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성당 게시판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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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홍중 [fallsky] 쪽지 캡슐

2000-07-09 ㅣ No.995

명동 성당에서 퍼온 글이에요

삶에있어 희망이 있다는것을 다시생각하게 해요

 

 

유월이 되면 팔년 전의 그 유월이 생각나곤 한다.

 

그때 우리가족은 안나에 대하여 긴가민가하는 생각을 가진 채 파리에서 살고 있었다.

 

남편은 그 곳 외상전문병원에서 일년간 공부하며 그 곳의 독특한 수술기법을 배우고

 

다음해는 미국의 병원 연구실로 가기로 되어 있었다.

 

살아가며 만날 수 있는 행운의 시간이었지만 난 그리 행복한 마음으로 서울을 떠나지

 

못했었다.

 

두살반이 되었는데도 엄마소리를 하지 않는 안나를 데리고 떠나는 그 길은 두렵고 막막

 

했었다.

 

늘 마음엔 아닐꺼라는 생각과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함이  교차하고 있었다.

 

우린 늦가을에 파리에 도착하여 지긋지긋하게 쓸쓸한 유럽의 가을을 견뎌야 했다.

 

 

 

다음해 유월, 남편은 이태리의 가르다호수가 있는 아름다운 장소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큰아이는 학교까지 빠지고 우린 모두 함께 가기로 하였다.

 

 그 때 만세살이 지난 안나는 통제가  힘든 아이였다.

 

잠자리가 바뀌면 밤새 잠을 안자기도 했고, 편식도 심했고 ,걸으려고 하지 않았으며

 

 지시따르기도 전혀 안되는 함께 여행하기는 정말 어려운 아이였다.

 

 여행에의 기대와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유모차까지 챙겨 우리는 비행기로 베니스를 거쳐

 

가르다호수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온 일행들이 있어 남자들이 학회에 참석해  있는 동안 우리는 베로나며 밀라노를

 

구경다녔고 안나는 힘들지만 어찌어찌 잘 따라다녔다.

 

내 손이 갈 경황이 미처 없던 큰아이는 다른사람을 엄마처럼 따라 다녀야 했다.

 

 

 

마지막날 밤, 주최측에서 파티를 열었다.

 

유일하게 아이들을 데리고 온 난  참석하지 않으려 했으나 주변사람들의 배려로

 

두아이를 모두 데리고 참석하게 되었다.

 

파티는 아주 근사했다 . 공터에 매우 큰 천막을 치고 그안은 기가 막히도록 멋지게 인테리어

 

되어 있었는데 난 아마 다시는 그런 멋진 파티는 보지 못할 것만 같았다.

 

풍선예술이라고 하던가?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때 나는 그걸 처음 보았다.

 

파티 내내 분장을 한 이태리남자가 테이블을 다니면서 꽃,나비,새같은 것들을 만들어 주었는데

 

아이들이 있는 우리 테이블에서 떠나지 않으며 이것저것을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억지로 억지로 버텨내던 안나가 드디어 몸을 비틀며 칭얼거리기 시작했다.

 

난  안기도 하고 업기도 하며 달랬지만 안나는 점점 큰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결국 난 안나를 안고 밖으로 나와야 했다.

 

바깥은 어느 새 비가 내리고 있었다.

 

우리가 호텔에서 타고 온 버스에 가 있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버스 문은 잠긴채 기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비는 점점 더 내리고 있었고 나는 안나를 업고 비를 피하기 위하여 어느 가게의

 

처마밑에 기대고 섰다.

 

마침 그집은 아이스크림집이어서 난 안나에게 아이스크림이라도 먹이며 앉아 있으려 했으나

 

순간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나를 발견했다. 가방을 파티장에 두고 온 것이다.

 

파티에 참석하느라 꾸민 내머리도 내 옷도 비에 젖고 있었다.

 

천막안 파티장에선 패션쇼를 하는지 여자들이 걷는 실루엣이 비추었고 사람들의 커다란

 

감탄사와 박수소리가 밴드소리와 어울어져 나를 더욱 더 쓸쓸하게 하였다.

 

난 그때 처음으로 안나로 인하여 눈물을 흘렸다.

 

아니라고 부인해 왔지만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한다는 소리가 내 맘속에서 들려 온 것이다.

 

그때 황급히 뛰어나오는 남편모습이 보였다.

 

내게 패션쇼가 너무도 멋있다며 아이를 자기에게 맡기고 보러 가라는 것이다.

 

나는 필요없다고 소리 질렀다.

 

빗물과 눈물이 뒤범벅되었다.

 

 

 

그해 가을 미국에서 안나는 두달에 걸친 검사끝에 이름도 어려운 진단명을 받았고

 

다음 해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 후 난 참 많이 울었다.

 

희망과 절망을 번갈아 느끼며 수도 없이 비상과 추락을 반복하였다.

 

받아들인다는 것과 포기한다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아마 그건 희망을 갖고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일 것이다.

 

난 어느땐 받아들인 모습으로 어느땐 포기한 모습으로 안나를 대했다.

 

요즘 난 좀 지쳐있다고 느낀다.

 

삶에 아무런 소망을 갖고 있지 않은 나의 모습을 발견한 것이다.

 

 

 

며칠전 안나는 수영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물론 어려움을 가진 아이들끼리의 수영대회였다.

 

그러나 킥판을 놓은지 불과 얼마 되지 않는 안나의 수영대회참가는 내게 걱정부터

 

가져다 주었다.

 

하지 않겠다고 떼를 쓰면 어쩌나, 가다가 빠지면 어쩌나,무엇보다 안나가 호흡을하며

 

자유형을 한다는게 믿어지지 않았다.

 

설흔이 넘어 수영을 배운 나도 호흡하는 과정을 익히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나는 처음 가본 올림픽경기장의 수영장을 낯설어 했지만, 구경하는 많은 사람들을

 

부담스러워 했지만,  25m를 헤엄쳐냈다.

 

호흡하며 , 양팔로 열심히 물살을 가르며...

 

난 마음에 뜨거운 것이 치밀며 뭉클한 감동을 느꼈다.

 

내 머리속에는 내내 안나가 가르던 그물살이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안나는 물살이기에 앞서 희망을 헤엄쳐 간 것이다.

 

 내년엔 50m를 더 멋진 폼으로 수영할 수 있을거라며 오랫만에 난 환하게 웃을 수 있었다.

 

 

 

소망이 내 지친 어깨를 떠 민다.

 

난 그소망에 떠 밀려  어디론가 또 다시 걸어 가야 할 것이다

 

멈추지 않고, 주저 앉지 않고...

 

하느님은 내게 편한길을 허락하시지 않는가보다.

 

그 힘든길에서 내가 만나야 할 그 무엇들이 있으리라고  믿어본다.

 

그리고 그 곳에 아버지 함께 하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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