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죽음을 기다리는 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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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mariaksy] 쪽지 캡슐

1999-10-25 ㅣ No.248

캘커타에 가면 마더 데레사가 세운 "죽음을 기다리는 집" 이 있습니다. 더 이상 갈곳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떠돌다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머무는 곳.

 

제가 그곳을 방문한  건 인도 여행을 마치기 하루 전 날이었습니다.

한국인 친구 2명과 그곳을 가자 말자로  한참 입씨름을 했는데 사실은 가지 않기로 했었죠. 호기심으로 그곳을 한 번 방문하기엔 그곳의 환자나 자원봉사자들에게 너무 미안했거든요..

그 대신 우린 그 옆에 있는 깔리 신전(Kali Temple)에 가보기로 했습니다. 아직도 원시적인 피의 제물이 바쳐지는 곳(사람잡는 곳이 아님--양을 잡는 다나..)

 

전철을 타고 칼리갓트역으로 갔습니다.

전철 안에서 영국에서 온 할머니 한 분을 만났습니다.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 주신다고 해서 줄래줄래 따라 가보니 할머닌 우리를 칼리 신전이 아닌 "죽음을 ...집"으로데리고갔습니다.

할머닌 (간호사를 은퇴하고 남은 여생을 자원봉사로 지내시는 분이었습니다.) 우리에게 하루라도 좋으니 봉사활동을 해 보라고 하셨습니다..

 

안에 들어 가보니  남자가 50명 여자가 50명씩 간이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대부분 죽어

가는 사람이었지만 치매 환자도 많았습니다.  생각보다 사람들의 모습은 생과 사를 초월한

듯  덤덤했습니다. 그들 옆에는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 밥을 먹이고 기저

귀를 갈아주고, 손을 잡고 못 알아 듣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다음에 봉사자들이 하는 일은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기저귀를  빨고 널고, 다시 식사를 준비

하고 ....   저도 처음 본 친구에게 인사하고 옆에서 같이 일 했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누군가 명령을 하진 않지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묵묵히

일을 했습니다.

 

한참을 일을 하고 있는데 수녀님 한 분이 저를 찾았습니다. 가보니 한국에서 관광객이 왔다

고 저에게 안내를 하라고 했습니다.(세상에) 스님 몇 분과 아줌마 아저씨 30명이 저를 둘러

싸더니 좋은 일 한다고 칭찬을 하셨습니다.."으악" 저는 외마디를 지르고 도망쳤습니다..

일이 끝나자 미션에서 제공한 인도차인 짜이 쿠키를 먹으며 각지에서 온 젊은이들과 얘기를 나눴습니다..

어떤 친구는 몇 주, 어떤 친구는 몇 개월간을 아무 조건 없이 자기 돈 써가면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누가 붙잡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곳에서 만나 일 하고 헤어지고..

 

"죽음을..집"을 나오면서 하루의 경험이지만 다녀오길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어가면서도 묵묵히 삶을 받아들이는 아무 것도 가지지 않은 사람들과 죽어 가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젊은 날을 봉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다 하나로 보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의 모습은 다 틀려도  종착역은  같다는 걸 알려 주시

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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