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암동성당 게시판

그리스도왕 대축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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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 [michaelhun] 쪽지 캡슐

1998-11-23 ㅣ No.70

그리스도왕 대축일(다해, 1998.11.22)

                                                                                                                         제1독서 : 2사무 5, 1 - 3

                                                    제2독서 : 골로 1, 12 - 20

                                                    복   음 : 루가 23, 35 - 43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안녕하셨습니까?  수능시험이 있어서 인지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모두들 어쩔 줄 모르게 지낸 한 주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첫 눈이 내리고 하여 낭만적인 시간이기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오늘은 전례력의 마지막 주일로써 그리스도왕 대축일 입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마지막'이라는 말을 대할 때 왠지 모르게 아쉬움과 부끄러운 느낌을 갖게 됩니다.  그러나 하루의 마침이 내일을 위한 새로운 시작을 뜻하며 하나의 완성은 새로운 시작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전례상 마지막이란 언제나 새로운 시작 즉, 세상에서의 삶은 영원한 삶을 향한 새로운 시작과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옛날 영국 왕이 많은 군대를 이끌고 스코틀랜드를 공격했을 때의 일입니다.  로버트라는 스코틀랜드 왕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군대를 이끌고 영국군에 맞서 용감하게 대항했지만, 적군이 워낙 강했기에 번번이 패하고 말았습니다.  수차례 치른 전투에서 그는 여섯 번이나 패하고, 너무 실망한 나머지 숲 속 외딴 곳에 있는 낡은 오두막에 들어가 혼자 지내게 되었습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오두막에 누워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듣고 있던 그는 몹시 괴로웠습니다.  몸도 많이 지친데다가 이젠 희망마저 사라졌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 생각에 잠겨 있던 그는 천장 위에서 막 집을 지으려 하는 거미 한 마리를 발견하였습니다.  거미는 매우 조심스럽게 거미줄을 만들기 시작했는데, 이쪽 기둥에서 저쪽 기둥으로 줄을 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거미줄은 잘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문득 그는 거미가 자신과 같은 처지로 생각되어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쯧쯧, 너도 실패하는구나."

  그러나 거미는 포기하지 않고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몇 번이나 다시 시도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버트는 자신의 고민도 잊은 채 거미에 열중하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거미줄이 단단하게 저쪽 기둥에 걸쳐졌을 때 문득 그의 머리 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주먹을 꼭 쥐었습니다.  "그래, 나도 다시 시도해 보는 거야."  뿔뿔이 흩어져 있던 부하를 불러모은 그는 낙심해 있는 그들에게 자신의 계획과 의지를 이야기한 뒤 용기를 북돋아 주었습니다.

얼마 뒤 다시 모인 그의 군대는 또 한 차례 벌어진 영국군과의 치열한 전투에서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결국 그들은 일곱 번째 전투를 큰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하느님의 정의를 믿고 있던 유다인들은 하느님의 정의가 이 세상의 삶뿐 아니라 죽은 다음에도 드러난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정의는 세상의 종말에 완전히 실현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는 원수들을 징벌하기 위해 왕이 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기다리던 왕을 예수님이라고 생각하여 환호하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생각하던 정치적이고 강한 왕이 아니기에 군중은 점차 예수님께 대한  적대감이 커지고 결국 십자가형에 처하라고 소리치는 폭도들로 변모하였습니다.  십자가상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예수님의 모습은 유다인들에게 크나큰 실망이었고 좌절이었습니다.  이들은 이제 예수님을 향하여 빈정되고 치욕적인 말을 하며 침뱉고 합니다.  왕의 옥좌인 십자가에 이미 그분이 메달려 계시고, 머리에는 가시관을 왕관으로 쓴 채, 머리 위에는 그분이 왕이심을 선포하는 "이 사람은 유대인의 왕"이라고 쓰인 조롱 섞인 팻말이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그 좌우에는 두 증인이 함께 메달려 있습니다.  이러한 비참한 현실 가운데에서도 오늘 복음은 그리스도의 왕권이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결정적으로 드러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죽음이 무죄이며 왕으로서 그분의 권위를 인정하는 오른쪽 강도를 통하여 다윗의 왕권처럼 지배하고 군림하는 왕권이 아니라 당신 자신을 희생하여 봉헌하심으로써 세상을 구원하는 왕권임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는 진정 가난하고 병든 사람에게 참된 희망을 주었으며 죄로 타락하여 구제불능인 세상에 하늘의 문을 복되게 열어 주셨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모든 이에게 넉넉하게 채워 주셨습니다.

그 왕이 이제 다시 오십니다.  이것은 그분의 약속입니다.  우리는 정말 살아서도 죽어서도 그분 나라의 백성입니다.  십자가 옆의 강도는 그분을 왕으로 고백했다가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받았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분이 왕이라는 고백과 믿음에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써 늘 새 날을 만나게 됩니다.

 

  가장 낮은 곳으로 떨어졌을 때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새로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거미에게서 교훈을 얻어 끝까지 실망하지 않고 다시 일어선 스코틀랜드의 왕처럼 십자가의 죽음은 완전한 실패로 생각되는데도 그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듯이 우리들도 좌절하지 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새롭게 시작되는 이 한 주간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새롭게 시작되는 시기 시간을 준비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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