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방

김수환 추기경님을 바로본 스님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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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규환 [qhwan111] 쪽지 캡슐

2009-02-18 ㅣ No.61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 어른이 귀한 시대에 참으로 이 땅의 어른으로 사셨던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선종하셨습니다. 선종 2~3일 전부터 “서로 화해하고 사랑하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지요. 그리고 마지막 이 세상과의 작별 인사로 “고맙다”는 말씀을 남기셨다 합니다. 그 말을 전해 듣는 순간 저는 이 시대의 ‘대선지식’이 떠났다는 사실을 실감했습니다. 고맙다, 이 한마디에서 저는 ‘삶과 죽음’의 인연 거래로 거둘 수 있는 절정의 아름다움을 봤습니다. 생사의 본질이 거기에 있었고, 겸손과 용기와 헌신으로 일관한 당신의 온 삶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한 시대의 ‘보살’로 살다간 사람만이 남길 수 있는 군더더기 없는 ‘열반송’이었습니다. 그 단순한 한마디 속에 성직자가 가야 할 길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모두들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고 지난 삶을 칭송하고 있습니다. 김 추기경께서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인간의 존엄을 가벼이 여기는 이들도 그 대열에 섞여 있습니다. 적어도 이 순간만큼은 진심이겠지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김 추기경께서 우리 모두에게 남긴 또 다른 선물이 될 것입니다. 선물 꾸러미를 조심스럽게 열어봅니다. 겸손과 용기와 헌신으로 이루어진 거울입니다. 그 거울에 지금 우리네 삶을 비춰 봅니다. 서글픕니다. 권력자와 지식인과 성직자들, 소위 사회를 이끌어 간다는 이들에게서 겸손을 찾아보기는 힘듭니다. 다른 이들은 두고라도 성직자들 가운데도 “교회의 높은 담을 헐고 사회 속에 교회를 심어야 한다.”는 김 추기경의 말씀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이는 드뭅니다. 교회를 사찰로 바꾸어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약자의 편에 서기는커녕 군림하려 하고 대접받으려 합니다. 오히려 권력의 편에 서서 이권을 탐하는데 급급합니다. 이들에게 용기란,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과 민주주의가 유린당하는 걸 보고도 못 본척하는 두둑한 배짱일 뿐입니다. 이들에게 헌신이란 진리와 정의와 세상을 위한 헌신이 아니라 신도들에게 믿음을 구걸하는 헌신입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는 한 시대의 사표였습니다. 국민의 자유와 인권과 민주주의가 신음하던 시절, ‘정의의 사도’로서 성직자와 지성인이 가야 할 길을 행동으로 보이셨습니다. 그런 김 추기경께서 이제는 역사의 사표가 되었습니다. 김 추기경의 행동을 요구했던 시대는 갔습니다. 김 추기경께서는 지금 역사의 사표로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의를 구현하라는 숙제를 남기셨습니다. 참으로 무거운 숙제입니다. 현재의 시국 상황은 김 추기경께서 사셨던 군부 독재 시절보다 더 어려운 상황입니다. 당시는 사회적 모순과 실종된 인권과 민주주의의 행방이 분명했습니다. 그것을 찾기 위해 가야 할 길도 선명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권력화된 자본과 자본화된 권력이 한 몸을 이루어 오로지 ‘돈’으로써 당근을 던지고 채찍을 휘두르면서 강고한 위계를 강요합니다. 인간의 존엄과 민주적 가치는 ‘돈’에 종속돼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의 근본적인 모순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시대의 성직자와 지성인들이 가야 할 길이 거기에 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당신이 행동으로써 보이신 겸손과 용기와 헌신을 거울삼아 우리의 길을 걸어가겠습니다. 김수환 추기경님. 고맙습니다. 편히 잠드십시오. 화계사 주지 ; 수경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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