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샘터
어렸을 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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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에 사람들과 가벼운 술자리가 있었습니다.
모두들 적당히 마음이 편해졌을 때,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 정말 이상하다 ! 옛날 우리 고향은
코스모스가 사람 만큼 컸거든 ?
그런데 요즈음 코스모스들은 다 쬐끄마 하니 ? "
내가 물었습니다.
" 혹시 코스모스 뿐 만이 아니고
닭도 사람 만큼 컸고 개는 소형차 만하지 않았나? "
그 친구 깜짝 놀라며
" 맞아 !맞아 !" 하더군요.
내 의견을 말해 주었죠..
"코스모스가 작아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컸기 때문이겠지..
아이들 때 그 키로 , 그 눈 높이로 보면
코스모스가 그야말로 사람 키 만하니까..!"
그렇겠지요...! 자연은 의연히 그 모습을 잃지 않는데,
바라보는 인간의 눈에 따라 가지각색으로 보이는 것이겠지요...
언젠가 신학교 교정을 모처럼 찾은 적이 있습니다.
그 토록 넓어 보이던 학교 운동장도 그저 조금 넓은 빈터 일뿐...
빠질까봐 두려웠던 그 깊은 연못도 그저 조금 큰 웅덩이 일뿐...
하늘을 찌를듯 하던 그 큰나무도 그저 조금 큰 나무 일뿐...
다만 내가..내가 변했을 뿐이지요....!
꿈도, 마음도, 영혼도... 내가 변했을 뿐이겠지요..!
내가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새벽이었다.
고요였다.
그지없이 맑은 별빛이었다.
우리가 새벽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곧 우리 자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진정한 기다림과 간구를 잃어버리고
찰나적인 위안과 쾌락에 끌려다니고 있다는 뜻도 된다.
침묵보다는 소음 속에, 별빛 보다는 네온사인 속에,
거짓없는 눈물보다는 위장된 웃음 속에
우리 존재가 더 많이 놓여져 있음을 느끼곤 한다.
나희덕 / 내가 잃어버리고 살아온 것은
아직도 가슴에 거짓을 숨기고 있습니다
늘상 진실을 생각하는 척하며 바로 사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나만은 그 거짓을 알고 있습니다.
나조차 싫어지는 나의 얼굴
아니 어쩌면 싫어하는 척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인간적, 인간적이라는 말로써
인간적이지 못한 것까지 용납하려는 알량한 <나>가 보입니다.
자신도 속이지 못하고 얼굴 붉히며 들키는 바보가
꽃을, 나무를, 하늘을 속이려고 합니다
그들은 나를 보며 웃습니다
비웃음이 아닌 그냥 웃음이기에 더욱 아픕니다
언제쯤이면 나도 가슴 다 보여 주며 웃을 수 있을지요
눈물나는 것이 고마울 때가 있습니다
눈물 / 서정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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