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나부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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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ㅣ No.2207

게시자 주: (1) 오늘의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게시자 주 2 다음에 있습니다.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7.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내용 추가 일자: 2024년 4월 26일]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341.htm <----- 필히 시청 요망

 

"KF94 마스크 미착용, 착용 시의 커다란 차이점을 잘 보여주는 실험 동영상들 - 오미크론 출현 이전인 2021년 10월 14일에 확보한 자료들임" 제목의 졸글에 추가된 중요한 방역 수칙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게시자 주 2: [첫 공지 일자: 2022년 7월 17일(다해 연중 제16주일)]

(1) [PC 혹은 노트북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바로 아래의 주소를 클릭하면, New American Bible (NAB)에서 발췌된 오늘의 영어 전례성경 본문(즉,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들을, 화답송 등과 함께, 청취할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에, 이어지는 제(2)항 으로 이동하여 안내대로 하십시오.][원 출처: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http://ch.catholic.or.kr/pundang/4/cbs/Cycle_B/Easter/b_east_5_mp3 <----- 여기를 클릭하라  

 

[스마트폰의 경우]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제시된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듣고자 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i) 위의 주소를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고 가만히 있으면 가지게 되는 작은 메뉴판 한 개에서, 다른 브라우저로 열기를 선택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ii) 사용 중인 스마트폰에 이미 열려있는 본글의 브라우저를 찾아서 거기로 이동한 후에,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있는 주소를 누르면, 이들 제1독서, 제2독서, 그리고 복음 말씀 본문들을 눈으로 읽으면서 이들을 또한 귀로 들을 수 있습니다.

 

2006년 12월 10일(다해 대림 제2주일)부터 지금까지 바로 아래의 제(2)항에 안내된 English Bible Study 까페[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영어 성경공부 자료실]에서 필자가 지속적으로 전달 제공해온 자료이므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위의 제(1)항에서 듣게 되는 NAB에서 발췌된 영어 전례성경 본문들 등을 또한 눈으로 직접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lub.catholic.or.kr/community/asp/club/attboard/read.asp?type=attboard&schcode=pundang4biblestudy&seq=8&id=1331 <----- 또한 필독 권고   

 

이것도 또한 여기에 진작에 올려드릴 수도 있었으나, 혹시라도 거부감을 가지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 그동안 그러지 않았던 것인데,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3) 바로 위에 제(1)항제(2)항 제공의 정보들을 반복적으로 꾸준히 함께 활용하면, 영어 듣기 및 읽기 능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상, 게시자 주 2 끝) 

[이상, 2024년 4월 26일자 내용 추가 끝] 

 

 

나해 부활 제5주일 온라인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聽取) 혹은 시청(視聽)하십시오  

가해/나해/다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 I, 가톨릭출판사, 2008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7.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기"(jealousy)"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복습 8: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복습 9: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복습 1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복습 1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나부활5주일> 나해 부활 제5주일

 

요한 복음서 15,1-8; 사도행전 9,26-31; 1요한 3,18-24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 I, 제463-4722쪽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너희는 나 없이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요한 복음서 15,5)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바르나바는 사울을 받아들여 사도들에게 데려가서, 어떻게 그가 길에서 주님을 뵙게 되었고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는지, 또 어떻게 그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히 설교하였는지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었다. (사도행전 9,27)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1요한 3,18)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내용 추가 일자: 2024-04-28]

오늘의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에서 교재 본문 중의 특정 내용들에 대한 추가 설명들이 주어지고 있는 부분들:

 

* 복습 안내: 01:06-01:25

*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및 교리 메시지; 근본의 일치, 교회의 일치, 내부의 일치: 01:30-03:04-13:13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요한 복음서 15,5)에서 '예수님 안에 머무르다'의 의미는?: 01:30-02:01 

* 오늘의 3분 복음/교리 묵상: 13:13-15:14

* 오늘의 복음 말씀 입문; 근본의 일치[주: 아래의 교리 메시지 필독]: 15:14-17:55

* 올바름/의로움(righteousness)과 정의로움(justice)의 커다란 차이점; 의로운 자는 정의로운 자이나 그러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21:07-22:35

