 신비/희생제물 (Paschal Mystery/Sacrifice)" 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입니다:

출처 1: http://old.usccb.org/catechism/text/glossary.shtml#p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p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PASCHAL MYSTERY/SACRIFICE:

 

Christ's work of redemption accomplished principally by his Passion, death, Resurrection, and glorious Ascension, whereby "dying he destroyed our death, rising he restored our life" (1067; cf. 654). The Paschal Mystery is celebrated and made present in the liturgy of the Church, and its saving effects are communicated through the sacraments (1076), especially the Eucharist, which renews the paschal sacrifice of Christ as the sacrifice offered by the Church (571, 1362-1372).

 

파스카 신비/희생제사(PASCHAL MYSTERY/SACRIFICE):


그 결과로 “죽으심으로써(dying) 당신께서 우리의 죽음을 파괴하였고, 일어나심으로써(rising) 당신께서 우리의 생명을 되돌려주셨던(restored)”, 당신의 수난(Passion), 죽음, 부활(Resurrection), 그리고 영광을 발하는 승천(glorious Ascension)에 의하여 주로 성취된 속량(redemption, 구속)이라는 그리스도의 위업을 말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67항; 그리고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654항 참조).(*) 이 파스카 신비는 교회의 전례 안에서 경축되고 그리하여 현존하게 되며, 그리고 이 신비의 구하는 효능(saving effects)들은 성사(the sacraments)들을 통하여(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076항), 특히, 교회에 의하여 봉헌되는 희생 제물로서 그리스도라는 파스카 희생 제물(the paschal sacrifice of Christ)을 새롭게 하는, 성체성사(the Eucharist)를 통하여 전달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71항, 제1362-1372항).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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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그리스도에 의한 바로 이 구속 위업은 또한 "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불린다.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여,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홀수해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콜로새 1,24-2,3)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3_mon.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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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1년 4월 28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이상, 발췌 끝)

[이상, 2021년 4월 28일자 내용 추가 끝]

 

(*2) 게시자 주: 여기서 말하는 고대 신경(the ancient creed)은, 로마서 6,17에서 "가르침의 표준"(the standard of teaching)라고 언급되는 바, 즉, 사도 베드로가 로마로 갈 때에 이미 가지고 갔던 그리고 이후에 "사도신경"이라고 불리는 바를 말할 것이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71.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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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pecially in John and Paul it is presented as the exaltation or glorification of the Crucified One. Thus, for the fourth Evangelist, the Cross of Christ is already the royal throne which stands on earth but penetrates the heavens. Christ is seated on it as the Saviour and Lord of history.

 

특별히 [사도] 요한(John)바오로(Paul)에게 있어 그리스도의 과월/파스카(passover)십자가 형벌을 받은 자(the Crucified One)가 고양(高揚)/높이 들어올림 받음(exaltation) 혹은 영광을 받음(glorification)으로서 제시되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이 네 번째 복음사가의 경우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이미, 땅위에 서 있으나 그러나 하늘들을 관통하는, 왕좌(the royal throne)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의 구세주(Saviour) 및 주님(Lord)으로서 그 자리에 앉아계십니다.

 

Jesus, in fact, exclaims in the Gospel of John: "I, when I am lifted up from the earth, will draw all men to myself" (12:32; cf. 3:14; 8:28). In the hymn inserted in the Letter to the Philippians, Paul, after describing the profound humiliation of the Son of God in his death on a cross, celebrates Easter in this way: "Therefore God has highly exalted him and bestowed on him the name which is above every name, that at the name of Jesus every knee should bow, in heaven and on earth and under the earth, and every tongue confess that Jesus Christ is Lord, 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 (Phil 2:9-11).

 

예수님께서는, 사실, 요한의 복음서에서 다음과 같이 외치십니다(exclaims): "나는, 땅으로부터 내가 높이 들어올려질 때에, 모든 사람들을 나자신 쪽으로 장차 잡아당길 것이다" (요한 복음서 12,32; 요한 복음서 3,14 및 8,28 참조). 필리피인들에게 보낸 서간에 삽입된 찬미가에서, 바오로는, 하느님의 아드님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죽음에 있어, 심오한 모욕(profound humiliation)을 묘사한 다음에,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과월/파스카(Easter)[즉, 구속(救贖, Redemption)]를 경축합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였습니다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에 이르기까지(to the glory of God the Father)(*3)(필리피,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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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번역자 주: 바로 이 마지막 문구의 우리말 번역문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졸글에서 밝히고 있듯이, "새 번역 성경"의 대응하는 번역문이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임이 분명하기 때문에, 부득불, 필자가 바로잡은 것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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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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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2021년 4월 26일자 내용 추가 끝]

(이상, 발췌 끝)

 

 

4. 위의 분석들의 결과들

 

4-0.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5월 9일] 

