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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범 [stevechoi] 쪽지 캡슐

2000-01-03 ㅣ No.14

오늘 처음으로 가입했는데 어쨌든 아직 적응 안돼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올린 많은 분들의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한편으로

안심이 됩니다. 새해에 좋은 일만 가득하길..

 

그냥 나가지 심심해서 글 하나 올립니다.

 

 

<춘향이와 몽룡이의 배신때리는 이야기>

 

 

"어서 고개를 들고 이름을 말하지 못할까!!"

 

"......"

 

 

◈ 춘향이

 

몽룡이가 광한루에서 그네타던 춘향에게 찝쩍댔을때 춘향이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었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에다 양반집 도령이라니!

 

이건 하늘이 주신 기회로다. 저 놈을 잘 잡아서 나도 대가집 마나님

한 번 되보는거다. 그 동안 기생딸이라고 받은 설움이 얼마던가!

춘향이는 못 이기는척, 몽룡의 꼬임에 넘어가는척 몸도 주고 혼인

약조도 받아냈다.

 

몽룡이 아버지를 따라 한양갈때는 어여 한양가서 장원급제하고

나 데려가라고 속으로 빌었었다.

 

신임사또 변학도가 유혹했을때 사또도 괜찮치 않나 흔들리기도

했지만 몽룡이 장원급제만 하면 지방 사또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며

스스로를 다지면서 참았었다.

 

급기야 칼을 차고 옥살이를 하는 수모도 대가집 마나님의 꿈을

생각하며 견뎠었는데, 믿었던 그 인간이 날거지가 되서 나타날 줄이야!

 

춘향은 더 이상 몽룡에게 미련을 가질 이유가 없었다.

그 날로 변학도의 요구를 들어주고 소실로 들어앉았다.

우선은 소실이지만 기회를 봐서 본 처를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하리라

자신하면서..

 

그리고 바로 오늘.

변학도의 생일을 맞아 즐겁게 잔치를 벌이고 있는데 난데없는

웬 암행어사 출두!

 

춘향은 사색이 된 변학도를 따라 마당에 쭈구리고 엎드리고,

어사는 동헌 마루 높이 앉아 하나하나 신분을 확인하며 취조를 하는데..

 

’앗! 저 목소리는 몽룡이가 아닌가!!

아따 긍께 저 잡 것이 멀쩡히 과거에 급제해 놓고는 생그지꼴로 나를

한 번 떠 본 것이 아니드랑께! 워메 징한거~ 우째야 쓸꺼나.’

 

이제와 어쨀 것인가. 그저 몽룡이 춘향이를 못 알아보길 바라는 수밖에.

어느덧 춘향의 차례..

 

"어서 고개를 들고 이름을 말하지 못할까!"

 

춘향은 가능한한 최대로 얼굴을 일그러트리며 비스듬히 고개를 쳐들고는

혀짧은 소리로 대답했다.

 

"디는 츄냉이라고 하는디유."

 

 

◈ 몽룡이

 

몽룡이 그네타는 춘향이를 처음 봤을때 그 이쁜 자태에 홀랑 반했었다.

 

그래서 신분차이도 잊고 결혼해 달라고 졸랐다. 황홀한 하룻밤도 보내고..

 

한양으로 떠날때도 반드시 장원급제해서 춘향이를 데려가리라 다짐했었다.

 

그러나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던가.

 

한양에 올라와 춘향이와 떨어져 있기되니 비로서 제정신(?)이 들었다.

 

’내 장차 대과에 급제해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를 꿈꾸거늘 기생딸과

혼인하면 틀림없이 앞 길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는가!

하룻밤 풋사랑에 미래를 망치질 수는 없도다.’

 

몽룡에게는 출세가 더 중요했다.

 

몽룡은 출세의 그 날을 꿈꾸며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당당히 대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다.

 

장원급제하자 연일 매파들이 드나들며 난다 긴다하는 명문세가와의

혼인을 주선했다.

 

몽룡은 그 중에 요즘 최고의 권세를 누리는 김대감집 여식과 혼인키로 했다.

그 와중에 몽룡은 암행어사가 되어 떠나게 되었는데 하필 부여된 목적지가

남원이라니..

 

몽룡은 춘향이 신경쓰여 먼저 알아보니 아직도 자기를 기다리다 사또의

미움을 사서 옥에 갇혔단다.

 

해서 몽룡은 자기를 단념시키고자 일부러 거지꼴을 하고 옥중의 춘향을

찾아가 쫄딱 망한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바로 오늘.

변사또의 생일잔치를 기회로 암행어사 출두를 외치며 들이닥쳤다.

 

혹 어디선가 춘향이 자기를 알아볼라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변사또 이하

무리들을 취조하는데..사또의 첩인지 기생인지 한 젊은 계집 차례에 가서

잔뜩 얼굴을 구기면서 혀 짧은 소리를 해대는게 뭔 소린지는 모르겠고

웬지 분위기가 춘향이를 많이 닮았겄다.

 

’혹, 저 것이 춘향이 아니던가. 만약 기라면 어사가 된 나를 알아보면

어쩔 것인가. 얼굴은 가렸다지만 목소리는...’

 

몽룡은 큰 소리로 명을 내렸다.

 

"당댱 저녀늘 내 뚀타 버뎌라!"

 

둘은 그렇게 상대가 자기를 못 알아봤으리라 안심하고 각자의 길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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