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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의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 오늘, 성체 성혈 대축일 - 다해 [성경공부_전례에따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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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0 ㅣ No.749

 

성체 성혈 대축일 - 다해

 

참고: 이 글 중에 밑줄이 그어진 성경 구절이 나오면, 학습자들이 그 구절을 찾아 읽을 것을 권장한다.

 

입문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the feast of Corpus Christi, the Body and Blood of Christ)은 성목요일(Holy Thursday) 최후의 만찬(Last Supper)에서 성찬례(Eucharist)를 세우신 것을 상기한다. 성주간(Holy Week) 동안의 주된 묵상(thought)은 예수님의 수난(passion of Christ)에 대한 슬픔(sorrow)이므로 이 대축일은 바로 그 사건으로부터 유래하는(comes from) 기쁨에 우리의 주의를 집중하게 한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의 현존(the Real Presence of Christ)를 찬미하는(honors) 이 대축일은 (프랑스에 위치한) 리에제 지역의 율리안나(Juliana of Liege)의 환시들에 의하여 촉구되었는데, 성체(Eucharist) 안에 예수님의 현존이 실제라기보다는 상징적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케 하는 당시에 있어왔던 그동안의 논쟁(controversy)에 대한 응답으로서, 아우구스티노 수녀회의 수녀(Augustinian nun)인 그녀는 그녀의 환시들로부터 축성된 성사(성체성사, the Blessed Sacrament)를 찬미하는 축일을 하느님께서 원하심을 이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지역 축일로 거행되었으나, 우르반 4세 (Urban IV) 교황이 1264년에 보편교회(Universal Church)의 축일로 확장하였다.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을 위한 미사 예식서(Mass)와 성무일도(office)는 당시에 우르반 4세의 교황청(Papal court)의 구성원이었던 성인 토마스 아퀴나스 (St. Thomas Aquinas)에 의하여 작성되었다. [참고: http://www.newadvent.org/cathen/14663b.htm]  

 

제 1 독서 - 창세기 14:18-20

 

        오늘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기 이전의 시절의(Canaanite)) 가나안 지역의 사제 멜키체덱(Melchizedek)이 아브람(Abram)에게 나타남에 대하여 듣는다.

 

[참고: 이스라엘 백성의 세속적 대사제는 모세의 세 살 위의 형인 아론(Aaron)인데 (탈출기 4:14 참조), 예수님께서는, 탈출기에 기록된 아론의 대사제직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그 이전 시절인 창세기의 비세속적인 멜키체덱의 대사제직을 계승함.]

 

멜키체덱의 존재는, 성경 전체에 걸쳐, 다섯 명의 왕(five kings)들을 패배시키고는 아브람의 조카인 롯(Lot)을 납치한 네 명의 왕(four kings)들을 무찌르는 전쟁을 아브람이 성공적으로 이끈 후에 아브람이 소돔의 왕(King of Sodom)을 만난 기록 (창세기 14:1-17) 다음에 자리잡고 있는, 오로지 이들 세 구절로부터만 알려져 있다. (그리고 구약성경의 시편 110:4 및 신약성경의 히브리서에서 인용된다.) 소돔의 왕은 아브람에 의하여 자유인으로 풀려난 다섯 왕 중의 한 사람이었다.   

 

18  살렘 임금 멜키체덱도

 

멜키체덱이라는 이름은 “정의”를 뜻하며, 살렘(Salem)이라는 이름은 “평화”를 의미하므로, 그는 정의의 왕이며 또한 평화의 왕이다. 아람어로 번역된 구약성경, 즉 타르굼(targums)들에 반영된 바와 같은 유대인의 전통에 의하면, 멜키체덱은 노아(Noah)의 첫 번째 아들인 셈(Shem)인데, 창세기에 있어 아브람을 제외하고 단 한 명의 온당한(righteous) 첫 번째 아들이다. 창세기에 있는 가계들(genealogies)의 재구성은 우리들에게 셈이 아브라함(Abraham) (아브람)보다 35년 더 살았음을 보여준다. 또한, 아브람이 그곳, 즉 모리아 땅(the land of Moriah)에서, 이사악(Isaac)을 희생제물로서 제공하였을 때에, 창세기 22:14에서 살렘(Salem)이 나중에 “야훼-이레 (Yahweh-yireh)”라고 불리었다. 오늘날 우리는 그것을 “이레-살렘” (예루살렘(Jerusalem))으로 알고 있다.

