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농동성당 게시판

[text20:4U]이정하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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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율 [text1000] 쪽지 캡슐

1999-09-29 ㅣ No.590

이정하의 시를 처음 접한 것은 91년 여름이었다.

 

[우리 사랑은 왜 먼 산이 되어 눈물만 글썽이게 하는가]란 시를 통해

 

무명인 그는 나의 어린 날에 작은 서정을 안겨주었다.

 

이정하님의 시를 소개합니다.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다

 

지은이 : 이정하

 

 

 

        햇볕은 싫습니다.

        그대가 오는 길목을 오래 바라볼 수 없으므로,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비에 젖을수록 오히려 생기 넘치는 은사시나무,

        그 은사시나무의 푸르름으로 그대의 가슴에

        한 점 나뭇잎으로 찍혀 있고 싶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대.

        비 오는 날이라도 상관없어요.

        아무런 연락 없이 갑자기 오실 땐

        햇볕 좋은 날보다 비 오는 날이 제격이지요.

        그대의 젖은 어깨, 그대의 지친 마음을

        기대게 해주는 은사시나무. 비 오는 간이역,

        그리고 젖은 기적소리.

        스쳐 지나가는 급행열차는 싫습니다.

        누가 누군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지나가버려

        차창 너머 그대와 닮은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는 까닭입니다.

        비에 젖으며 난 가끔은 비 오는 간이역에서

        그대처럼 더디게 오는 완행열차,

        그 열차를 기다리는 은사시나무가 되고 싶었습니다

 

 

험난함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지은이 : 이정하

 

 

 

기쁨이라는 것은 언제나 잠시뿐, 돌아서고 나면

험난한 구비가 다시 펼쳐져 있는 이 인생의 길.

 

삶이 막막함으로 다가와 주체할 수 없이 울적할 때

세상의 중심에서 밀려나 구석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자신의 존재가 한낱 가량잎처럼 힘없이 팔랑거릴 때

그러나 그런 때일수록 나는 더욱 소망한다.

그것들이 내 삶의 거름이 되어

화사한 꽃밭을 일구어낼 수 있기를.

나중에 알찬 열매만 맺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꽃이 아니라고 슬퍼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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