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실

2010.9.13 아름다운 쉼터(통장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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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9-13 ㅣ No.503

통장 메시지(이해정, ‘빅마마꽃이 피었습니다’ 중에서)

지난 30년 동안 남편은 생일날 꽃다발 한 번 안겨 주는 법 없이 통장에 돈을 입금하는 걸로 대신했다. 심지어 어떤 해는 슬쩍 지나가기도 했다. 사실 꽃을 한 번도 안 받아 본 건 아니다. 평생 딱 한 번 받아 봤다. 아마 결혼 20주년이던 해였을 것이다. 남편이 저녁에 뭔가 덜렁덜렁 들고 왔다. 들여다보니 신문지에 아무렇게나 뚤뚤 만 장미 한 송이였다. 기왕이면 예쁘게 포장이라도 해 주지, 아쉬웠지만 꽃을 주는 남편 표정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나왔다.

말로 하는 애정 표현은 결혼 초보다 오히려 요즘 좀 오가는 편이다. 그렇다고 요즘 사람들처럼 직설적인 건 아니고, ‘통장 메시지’로 은근슬쩍 전한다. 생일날 남편은 옷이나 구두를 사 주는데, 직접 데려가서 사 준 적은 한 번도 없고 대신 통장에 돈을 넣어 준다. 그런데, 돈을 입금할 때 메시지 란에 ‘예쁘다고’ 네 글자를 찍어 보낸다. ‘예쁘다고’가 ‘예버서’일 때도, ‘열심히 일해서’일 때도, ‘생일 축하해’일 때도 있다. 나는 ‘예쁘다고’라는 말이 좋아서 수시로 통장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본다.

한번은 구두를 사 달라고 했더니, 구두 값을 입금하면서 ‘비싼 구두’라도 메시지를 찍어 보냈다. 비싼 돈을 주고 구두 사는 게 영 마땅찮지만 이렇게 보내 준다는 말을 네 글자로 압축한 것이다. 어찌나 재미있던지 통장을 보며 한참 웃었다.

여자는 늘 로맨스를 꿈꾼다. 결혼을 앞두고 연애하는 여자도, 신혼 초의 새댁도, 결혼 생활 30년쯤 한 여자도 마음은 다 똑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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