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강론

대림 제3주간 월요일 ’22/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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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흥보 [peters1] 쪽지 캡슐

2022-11-27 ㅣ No.5232

대림 제3주간 월요일 ’22/12/12

 

부부가 만나는 것도 드라마틱한데, 자녀를 가지는 것을 보면 더 그렇습니다. 어떤 부부는 쉽게 자녀를 가지는 것처럼 보이고, 어떤 부부는 자녀를 갖기 아주 어려워 보이는가 하면, 아예 아이를 못 가져 힘겨워하는 부부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같은 부부도 같은 가임기에 사랑의 행위를 해도 어떤 때는 아이를 가지고, 어떤 때는 수태를 못하기도 합니다. 또 부부가 사랑의 행위를 통해 아이를 수태하지만, 수태가 된 후에 보니 남자아이고 여자아이라는 사실을 알 뿐이지, 수태이전에 부부행위를 하면서 수태될 아이의 남성이나 여성을 작정하고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고 보면, 남녀 사랑의 행위로 인하여 수태를 하는 것은 사람이지만 그 외의 요인으로 인하여 아이의 수태와 성별이 결정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리 신앙인들은 하느님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권은 수태로부터 주어지는 것이며, 부모의 행위로부터 시작되지만, 부모나 제삼자에 의해 규정될 수 없는 천부적이고 하느님의 권능으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인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 예수님께 무슨 권한으로 일하시느냐고 묻자 세례자 요한이 누구의 권한으로 일했느냐고 되물으셨고, 그들이 모르겠다고 답하자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말하지 않겠다.”(마태 21,27) 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내가 누구의 권한으로 일하는 것이냐의 여부를 따지지 말고, 내 존재와 행위의 내용이 인간의 성숙과 구원을 위한 것이냐의 여부를 따져라.’라고 요구하시는 듯합니다. 마치 나는 존재로서 그리고 내가 인간 성숙과 구원을 위하는 행위 자체로 권한을 가진다.’ 라고도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오늘 우리의 성숙과 구원을 위해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며 우리의 삶과 행위를 되돌아봅니다. 아울러 우리를 이렇게 살게 해 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다시 한번 감사와 찬미를 드립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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