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사도 바르나바가 유년(幼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사도 바오로와 함께, 학습하였다는 기술의 출처에는 드 메야 신부님의 성년광익(1738)이 포함된다1242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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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ㅣ No.2208

게시자 주: (1)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8.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2) 이번 글에 서술된 바는,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2017년 3월 중순부터 4월 말 기간 동안에 독자적으로 개발한, 따라서 그 저작권(著作權, Copyright)이 필자에게 있는, Data Mining 기법을 적용한, "AI 기반, 한시(漢詩) 표준 해석법 [A Standard Method of Interpretation of Chinese Poems(漢詩), Based on AI(Artificial Intelligence)]"에서 사용하고 있는 방법을, 또한 사용하여 분석하고, 이 분석의 결과에 따라 도출된 바들/결론들입니다.  

 

 

부제 1: 1850년대 중국 상해 소재 개신교회 측의 墨海書館(묵해서관)은 墨海老人(묵해노인, 즉, Medhurst)이 설립 및 운영한 출판소였다

 

부제 2: 사도 바르나바는 시리아 안티오키아 교회의 지도자, 로마의 첫 복음 설교자, 그리고 키프로스 교회의 창립자였을 것이다  

 

1. 들어가면서

 

1-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 등에서, 예수님의 열두 제지들 외에, 바르나바바오로가 또한 "사도"(Apostle)라고 불리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52.htm <----- 필독 권고

 

1-2.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바르나바가 책임을 지면서 바오로를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의 경신 지도자들인 베드로 등에게 소개하고 또 설득하는 내용은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 등에 기록되어 있으나, 그러나 바르나바가 어떠한 이유 때문에 바오로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등은 신약 성경 본문에 별로 찾아볼 수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또한, 예를 들어,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어 "가톨릭대사전"에 수록된 "St. Barnabas"에도 그러한 배경에 대한 기술은 없다는 생각입니다:

https://www.newadvent.org/cathen/02300a.htm 

 

1-3.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바르나바가 어떠한 이유 때문에 바오로을 받아들이게 되었는지에 대한 배경 등을 밝히는 문헌이,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의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중에 포함되어 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게시자 주 1-3: (1)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묵상 동영상[제목: 나해 부활 제5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게시일자: 2021-05-01]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7.htm <----- 필독 권고

 

(2) 사실, 아래의 제2항에서 말씀드리는 바는,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결과들이 결코 아닙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글[제목: perfect/perfection에 대응하는 완미(完美) 라는 차용 번역 용어는, 그 출처가 성모행실 인, 완전미호(完全美好) 의 약어(略語)이다; 게시일자: 2018-12-02]을 필자가 작성하기 전에, 교의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로서, 영어로 "perfection"으로 번역되는 용어의 차용 번역 용어인 "完美"(완미)라는 용어가 한문 문화권 내의 천주교회 안에서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과정에서, 아래의 제2-1항제2-2항에서 말씀드리는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의 본본들을 또한 정밀하게 들여다 보아야 하였는데, 바로 이 작업 중에 필자가 인지하게 된, 부산물(byproducts)들인, 결과들입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72.htm <-----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이상, 게시자 주 1-3 끝)

 

 

2. 유관 자료/사료 분석

 

2-1. 우선적으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사도 바르나바가 유년(幼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수업할 때, 사도 바오로와 함께 학습하였다"는 내용 혹은 이와 등가인 내용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1566-1640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629년에 초간된 것으로 알려진 "천주성교성인행실"없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49.htm <----- 또한 확인 요청

 

게시자 주 2-1: 중국의 예수회가 해산된 1775년에 이르기까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천주교회 측의 신부님들로서, 마태오 리치 신부님(1552-1610년)의 적응주의 선교 방식에 따른, 문서 선교를 통한,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를 위하여, 그리스도교 성인전들의 한문 번역본 원본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저술하여 중국 본토 내에서 출판한 분들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가 아는 한, 바로 위의 제2-1항의 알퐁소 바뇨니 신부님과 바로 아래의 제2-2항드 메야/미이야 신부님, 이들 두 분 뿐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2-2.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 하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종도에서 발췌한 바인데, 이들 두 사람들이 유년(幼年) 시절에 예루살렘에서, 당시에 유명한 선생이었던, 유다인들의 지도자인, 가말리엘 아래에서 학습을 함께 하였다고 대단히 명확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669-1748_모이리악_드_메야/사도_바르나바_성인전_in_1738_성년광익_하_6_11_제225a-227b쪽.pdf  

