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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4.2 신부님의 푸념(부활은 건너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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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훈 [4rang2] 쪽지 캡슐

2013-04-03 ㅣ No.901

부활은 건너갑니다

 

그 유명한 엠마오 복음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한때 예수님으로 인해 잘 나가던 제자들,
예수님과 함께 하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제자들이었는데,
다들 이제 뭐해먹고 살아야 되나?’하며 낙담해 있었습니다.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엠마오라는 마을로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
말마디 그대로 잘 나가다가 미끄러져 낙향하고 있었습니다.
믿었던 예수님, 그래서 자신들의 미래를 걸었던 예수님,
마지막 보루이자 희망이었던 예수님께서 저리도 맥없이 돌아가셨습니다.

 

귀향길에 나선 제자들의 발걸음은 무거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깨에 힘이 완전히 빠졌습니다. 터덜터덜 맥없이 걷고 있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 표현에 따르면 침통한 표정으로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런 두 제자 사이로 예수님께서 슬쩍 끼어드십니다.
그리고 자상하게 인생 상담을 시작하십니다.
갑작스레 끼어드신 예수님의 출현에 두 제자는 꽤나 당혹스러웠습니다.
물론 아직 그분이 예수님이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너무나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두 사람 사이에 들어오신 예수님이셨기에
두 제자는 별 거부감 없이 스스로를 무장해제 시킵니다
.
일말의 경계심도 의구심도 없이 오랜 친구처럼,
편안한 스승처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최대한 거부감이나 부작용이 없도록
그들에게 당신 자신을 열어 보이십니다
.

 

이윽고 날이 저물어 어느 집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신 예수님께서는
성목요일 만찬석상에서 하신 똑같은 모습으로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
그러자 그제야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시는 예수님,
우리의 귀향길에 함께 걸으시는 예수님,
우리의 인생길에 슬그머니 끼어드시는 예수님,
우리 구차스런 살림살이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시는 예수님,
 
참으로 은혜롭고 마음 따스한 풍경이 아닐 수 없습니다.

 

상심하고 낙담한 두 제자들 사이로 끼어드심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건너가게 만드십니다
. 무지에서 깨달음에로,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흐릿함에서 명료함으로, 오류에서 진리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죽음의 땅에서 생명의 땅으로 건너가게 만드십니다.

 

우리에게도 보다 확실한 부활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 한 가지 있는데
, 그것은 바로 건너감입니다.
건너가기 위해 또한 필요한 작업이 한 가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걷은 인생 여정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어느새 끼어드십니다.
그리고 적극 개입하십니다. 그리고 초대하십니다.
보다 큰 사랑에로, 보다 깊은 깨달음에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매일의 삶이 부담이요 스트레스가 아니라 매순간이 은총이요
꽃봉오리라는 것을 깨닫는 것
, 그것이 바로 부활을 통해 가능합니다.
내 형제와 이웃이 고통과 십자가가 아니라
날 성장시키는 은총의 선물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
,
그것은 바로 부활을 통해 가능합니다.
수도원의 높은 담이 나를 가두는 장벽이 아니라 내게 날개를 달아주고
나에게 참 해방을 주는 성벽임을 깨닫는 것
, 그것은 바로 부활을 통해 가능합니다.

 

부활은 건너갑니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재물을 섬기는 삶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

이기적인 사람에서 베푸는 사람으로,

미워하고 증오하는 마음에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건너갑니다.

이 건너감의 끝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 부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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