* 요한 복음서 15,8에서 '영광스럽게 되다'는 매우 심각한 번역 오류의 표현이다: 22:35-23:39

* 오늘의 제1독서 입문; 교회의 일치[주: 아래의 교리 메시지 필독]: 23:39-25:54

*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아니나 사도라고 불리는 두 분들은 누구와 누구?: 24:47-25:54

* 바르나바는 누구인지?; 한문본 성인전인 드 메야 신부님의 '성년광익'(1738년) 안내: 27:28-30:18

사도행전 9,28에서 '주님 이름으로'는, 어법에 맞게, '주님이라는 이름으로'로 교체되어야 할 것이다[번역 오류]: 30:18-30:30

* 카이사리아 항구 안내: 34:45-36:16 

* 오늘의 제2독서 입문; 내부의 일치[주: 아래의 교리 메시지 필독]: 38:16-39:10

* 영어로 'heart'(심장)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를 '마음'(mind)으로 번역하는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 자연법적 양심(良心, 어진 심장)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고대 시절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심장은 사유(思惟) 기관 및 자유 의지를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이해되었다;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 39:57-42:22-44:00-45:10

* 요한 복음서 1,12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의 교의 신학적 의미/효능/힘의 성경 근거이다 [주: 1요한 3,23에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있음]; 믿다(believe)와 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 45:37-47:52

[이상, 2024-04-28일자 내용 추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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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요한 복음서 15,8에서 '영광스럽게 되다'는 매우 심각한 번역 오류의 표현이다: 22:35-23:39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2:35-23:39 [즉, 22분35초-23분39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영광스럽다_번역오류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영광스럽다_번역오류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A.

복습 1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

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이 아니나 사도라고 불리는 두 분들은 누구와 누구?: 24:47-25:54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4:47-25:54 [즉, 24분47초-25분54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St_Barnabas_and_St_Paul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St_Barnabas_and_St_Paul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B,

사도행전 14,14 그리고 갈라티아 2,7 및 이어지는 몇 개의 절들에서 바오로와 바르나바도 사도로 불리었다.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또한 참조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20.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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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바르나바는 누구인지?; 한문본 성인전인 드 메야 신부님'성년광익'(1738년) 안내: 27:28-30:18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27:28-30:18 [즉, 27분28초-30분18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사도_바르나바_성인전_in_성년광익(1738)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사도_바르나바_성인전_in_성년광익(1738)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C.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 초판본 및 그 이후 개정판, 6월 11일자 사도 바르나바에 대한 성인전에서, 사도 바르나바가 유년(幼年) 시기에 예루실렘에서 가말리엘 아래에서 수업할 때에, 사도 바오로와 함께, 동학(同學)하였다고 기록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8.htm
<----- 필독 권고

%%%%%%%%%%

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영어로 'heart'(심장)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를 '마음'(mind)으로 번역하는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 자연법적 양심(良心, 어진 심장)을 누구나 가지고 있다; 고대 시절부터 오랜 기간에 걸쳐, 성경 용어이기도 한, 심장(heart)은 사유(思惟) 기관 및 자유 의지를 행사하는 기관으로서 이해되었다;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 39:57-42:22-44:00-45:10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9:57-42:22-44:00-45:10 [즉, 39분57초-42분22초-44분00초-45분1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heart_vs_mind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heart_vs_mind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D.