4-0-1. 다음에 발췌된 (이 글의 결론 1)은 위의 제1-4항에서 이미 도출된 결과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위의 제1-1항에 발췌된 영어본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이, 위의 제1-3-4항에 발췌된 요한 복음서 15,10에서의 예수님의 말씀에서 구체적으로 밝히신 인과 관계에 있어서의 근거/이유와  전혀 부합하지(conform, fitting) 않은 영어 번역문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이상, 2021년 5월 9일자 내용 추가 끝]

 

4-0-2. 그리고, 다음에 발췌된 (이 글의 결론 2)은 위의 제3-0-3항에서 이미 도출된 결과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NAB (New American Bible)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영어로 번역 과정에,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so] that ... may/might ..." 대신에, "in order to"가 도입되어 사용된 것이 심각한 수준의 한 개의 번역 오류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4-1. [번역 미숙]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는 "새 번역 성경", 요한 복음서 10,17 전문인데,

 

(발췌 시작)

"아버지께서는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에 나를 사랑하신다. 그렇게 하여 나는 목숨을 다시 얻는다."

(이상, 발췌 끝)

 

그러나 이 번역문 또한, 위의 제2-1항에서 이미 고찰한 대다수의 영어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에서 형이상학적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는 "[so] that ... may/might ..." 이 전달하는 바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며, 따라서 다음과 같이, 한 개의 문장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A) "아버지께서는나를 사랑하시는데, 왜냐하면 [앞의 제15-16절에서처럼] 내가 목숨을 내놓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새 대중 라틴말 성경(Nova Vulgata)에 사용된 라틴어: ut] 나는 목숨을 다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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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제시된 바로 이 단계에서의 예수님의 바로 이 고유한 예언, 이후에 예수님께서 [성부 하느님으로부터] 영광을 받으심(glorification of Christ)에 의하여 야기된 바인, 예수님의 부활 및 승천에 의하여 구현되었음을 명백하게 기술을 하고 있는 신약 성경 근거인,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학습할 수 있는 [또한 위의 제3-2항에 안내된],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따라서, 요즈음 세대의 성서 해석자들의 증겨력보다, 더 나은 증거력을 가진 자인 성 바오로(St. Paul)의 서간문인, 필리피서 2,6-11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htm <----- 필독 권고

 

(ii) 또한 바로 위의 제3-3항에 발췌된,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가르침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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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번역 오류] 

부제: 국내의 개신교회 측, 요한 10,17에서, ... 위하여 ... 는 심각한 번역 오류이다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대한성서공회 홈페이지 제공의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신약 성경들 중의, 요한 복음서 10,17 전문들을 읽을 수 있는데, 아래의 항들에서 더 자세하게 말씀드리겠지만, 결론부터 먼저 말씀드리면, 상당히 예상 밖으로, (i) 그 번역 대본들 중에 포함됨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 소속의 선교사들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되어 1863년에 초간이 발행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과 그 문장 구조 및 기술하고 있는 바가 명백하게 다른, 그리고 또한 (ii) 19세기 말에 이르면 우리나라 조선에 입국한 서양인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우리나라 조선에 분명히 전달되어 있었을, 1611년에 그 초간이 발행된 영어본 King James Version, 요한 복음서 10,17과 그 문장 구조 및 기술하고 있는 바가 명백하게 다른, "in order to ..."과 논리적으로 등가인 바를 사용하는 문장 구조를 가진 표현으로 요한 복음서 10,17의 우리말 번역문이 마련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version=HAN&book=jhn&chap=10&sec=17&cVersion=GAE^SAE^&fontSize=15px&fontWeigh 

(발췌 시작)

[개역한글]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개역개정]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표준새번역]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

 

[새번역]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4-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 신약 성경들의 번역대본에 포함됨이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되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미국 개신교회 장로파 소속의 선교사들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에 의하여 중국어로 번역되어 1863년에 초간이 발행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 전문을 읽을 수 있는데, 그러나,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그 문장 구조 및 내용에 있어, 위의 제4-2항에 발췌된 우리말 번역문들과 상당히 다르다는 생각입니다:

 

출처 1: https://bible.fhl.net/new/ob.php?book=all&chineses=43&chap=10&sec=17 

출처 2: https://bible.fhl.net/new/ob.php?book=25&version=&page=98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24&chineses=43&chap=10&sec=17 [(2024-01-15) 새 출처]

(출처 2로부터 발췌 시작)

요한10_17_in_1863_브리지만(裨治文)&컬버트슨(克陛存)_역_신약성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여섯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요한 복음서 10,17 발췌 시작)

緣此, 我, , 之.

