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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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수 [suya21] 쪽지 캡슐

2002-03-26 ㅣ No.2557

봄날의 상념

 

--고백 4

 

 

 

 

 

 

 

너무 맑은 하늘을 보면 심술이 나서

막 어깃장을 놓고 싶어질 때가 있습니다.

말하자면 눈이 부셔야 할 이 삼월 막바지에

벌써부터 그에 대해 조금씩 멀미가 나기 시작한 것이지요.

아마 너무 일찍부터 그를 기다려 왔던 까닭인가 싶습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까지 유유히

장악하고 있음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는 지금,

활기 넘치는 그의 기운 한복판에 서서 왜 나는

그에게 등을 대고 모른체 하고 싶은 것일까요.

그가 나만 향해 서 있지 않듯이, 나 또한 그만 향해

서 있을 수 없는 안타까움이 차라리 그를 멀리하고

싶게 만드는 것인지도 모를 일이지요.

돌이켜보면 설만 지나면 금방이라도 그가 찾아 올듯이

그리도 가슴 설레며 조급증을 냈던가 모르겠습니다.

잡을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분명히 살아 움직이는,

그 거대한 힘에 대한 동경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여기저기 잠복해 있던 방해꾼들을

얼굴 한 번 붉히지 않고 멋지게 제압해 나가는 그의

감춰진 슬기를 따르고 싶었기 때문일까요.

일일이 찾아내어 되풀이 하지 않아도 그의 덕목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햇살 비켜간 뒤안에서는 아직도 옷깃을 단단히 여며야 하는

손시림이 있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을까요

그래서 햇살과 폭우와 광풍까지 한꺼 번에 데려와,

가는 길이 사람의 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가르쳐 주는가 봅니다.

그가 나누고 싶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가슴을 대신해

짐짓 고개를 돌리고 그가 좀더 가까이 다가 오기를 기다립니다.

돌아서서, 이대로 돌아서서 조금만 더 그를 기다려 보려구요.

그가 내 앞에 와 있다 해도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

봄이라기엔 아직 마음이 추운걸요.

 

 su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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