복습 9 (위에 있는 복습 9 필독 권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어로 'heart'(심장)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를 '마음'(mind)으로 번역하는 번역 오류에 대한 지적의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heart2心2mind_translation_error_in_Korea_162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heart.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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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요한 복음서 1,12는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세례의 교의 신학적 의미/효능/힘의 성경 근거이다 [주: 1요한 3,23에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있음]; 믿다(believe)와 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 45:37-47:52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45:37-47:52 [즉, 45분37초-47분52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1요한3_23_번역오류_2207"; name="believe_vs_believe_in_2207"]  
[링크 주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요한3_23_번역오류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링크 주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elieve_vs_believe_in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E.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내용 추가 일자: 2024-04-28] 

(iii) [대단히 심각한 번역 오류]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세례의 교의 신학적 의미/효능/힘의 성경 근거요한 복음서 1,12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제2-7항(이 글의 결론 1)(이 글의 결론 2)를 보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343.htm <----- 꼭 필독 권고

%%%%%%%%%%

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요한 복음서 15,5)에서 '예수님 안에 머무르다'의 의미는?: 01:30-02:01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01:30-02:01 [즉, 01분30초-02분01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예수님_안에_머무르다의_의미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_안에_머무르다의_의미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H.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 안메 머무르다’‘예수님과의 통공(communion)이라는 관계의 상태(relationship) 안에 머무른다’와 논리적으로 등가임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진리와_행복의_충만함을_발견하기_위한_필요_조건은_무엇일까_2204.htm <----- 꼭 필독 권고  

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아래의 명제들 사이에 논리적 등가(logical equivalence)가 성립함에 대한 졸고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316.htm <----- 꼭 필독 권고  


(i)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함;
(ii) 예수님을 사랑함;
(iii) 예수님의 계명들을 실천함;
(iv) 예수님 안에 머무름;
(v) 예수님의 사랑의 행위 안에 머무름;
(vi) 예수님과의 통공(communion)이라는 관계의 상태에 머무름;
(vii) 예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함;
(viii)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라는 법에 순종함;
(ix) 하느님의 뜻/의지에 순종함;
(x) 하느님의 영원한 법에 순종함;
(xi) 그리스도교 윤리법에 순종함.

 

게시자 주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더욱더 나아가'를 계속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_안에_머무르다의_의미_2212.htm <----- 꼭 필청/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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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사도행전 9,28에서 '주님 이름으로'는, 어법에 맞게, '주님이라는 이름으로'로 교체되어야 할 것이다[번역 오류]: 30:18-30:30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0:18-30:30 [즉, 30분18초-30분30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주님의_이름으로_번역오류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주님의_이름으로_번역오류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J.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님의 이름으로’라는 번역 표현이 매우 심각한 번역 오류임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3310.htm <----- 필독 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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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68/나해부활제5주일.mp4  <----- 카이사리아 항구 안내: 34:45-36:16

 

[우선적으로, 위에 있는 전례성경 묵상 동영상(#) 주소에 접속하여 34:45-36:16 [즉, 34분45초-36분16초] 동안 먼저 시청/청취하면, 아래의 주소(들)에 안내된 글(들)의 내용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name="카이사리아_항구_안내_2207"]  
[링크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카이사리아_항구_안내_2207.htm (클릭하지 마십시오)]  

K.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카이사리아 항구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특히 본시오 빌라도가 실존 인물임을 고증/입증하는, 성경 본문 바깥의, 고고학 자료를, 접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0.htm <----- 필독 권고 

 

(ii) 지도상의 지명을 클릭하면 해당 지명에 대한 역사적 설명이 나오는 다음의 큰 지도 및 간략한 약도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israel_first_century.htm (큰 지도)
http://ch.catholic.or.kr/pundang/4/map/palestine_nt_times.htm (약도)

 

%%%%%%%%%%
L.
(i)
16세기 중반 이후에 처음으로 등장한 개신교회 측의 일부 분파(들)은 이렇게 주장해 왔다. 즉,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 구원관과는 전혀 다른, ‘한번 구원 받기만 하면, 항상 구원 받는다(once saved, always saved)’라는 크게 잘못된 구원관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은 16세기의 캘빈(John Calvin, 1509-1564년)인 것으로 얄려져 있다.
참고 자료: http://ch.catholic.or.kr/pundang/4/ca_once_saved_not_always_saved.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가해 연중 제28주일 복음 말씀(마태오 복음서 22,1-14)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05.htm <----- 필독 권고 

 

