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일반 게시판

제 친구의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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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openarms] 쪽지 캡슐

2000-04-03 ㅣ No.469

얼마전에 어머님을 하늘도 보낸 친구의 맬에서 가지고 온 이야깁니다.

요즘 많이 힘들어하는 친구를 보면서 어떻게 도움을 주어야할지 고민이됍니다.

 

제게 충고의 말씀을 주세요 제멜은 inlovewithyou@intz.com 입니다.

그럼 다음을 읽어 주세요

 

천일 하루의 사랑

 

 

 그를 보았습니다. 옛날에 제게 웃어 보이던 그 웃음을 아직도 가지고 있더군요.  물론 지금은 저 아닌 다른 이에게 그 웃음을 보여주고

있지만 말예요.

 질투...하냐구요? 글쎄요....

 이젠 떠나야 할 시간인걸요. 영영 떠나가기 전에 잠시만 더 조금만 더 그 사람을 보고 싶었던거니까요, 그 사람이 웃는 모습을 보았으니 맘

편히 갈 수 있을것같아요.

 모든걸 훌훌 벗어던지고 가야한다고 그러더군요.

 그래야 그 세계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다구요..

 그래야 좋은 마음을 가진 좋은 운명으로 다시 태어날수있다고 말예요....

 제가 그 사람을 만났던건 고작 백일이었어요. 짧다구요?

 정말 그 사람의 얼굴을 보았던건 그 백일 중 스무일 남짓했으니까요. 그건 더 짧죠?

 그렇지만 제가 그 사람을 사랑한건 오늘까지.... 천일하고도 하루였어요.....

 천...하루의 사랑...

 처음 그 사람을 만났던건 푸른 화면위에서였어요. 통신이란걸 처음 알게되었을때, 채팅이란게 뭔지도 몰라서 더듬거리는 독수리타법으로

쩔쩔 매고있는 제게 말을 걸어주었고 빠르게 올라가는 전화비를 감수하면서까지 저의 더딘 대답을 기다려 많은 것을 가르켜주었던

사람이었어요.

 푸른 화면위에 사랑.....그렇게도 많이들 말하죠. 전 그 사랑에 빠져들었어요. 그래서 밤마다 그 느린 속도를 감수하면서 꼬박꼬박 사람들

많은 하이텔 대화방을 찾았고 눈익은 그의 아이디를 찾고 잠수방으로 들어가 그에게 초청메세지를 보내놓고 두근두근거리면서

"ShadowMan님이 들어오셨습니다."하는 문장이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을때도 있었죠. 새벽마다 제게 보여지는 푸른 화면은 더 이상 답답하고

단절된 기계가 아니었어요. 전 그 모니터 뒤에서 키보드를 두드리는 한 사람의 영혼을 느낄수 있었거든요.

 그 사람의 호홉과 그 사람이 하고있는 말들과 그 사람의 기분과 그 사람의 웃음소리, 때로는 숨죽인 작은 흐느낌까지 전 들을 수 있었어요.

그리고 전 가느다란 전화선을 통해 제게 보여지는 그 사람의 "사랑... 합니다..."라는 더듬거리는 고백을 받았어요.

 호흡이 정지하는 기분..아세요?

 푸른 화면위에 하얀 글자로 한자 한자 천천히 찍혀나오는 그 글자가 눈에 들어오는 순간 제 호흡은 멈추었어요.

 잠시 제 심장은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하는 제 임무를 잊어버리고 멎어버리더군요. 잠시동안 이었을테지만 제겐 제 숨소리도 아니

열어놓은 창으로 불어 들어오는 새벽의 바람 소리도 들릴 만큼 그런 고요 속에 잠겨 있었어요.

 그리고.....제 뺨은 아무도 보지 않는데 조금씩 상기되어지고, 왠지 눈에 눈물이 핑 돌더군요. 제가 살아왔던 이십해의 그 짧은 시간동안

아무도 제게 해주지 않았던 말을 그 사람이 해주고 있었으니까요....

 

 지금도....눈앞이 조금........흐려지네요...

 어느 일요일, 전 서울역으로 나갔어요. 그 사람은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고 절 만나기위해 서울까지 올라오겠다는 약속을

했었거든요.

 흔히들 통신에서 알게 된 사람을 만나게 되면 실망을 한다고 그러죠?

 곱슬머리를 부끄러워하면서 만지작거리고 제가 던진 작은 농담에도 볼이 쉽게 붉히던 그 사람은 물론 제가 생각하던 그대로의 사람은

아니었어요.

 조금...달랐죠. 온라인에서 보았던 그는 뭐랄까? 좀더 어른스럽게 말하고 의젓했었지만 그때 제가 만났던 그는 아직 소년의 모습도

남아있는 그런 웃음을 짖고 있었거든요. 그런 그 사람의 모습이 더 맘에 들었던건지도 몰라요. 꾸미지 않은 모습에 제비처럼 약아빠진

술수를 사용할 줄 모르는 아직도 세상의 순수한 모습을 더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렇게 서울과 대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만남이 시작되었어요. 그가 자취하는 방도 기웃거렸고 제가 공부하는 학교에도 놀러 오고 다른

연인들처럼 그렇게 손을 잡고 돌아다니는 시간도 조금씩 늘어갔었어요.

