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화동성당 게시판

[3/20]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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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칠년 [Lilly] 쪽지 캡슐

2000-03-20 ㅣ No.1980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

 

 

 

마태오 1, 16. 18 - 21. 24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고 마리아에게서 예수가 나셨는데 이분을 그리스도라고 부른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태어나신 경위는 이러한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요셉과 약혼을 하고 같이 살기 전에 잉태한 것이 드러났다.  그 잉태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요셉이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에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이어라.  그의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예수는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것이다." 하고 일러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의 천사가 일러준 대로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였다.

 

 

 

  Jacob was the father of Joseph the husband of Mary; of her was born Jesus who is callde Christ.

 

  This is how Jesus Christ came to be born. His mother Mary was betrothed to Joseph; but before they came to live together she was found to with child through the Holy Spirit. Her husband Joseph, being a man of honour and wanting to spare the publicity, decided to divorce her informally. He had made up his mind to do this when the angel of the Lord appeared to him in a dream and said, ’Joseph son of David, do not be afraid to take Mary home as your wife, because she has comceived what is in her by the Holy Spirit. She will give birth to a son and you must name him Jesus, because he is the one who is to save his people from their sins.’

 

  When Joseph woke up he did what the angel of the Lord had told him to do: he took his wife to his home.

 

 

 

 

 

◈ 꿈은 하나의 언어이다.  사람은 꿈이라는 언어를 통하여 풀리지 않는 무의식층을 설명하거나 해체한다.  요셉은 꿈을 통하여 ’정의’와 사랑’이라는 긴장관계를 해소시켰다.  마리아와 공개적으로 파혼하는 것은 율법을 지키는 정의로운 처사일 수 있었다.  그러나 요셉이 남모르게 파혼하는 것은 마리아에 대한 연민에 찬 사랑 때문이었다.  요셉은 정의와 사랑이라는 대립 감정 때문에 고뇌했을 것이다.  인간의 자기 소외를 초래한 서구의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포스트 모더니즘 중의 하나인 해체주의는, 정의와 사랑이라는 개념들을 인간들이 대립된 내용으로 고정시켰기 때문에 늘 갈등과 충돌을 빚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요셉은 자신이 받은 전통적인 교육이나 관습에 따른다면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렇지만 자신 때무에 한 여자가 불행한 최후를 맞는 것을 바라지도 않았다.  요셉은 어느 한 편에도 설 수 없었다.

 

  성서에서 꿈은 하느님의 계시 언어이다.  구조주의적 사고방식에 빠져 고뇌하는 요셉에게 하느님은 꿈을 통하여 개입하신다.  하느님의 개입은 정의나 사랑 중의 양자택일이 아니다.  ’간음한 여자’를 놓고 예수께 "당신은 정의의 편이냐 사랑의 편이냐?"라고 묻던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을 무색하게 만드신 경우도 마찬가지다.  요셉도 꿈을 통하여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뜻에 따라 마리아를 포용함으로써 율법(정의)이냐 사랑이냐 하는 대립과 갈등을 해소시켰다.  그 포용은 마리아에 대한 사랑 이전에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사랑에 바탕을 둔 순종에서 나온 것이다. 하느님께 대한 순종은 양자 대립으로 치닫는 상황을 하나로 포용할 수 있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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