M.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경 번역 용어인 ‘중보’(中保)는, 개신교회의 용어가 결코 아니고,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용어이다” 제목의 졸고를 학습할 수 있다. 필청 및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ediator_Dei_2892.htm <----- 필독 권고 

 

N.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吾主(오주, 저의 주님)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출처와 기원은 판토하 신부님천주실의속편 이다” 제목의 졸고[주: 작성 중임]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98.htm <----- 필독 권고 

[이상, 2024-04-28일자 내용 추가 끝]

 

F.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east_5.htm <----- 필독 권고

 

G.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b_east_5.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Remain in me as I in you," Jesus tells us in the Gospel. Unity is the dominating theme in this Sunday’s texts. Unity, first of all, among Christ, life, and Christians, who are the branches of the vine (Gospel). Unity among Christians, independently of their past history and their origin, as in the case of Paul (first reading). Unity between words and deeds, to achieve this inner unity of the conscience, which is fearless before God (second reading).

 

"내가 너희들 안에 머무르듯이 내 안에 머무르라"라고 예수님께서 복음 말씀에서 우리들에게 가르치십니다. 일치(unity)는 바로 오늘 주일의 본문들에서 우세한 주제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셍명이신 그리스도와 이 포도나무의 가지들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는 일치 (복음 말씀). 바오로의 경우에서처럼, 그리스도인들의 과거 역사 및 그들의 출신과 무관하게,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있는 일치 (제1독서). 하느님 면전에서 우려움이 없는 양심(conscience)의 바로 이러한 내면의 일치를 성취하기 위한, 말(words)들과 행동(deeds)들 사이에 있는 일치 (제2독서).

 

DOCTrinal MESSAGE


교리 메시지

 

Foundational unity. In Judaism, life symbolized the difficult relations between God and his people across twelve long centuries. This relationship was especially based on three elements: the Land, the Torah and the Temple. On the columns of the Temple the vine was depicted, a symbol of the people of Israel present before Yahweh, their God. Jesus takes up this image once again, but he changes its meaning. Now he is the vine, not Yahweh. And the branches of the vine are no longer the people of Israel, but the believers in Christ. God, the Father of Jesus, is not left at the margin of the symbol, but now he is the vinedresser. In other words, it is the Father that sent Jesus into this world and has placed in him the foundations of all true unity. He is the point of union that founds any other true union between men, because "cut off from me you can do nothing." Any ecclesial, religious, political or family union that is to be qualified as true, stable and fruitful cannot ignore the reality of Christ, the key to all individual or collective existence. In this sense, Christianity is not only an option that calls for freedom; it is a necessity for identity and progress, which appeals to common sense.

 

근본의 일치(fundamental unity). 유다주의에 있어, 생명(life)은 12개의 오랜 세기(twelve long centuries)들에 걸쳐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있는 어려운 관계들을 상징하였습니다. 바로 이러한 관계의 상태는 특별히 다음과 같은 세 개의 요소(elements)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땅(Land), 토라[Torah, 즉, 모세 율법] 그리고 성전(Temple). 성전의 기둥(columns)들에는, 그들의 하느님인 야훼(Yahweh) 면전에 존재하는(present) 이 백성에 대한 한 개의 상징(a symbol)인, 포도나무가 그려져 있었습니다(was depicted). 예수님께서는 한 번 더(once again) 바로 이 표상(image)를 채택하시나, 그러나 당신께서 그 의미를 바꾸십니다. 이제, 야훼가 아니라, 당신이 바로 이 포도나무입니다. 그리고 이 포도나무의 가지들은 이스라엘의 백성이 더 이상 아니고,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believers in Christ)입니다. 예수님의 성부(the Father)이신 하느님은, 이 상징의 가장자리에 놓여져 있는 것이 아니고, 이제 그분께서는 포도나무의 일꾼(vinedresser) 입니다. 달리 말하여, 바로 이 세상 안쪽으로 예수님을 보내셨고 그리고 모든 참 일치의 근본들을 그분 안에 이미 놓아두신 분은 바로 이 성부(the Father)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모든(any) 다른 참 일치의 근거를 구성하는(founds), 결합점(the point of union)이신데, 왜냐하면 "나에게서 잘라내어지면 너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참되고, 안정적이며 그리고 열매를 맺는 것으로서 자격을 갖추게 되고자 하는 어떠한 교회적(ecclesial), 경신적(religious), 정치적(political) 혹은 가족적(family) 결합(union)은, 모든 개별적(individual) 혹은 집합적(collective) 존재(existence) 쪽으로 열쇠(key)인, 그리스도라는 실재(reality of Christ)를 결코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다만(only), 자유로움(freedom)을 요구하는(call for), 한 개의 견해인 것만이 아니고, 상식(common sense) 쪽으로 호소하는, 정체성(identity) 및 진척(progress)을 위한 한 개의 필요 조건(a necessity)입니다. 

