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성당 게시판

시애틀 추장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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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석 [saint1998] 쪽지 캡슐

1999-07-13 ㅣ No.136

여름농촌체험과 관련하여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여 이 글을 소개합니다.

자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가톨릭 내에서도 성 프란치스코의 태양의 찬가를 제외하고는

이런 식으로 아름답게 자연을 노래한 시는 없는 줄로 압니다.

 

시애틀 추장은 구석기 시대 도덕률의 마지막 대변자 중 한 사람이었지요.

1852년을 전후해서 미합중국 정부가 나날이 늘어나는 미국 국민을 이주시키기 위해 그 부족의 땅을 팔 것을 요구했을 때 시애틀 추장은 명문(名文)의 해답을 보냈지요. 이 서한은 우리가 지금까지 논의한 도덕의 문제, 진짜 도덕의 문제를 그렇게 선명할 수 없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번 인용해 보기로 하지요.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은 우리에게 편지를 보내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뜻을 전합니다.

하지만 하늘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땅을 어떻게 사고 팝니까?

우리에게 땅을 사겠다는 생각은 이상하기 짝이 없어 보입니다.

맑은 대기와 찬란한 물빛이 우리 것이 아닌 터에 그걸 어떻게 사겠다는 것인지요?

이 지구라는 땅덩어리의 한 조각 한 조각이 우리 백성에게는 신성한 것이올시다.

빛나는 솔잎 하나하나, 모래가 깔린 해변, 깊은 숲속의 안개 한 자락 한 자락, 풀밭, 잉잉거리는 풀벌레 한 마리까지도 우리 백성에게는 신성한 것이올시다. 이 모든 것

이 우리 백성의 추억과 경험 속에서는 거룩한 것이올시다.

우리는 나무 껍질 속을 흐르는 수액을 우리 혈관을 흐르는 피로 압니다.

우리는 이 땅의 일부요, 이 땅은 우리의 일부올시다. 향긋한 꽃은 우리의 누이올시다.

곰, 사슴, 독수리……이 모든 것은 우리의 형제올시다.

험한 산봉우리, 수액, 망아지의 체온, 사람……이 모두가 형제올시다.

반짝거리며 시내와 강을 흐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피올시다.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그대들은 이것이 얼마나 거룩한 것인가를 알아주어야 합니다.

호수의 맑은 물에 비치는 일렁거리는 형상은 우리 백성의 삶에 묻어 있는 추억을 반영합니다.

흐르는 물에서 들리는 나지막한 소리는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의 음성입니다.

강 역시 우리의 형제입니다. 강은 우리의 마른 목을 적셔 줍니다.

강은 우리의 카누를 날라주며 우리 자식들을 먹여 줍니다.

그러니까 그대들은 형제를 다정하게 대하듯이 강 또한 다정하게 대해야 합니다.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공기가 우리에게는 소중하다는 것에,

대기의 정기가 그것을 나누어 쓰는 사람들에게 고루 소중하다는 것에 유념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불어넣어 주었던 바람은 우리 할아버지의 마지막 한숨을 거두어 갑니다.

이 바람은 우리 자식들에도 생명의 정기를 불어넣습니다.

그러니까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다른 땅과는 달리 신성한 땅으로 여겨 주십시오.

풀밭의 향기로 달콤해진 바람을 쏘이고 싶은 사람이나 찾아가는 신성한 땅으로 여겨 주십시오.

그대들의 자식들에게 우리가 우리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을 가르쳐 주시겠어요?

우리는 자식들에게 땅이 우리의 어머니라는 것을 가르칩니다.

땅에 일이 생기면 땅의 아들에게도 일이 생깁니다.

우리는 땅이 사람에게 속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땅에 속한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이 세상 만물이, 우리가 핏줄에 얽혀 있듯이, 그렇게 얽혀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 생명의 피륙을 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이 그 피륙의 한 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사람이 그 피륙에 하는 것은 곧 저에게 하는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신이 그대들의 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이 땅은 신에게 소중합니다.

그러므로 이 땅을 상하게 하는 것은 창조자를 능멸하는 짓이라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그대들의 운명이 우리들에게는 수수께끼입니다. 들소가 모두 살육되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은밀한 숲의 구석이 수많은 사람 냄새에 절여지고, 언덕의 경치가 <말하는 줄>로 뒤엉킨다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수풀은 어디에 있나요? 사라지고 말았나요? 그러면 독수리는 어디에 살지요? 사라졌나요?

저 발빠른 말과 사냥감에게 이제 그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 어떠한지요?

누리는 삶의 끝은 살아 남는 삶의 시작이랍니다.

마지막 붉은 인간이 황야에서 사라지고 그 추억이 초원을 지나가는 구름 그림자

신세가 될 때도 이 해변과 이 숲이 여기 이렇게 있을까요?

거기에 우리 백성의 혼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게 될까요?

우리는 이 땅을 갓난아기가 어머니의 심장 소리를 사랑하듯이 사랑합니다.

그러니 만일에 우리가 이 땅을 팔거든 우리가 사랑했듯이 이 땅을 사랑해 주시오.

우리가 보살폈듯이 보살펴 주시오.

그대들의 것이 될 때 이 땅이 간직하고 있던 추억을 그대들 마음속에 간직해 주시오.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이 땅을 간직하면서, 하느님이 우리 모두를 사랑하듯이 이 땅을 사랑해 주시오.

우리가 이 땅의 일부이듯이 그대들도 이 땅의 일부올시다.

이 지구는 우리에게 소중합니다. 이것은 그대들에게도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한 분뿐이라는 것을 압니다.

홍인종이 되었든 백인종이 되었든 인간은 헤어질 수 없다는 것도 압니다.

우리는 결국 형제인 것입니다.

조셉 켐벨·빌 모이어스, 신화의 힘, 고려원 1992, 84-87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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