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실

2010.9.20 아름다운 쉼터(내 시의 저작권)

인쇄

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0-09-20 ㅣ No.508

내 시의 저작권에 대해 말씀드리자면(손택수, ‘나무의 수하학’ 중에서)

구름 5%, 먼지 3.5%, 나무 20%, 논 10%
강 10%, 새 5%, 바람 8%, 나비 2.55%
돌 15%, 노을 1.99%, 낮잠 11%, 말 2%
(여기에 끼지 못한 당나귀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함)
(아치, 지렁이도 있음)

제게도 저작권을 묻는 일이 가끔 있습니다 작가의 저작권은 물론이고 출판사에 출판권까지 낼 용기가 있다고도 합니다 시를 가지고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겠다고 한 어느 방송국 피디는 대놓고 사용료 흥정을 하기까지 했답니다 그때 제 가슴이 얼마나 벌렁거렸는지 모르실 겁니다 불로 소득이라도 생긴 양 한참을 달떠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참 염치가 없습니다 사실 제 시에 가장 많이 나오는 게 나무와 새인데 그들에게 저는 한 번도 출연료를 지불한 적이 없습니다 마땅히 공동 저자라고 해야 할 구름과 바람과 노을의 동의를 한 번도 구한 적 없이 매번 제 이름으로 뻔뻔스럽게 책을 내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작자 미상의 풀과 수많은 무명씨인 풀벌레들의 노래를 받아쓰면서 초청 강의도 다니고 시 낭송 같은 데도 빠지지 않고 다닙니다 오늘은 세 번째 시집 계약서를 쓰러 가는 날 악덕 기업주마냥 실컷 착취한 말들을 원고 속에 가두고 오랫동안 나를 먹여 살린 달과 강물 대신 사인을 합니다 표절에 관한 대목을 읽다 뜨끔해하면서도 초판은 몇 부나 찍을 건가요, 묻는 걸 잊지 않습니다 알량한 인세를 챙기기 위해 은행 계좌 번호를 꾸욱 꾹 눌러 적으면서 말입니다


12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