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라는 부분이란? - 콜로새 1,24 [성경공부] <다연중16일1독서> <홀연중23월1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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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21 ㅣ No.1297


질문:

콜로새서 1,24
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위에서, "그리스도의 환난(afflictions)에서 모자란 부분(what is lacking)"은 무슨 뜻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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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 찬미 예수님

콜로새서 1,24는,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나해 연중 제16주일 제2독서(콜로새 1,24-28)홀수해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콜로새 1,24-2,3)에 포함됩니다.

1. 다음은 NAB(New American Bible) 콜로새 1,24 전문입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colossians/colossians1.htm

(발췌 시작)
13 Now I rejoice in my sufferings for your sake, and in my flesh I am filling up what is lacking 14 in the afflictions of Christ on behalf of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이상, 발췌 끝)

게시자 주: 위의 빨간 글자들을 클릭하면 주석(영문)들을 읽을 수 있습니다.

2. 다음은 콜로새서 1,24에 대한 "주석 성경"의 주석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이 문장은 문법상으로는 별 문제가 없지만 해석상으로는 어려움이 커서 여러 가지 의견이 제시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환난"은 예수님의 수난 곧 그분께서 겪으신 속죄의 고난을 가리키지 않는다. 그 고난은 단 한 번으로 조금도 모자람 없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그래서 이 "환난"은 세상 종말과 관련된다(로마 5,3 각주 잠조). 또 그럼으로써 복음 선포와도 관련된다(마르 13,5-10). 사도는 '하느님의 말씀의 선포를 완수하라'는 소명을 받았다(25절). 그러한 의미에서 또 그 결과로, 바오로는(고통과 몸의 나약함과 박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환난을 종말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전 존재로 겪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나라(*)를 전파하시려고 이러한 시련을 처음으로 겪으셨고 또 주님의 운명에 동참하라고 부르심을 받은 사도 안에(2코린 4,10-12 참조) 그분께서 계속 살고 계시기 때문에, 그것을 "그리스도의 환난"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제시한 것으로 오래되었지만 계속 지지를 잃지 않는 해석에 따르면, 주님과 일치하여 또 교회 공동체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이러한 소명은 비단 사도만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랑스의 철학자 파스칼은,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까지 고통을 겪으실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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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게시자 주: 예수님께서 지상의 죄인들의 구원을 위하여 지상에 개시하신 "하느님의 나라(the Kingdom of God)",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 천국)"이 하늘(heaven, 천당)동일하지 않음에 대한 글들은 다음의 주소에 있으니, 아직도 이들이 동일하지 않음을 모르고 계신 분들은 필독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 번역자 주: 성 아우구스티노의 이 가르침은, 예를 들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302항, 제726항과 제790-796항, 제1136항, 그리고 제1374항 등에서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노에 의한 당시의 이단 척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던 대단히 중요한 가톨릭 신학적 개념인, "온전한 그리스도(Christus totus)"에 근거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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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홀수해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제1독서(콜로새 1,24-2,3)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23_mon.htm <----- 필독 권고

대단히 좋은 내용이므로, 되도록 많은 분들께서 클릭한 후에 읽도록 하십시오.

4.
위의 제2항에 발췌한 "주석 성경"의 주석에서, "그 고난은 단 한 번으로 조금도 모자람 없이 완전히 이루어졌다." 부분을 두고서, "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부르며,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 구속에 참여해야 하는 바를 두고서 "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이라고 부르는데, 이들 신학적 용어들에 대한 설명은 다음의 주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2.htm <----- 또한 필독 권고

5. 그리고 다음은, 콜로새서 1,24를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인용하고 있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세 개의 항들 전문입니다. 우리들이 살아 있는 동안 생활 속에서 실천하여야 하는, 우리들 각자의 몫인, "주관적 구속"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CCC 307, CCC 618, CCC 1508

(발췌 시작)

307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온 땅을‘지배’ 하고 다스릴 책임을 맡기시어 142) 자유로이 당신의 섭리에 참여할 권한도 주신다. 이처럼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창조 활동을 완성하고, 자신과 이웃의 선익을 위하여 조화를 완성시키는 지성적이고 자유로운 원인이 되게 하신다. 때때로 무의식적으로 하느님의 뜻에 협력하기도 하지만, 인간들은 자신들의 행동, 기도, 그리고 고난을 통해서도 하느님의 계획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143) 이때 인간은하느님의 협력자” (1코린 3,9) 144) 되고, 하느님의 나라를 위하여 협력하게 된다. 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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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2. 창세 1,26-28 참조.
143. 콜로 1,24 참조.
144. 1테살 3,2 참조.
145. 콜로 4,1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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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리스도의 희생 제사에 참여한다

618
십자가 죽음은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 502)이신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이다. 그럼에도 그리스도께서는 강생하신 하느님으로서 당신 위격 안에서“당신을 모든 사람과 어느 모로 결합시키셨기” 503) 때문에“하느님께서만 아시는 방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파스카 신비에 참여할 가능성을 주신다.” 504)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고 요구하신다. 505)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당신의 발자취를 따르라고 본보기를 남겨 주셨기 때문이다. 506)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속량을 위한 당신 희생 제사의 첫 수혜자들인 바로 그들이 당신 희생 제사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507) 속량을 위한 그리스도의 고난의 신비에 그 누구보다도 가장 긴밀히 참
여한 분은 바로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이다.
508) 

     천국에 이르는 사다리는 하나뿐이다. 십자가 이외에, 하늘에 오르는 다른
     사다리는 없다.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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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 1티모 2,5 참조.
503. 사목 헌장, 22항.
504. 사목 헌장, 22항 참조.
505. 마태 16,24 참조.
506. 1베드 2,21 참조.
507. 마르 10,39; 요한 21,18-19; 콜로 1,24 참조.
508. 루카 2,35 참조.
509. 한센(P. Hansen), 「놀라운 삶(리마의 성녀 로사)」 (로마, 1664), 1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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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8 성령께서는 어떤 이들에게 특별한 치유의 은사를 주시어, 부활하신 주님의 은총이 지닌 힘을 나타내신다. 116) 그러나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모든 병이 다 치유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너는 내 은총을 넉넉히 받았다.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코린 12,9) 는 것을 배워야 했고, 또 고통을 견뎌 내는 것은“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다.” (콜로 1,24) 는 의미가 있음을 배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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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1코린 12,9.28.30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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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1시간 (자료 찾기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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