(발췌 시작)

사도_바르나바_성인전_in_1738_성년광익_하_6_11_제225a-227b쪽.jp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왼쪽에서 세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유관 부분 발췌 시작)

... 本來智睿 往遊協路撒稜 受業加瑪禮名師門下 遂保錄宗徒同學 此卽後來引晤之基 ...

 

[성 바르나바는] ... 본래 지혜롭고 총명하였으며(智睿), 예루살렘(協路撒稜)에 가서(往) 공부하였는데(遊), 가말리엘(加瑪禮) 명사(名師)의 제자가 되어(門下) 가르침을 받으면서(受業), 드디어() 바오로(保錄) 종도(宗徒)와 더불어(與) 동학(同學)하였는데, 바로 이 동학은 곧 이후에 오게 되는(後來) [성 바오로와의] 만남(晤, meeting)을 이끌어내는(引) 바탕(基)이 되었느니라. ...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2-3. 그리고 다음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 초간 발행되고, 아무리 빠르더라도, 1856년 직후에 개정된,(*) 개정판 "성년광익", 하,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종도에서 발췌한 바인데, 위의 제2-1항에 발췌된 바와 동일한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출처: 1738년 초간 발행 이후에, 아무리 빠르더라도, 1856년 직후에 개정된, 개정판 "성년광익", 하,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종도

(발췌 시작)

1738년이후_개정판_성년광익_하_6월11일_사도_바르나바_제76b쪽.jog

 

게시자 주: 바로 위에 발췌된 바에서, 오른쪽에서 여섯 번째 열(column)부터 읽도록 하라.

(이상, 발췌 끝)

 

(유관 부분 발췌 시작)

... 本來智睿 往遊柔撒冷 受業加瑪列名師門下 保錄宗徒同學 後來引晤之基 ...

 

[성 바르나바는] ... 본래 지혜롭고 총명하였으며(智睿), 예루살렘(柔撒冷)에 가서(往) 공부하였는데(遊), 가말리엘(加瑪列) 명사(名師)의 제자가 되어(門下) 가르침을 받으면서(受業), 곧바로(卽, promptly) 성 바오로(聖保錄) 종도(宗徒)와 더불어(與) 동학(同學)한 것은, 이후에 오게 되는(後來) [성 바오로와의] 만남(晤, meeting)을 이끌어내는(引) 바탕(基)이 되었느니라. ...

(유관 부분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3: 참고로,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바로 이 개정판 "성년광익"이, 아무리 빠르더라도, 1856년 직후에 개정되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필자의 졸글/논문[제목: 편자 미상인 개정판 한문본 성년광익 의 출판년도는 예수 성심 대축일이 가톨릭 교회의 보편 교회 전례력에 도입된 해인 1856년 직후이다; 게시일자: 2020-06-19]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7.htm <-----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2-4.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중국 본토의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뿐만이 아니라, 1850년대에 이르면 중국의 개신교회 측 신자들 사이에서도 위의 제2-1항에 안내된, "성년광익"에 수록된, 사도 바르나바에 대한 성인전이 널리 열독되었을 것임을 합리적으로 추정할 수 있는 졸글/논문[제목: 1853년 경에 초판된 중국 개신교회 측의 대표역본/문리본 한문본 성경들의 용어들의 출처 문헌들에 포함되는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 게시일자: 2019-08-18]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02.htm <----- 바쁘지 않은 분들의 필독 권고

 