 

Church unity. When after being converted Saul goes to Jerusalem, the Christians are afraid of him; they walk away from him because they cannot believe that he is converted. Thank God Barnabas takes charge of him and introduces Saul to the community, explaining how he was converted and how he preached fearlessly at Damascus in the name of Jesus. Saul is thus received by the community, he becomes part of it, and may freely devote himself to his evangelizing work, especially among the Jews of Greek origin. It is evident that from the very beginning, the Apostles became aware that there was only one Church, and that all those that formed it were united in the same faith and in the same ardent zeal to preach the name of Jesus everywhere. Although Paul converted himself to Jesus in Damascus and received baptism there, he is well received in Jerusalem, as he will also subsequently be in Antioch and in Rome, because there is only one Church in the diversity of places and cultures. It was so from the beginning, and so it has continued to be. As contemporary Christians, will we be capable of putting the unity of the Church above internal tensions? Will we be capable of putting ourselves in the position to have God grant us the gift of unity of all Christians?

 

교회의 일치(Church unity). 사울(Saul)이, 회심을 하게 된 후에,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두려워하였고, 그리고 그들은 그로부터 도망쳤는데, 왜냐하면 그가 회심을 하였음을 그들이 믿을 수 없었기 떄문입니다. 고맙게도, 바르나바가 그를 받아들였고(takes charge of) 그리고, 어떻게 그가 회심을 하였으며 그리고 어떻게 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다마스쿠스에서 담대하게(fearlessly) 전도(傳道)하였는지(preach) 설명하면서, 사울을 이 공동체에 소개합니다. 사울은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이 공동체에 의하여 받아들여졌고, 그는 이 공동체의 일부가 되었며, 그리고, 특히 그리이스 출신의 유다인들 사이에서, 자신의 복음화 사역(evangelizing work) 쪽으로 자유롭게 스스로 전념할 수도 있었습니다. 사도들이, 교회의 바로 그 시초부터, 오로지 하나의 교회만이 있음을 알아차리고 있었음은, 그리고 이 교회를 구성하는 자들 모두가, 동일한 믿음(the same faitn) 안에서 및 어디에서든 예수님의 이름을 전도(傳道)하는(preach) 동일한 격렬한 열정(the same ardent zeal) 안에서, 결합되어 있었음은, 매우 분명합니다. 비록 바오로가 다마스쿠스에서 예수님 쪽으로 스스로 회심하게 되었고 그리고 거기서 세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또한 안티오키아에서 및 로마에서 장차 계속하여(subsequently) 그러할 것이듯이, 그가 예루살렘에서 잘 받아들여졌는데, 왜냐하면 오로지 하나의 교회이, 장소들 및 문화들의 다양성 안에서,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그러하였고, 그리고 바로 그러한 방식으로(and so) 교회는 계속하여 존재해 왔습니다. 동시대의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들은 장차, 내부의 긴장 위쪽에, 교회의 일치를 자리잡게 할 수 있는지요? 우리들은 장차, 하느님으로 하여금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라는 선물을 우리들에게 수여하게(grant) 하는, 바로 그 자리에 우리 자신들을 자리잡게 할 수 있는지요?

