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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수원 '예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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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안나 [human] 쪽지 캡슐

2002-07-26 ㅣ No.28

 

● 이창분의 수도원을 찾아

 

 

남을 위한 삶의 묵상…수원 ’예수회’

 

 

땅을 기는 애벌레로 짧은 생을 마치지 않도록 나비처럼 탈바꿈되어 높은 곳 자유롭게 날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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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삶을 본받아 이웃의 고통에 동참하고 더 큰 사랑으로 살 수 있게 깨달음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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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의 경수 산업도로에서 수도원으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한 채 몇 번인가 왔던 길을 되돌곤 했다. 지나친 것일까, 덜 온 것일까. 때론 그렇게 목적지를 눈앞에 두고도 안개 속의 미아처럼 헤매며 제자리를 맴돌곤 하는 것이 내가 살아가고 있는 모습인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면 누군가가 방향을 제시해 주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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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께 전화를 드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한 후 다시 한번 유턴을 하여 건너편 사잇길로 접어들었다. 세 개의 작은 터널을 지났다. 빛과 어둠의 교차가 되풀이 된다. 마지막 터널의 긴 어둠 끝, 둥글고 환한 빛 가운데 한 사람의 모습이 느낌표처럼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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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원 입구였고 최시영(요셉) 신부님께서 마중 나와 계셨다. 사소한 사건이나 경험이 깊은 의미를 담은 상징처럼 다가오는 경우가 내겐 종종 있는데 수도원에 도착하기까지의 짧은 시간이 그러했다. 길을 헤매다 만난 빛과 어둠의 교차, 그리고 마지막 터널 끝의 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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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과 함께 수도원 2층 성당에서 이 곳을 방문하게 된 것에 감사 드리며 짧은 기도를 바쳤다. 텅 빈 성당 안에 한 사람의 젊은 수련자가 무릎을 꿇고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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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잠깐이었지만 기도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랑에의 열망’’고독한 내적 투쟁’과도 같은 면모들이 파장처럼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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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자들을 위한 며칠간의 피정을 마치고 다음 피정을 준비하기 위해 하루를 쉬고 있는 신부님의 휴식을 빼앗는 것 같아 못내 죄송스러웠지만 신부님은 시종일관 편안한 분위기로 수도원과 피정의 집을 안내해 주시며 예수회에 관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들려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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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회를 알기 위해서는 이냐시오 로욜라 성인의 발자취와 그의 영성을 되짚어 보아야만 한다. 이냐시오는 1491년 스페인의 바스크 귀족 가문의 열세 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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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기 양양한 기사였으며 스페인 국왕에 봉사하는 군인이었는데 1521년 프랑스군의 성채 포격에서 중상을 입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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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명예와 영광을 위해선 목숨까지도 걸 수 있는 사람이었던 그는 병상에서 접하게 된 ’그리스도전’과 ’성인 열전’ 두 권의 책을 읽고 명상하는 가운데 회심이 시작되며 속죄하는 순례자가 되어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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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순례 도중 만레사의 동굴에서 수개월을 보내며 까르도넬 강가에서 그의 생애에 가장 중요한 영적 체험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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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체험에 대해 성인 스스로도 자세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예순 두해 전 생애를 두고 받은 은혜와 그가 알고 있는 많은 사실들을 모은다 해도 그 순간에 받은 것만큼은 되지 않을 것이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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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세상과 인간과 하느님의 본질에 대한 초월적인 통찰과 비추임이었으리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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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대 격변기인 16세기 인문 개혁과 종교 개혁 시대의 도전 앞에서 초기 회원들에 의해 1540년 예수회가 창설 되었으며 교회 쇄신, 사회 봉사, 영적 지도를 통해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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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1백여개 국에 2만3천여명의 회원을 둔 예수회는 단일 수도회로는 규모가 가장 큰 수도회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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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테오리치의 ’천주실의’와 아담 샬 같은 예수회원들의 저술은 한국 천주교의 자생적인 신앙 수용과 발전에 소중한 밑거름이 되었으며 예수회는 한국 교회와 사회의 지성 교육을 위해 1955년 한국에 진출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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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현 시대의 징표들 -물질주의, 절대적 가치관의 붕괴, 남북 이데올로기 대립-을 보면서 이 같은 상황에서 신앙의 봉사를 위해 효과적으로 대처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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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냐시오 성인이 자신의 영적 여정을 토대로 저술한 ’영신 수련’에 따라 자아의 발견과 신앙의 성장을 돕고 있으며, 예수회의 교육 목적인 ’남을 위한 삶’을 살아갈 인격과 지성을 겸비한 젊은이들을 길러내기 위해 서강 대학교와 수도자 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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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신부들은 빈민들이나 철거민과 함께 혹은 농촌 사회와 주한 외국인 노동자들을 위해서 그들 가운데서 그들의 고통에 동참하며 사목하고 있으며 캄보디아.동티모르.중국 등의 해외 선교에도 투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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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중의 관상가로 투철한 삶을 살았던 이냐시오 성인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그들에겐 기도와 관상이 활동의 원동력이 되며 그들의 수도 생활은 목적이 확고한 활동 생활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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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교산 자락에 자리 잡은 피정의 집엔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한 여름의 녹음이 쏟아져 들어올 듯 일렁이고 있으며 피정의 집 옆으론 푸른 그늘이 시원하게 드리워진 산책로가 깊숙한 내면의 여정처럼 산을 향해 멀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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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 길을 걸으며 묵상할 것이다. 그리스도를 더욱 철저히 본받고 이웃 영혼들에게 봉헌하는 삶을 위해서, 그리고 모든 사람들과 상황들 속에 깃들어 있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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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떠나기 전 피정의 집 성당에 들러 다시 마음으로 기도를 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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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을 기는 애벌레로 이 짧은 생을 마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비처럼 탈바꿈되어 좀 더 높은 곳을 자유롭게 날 수 있도록, 그래서 더 큰사랑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내게도 회심을 향한 깨달음의 빛을 비추어 주시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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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분 글·그림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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