[참고: http://www.jewishvirtuallibrary.org/jsource/Society_&_Culture/geo/Moriah.html]

 

빵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왔다.

 

음식물로서가 아니라 하느님께 봉헌하는 예물로서 이들을 가지고 나왔는지는 분명하지는 않지만 다음의 구절에 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Priest of God Most High)”라는 칭호와의 연상(association)은 확실하게 그 방향을 가리킨다. 우상(the golden calf) 숭배의 죄를 범하기 전까지, 하느님께서는 동물들을 제물로 바칠 것(animal sacrifices)을 요구하지 않으셨기에, 따라서 빵과 포도주는 가장 적절한 제물이었을 것이며 또한 계약의 음식(covenant meal)인 성체(Eucharist)의 예표(precursor)의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사제였다.

 

멜키체덱은 왕일뿐만이 아니라, 또한 사제인, 사제-왕(Priest-King)이다. 그는 성경에서 언급된 첫 번째 사제이다.

 

19  그는 아브람에게 축복하며 이렇게 말하였다. “하늘과 땅을 지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 아브람은 복을 받으리라.

 

성경에 축복(blessing)이 제일 마지막으로 언급된 시기는 노아(Noah)가 그의 장자인 셈(Shem)에 축복을 준 때이다 (창세기 9:26 참고). 이것을 두고서 아버지가 온당한(righteous) 아들에게 사제로서 베푸는 축복(priestly blessing)이라고 우리가 믿어도 괜찮을 것이다. 아브라함(Abraham)이 이사악(Isaac)에게 베풀고, 이사악이 야곱(Jacob)에게 베푸는 그러한 축복... 

 

20  적들을 그대 손에 넘겨주신 분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

 

아브람의 승리는 하느님께서 개입한 결과였다.

 

아브람은 그 모든 것의 십분의 일을 그에게 주었다. 

 

십일조(a tithe). 다섯 명의 왕들을 무찌른 네 명의 왕들을 무찌른, 가장 강한 전사인 아브람은 십일조를 받지 않았으며, 오히려 멜키체덱을 아랫사람 혹은 동등한 자가 아니라 윗사람 (혹은 윗사람의 대표자로서) 그가 인식하였음을 보여주는 십일조를 멜키체덱에게 바쳤다. 만약에 멜키체덱이 노아의 첫 번째 아들인 셈(Shem)인 것이 사실이라면, 그는 노아 가족의 사제이기에, 아브람이 십일조를 그에게 바치는 것은 아브람이 나이 많은 그의 친족(elderly brother)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이 되므로, 이 모두가 일리가 있게 된다 (창세기 11:10-27 참고).

 

제 2 독서 - 1코린토 11:23-26

 

        두 번째 독서는 우리가 매번 미사에서 듣는 축성문(the words of consecration)을 포함하고 있다. 기원 후 56년에 쓰여진 코린토 1서 서간문은, 로마의 폭군 네로 황제의 탄압이 있었던 기원 후 64년 이후에 쓰여진 사도 마르코의 복음서 보다 8년 전에 쓰여졌다.

 

23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성인 바오로(St. Paul)는 개종자이었기에, 그는 최후의 만찬에 있었던 12명의 사도들 중에 없었다. 사울(Saul) ((바오로(Paul))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단 한 번 만난 것은 그가 다마스커스(Damascus)로 가는 길에서 그가 땅바닥에 기절하였던 때이었는데 그는 그 때에 (예수님 의하여 선택되어졌고) 개종되어졌다. (성경은 말(horse)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는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마스커스에 있었던 사도들과 며칠을 보낸 후에 설교를 시작하였다 (사도행전 9:19-20).

 

곧 주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성 목요일(Holy Thursday). 비록 성체(Eucharist)를 세우심이 여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이지만, 이 밤은 또한 예수님께서 당신의 사도들의 발을 씻어 준 밤이기도 하고 또한 한시간 동안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를 한 날이기도 하다. 등 등...

 

빵을 들고

 

세 번째 포도주 잔이 비워지기 바로 직전 때까지 과월절 식사(Passover meal) 기간 동안 보관되어왔던, 누룩없는 빵(Afikomen).

 

24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리이스어: eucharisto.

 

그것을 떼어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너희를 위한 내 몸이다.

