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3

인쇄

임은수 [suya21] 쪽지 캡슐

2002-03-18 ㅣ No.2545

  View Articles

 

 

   안개 낀 날의 삽화

 

 

 

 

 

                           

아이가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 얘야, 안개가 끼는 날은 날이 덥단다. "

넌즈시 일러주시는 어머니 말씀을 책가방 위에 얹어 놓고

부지런히 들길을 걸어 갑니다.

그 길을 지나면 넓다란 신작로가 나옵니다.

아이는 한눈 한 번 팔지 않고 제 앞의 길만 따라 가지만 왠일인지

오늘은 진작 나타나야 할 신작로가 나오질 않습니다.

가도 가도 보이질 않습니다.

안개만이, 두터운 안개만이 점점 더 그 세력을 더하며

앞으로 뒤로 아이를 휘감습니다.

이때 쯤이면 멀리서 기차소리가 들려야 하는데

기차소리도 들리지 않습니다.

’학교에 늦으면 안되는데...... ’

아이는 마음이 급합니다.

타박타박 아이가 뛰기 시작합니다.

보이는 건 무섭게 덮쳐오는 안개와

아이 발밑으로 이어지는 작은 길 뿐입니다.

길을 따라 길을 따라 아이는 뛰고 있습니다.

길만 내려다 보고 뛰어 갑니다.

두 뺨이 화끈거리고 등에서 땀이 나기 시작합니다.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이 주루룩 흘러 내립니다.

어느새 아이의 옷이 안개와 땀에 흥건히 젖어 버렸습니다.

아이에겐 이제 아무런 생각도 없습니다.

그냥 계속 뛰어서 앞으로 내닫기만 할 뿐입니다.

그때 시커먼 것이 불쑥 나타나서 아이의 팔을 잡아 챕니다.

아이는, 숨이, 콱, 막혀서,

천천히 아래서 위를 향하여 눈길을 돌립니다.

"으아앙 ! "

갑자기 아이가 천둥같은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이 녀석아! 여기가 어딘줄 알고 뛰어드냐 ! 뛰어들길....."

삽자루를 팽개치고 아이를 덥석 들쳐안은 아이의 옆집 아저씨가 혀를 차며 중얼거립니다.

’ 네가 아무래도 안개에 홀린 모양이구나. 쯔쯧쯧..’

그곳은 아이의 키를 웃도는 물이 흐르는 수로 옆이었습니다.

그 수로 둑에서 방금 핀 버들개지가 기지개 켜는 것을 그들은 볼 수가 없습니다.

무섭도록 짙게 내리는 안개 속이었으니까요.

 

당신도 안개 속에서 헤메고 있지는 않으십니까?

 

suya.

 



29 0

추천 반대(0)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