왜냐하면, 1850년대에 소위 말하는 중국어본 성경 "대표역본"상해에서 개신교회 측의 서양인인 선교사들에 의하여 마련되어 처음으로/최초로 출판될 때에, 1848년경에 시작된 중국어로의 번역 작업 과정에서, 이들이 참조하였을 한문본 천주교 문헌들의 목록이 포함된, 상해 소재 런던 선교회중문 도서관(Chinese library)의 도서 목록, 즉, 이들 번역자들에 포함되어 있었던, 영국 출신의 개신교회 측 선교사 메드허스트(Medhurst)를 말하는 "墨海老人(묵해노인)"의 "장서목록"에 바로 이 "성년광익"이 포함되어 있었음을, 실증적으로(positively)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5. 다른 한편으로, 다음의 파란 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위의 제2-2항제2-3항에서 발췌된 바에서 전하고 있는 바, 즉, 본글의 제목에서 말하고 있는 바의 근거 문헌에 포함되는 것으로 판단되는, 6세기에 저술된, Laudatio Barnabas of Alexander Monachus에 어떠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지를 읽을 수 있습니다:

 

"barnabas"  "Paul" "their time together as students of Gamaliel" <----- 여기를 클릭하여 필히 확인하도록 하라

(발췌 시작)

사도_바르나바_&_사도_바오로_in_Joseph_Barnabas_His_Life_and_Legacy_제58쪽.jpg

 

     우리의 용도(purposes)들을 위하여, 이 Laudatio 의 중요한 부분들은 바르나바의 삶[vita, 생평(生平)] 쪽으로 바쳐진 바로 그 부분들인데(Laudatio 9.145-29.549), Alexander Monachus는 이 부분에 대한 출처 자료를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의 stromata 및 "다른 고대 출전(texts)들"에서 발견하였습니다(Laudatio 8.136-39). 특별한 관심 중에는 알렉산더가, 전설적인 이야기들과 함께, 만족한 방식, 즉, 바르나바가 그 밭을 팔기(sale) 전에 바르나바의 삶에 관하여 사도행전 4,36에 의하여 도드라지게 되는, 호기심(curiosity)이 있습니다(Laudatio 10.161-15.271). 바르나바는 한 명의 아이(a child)로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키프로스(Cyprus; 영어 발음: 사이프러스)를 떠나며 그리고 가말리엘(Gamaliel)의 학생 한 명이 되고, 그런 다음에 예수님의 추종자 한 명이 됩니다. 그는 자신의 아주머니(aunt)인 마리아[즉, 복음사가 마르코의 어머니]를 회심하게 하고, 갈릴래아 쪽으로 예수님과 동행하며, 칠십 명(the Seventy)들 중의 첫 째로서 선택되고, 그리고 예수님의 설교(루카 복음서 12,33)에 화답하여, 예수님의 죽음 후에 그가 마찬가지로 넘겨주었던 한 개의 단일한 밭을 제외하고. 자신의 소유물들 모두를 내놓습니다(give up). 그리스도인들의 박해자인, 바오로를 회심하게 하고자 하는 바르나바의 시도들 모두는 허사였는데(are in vain), 그[즉, 바오로]는 바르나바가, 가말리엘의 학생들로서 그들이 함께 하였던 시기부터, 알았던 자였습니다.(16.271-76).

 

      그 결론에 있는 기술은 사도행전의 이야기를 대부분(largely) 따르는데, 거기서 바르나바는 바오로를, 바오로의 다마스쿠스 경험 후에, 사도들에게 데려가고, 그런 다음에 안티오키아로 데려가며 그리고, 그가 거기로 이미 데려간, 바오로와 함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출발하고, 그리고 마침내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합니다 (Laudatio 17.291-23.437). 그러나 이 Laudatio는, 안티오키아에서 바오로와 함께 이 선교 사역 이전에, - 말하자면, 사도행전 11,2411,25 사이에 - 로마알렉산드리아 쪽으로 바르나바의 방문 한 개를 포함하며(Laudatio 20.365-21.386) 그리고 Recognitions of Pseudo-Clement 처럼, 바르나바로마에서 복음의 첫 번째 설교자 및 이 도시[즉, 키프로스]의 그리스도인 회중의 창립자로서 묘사합니다(portrays). 사도행전 15,36-40에 의하여 고무되어, 알렉산더는, Acts of Barnabas 처럼 그러나 이 문헌에 의존함 없이, 그 다음에 바오로와의 갈라짐(break), 키프로스 쪽으로 두 번째 선교, 그리고 살라미스(Salamis)에서 순교(martyrdom)에 대하여, 자세하게 이야기합니다(recounts)(Laudatio 24.438-29.549).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2-5: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는 자료도 참조하라:

 

출처 1:  http://csla.history.ox.ac.uk/search.php 
[주: 두 번째 검색창에 입력한 key words: Barbanas Paul Gamaliel]

출처 2: http://csla.history.ox.ac.uk/record.php?recid=E07084 

(발췌 시작)

Alexander the Monk, Encomium for Barnabas the Apostle (BHG 226 = CPG 7400 = CANT 286)

 

Summary:

 

[...]