 

최후의 만찬 1년 전에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세상에 생명을 주는 나의 살이다.” (요한 복음서 6: 51).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정다운 기억들을 상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최초의 행사에 참석하게 하는 제사(memorial sacrifice). 과월절은, 심지어 오늘날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이 과월절 행사(Passover)를 거행할 때마다, 그들로 하여금 이집트에서 가졌던 첫 번째 과월절 행사에 참석케 하여 모두가 최초의 과월절 음식을 먹는 자들로 하나로 묶어지게 하는, 그러한 제사이었다. 기억을 되살림으로써, 그들은 계약 갱신 예식(covenant renewal ceremony)에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25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모양으로 잔을 들어

 

과월적 식사의 세 번째 잔인, 감사의 잔(the cup of thanksgiving)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신약성경에 있어 예수님께서 “계약”이라는 단어를 단 한 번 사용하신 때가 성체(Eucharist)를 세우신 바로 그 때인데, 이것은 예레미아 31:31 예언의 구현(fulfillment)이다.

 

동물이 희생제물로 바쳐지고, 피는 동물의 몸에서 뽑아지는데, 성전(temple)에서 동물의 피가 제단의 뿔(horns of the altar)들에 담겨지는 (최초의 과월절 행사에서는 피가 문지방에 뿌려졌으며 또 시나이 산에서 피는 사람들에게 뿌려졌다.), 가족 단위의 식사(family meal)에 의하여 계약(covenants)들이 잘 지켜질 것임을 확약하게 된다(are sealed).

 

너희는 이 잔을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무엇을 하라는 것일까? 12명의 당신의 가장 가까운 친구들을 위한 파티를 마련하라는 것일까? 예수님께서 방금 끝내셨던 것이 무엇일까? 당신께서는 포도주를 당신의 피로 바꾸셨다.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며 또한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면, 실제로 이루어진다 (이사야 55:10-11). 하느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셨을 때에, 어둠이 사라졌다. 하느님께서 “이것은 나의 몸이다... 이것은 나의 피다.”라고 하셨을 때에, 그 빵과 포도주는 당신의 몸과 피가 되었다. 상징들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당신의 몸과 당신의 피.

 

“왜냐하면, 보통의 빵으로서도 아니고 보통의 마실 것으로서도 아닌 이것들을 우리가 받는 것인데, 그러나 우리들의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육화하셨고 또 우리들의 구원을 위하여 살과 피를 가지셨기에,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들이 배운 바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정하신 성체성사 기도문(Eucharistic prayer)에 의하여 성체(Eucharist)로 축성된 음식은, 그리고 그 음식의 변화에 의하여 우리들의 피와 살이 자양분을 얻게 되는 바로 그 음식은, 모두 육화하신 예수님의 살과 피다.” [순교 성인 유스틴 (St. Justin the Martyr) (기원 후 150), First Apology 66]

 

“어떻게 그것이 천상의 말씀으로 축성되었는지를 그대는 알고 싶은가?  사제가 말하는 것이 바로 그 말씀들임을 받아들이라. 사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표상(figure)인, 마음에 드는, 합리적인, 이 기록된 봉헌 예물(written oblation)을 우리들을 위하여 실행하여라... 축성되기 전까지, 그것은 빵이었으나, 예수님의 말씀들이 들어왔을 때에, 그것은 예수님의 몸이 된다. 끝으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심을 듣도록 하라: ‘너희들 모두는 이것을 받아 먹어라; 이것은 내 몸이기 때문이다 (루카 복음서 22:19).’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들 이전에는 성작(chalice)은 포도주와 물로 가득 차  있으나, 예수님의 말씀들이 그 작용을 마쳤을 때에 그것은 사람들을 구속하는(redeems) 예수님의 피로 바꾸어진다.” [밀라노의 성인 암브로시오 (St. Ambrose of Milan) (기원 후 390), The Sacraments 4, 5, 21-23]

  

26  사실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세상의 종말에 있을 예수 재림의 날.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적마다

 

이것은 계약(covenant)의 갱신(renewal)이다. 한 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월절 행사(Passover)가 해마다 거행되어 왔듯이, 과거의 그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그 사건을 우리들 앞에 풀어 놓고는 그 약속들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주님의 죽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지 않으셨더라면, 새로운 대사제께서 천상교회(Heaven)에서 봉헌할 희생제물이 없을 것이다 (히브리서 8:3-4, 요한 묵시록 5:6). 예수님의 죽음을 선포함으로써 우리는 당신이라는 희생제물을 인식하게 되고 또 하느님께 그것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represent) 아니라) 다시 봉헌하게(re-present) 된다.

