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북한관련

재야학자의 광복 건국 논쟁에 대하여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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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수 [landpia21] 쪽지 캡슐

2008-08-15 ㅣ No.7350

제목
 광복 건국 논쟁에 대하여
 

자칭 재야 역사학자로서
이번 광복절 대 건국절 논쟁에 대해 언급할까 합니다.

이번 논쟁은
'광복', '해방', '독립', '건국'의 네 단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역사책을 보면
'독립군'이 '광복군'으로 이름을 바꾸고 하다보니 학창시절 국사시험 공부외에는 역사에 무지한
많은 이들이 독립=광복 이라고 생각들 하시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1947년에 만들어진 '우리의 소원' 노래의 가사는 원래
우리의 소원은 '독립'이었습니다.
1945년에 일제로부터 '해방' 즉 '광복'은 되었으나
미소에 의해 여전히 통치되고 있어 아직
우리의 나라를 만들어 '독립'을 이루지는 못한 상태라는 인식이
주류였기 때문입니다.
즉 해방은 되었으나 독립은 미완인 상태였기에  
'해방=광복'이후에 만들어진 노래가 여전히
우리의 소원으로 '독립'을 내세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1945년 12월에 신탁통치안이 발표되었을때
우익의 반탁운동 선봉에 섰던 김구는
1946년 광복절 기념식에서
(신탁통치에 찬성하는 좌익) 형제 자매의 피를 뿌려서라도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
고 역설합니다.
몇 년전 인터넷에서 찾았던 김구의 이날의 격정적 육성이 귀에 생생합니다.
(사상의 조국인
소비에트로의 흡수에 대한 열망 때문에
대한독립에 끝까지 반대했던 좌익들
의 정신적 후손들이 그런
좌익들의 피를 뿌려서라도 독립을 쟁취해야 한다고 역설했던
김구를 자신의 정신적 조상으로
섬기는 것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까요.)

어쨌거나 정리하면
1945년 8월 15일에 해방이 되었고 이 기쁜날을 더욱 기리기 위해  
1948년 8월 15일을 잡아 대한민국을 건국하여
드디어 독립을 이루어냈습니다.
1948년에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어 우리의 소원이었던 '독립'을 이루어 내자  
1949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거리 곳곳에  
'대한 독립 1주년'을 경축하는 플래카드가 나 붙었고
경축 퍼레이드가 있었습니다.
'광복'이라는 말이 '독립'이라는 말에 밀려나는 것에 대해 거부감은 없었습니다.  
광복=해방 은 일제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는 일이었고
독립=건국 은 우리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광복=해방보다 상위목표인 독립=건국이 달성 되었는데
무슨 시비를 걸겠습니까?

1945년에 광복=해방이 되었습니다.
2045년 8월 15일이 되었다고 합시다. (다들 살아 있으시겠죠?)
해방된지 100년이 되었는데 그때도 일제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고 있다면
솔직히 좀 우스울 것 같습니다.  
2445년 대한민국이 500살쯤이 되었을때도 8월 15일에 광복을 기념하고 있다면 더욱 우습겠죠.
물론 나라 잃을 설움을 잊어서는 안되겠습니다.
그렇기에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그냥 두면 언젠가 잊혀질 이날
8월 15일에 나라를 세워
이 날이 영원히 대한민국의 국경일이 되도록 했던 것이겠죠.

이번에 건국절 논쟁은
언젠가는 거쳐야할
8월 15일의
광복절에서, 광복절 및 건국 기념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건국 기념일
로의 이행 과정을 너무 급히 추진한 정부 여당 측의 성급함과
대한민국의 건국을 끝까지 반대했던
좌익들의 정신적 후손들이
여전히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건국에 대한 거부감이
뒤섞여 일어난 일입니다.

소모적인 논쟁은 지양되고 이번 기회에
8월 15일이  
광복절에서
광복절 및 건국 기념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건국 기념일로
transition되는 첫발이 내딛여지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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