 

145-237. Barnabas, who used to be called Joseph, was a virtuous child who was born of the tribe of Levi and lived with his parents in Cyprus. Once he was old enough, his parents sent him to Jerusalem to be instructed by Gamaliel, who was also Paul’s teacher. In Jerusalem, he met Jesus and became his disciple. Shortly afterwards, his aunt Maria converted to Christianity. They were very close to Jesus, so much so that he used to stay at their house when he was in Jerusalem and he even celebrated Easter there. Their house was the place where he appeared to the Apostle Thomas and where Pentecost happened.  


[...]

(이상, 발췌 끝)

 

(2) 그리고 다음의 파란 색칠을 한 굵은 글자들을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자료들도 또한 참고하라:

 

"Saint Barnabas"  "a fellow disciple with Paul under Gamaliel" <----- 또한 참고하라

(이상, 게시자 주 2-5 끝) 

 

 

3. 위의 제2항에서의 유관 사료들의 분석의 결과들

 

3-1. 지금까지 본글의 제2항에서 실증적으로(positively) 고찰한 바로부터,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1) "사도 바르나바가 유년(幼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수업할 때, 사도 바오로와 함께 학습하였다"는 내용 혹은 이와 등가인 내용의 출처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이 포함됨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2. 따라서, 바로 위의 제3-1항에 있는 (이 글의 결론 1)의 한 개의 따름 정리(a corollary)로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2) 위의 제2-2항에서 고찰한 바에 의하여, "사도 바르나바가 유년(幼年) 시기에 예루살렘에서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서 수업할 때, 사도 바오로와 함께 학습하였다"는 내용 혹은 이와 등가인 내용의 한문 문화권 내에서의 최초 출처가,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드 메야/마이야 신부님(1669-1748년)에 의하여 저술되어 1738년에 초간된 성년광익", 하계, 6월 11일, 성 바르나바 종도 성인전임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3-3. 또한 다음의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글의 결론 3) 사도행전의 내용위의 제2-4항에 발췌된 바에 의하여, 사도 바오로의 지중해 지역 이방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선교 활동의 초석(foundation)/기반(base)/여건(condition)을 마련해준 자가 바로, 요즈음 서방 교회 안에서 사도 바오로의 협조자이라는 한 마디로 축소되어 알려진, 사도 바르나바였음을, 이 글의 한 개의 결론으로서 도출합니다.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5월 7일]

게시자 주 3-3: 예루살렘 공의회 이전에 수행된, 바르나바바오로가 소아시아 지역 쪽으로 선교 여행[주: 이 선교 여행을 두고서, 바르나바의 이름은 지워버리고서,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이라고, 잘못 불리고 있다는 생각임]을 떠나기 전의 시기에, (i) 바르나바가 오래전부터 예수님의 칠십 명의 제자들 중의 한 명이었다는 점, (ii)  바르나바가 책임을 지면서 바오로를 당시의 예루살렘 교회의 경신 지도자들인 베드로 등에게 소개하고 또 설득한 점, 그리고 (iii) 그들의 선교 여행의 출발지인 [지금의 시리아 소재] 안티오키아 교회 내에서의 바르나바의 영향력 등을 생각할 때에, 바로 이 첫 번째 선교 여행을 주되게 추진한 인물은, 바오로아니고, 바르나바였을 가능성이 상당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바로 이 첫 번째 선교 여행은,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 여행"라고 부름으로써 독자들의 무의식의 안쪽에 바오로만 오로지을 부각시키는 행위는 지나치게 편파적이라는 생각이며, "두 사도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으로 불려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이상, 2021년 5월 8일자 내용 추가 끝]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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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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