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양2동성당 게시판

아픈 사랑이야기-1-

인쇄

오성범 [ddong] 쪽지 캡슐

2001-01-14 ㅣ No.4153

-1-

 

창밖엔 겨울비가 내리고 있었다

 

벌써 또다시 겨울이 찾아왔다는 사실이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지만,달력은 이미 계절이

겨울에 들어섰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결코 이르지 않은 와인색 코트깃을 여미면서,창밖을 내다봤다

횡단보도 건너편에선 이쪽을 바라보며 추운듯 두 손바닥을 마주비비는 사람이 보인다

이쪽에선 그가 보이지만,그쪽에선 이쪽이 보이지 않았다

높은 창턱 탓이리라

 

혼자 술마시는 취미는 없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어서 약속시간보다 일찍나와 혼자

술을 마시고 있었다

혼자 앉아 있은지 두시간이 다 되어간다

아마도 그가 들어와서는 맥주병을 보면 잔소릴 하겠지만,그건 별 상관 없었다

이미 내가 마신 빈병들은 모두 치웠으니,그는 이것 한병이 다라고 하면 아주 간단히 믿을것이다

아니,어쩌면 이젠 더이상 그의 눈치를 볼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그가,내가 말하는 이별의 이유에 동의하기만 하면 말이다

문제는,그가 그것에 간단히 동의하지 않을것임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지만 난 그를

설득시킬 수 있다

 

더이상은 아무도 아파선 안된다

내 존재는 어쩌면,사회악인지도 모른다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움직이는것이 보였다

이제 그가 곧 들어오겠지

원체 뛰는것을 잘 하지 않는 그이기 때문에 조금 걸리겠지만,횡단보도에서 여기까지

오는데는 5분이면 충분하다

 

-그걸로 족할까?

-그에게 이별을 준비할 시간이 5분뿐이어도 괜찮을까?

 

아직까지 난 그의 뜻을 거스른 일이 없었는데,지금은 그의 뜻도 관계없이 내가 결론을 내리고,

내가 행동을 하려 하고 있으니,어쩌면 장난감 인형이 느닷없이 자의로 움직여 주인을 후려치는

꼴은 아닐까

 

 

 

 

 

"언제까지고 널 아프게 할거고,그만큼 행복하게 만들겠어!"

그런 말을 들었을 때,난 황당해서 웃었더랬지..

그만큼의 행복을 준다고 해도,아픔인것을 내가 원할까,과연..

하지만 이젠 그 말뜻을 알았다 행복이 크면,그 전의 더큰 아픔도 가려지게 마련이었다

참으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미 그 사실을 알기에 그런 말을 하고,행동에 옮긴것이었겠지

 

"아프지 않게,행복하게 해줄게"

그 말을 한 사람은 실수를 했다

자그마한 행복을 아무리 안겨줘도,마음아플 일이 생기면,그것은 모두 잊혀지는 법 그리고

남는것은 아픔과 지쳐버린 가슴뿐인법

 

 

 

 

 

"언제왔어? 일찍 나왔나보네?"

마치 배경음악이라도 되는듯,전혜린의 GoodBye가 나오고,그는 천진할 만큼 밝은 얼굴로

웃었다

맥주병을 보더니,미간을 약간 찌푸리긴 했지만,아직 밝음이 사라지진 않은 상태다

 

언제나처럼 쓸데없는 일상얘기를 그는 재미있는듯 주워섬기고,난 그저 가만 듣고 있다

언제나 익숙한 우리둘의 만남..

 

시간을 너무 끌어도 좋지 않다

이별을 결정했으니,이젠 말해버리는것이 낫다

 

"우리,그만 두자"

 

갑자기 카페안이 조용해진듯 한 느낌은 나만의 것일까

그는 당황한듯 하더니,억지로 웃으려고 애쓰며 날 바라봤다 무슨 말이냐는 표정이다

나는,그가 묻는다고 해도,대답할 말이 없다

내게 아픔을 주는 사람을 찾아 가기 위해 헤어지자고 했다고 말을 할까 뭐라고 말을 할까

 

내가 장난하는 것이 아니란것을 느낀 그의 얼굴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마음이 아픈것은 연민일 뿐인다 난,내 마음은,더이상 그의 연인이 아니다 이제 난

아무곳도 갈 곳이 없더라도 만족한다

바로 어제,날 아프게 하겠다는 사람과도 이별을 했다

그는,내가 말하는 이별을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였다

더욱 날 아프게 하겠다는 듯,그렇게 날 괴롭히고 말겠다는 듯

 

누구도 힘들지 않게 하기위해 난 이별을 택했다

모든 이들과의 이별..

 



34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