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덕동성당 게시판

처음과 같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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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원 [jin1004] 쪽지 캡슐

2000-01-04 ㅣ No.1468


내 친구 현수가 제대를 했습니다.

 

 

 

어제 방청소를 하다보니 먼지쌓인 편지들이 돌아다니더군요. 책상도 치우고 쓰레기도 버리고 하다 보니깐 구석구석에 박혀 있던 편지와 엽서, 카드들이 산더미처럼 쌓였습니다.

 

내가 초등학교 때부터 받았던 편지와 카드가 몇백장이나 되더군요...

 

 

난 평소에 다른 사람의 관심을 별로 받지 못하고, 외롭게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렇게 날 위해 편지를 써준 사람들이 많다니 너무 놀랍고 기뻤습니다... 근데 중요한 건 그 사실을 오늘에서야 깨닫다니... 바보야...

 

 

난 대학을 내가 열심히 해서 간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성탄제 때 연극을 하거나 풍물을 할 때도, 혹은 앞에서 사회를 볼 때도 내가 잘나서 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는 사실을, 그 사실을, 그 진실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후후... 그동안 다른 사람이 나를 보고서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지... 부끄럽더군요. 그건 나를 위한 기도와 격려의 편지, 걱정의 카드, 감사의 선물, 겸손한 권유 등이 나를 그렇게 할 수 있게 만든 것이었습니다!!!

 

나를 위한 배려라는 사실을 왜 오늘에서야 알게 되었는지... 그걸 좀 더 일찍 알았다면, 진짜 착하고 겸손하고 조용히 살았을텐데...

 

 

 

그런 편지들 중에 현수의 편지도 있었습니다.

 

 

내가 남자에게서 처음으로 받은 편지가 바로 현수의 편지였습니다. 처음엔 좀 이상했지만-원래 편지라는 걸 자주 받아보질 못한 상태에서 남자끼리 주고 받으려니까-, 그래도 그냥 계속 주고 받게 되었습니다...

 

사실 나는 좀 무관심한 편이어서 답장을 자주 하지는 못한 거 같습니다. 그래도 현수가 주는 편지 이외에 다른 편지들이 간간히 나를 찾았고, 그래서 모인 편지가 어제 세어보니 무지무지 많더군요... 그 중엔 내가 이미 까맣게 잊어버린 아이의 글도, 나도 모르는 나의 장래희망을 부러워하던 후배의 편지도-나의 어렸을 적 장래희망이 신부님하고 작가라는 사실을 어제 처음 알았습니다-, 사랑(?)을 속삭이던 정말로 순수한 편지도 있었습니다... 선배의 편지 중엔 단연 준구형의 편지가 제일 많더군요...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뭘 하고 사는지... 옛날엔 그렇게 좋다고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주고 받았는데, 지금은 그 때의 모든 일들을 다 잊은 듯 합니다. 우선 나부터 말입니다... 진작 알았다면 진짜로 잘 대해 주었을텐데... 이미 너무나 늦어버렸어요...

 

 

 

현수의 밀레니엄 제대를 일단 축하하며, 이젠 내가 군대에 가지만, 다시 처음 중학교 1학년 때의 마음으로 우정을 나눌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글을 써봤습니다. 그리고 나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도 처음과 같은 마음으로 다시 만나기를!!! 다시 시작해요... 너무 늦었다는 걸 알지만, 아직 우린 젊으니까... 할 수 있어요!

 

그런 작은 바램에서 이렇게 글을 써봤습니다...

 

그럼... 바이바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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