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파동성당 게시판

전례:성당 중심은 감실?(2)<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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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국 [petertel] 쪽지 캡슐

2001-01-22 ㅣ No.397

감실에 관한 간단한 역사

제대와 감실 사이에 이러한 쓸데없는 오해가 생겨난 까닭을 알려면 먼저 감실이 성당을 어떻게 점령(?)해 왔는지 그 역사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회가 생겨난 아주 이른 때부터 미사중에 축성한 빵을 보존하는 관습이 존재했습니다.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힌 이들이나 병에 걸려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이들에게 성체를 영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론 이때는 지금처럼 성당이 있던 것은 아니고 예배드리기에 적당한 가정집에서 미사를 거행하였기 때문에 성당 안에 성체를 보존하는 장소란 애당초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사제의 집에 성체를 보관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종교 자유를 누리게 됨에 따라 성당이 건축되었으나 성체를 보관하는 장소는 여전히 성당 안에서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7~8세기의 문헌에는 성체가 제의방에 보관되어 있음이 나타납니다. 미사중에 축성한 빵을 쉽게 보존하고 미사 밖에서 사용될 성체를 보관하기 위해서 아마도 제의방이 가장 적합한 장소였던가 봅니다.

 

그러나 중세에 접어들면서 신자들의 신심에 이상한 현상이 발생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천사주의" 또는 "윤리적 엄격주의"라 불릴 수 있는 것으로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죄인일 수밖에 없고 따라서 죄인의 몸으로 어찌 성체를 모시겠는가 하는 생각이 널리 퍼져서 미사중에 영성체를 안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미사는 라틴어로 드려졌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로 드려지는 미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습니다. 그러니 성찬례 자체보다는 대중 신심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또한 미사 중에 축성된 빵은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더욱 구체화되면서, 성체 안에 예수님이 현존해 계시다는, 성체는 그 자체로 예수님의 몸이라는 믿음이 신자들의 마음을 잡아당겼습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영성체는 하지 않고 대신 성체를 "바라보는" 영광을 갖고자 열망했습니다. 이러한 신자들의 열망은 결국 성찬 전례 때 사제가 빵과 포도주의 축성 후 신자들이 볼 수 있게 받들어 올리는 예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또한 예수님이신 성체를 성당의 가장 고귀한 자리에 모시고 싶어하여 그때까지 성당의 중심 자리에 놓여 있던 제대 위에 감실을 만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감실은 신자들의 열망에 부응하여 제대를 물리치고 성당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감실에는 화려한 장식이 따름은 물론, 예수님이 계심을 알리기 위해 언제나 빨간 등을 켜두는 관행도 나오게 되었습니다.(계속)

 

전문을 보실분은 왜관수도원 김인영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찾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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