 

Inner unity. In the second reading, Saint John says to us that "our love must not be just words or mere talk, but something active and genuine." There must be unity between what we say and what we really do. Without such unity, we shall be internally divided in an evil inconsistency that will gnaw away at our conscience. In other words, the Christian must have a unified conscience, without any splits or divisions, so that he may be fearless before God, by keeping the commandments and doing what pleases the Lord. It is true that the Christian does not always act in a consistent manner, and that his conscience stings and rebukes him for it. However, we know that God is greater than our conscience and that he can thus restructure it and unify it once again. It is a wonderful invitation to have confidence in God’s action and in the mysterious power of the Spirit that has given us inner unity, the fruit of our fidelity to the Word of God and to his commandments.

 

내부의 일치(inner unity). 오늘의 제2독서에서, 성 요한은 우리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들의 사랑은,  단지 말들 혹은 다만 이야기들이 아니고, 행동하는(active) 및 진정한(genuine) 그 무엇이라야 합니다." 우리들이 말하는 바와 우리들이 실제로 행하는 바 사이에 일치가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러한 일치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들의 양심(conscience)을 장차 좀먹어(gnaw at) 없애버릴(away) 어떤 악한(evil) 불일치/모순(inconsistency) 안에서 내부적으로 분열되게 될 것입니다. 달리 말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찢어짐(splits)들 혹은 분열(divisions)들 없이, 한 개의 단일화된 양심(a unified conscience)을 가져야 하며, 그리하여 그 결과(so that), 계명들을 준수함 및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바를 행함으로써, 하느님 면전에서 두려움이 없을(fearless) 수도(may)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어떤 일관성있는 방식으로 항상 행동하는 것이 아님은, 그리하여 당사자의 양심이 그러한 행동 때문에 자신을 찌르고(stings) 꾸짖는 것은, 과연 사실(true)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우리들의 양심보다 더 위대하심을, 그리하여 당신께서 바로 이러한 방식으로, 한 번 더(once again), 우리들의 양심을 재구성 하실(restructure) 수 있으시고 그리하여 그것을 단일화 하실(unify) 수 있으심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이 알고 있음은, 우리들에게, 하느님의 말씀 쪽으로 및 당신의 게명들 쪽으로, 우리들의 충실/충성(fidelity)의 열매인, 하느님의 활동 쪽으로 및, 내부의 일치(inner unity)를 이미 제공하신 분이신, 성령의 신비로운 힘 쪽으로, 확신을 가지도록 하는, 한 개의 경이로운 권유(a wonderful invitation)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158. 교회는 왜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불리는지요?
CCC 796, 808


왜냐하면 주님 스스로 자신을 교회의 ‘신랑(Spouse)’(마르코 복음서 2,19)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에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Bride of Christ)’라고 불립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사랑해 오셨으며 그리고 영원히 지속되는 계약 안에서 교회를 당신 자신께 결합시켜 오셨습니다. 당신께서는 교회를 당신의 피로 정화하시고 또 ‘교회를 거룩하게 하기’(에페소서 5,26) 위하여 당신 자신을 교회를 위하여 계속 제공하고 계시는데(has given himself up), 그리하여 교회를 하느님 자녀들 모두의 열매를 많이 맺는(fruitful) 어머니가 되도록 하십니다. ‘몸’이라는 용어가 ‘머리’와 교회의 구성원들 사이의 일치/단일(unity)을 표현하는 반면에, ‘신부’라는 용어는 인격적 관계에 있어 이들 둘 사이의 구별(distinction)을 강조합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east_5_c796.htm

 

CCCC 233. 누구가 전례 안에서 작용하시는지요?
CCC 1135-1137, 1187  

 

전례 안에서 작용하시는(acts) 분은, 머리 및 몸(Head and Body)이신,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 whole Christ)이십니다. 우리의 대사제로서 당신께서는, 하늘에 있는 및 땅 위에 있는 교회인, 당신의 몸과 함께 경축하십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east_5_c1135.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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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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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_T_SOH,신성적_사랑(divine_love)의_세_종류들,예수님과의_통공의_필요충분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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