 살아있다는게, 제가 호흡 할 수 있다는게 정말 감사하게 생각되던 그런 시간들이었어요. 그리고.....그 날....저희가 만난지 백일째 되던

날.... 기억해요. 그 사람은 지금 빨리 집 앞으로 나오라고 전화를 걸었어요.

 평일이었고 학교에 있어야 할 시간이었는데, 절 만나기 위해 장미꽃을 한아름 안고 저희 집이 보이는 길 건너까지 와 있다 구요.

 전 신호등이 바뀌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다 파란불로 신호가 바뀌자 이내 횡단보도에서 절 향해 웃고 있는 그에게로 달려갔어요.

 잠시......하늘이 보이더군요. 그가 달려 오는 것도..보았던 것 같았요. 들고있던 장미꽃잎이 한장한장 눈이 떨어지듯 그렇게 내리는 것도

보았어요..... 그가 제 이름을 부르는것도 들었구요.

 그리고....그리고....제가 눈을 떳을때, 사람들이 아주 많이 몰려있는것을 보았어요. 그도 울고 있었어요. 슬픈 영화를 보아도 언제나

눈시울을 살짝 붉히기만하던 그가 그렇게 슬프게 절 붙잡고 울고 있었어요. 전 의아해서 왜 그러냐구, 난 괜찮다고 말을 했지만 아무도 제

목소리를 듣지못하더군요.

 제가 뒤돌아보았을때, 전.....아스팔트위에 구르고 있는 장미송이들과 그 뚝뚝 떨어져 흩어진 빨간 꽃잎보다 더 붉은 피를 흘리면서 눈을

감고 있는 저...를 보았어요.

 그리고 구급차가 오고 하얀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절 싣고 어디론 가로 가는 것을 보았지만 전 ....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어요.

 몇 년전에 보았던 영화가 생각났어요. [사랑과 영혼]이었나요?

 그 영화의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죽음을 알게 되는 그 장... 제가 그 상황이 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는데 말예요.

 저 아니, 제 시체라고 해야 하나요....훗

 나를...붙잡고 울고 있는 그에게 매달렸지만, 그는 제 목소리 따윈 들리지도 않았나봐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해도 제 곁에서

떠나지않고 머물러 있었어요.

 아무것도 먹지않고 아무것도 마시지않고 누구의 말도 듣지않고 그냥 제 시체 옆에서 그렇게 넋을 잃고 앉아있었어요.

 전, 전 그렇게 떠나는게 아니라고.... 여기 그대로 있다고 그렇게 말을 해주고싶었지만 전 그 사람이 볼 수 있는 세계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는 제가 그의 옆에서 같이 밤을 새고, 같이 울고 있었다는 것도 모르고, 멍하게 제 시체가 있는 관 옆에서, 엄마가 실려 나가고 안계신

텅빈 빈소를 지켜주었어요.

 영혼으로 지상 위에 남게 된 뒤 달라진게 있다면 먹을 필요가 없다는 거와 저와 같은 처지의 영혼들을 볼수 있다는거였어요.

 그들은 이 세계에서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다고, 정해진 때가 되면 이곳의 일들을 마음정리하고 미련을 버리고 저승으로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단지 제가 할수있는 일은 사람들의 눈이 없을때, 의식하지못할때, 제게 있는 모든 기운을 사용해 물건들을 움직이거나 혹은 빙의하여 제가

하려는 일을 하는것 뿐이었죠.

 그렇지만....제게 가장 마음이 아팠던 건 제가 더 이상 그 사람을 기쁘게 해줄수 없으리란거 였어요.

 삼일장이 끝나고 제 시체는 화장되었고, 그 사람은 대전으로 내려갔어요. 전 그를 따라 다녔죠. 그가 접속해서 이젠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제 아이디를 계속 치면서....  "BLUEblue님은 지금 사용중이 아닙니다." 하는 글들이 계속 올라오는 걸 보면서 멍하게 모니터 앞에

앉아있는걸 보면서도 제게서 받았던 선물이며 편지들을 꺼내놓고 하나하나 태우면서 울먹이는 것을 보면서도

전 아무 일도 해 줄 수 없었어요.

 그는 모를거예요. 그가 밤늦게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돌아 왔던 날 그를 잠재워준 노래는 고물라디오에서 나오던 노래가 아니라 제가

불러준 노래였다는 걸....

 그가 어지럽혀 놓았던 방을 치워주며 그를 기다려 주었던게 저였다는 것도, 그가 자살하기 위해 수면제를 먹었을때, 경찰에 전화를 걸어

주었던게 저였다는 것도, 그는 모를거예요.

 그가 미처 버리지 못한 기억들과 한번씩 만나 마음이 아파하며 울먹이면서 잠이 들었을때 그의 등을 두드리며 이불을 덮어주었던것도, 그

사람을 마음에 들어하던 한 아가씨에게 그 사람의 연락처를 적어 그 아가씨의 책 속에 끼워주었던 게 저였다는 것도, 그 아가씨와 만나러

가던 날 밤새 그 사람의 와이셔츠를 다려 놓았던 것도 저였다는걸 그 사람은 알지 못하겠죠.....

