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실
2010.9.8 아름다운 쉼터(만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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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정채봉, ‘내가 잊고 있던 단 한 사람’ 중에서)
지리산 깊은 곳에서 칡이 태어났다. 칡이 눈을 떠 보니 하늘을 향해 죽죽 자라는 나무 세상이었다. 칡은 저도 하늘 쪽으로 머리를 두고 커 보리라 마음먹었다. 달이 가고 해가 바뀌어 다음 해 봄이었다. 그제야 칡은 자신이 땅으로만 뻗는 넝쿨임을 깨달았다. 칡은 산신령에게 부탁했다. “저도 하늘을 향해 자라서 후일 이 세상에 남는 무엇이 되고 싶습니다.” 산신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태어나기 전이면 모르겠으나, 한번 몸을 받은 이상 천성을 바꿀 수는 없다. 정히 원한다며 네 노력으로밖에 할 수 없다.” 칡은 사정사정했다. “노력도 길을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상한 저한테 길이라도 알려 주십시오.” ‘변화는 만남으로서만 가능하다. 진정 좋은 만남을 가져 보려무나.“ 그날 이후 칡은 만남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하여 어느 날 새벽, 잣나무 위에서 반짝이는 샛별을 보고 마음을 정했다. 곧게, 크게 자라는 저 잣나무와 벗하기로, 칡은 껍질이 벗겨지는 아픔을 참고 바위 위로 기어가 마침내 가장 높은 데 있는 잣나무 가지를 잡았다. 칡은 잣나무와 함께 세한을 나고 또 세한을 났다. 세세연년이 흘렀다. 산을 찾아온 사람들은 몇 사람이 안아야 할 잣나무를 보았다. 칡을 보았다. 둘은 함께 베였다. 그리하여 잣나무는 섬진강의 배가 되고 칡은 절의 기둥이 되었다. 지리산 화엄사 대웅전 기둥 가운데 하나가 그 칡이라고 한다. 하찮은 칡도 만남이 좋아 기둥감이 되었다.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