 

바로 이러한 이유[즉, 앞의 제15-16절에서 목숨을 내놓는 이유] 때문에(緣此), 나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며, [이와 같이] 내가 목숨을 내놓음으로써(), 그리하여 그 결과(俾, so that) 내가 그것을() 다시 얻을() 수도(, may) 있을 것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4-2-1: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영인본의 사진에서, 앞과 뒤의 문장을 연결하여 해석하여서는 아니 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 부호가 낱글자 "" 앞에 사용된 점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라. 

 

(2) 그리고 바로 위에 제시된 필자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한자 낱글자 ""(비)"그리하여 그 결과(俾, so that)"로 번역한 것은, 다음의 사전들의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i) 다음은, "한어대사전"에 수록된 한자 낱글자 ""(비)의 설명을 읽을 수 있는데, 그러나 "그리하여 그 결과(俾, so that)"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설명이 없다는 생각이다:

 

(발췌 시작)

 

 

I
 bĭ
 ㄅ〡ˇ
 〔《廣韻》並弭切,上紙,並。〕
 “”的被通假字。
 1.使。
 《書‧湯誥》:“俾予一人,輯寧爾邦家。”
 《詩‧邶風‧綠衣》:“我思古人,俾無訧兮。”
 毛傳:“俾,使。”
 《新唐書‧裴冕傳》:“陛下宜還冕於朝,復俾輔相,必能致治成化。”
 宋葉適《國子監主簿周公墓志銘》:“余既序見其大概,且俾成子別為書以行於世,庶有志者得詳焉。”
 魯迅《書信集‧致許壽裳》:“可否乞兄轉蘄蔡先生代為設法,俾有一栖身之處。”
 2.通“”。從。
 《書‧君奭》:“海隅出日,罔不率俾。”
 《禮記‧樂記》:“王此大邦,克順克俾。”
 鄭玄注:“俾當為比,聲之誤也。擇善從之曰比。”
 清王引之《經義述聞‧尚書下》“罔不率俾”:“俾之言比也。
 《比》彖傳曰:‘比,下順從也。’比與俾古字通,故《大雅》‘克順克比’,《樂記》作‘克順克俾’。”
II
 pì
 ㄆ〡ˋ
 〔《集韻》匹計切,去霽,滂。〕
 通“”。

(이상, 발췌 끝)

 

따라서, 한문 문화권의 고유한 한문본 문헌들에서 한자 낱글자 ""(비)가 인과 관계를 나타내기 위하여 "그리하여 그 결과(俾, so that)"의 의미로 사용되지 않아 왔음을 확인하였다는 생각이다.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개신교회 목회자의 아들인, 중국인인 수필가 임어당(林語堂, 1895-1976년)이 마련한 중영사전인 "林語堂當代漢英詞典 1972"에 제시된 한자 낱글자 ""(비)의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출처: http://humanum.arts.cuhk.edu.hk/Lexis/Lindict/ 

(발췌 시작)


Adv. conj.

(1)  (LL) So that, in order that: 得立刻進行 so that we may proceed at once;
得週知,各懍遵 so that all may know, all may obey (the new law).
(2)  (Cogn. of 備) to serve for: (AC) 畫作夜 to make the day serve as night.

(이상, 발췌 끝)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Chinese Text Projects" 홈페이지 제공의 중영사전에 주어진 한자 낱글자 ""(비)의 설명을 읽을 수 있다:

 

출처: https://ctext.org/dictionary.pl?if=en&char=%E4%BF%BE 

(발췌 시작)

 

so that, in order that; to cause; (Cant.) to give (synonymous with Mandarin )

(이상, 발췌 끝)

 

(iv) 다른 한편으로,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알기로, "Chinese Text Projects" 제공의 중영사전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로서 1850년대에, 소위 말하는, 중국어본 "대표역본"/"문리본"/"위판역본"이 마련될 때에 중국어로의 성경의 번역 작업에 참여하였던, James Legge(1815-1897년)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고 있다.

(이상, 게시자 주 4-2-1 끝)

 

4-2-2. 다른 한펀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개신교회 측의 선교사들에 의하여 1906년에 출판된 "新約文理和合譯本"(신약문리화합역본), 요한 복음서 10,17 전문을 읽을 수 있는데, 특히, 바로 위의 제4-2-1항에 발췌된 1863년에 초간이 발행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 전문과 대동소이함을 알 수 있습니다:

 

출처: https://bible.fhl.net/new/ob.php?book=17&chineses=43&chap=10&sec=17 

https://bible.fhl.net/new/ob.php?book=309&chineses=43&chap=10&sec=17 [(2024-01-15) 새 출처; 주: 1924년에 출판된 1906년판임.]

(발췌 시작)

요한10_17_in_1906_문리화합역본_신약성경.jpg

 

게사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요한 복음서 10,17 발췌 시작)

我, 我舍生, 之.