 그리구....그 사람을 처음 만나고 천일이 되는 오늘 밤....

 그 사람이 그 아가씨와 결혼식을 하고 신혼여행을 떠난 오늘 밤, 아무도 없는 그 사람의 텅빈 방에서 혼자 울고 있다는것도 그 사람은

모를거예요.

 그리고...지금....이제 영원히 이 세계를 떠날 준비를 하는 저를.........

 그 사람은 모르고 살아가겠죠...

 그렇게 제게 보여주었던 웃음을 그 아가씨에게 보여주면서.....

 아주 행복하게 살아가겠죠......

 이제...천 하루의 날이 시작되고 있어요.

 전....그만 날이 밝기 전 이 방을 떠나야 해요.

 900여일동안 제가 머물렀던 이 조그맣고 텅빈 방은 새로운 집으로 실려가지 못한... 날이 밝으면 낯선 이들의 손에 버려질 물건들만 몇 개

남아있는걸요.

 이제 날이 밝으면 불태워 없어지거나 쓰레기차에 실려 나갈 그런 짐들과 함께 전 여기서 되돌릴수 없는 시간들을 남겨놓은 앨범들을 한 장

한장 넘겨가면서 보고있었어요.

 이 사진들도...이제 날이 밝으면 다른 사람들의 손에 의해 버려지고 불태워질테죠.....

 그 슬픈 모습을 보기전....전 떠나려고해요...

 많이 행복한듯..

 웃는 그의 모습 보았으니 되었어요.

 그리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았으니

 전 아무 미련없이 이 방을 떠나야겠죠....

 그런데 왜 자꾸.....눈길이 방안에 머무르는걸까요...

 왜 자꾸..... 그 사람이 벌컥 이 방문을 열고 들어와 내게 가지 말라고.... 말할 것만 같을까요.....

 왜 자꾸.....되돌릴수 없는 시간들이 생각나고.... 눈앞에 흐려지는걸까요....

 이제...막 문을 열었어요.

 이 방문을 닫고 나가면...전 이 세계와... 그 사람과 영영 이별인걸요....

 이렇게 잠시만 머뭇거리는 것을 이해해주시겠죠.......

 그리고..그에게 전해주시겠어요?....

 아주 많이 행복해달라구요....

 정말 많이 행복해서....

 눈물이 날만큼 행복해서....

 저따위는 생각나지 않을만큼...

 그렇게 많이 행복하게.....그렇게 살아달라구요.....

 그렇게.......행복하게......

 활짝 웃으면서 살아달라구요....

 그래요 죽으면 아무도 사랑할수없고 사랑받을수 없어요...

 남아있는 자들은 또다른 사랑을 찾아가죠

 

 ......

 ......

 그럴까....? 어머니도 그럴까?

 내가 느끼지 못하는 곳에서 날 보살펴주고 있을까?

 

 칫... 괜한 메일을 보내서는 남자를 울리다니..

 

 역시 아이로군..

 ...

 3시전에 웹방에 온다면.. 내 우는 모습을 볼 수 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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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이라고 느끼지못할지라도..

 언제나처럼 웃을 수만 있기를..

 누구에게나 웃는 모습만 보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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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행복이란.. 불행이란..

 

 

 울음이란 걸 모르던 남자가.....

 

 새천년 삼월, 울음을 알게 되었다.....

 

 여러가지의 의미를 가진 울음을..

 

 눈물은 주로 슬플때,, 보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저번주.. 너무 행복한 눈물을 알게 되었다. 너무나도..

 

 ...

 

 죽을때까지 함께 하자는 고백(?)을 받아본 경험 있는지...

 

 눈물을 모르던 남자는.. 저번주 한사람도 아니고,, 두사람에게

 

 그런 고백을 받았다..

 

 아직까지도 그 생각만 하면.. 눈물을 쏟아지려 한다..

 

 너무나도 행복해서..

 

 나는 해준게 아무것도 없는데.. 바보같이 목숨까지 주려는..

 

 친구..  너무 고마웠다.. 그런 친구가 있기에.. 그나마 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겠지?

 

 ....

 

 감동이란거...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

 

 나 목요일날 울고, 금요일날도 울고, 토요일도 울고,,

 

 일요일엔.. 웃었다..?

 

 너무나도 행복한 눈물이었는데.. 섬뜩한 악마같은 미소로

 

 바뀌고야 말았다..

 

 어머니 사후.. 돈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서로 얼굴 붉히고

 

 있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웃어주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감추기 위해..

 

 왜 나한테.. 이제와서 이렇게 수많은 감정을 한꺼번에 느끼게

 

 하는 거지? 내가 전생에 그렇게 죄가 많았나?

 

 정말....

 

 나같은 운명.. 다시 없었으면 좋겠다....

 

....

 

 써놓고 보니.. 제목에서 벗어나버렸네.. 이궁..

 

 믿거나말거나... 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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