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지 않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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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숙 [halusari] 쪽지 캡슐

2000-11-28 ㅣ No.1912

+ 강을 건넜으면 나룻배는 버리게나.

 

몇일동안 독서실 밖의 일 때문에 좀 분주했습니다.

대세 받으신 사돈어른의 장례를 치루면서 마주하게 된 가톨릭의 따스함에

깊은 관심을 갖는 모습.

장로교에서 주최한 외국인노동자 무료진료봉사팀에 합류해 포천 송우리에

다녀오면서 종교의 벽을 허물고 열려있는 마음으로 대해야 겠다고 하시는

주임목사님의 힘있는 악수를 하는 모습안에서.

전 신앙인이라는 것 때문에 받는 무상의 선물에 대해 참으로

감사한 날들이었습니다.

이처럼 따스하고 열려있는 마음으로 일상사를 살고 싶어지더군요.

좋은 시 나눕니다.

 

 

사랑하지 않은 자 -노희경-

 

지금 사랑하고 있지 않은 자, 모두 유죄.

나도 한때 자신에 대한 보호본능에 시달렸다.

사랑을 할 땐 더 더욱이 그랬다.

사랑을 하면서도 나 자신이 빠져나갈 틈을 여지없이

만들었던 것이다.

 

가령, 죽도록 사랑 한다거나, 영원히 사랑 한다거나,

미치도록 그립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게 사랑은 쉽게 변할 수 있는 방부제를 넣지 않은 빵과

같고, 계절 처럼 반드시 퇴색하며, 늙은 노인의 하루처럼

지루했다.

 

책임질 수 없는 말은 하지 말자.

내가 한 말에 대한 책임 때문에 올가미를 쓸 수도 있다.

가볍게 하자 가볍게.

보고는 싶다고 말하면서 지금은 사랑 한다고 말하고 변할

수도 있다고 끊임없이 상대와 내게 주입시키자.

그래서 헤어질 땐 울고 불고 말고 깔끔하게, 안녕.

 

나는 그게 옳은 줄 알았다.

그것이 상처 받지 않고 상처 주지 않는 일 이라고 진정

믿었다.

그런데 어느날 문득 드는 생각.

너, 그리 살어 행복 하느냐?

나는 행복 하지 않았다.

 

죽도록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살 만큼만 사랑했고

영원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나 당장 끝이 났다.

내가 미치도록 그리워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미치게 보고 싶어 하지 않았고 그래서 나는 행복 하지

않았다.

사랑은 내가 먼저 다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주지 않았다.

버리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는 물잔과 같았다.

 

내가 아는 한 여자,

그 여잔 매번 사랑 할 때마다 목숨을 걸었다.

처음엔 자신의 시간을 온통 그에게 내주고 그 다음엔

웃음을 미래에 몸을 정신을 주었다.

나는 무모하다 생각했다.

 

그녀가 그렇게 모든 걸 내어주고 어찌 버틸까,

염려스러웠다.

그런데 그렇게 저를 다 주고도 그녀는 쓰러지지 않고,

오늘도 해맑게 웃으며 연애를 한다.

나보다 충만하게, 그리고 내게 하는 말.

나를 버리니, 그가 오더라.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사랑을 얻었는 데, 나는 나를

지키느라 나이만 먹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모두 유죄다.

자신에게 사랑받을 대상 하나를 유기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 행복하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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