 

나의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는데, 왜냐하면() [앞의 제15-16절에서처럼] 내가 생명을 내놓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俾, so that) [나는] 그것을() 다시 얻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4-2-2: (1)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영인본의 사진에서, 앞과 뒤의 문장을 연결하여 해석하여서는 아니 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 부호가 낱글자 "" 앞에 사용된 점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라. 

 

(2) 따라서, 바로 위의 제4-2-1항에 발췌된 1863년에 초간이 발행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의 중국어 번역문이 그리스어 사본의 번역대본에 충실하게 번역이 잘 되었음이, 1900년대 초에 들어와 처음으로 "新約文理和合譯本"(신약문리화합역본)을 마련한 개신교회 측의 다수의 분파들 소속의 후배 선교사들에 의하여 인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 게시자 주 4-2-2 끝) 

 

4-2-3.

4-2-3-1. (질문 2) 그런데, 어떤 이유로, 그 번역대본인 것으로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되는 1863년에 초간이 발행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한문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과 문장 구조 및 그 내용이 다른, 위의 제4-2항에 발췌된 바와 같은, 우리말 번역문이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의 여러 신약 성경들 중의 요한 복음서 10,17에 등장하게 되었을까요??? 

 

4-2-3-2. (질문 2에 대한 답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생각할 때에, 다음과 같은 일이 발생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3) 1863년에 그 초간이 발행된 브리지만(裨治文), 컬버트슨(克陛存)  한문본 신약 성경, 요한 복음서 10,17이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 목회자들에 의하여 우리말로 번역이 될 때에, (i) 서양인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성경이 중국어로 번역될 때에 사용된 한자 낱글자 ""(비)의 역할/용도를 올바르게 알지 못하여, 혹은 (ii) 예수 그리스도의 고유한 구속(救贖) 위업(the work of Redemption)인정하지 않기 위하여, 위의 제4-2항에 발췌된 바와 같이, 우리말로 번역이 되었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게시자 주 4-2-3-2: (1) 한편으로, 바로 위의 결론에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필리피서 2,11의 우리말 번역문에서 발생한 번역 오류를 생각할 때에, 경우 (i)이 실제로 발생하였을 가능성이 더 높았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2_Chapter_Two.htm <----- 국내의 개신교회 목회자들의 필독 권고  

 

(2) 다른 한편으로, 다음에 발췌된 바는, 1611년에 초간된 King James Version 영어 성경의 요한 복음서 10,15 10,17 전문인데,  

 

출처: https://biblehub.com/kjv/john/10.htm 

(발췌 시작)

15 As the Father knoweth me, even so know I the Father: and I lay down my life for the sheep. 

[...]

17 Therefore doth my Father love me, because I lay down my life, that I might take it again.

 

17 그러므로 내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냐하면 내가 내 목숨을 내놓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that) 내가 그것을 다시 얻을 수도(might) 있을 것이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특히 바로 위에 발췌된 영어본 요한 복음서 10,17에서, 앞과 뒤의 문장을 연결하여 해석하여서는 아니 됨을 나타내기 위하여 "," 부호가 낱글자 "that" 앞에 사용된 점에 반드시 주목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바로 이러한 내용의 요한 복음서 10,17을, 위의 제4-2항에 발췌되었읏이, 국내의 개신교회측 신약 성경들에서 다음과 같이 번역한 것은 그리고 작금에 이르기까지, 이 번역문을 바로 위에 발췌된, 오랜 기간에 걸쳐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어권 개신교회 측에서 존중을 받고 있는, 1611년에 초간된 King James Version 영어 성경의 요한 복음서 10,17의 문장 구조 및 내용과 논리적으로 등가인 번역문으로 바로잡지 않아온 것은, 위의 결론에서 경우 (ii)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출처: https://www.bskorea.or.kr/bible/korbibReadpage.php?version=HAN&book=jhn&chap=10&sec=17&cVersion=GAE^SAE^&fontSize=15px&fontWeigh 

(발췌 시작)

[개역한글]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개역개정]

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표준새번역]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버리기 때문이다.

 

[새번역]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그것은 내가 목숨을 다시 얻으려고 내 목숨을 기꺼이 버리기 때문이다.

(이상, 발췌 끝)

(이상, 게시자 주 4-3-2-3 끝)

 

(이 글의 결론 4) 만약에 우리나라 개신교회 측에서 요한 복음셔 10,17의 우리말 초벌 번역 작업에 참여한 번역자(들)이, 본글에서 필자가 들여다본 유관 자료/사료들을 참조하였었더라면(가정법 과거완료), 본글에서 지적하고 있는 심각한 수준의 번역 오류는 결코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왜나하면, 다음이 성립하기 떄문입니다:

-----

우리들 모두에게는

동일한 경험을 하면

동일한 결론에 도달하는

능력이 충분하게 주어져 있다.

[capax Dei, 창세기 1,26]

-----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 45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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