 

복음 - 루카 9:11-17

 

        오늘의 복음말씀 봉독은 오천 명을 먹인 것을 상기하는데, 이것은 성체(Eucharist)의 예표이다. 만약에 예수님께서 다섯 개의 빵과 두 마리의 물고기를 가지고 오천 명이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일 수 있으시고 또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로 바꿀 수 있으시다면, 당신께서는 우리가 하느님과 맺은 계약을 지킬 것임을 확약해 주는 음식을 전체 세상에 제공하는 데에 필요한 만큼의 많은 양의 빵과 포도주 또한 당신 자신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  이 기적은 신약성경 네 복음서에 모두 공통으로 있는 단 하나뿐인 기적이다.

 

        이 이야기의 설정은 다음과 같다: 예수님과 당신의 사도들은 갈릴래아 지역(Galilee)에 있으며 사도들은 하느님의 백성들을 설교하고 치유하는 것으로부터 방금 돌아왔다. 그들은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음식을 먹이는(feed) 새로운 책임(charge)을 떠맡게 된다.

 

11  그러나 군중은 그것을 알고 예수님을 따라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이하시어,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12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신약성경의 네 복음서들 중에서, 특별히 루카 복음서에서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기적들은, 식사하러 가는 동안, 식탁에서, 그리고 방금 식사를 마치고 에서와 같이, 음식과 관련하여  일어난다. 

 

13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히브리인들의 수비학(numerology)에 의하면, 2는 적음을 나타내고 5는 기본 숫자(the basic number)의 절반을 나타내어, 이들 두 숫자들은 모두 불완전한 숫자들이나, 그러나 이들을 합하면, 계약(covenant)의 숫자이며 완전(perfection)의 숫자인 7이 된다.

 

마르코 복음서 6:37에 의하면, 제자들의 응답은 훨씬 날카롭다: “그러면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 여기서 “이백 데나리온어치”는 “200일 분의 임금에 해당하는” 의미이다. [The New American Bible의 해당 구절 참고].

  

14  사실 장정만도 오천 명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히브루어(Hebrew)로 숫자는 nun 인데 이것은 또한 “물고기”를 의미한다. 히브로인들은 숫자들을 위한 특별한 단어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나, 이들은 (마치 실제로 글자들(letters)인 로마식 숫자들 같이) 숫자들을 표현하기 위하여 기존의 단어들을 사용한다.

 

15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16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을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복음사가 루카는 매우 의도적으로 최후의 만찬에서 성잔례(Eucharist)의 제정을 서술할 때 (루카 복음서 22:19) 및 엠마오 이야기(Emmaus story) (루카 복음서 24:30)에서 사용된 것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집어서... 들어 올려서... 축복하고... 나누어... 주었다.”  

 

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그리이스어로서 “조각”에 해당하는 단어로 여기에 사용된 klasmata 는 성체(Eucharist)의 부스러기 조각들을 위한 기술적 단어로서 디다케(Didache) 9:3-4 에서 사용되고 있는 단어와 같다. [http://www.nccbuscc.org/nab/bible_hold/matthew/matthew14.htm 에서 주석 6 참고.]

 

여기서 디다케는 “사도를 통해 여러 나라 사람들에게 주어진 주님의 교훈” 혹은 줄여서 “12사도들의 교훈”으로 불리는 기원 후 1세기경에 시리아 지방에서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작자 미상의 초대교회 시절의 교회 규범서를 말한다.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이스라엘 12 부족들 모두를 먹이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함. 4천명을 먹였을 때에는 일곱 광주리의 빵이 남았는데 (마태오 복음서 15:37-38, 마르코 복음서 8:8-9), 이것은 이집트로부터의 탈출기(exodus) 마지막 시점에 이르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Canaan) 지역에 도달하기 이전에 가나안 지역에 살고 있었던 이방인 부족(Gentile tribes)들을 모두 먹이기에도 충분함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네 복음사가들 중에서, 루카는, 그 다음 구절을 통하여, 이 먹이는 것에 관한 서술(this feeding account)을 당신의 수난(passion)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prediction) 및 날마다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예수님의 가르침들과 즉시 연결하고 있다 (루가 복음서 9:18-27). 미사의 영성체 예식 중에 성체를 받아먹는 것(to celebrate the Eucharist)은 예수님의 삶에 참여하고 그리고 설교하고(preaching), 가르치고(teaching), 또 치유하는(curing) 예수님의 사목(mission)에 함께 하는 것 뿐 만이 아니라, 십자가로 상징되는 예수님의 헌신(dedication)과 운명(destiny)에도 함께 하는 것을 의미 한다 (루카 복음서 9: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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