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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필독] 그리스도교 성경 내용인 삼위일체 교의의 정식화가 진행되어야 하였던 필요성들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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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190.18.*]

2024-05-26 ㅣ No.3403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게시자 주: 본글은 다음의 주소에 있는, 나해 삼위일체 대축일 전례성경 공부/묵상 동영상 교안에서 안내되고 있는 졸고들에 이어지는 글이기도 합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성경_본문에_이미_계시되어_있는_한_개의_계시_진리인_삼위일체_교의의_정식화의_필요성에_대하여_2218.htm <----- 필청/필독 권고

 

1-1. 왜냐하면, 예수님이 강생하신 하느님이심 그리고 예수님께서 "성령"이라고 부르신 구약 성경의 "하느님의 영"(창세 1,2)이 또한 하느님이심을, 따라서

 

(i) 성부 하느님,

(ii) 하느님이신 예수님, 그리고

(iii) 성령 하느님,

 

이들 각각을, 예수님의 구속(Redemption) 위업의 결과들로서, 예수님의 사도들을 포함하는, 당시의 유다인들이 확실하게 인지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왜냐하면 "신성적 통치권/주권"(divine sovereignty)을 가진 분은 "한분이신 하느님" 단 한 분 뿐이기 때문에, 삼위일체 교의의 정식화가 진행되어야 하였던 필요성이, 아무리 늦더라도, 그리스도교 첫 순교자인 스테파노의 순교 시점인 기원후 36년 경[특히, 사도행전 7,55-58 필독 권고]에 이르면, 매우 심각하게 대두되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시에 스테파노가 자신의 증언 때문에 돌에 맞아 죽은 사건바로 이 심각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1-2. 그런데, 위의 제1-1항에서 말씀드린 바가 왜 중요한가 하면, 그 첫 번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즉, 성경 본문에 포함된 삼위일체 교의의 정식화가 시작된 시점은 그리스도교를 로마 제국의 국교로 삼기 위한 그 첫 번째 조치였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 선포(기원후 313년) 직후로 볼 수 있는데, 따라서 바로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약 300년간의 오랜 기간에 걸쳐, 왜냐하면 이 시점에 이르기까지 삼위일체 교의가 정식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에, 정식화된 삼위일체 교의가 온갖 이단들로부터 그리스도교를 전혀 지켜주지 못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티나 지역의 히브리 문화권을 넘어서, 흐르는 세월 속에서, 점차 널리 퍼져 나가 드디어 로마 제국의 경신(religion)으로 자리잡은 역사적 사실을 볼 때에, 지상에서의 그리스도교의 생명력 자체가 정식화된 삼위일체 교의에 의존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두 번째 이유는, 정식화된 삼위일체 교의는, 그동안의 교회의 역사 안에서 살펴볼 때에, 이런 저런 종류의 이단자들의 주장들을 효과적으로 규명하는 도구로서의 역할을 주로 해 왔다는 생각이며, 그러나 평소의 대부분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살아있는 동안에 예수님의 계명들에, 예수님의 새 계명에, 순종하는 신앙 생활을 충실하게 하게 하는 데에 많은 도움을 주는 그 무엇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바로 이 지적은,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과 서간문들에 기록된 바들에서 상당히 자세하게 그리고 상당히 분명하게 찾아볼 수 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따라서, 예를 들어, 매그로 주교와 장 바쎄 신부 등,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선교사 신부님들 보다 한참 더 늦은 시기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프랑스 파리 외방 선교회 소속의 신부들이,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이 의방(依倣)하였던 성 바오로가 지중해 지역의 선교/전교/복음화 및 토착화 시에 적용하였던 적응주의 선교 방식의 수용 대신에, 그 대안으로서 채택하였던 얀센주의적 선교 방식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으로 보이는, 매우 관념적이고 개념적인 따라서 지상의 여러 문화권 안에서의 현실 생활과 많이 동떨어진, 삼위일체 교의를 선교/전교/복음화, 더 나아가, 토착화의 도구/수단으로 사용하고자 시도하는 행위는, 예를 들어,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과 서간문들에 기록된 바들과도 모순적이고 하여, 가히 어불성설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을 것입니다.

 

1-3. 그러므로, 삼위일체 교의가 정식화되기 이전의 시기에 살았던 그리스도인들이 무엇에 근거하여 자신의 자녀들과 이웃들을 대상으로 하여, 그리스도교의 선교/전교/복음화 활동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왔는지를 이해하기 위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이 많이 노력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관점에서,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이를 위한 그 첫 번째 주제 그리고 어쩌면 향후의 시대에도 또한 그리스도교의 선교/전교/복음화 그리고 토착화를 위한 그 마지막 주제이라고 필자가 보고 있는 바인, '그리스도 찬미가'로 알려진, 필리피서 2,6-11의 중요성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2.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원후 1세기 당시의 유다인들이 예수님이 하느님이심을 알아차리게 된 성경 근거들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예수님이_하느님이심을_다수의_유다인들이_수용하게_된_것은_예수님의_구속_위업의_한_결과이다_3310.htm <----- 필독 권고

 

2-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요한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성신"(the Holy Ghost), 즉, 요즈음 번역 표현으로, "성령"(the Holy Spirit)이라고 말씀하신, 구약 성경의 "하느님의 영"(the Spirit)(창세 1,2)이 하느님이심을 기원후 1세기 당시의 유다인들이 알아차리게 된 성경 근거들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하느님의_영(창세1_2)이_하느님이심을_다수의_유다인들이_수용하게_된_것은_예수님의_구속_위업의_한_결과이다_2017.htm <----- 필독 권고

 

게사자 주 2-2: 바로 위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the Holy Spirit)이 왜 하느님이신지을 성경 본문에 근거하여 증명하는 필자의 졸고를 또한 읽을 수 있습니다. 특히,  "성령"이 왜 하느님이신지을 증명하는 논문들을 읽은 적이 없는 분들의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이상, 게시자 주 2-2 끝)

 

3.

3-1.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령"/"성신"이 왜 "성부"와 "성자" 사이의 매우 친밀한 사랑의 관계, 즉, "하느님의 신성적 사랑"(God's divine love)인지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성부와_성자_사이에_계시는_분은_신성적_사랑(divine_love)_즉_성령이시다_2017.htm <----- 또한 필독 권고

 

3-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있는 결론 등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필독을 권고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왜_2위_4위_혹은_5위도_아니고_다만_성부_성자_성령_3위의_하느님일까_2017.htm <----- 또한 필독 권고

 

작성 중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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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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