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기동성당 게시판

진짜단식(엄니흉-1)(이사야5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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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희 [lusi71] 쪽지 캡슐

2003-03-07 ㅣ No.3896

고행의 날에 하는 짓이 고작 이것이냐? 머리를 갈대같이 구푸리기나 하고 굵은 베를 두르고, 재를 깔고 눕기나 하면 그것으로 다 될 듯 싶으냐? 그게 이른바 단식이라는 것이냐? 그러고도 주님께서 이 날 너희를 반길 듯싶으냐?

 

내가 기뻐하는 단식은 바로 이런 것이다. 주 하느님께서 말씀하셨다. "억울하게 묶인 이를 끌러 주고 멍에를 풀어 주는 것, 압제받는 이들을 석방하고 모든 멍에를 부수어 버리는 것이다. 네가 먹을 것을 굶주린 이에게 나눠 주는 것, 떠돌며 고생하는 사람을 집에 맞아들이고, 헐벗은 사람을 입혀 주며, 제 골육을 모르는 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만 하면 너희 빛이 새벽 동이 트듯 터져 나오리라. 너희 상처는 금시 아물어, 떳떳한 발걸음으로 전진하는데, 주님의 영광이 너희 뒤를 받쳐 주리라. 그제야, 네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 대답해 주리라. 살려 달라고 외치면, ’내가 살려 주마.’ 하리라."

 

                                                              --이사야 58,1--

 

어렸을 때부터...

우리 어머님은 고행, 희생을 하나의 큰 제물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중 하나였습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 이것은 나의 십자가야....주님이 주신거야...이겨내야 해.."

그리고는 곧바로 단식, 금식, 철야 기도 생활에 들어가시곤 하셨습니다.

 

한술 더뜨셔서..^^;;

우리 어린 것들에게도 은근히 그것을 강요하시기를 서슴치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는

죄짓는 자와 벌을 집행하는 자...라는 생각을 했었던 듯합니다.

 

태어날때 부터 죄인인 인간...

그것을 감시하며 착하게 살라고 강요하는 신...

 

착한 일을 하는 것도 하느님이 무서워서 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도 하느님이 무서워서 이고...

모든 순간순간...나의 행동의 판단은 하느님에게 벌받지 않기 위한 거였던 거지요...

 

속마음...모든 것을 다 아신다 하시니.....

마음속에 나쁜 생각이 든 것만으로 며칠을 벌받을 까봐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했었습니다..ㅜ.ㅜ

 

 

사랑....? 평화...?

하느님의 은총? 기쁨....?

 

그런 것들을 하느님하고 연관시키지 않은 채 신앙을 키워왔습니다.

...

우리 엄니의 첫번째 실수셨지요..

 

우리 엄니는 하느님이 당신을 찾게끔 하시려고 우리 집안에 시련을 주시고...

하느님을 올곳게 찾자.. 우리 집안을 축복하셨기 때문에

우리들에게도 시련을 겪지 않게 하시겠다는 일념에 그렇게 가르치신 것이지만....

 

.....^^...

하느님은 그렇게 무서운 분이 아니셨던 겁니다.

 

그래서인가...우리 어린 남매들은 하느님을 싫어했고...엄마를 싫어했습니다.

단식,,,금식을 위해 항상 까칠한 얼굴...

밤새고 온 엄마의 초췌한 몰골..(그건 진짜 몰골입니다...아주 마르셨거든요)

 

기도하기 위해 온 아주메들로 북작대는 집안...

새벽이면 끌려가야 하는 미사..미사..

 

 

조금만 힘들어 하거나 고민이 있으면...

울엄니는 바로 기도회를 끌고 가시거나, 성서공부에 밀어 넣으시거나...

밤굶기고 밤새 잠 안재우고 기도하는 이들속으로 밀어 넣으셨습니다..

 

" 기도해...빌어....벌받는 거야...시련이야..시련이야..."....T_T

 

...아아~~

그래야 하느님이 들어주신 다는 거지요....

울부짖으면서 매달리기...

ㅡ_ㅡ;;

 

따끈한 밥과...오봇한 집안 분위기...

편안하고...포근한 엄마얼굴의 가정을 기대하는 어린 마음에...

궁상스럽고 집착스레 다가오시는 하느님이 좋아 보일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긴 방황의 시절...

하느님을 오히려 마음속 깊이 묻어 버리고 만 적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힘들지만.... 초라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

 

님을 접었기에 혼나는 것이나...

님을 찾기 위해 궁상스러워 지는 것을 동등하게 놓아 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존재하는 하느님이라면...

나의 따뜻하고 행복한 일상을 꿈꾸는 평생의 신으로서 부자격스럽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런 분이 아니셨습니다.

 

님 앞에 서서, 님과 함께 하기 위해...

..초라함을 원하지도...

항상 십자가를 지고...허덕이며 살아야 자신의 자녀로 여기시는 분도 아니시고...

 

우리에게 무거운 멍에를 메어주시는 분도...

궁상스런 자기 고행을 원하지도 않으시는 분이셨습니다.

 

...내가 죄지을 세라 감시하며 다그치는 분도 아니셨습니다.

 

 

...그냥 그 분은 우리를 정말로......사랑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아니,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사랑의 완벽한 화신입니다.

 

제가 묵상의 대부분을 사랑고백받는 연인으로 하는 것은...

 

내 살아온 긴 시간속에서 느낀 나의 무서운 절대자..에게

나의 멍에와 미칠것 같은 고통의 십자가에 대해 원망의 울부짖음으로 기도하던 그 때...

 

...그것은 네가 나를 떠났기에 스스로 생긴 세상의 멍에일뿐...

내가 준 사랑의 십자가가 아니라며..

나를 안아주시던...그 분의 얼굴을 본 순간..

 

님이.. 나를 사랑하는 완벽한 연인이라는 것을 안 것에...

너무나 벅찼기 때문입니다..

 

나와 얼굴을 마주보길 원하시고..

당신이 펼치시는 세상속에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연인이시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분이 나에게 고행을 원하신다면...

내가 자신에게 잘못한 것을 진짜로 사과하고 있는지..

그것을 확인시켜달라고 요구하는 연인이기 때문입니다.

 

..다시는 자신을 떠나거나 배신하지 않을 것을 확인받고자....

나의 진정한 사과와 화해의 선물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말로만이 아닌,

혼나고 화풀이받을 것을 두려워해서가 아닌...

진짜 마음을 보여달라고...요구하시는 연인입니다.

 

 

그 분이 지금 나에게 고통을 주신다면...

내가 당신을 등돌렸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당신의 자녀들을 똑바로, 올바르게 사랑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분은 나를 사랑하시는 만큼 다른 이들도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당신의 세상속에서 목숨만큼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내 맘에....사랑이 없어 졌기 때문에...고통을 주십니다.

차갑고, 어둡고....숩기차고 쾨쾨한...내 맘에 들어 오시려고

사랑의 불씨를 넣고 불을 붙이려고 하니...

 

당연히 청소도 해야 하고...

당연히 말리기도 해야 하기에 필요한 정화 작업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말씀하십니다.

 

단식이란...

내가 원하는 단식이란....

 

고행이 아니다...

자학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단식은...통회는...보속은...

너희가.....나의 사랑으로서 ...나의 사랑을 가슴에 담아...나의 사랑을...

내 사랑하는 이들하고 나누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를....내게 얼마나 사랑받는지를...

모든 이들에게 알리고 나누는 것이다.....

 

진짜 단식을 하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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