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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 상급인 공로들 자체는 타인들에게 양도될 수 없습니다 [교리학습_대사] merits, good_wor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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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0.14.3.*]

2011-09-11 ㅣ No.1106

 
 
+ 찬미 예수님
 
1. 들어가면서
1-1.  다음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대사(大赦, indulgence, indulgentia)라는 용어에 대한 설명의 앞 부분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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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Indulgence)
 
죄를 지은 사람이 진정으로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에게 교회는 고백성사를 통하여 죄는 사면되었다 할지라도 그 죄에 따른 벌, 즉 잠벌(暫罰)은 여전히 남아 있다. 이 잠벌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보속(補贖)을 통하여 사면될 수 있는데, 현세에서 보속을 하지 못한 경우 연옥에서 보속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런데 이 보속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한다. 대사는 교황이나 주교들이 줄 수 있는데, 대사의 근거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공로의 보고(寶庫, treasury)에 있는 공로를 교회의 권리로 각 영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데 있다. 이러한 대사는 보통 전대사(全大赦, indulgentiae plenariae)와 한대사(限大赦, indulgentiae partiales)로 나눠진다. 전대사란 죄인이 받아야 할 벌을 전부 없애 주는 것이고, 한대사란 그 벌의 일부분을 없애 주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전대사나 한대사를 연옥에서 고통받는 영혼들을 위해 대신 받을 때 그것을 대원(代願, suffrage)이라고 부른다.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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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위의 문장 중의,
 
대사의 근거는 그리스도와 성인들이 쌓아 놓은 공로의 보고(寶庫, treasury)에 있는 공로 교회의 권리로 각 영혼들에게 나눠줄 수 있다는 데 있다.
 
라는 부분에서 공로라는 표현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즉 자구적으로 해석하면, 다음의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의로운 자가 선행의 결과로 소유하게 되는 공로"에 대한 설명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가톨릭 교회의 신학적으로 상당히 문제가 있음을 지적하고자,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특히, 성직자 및 수도자들께서 이 글을 필독하실 것을 요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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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주어진 "indulgences" 에 대한 설명

The principle of vicarious satisfaction

Each good action of the just man possesses a double value: that of merit and that of satisfaction, or expiation. Merit is personal, and therefore it cannot be transferred; but satisfaction can be applied to others, as St. Paul writes to the Colossians (1:24) of his own works: "Who now rejoice in my sufferings for you, and fill up those things that are wanting of the sufferings of Christ, in my flesh, for his body, which is the Church."

남을 대신하는 보속에 대한 원칙

의로운 사람(the just man)의 각각의 선한 행동(good action, 즉 선행)은 다음과 같은 이중의 가치(a double value)를 소유한다: 공로(merit, 즉 적정공로)의 그것 그리고 보속(satisfaction) 혹은 속죄(expiation)의 그것. 공로는 본인의 것(personal)이며, 그리하여 그 결과 이것은 앙도(讓渡)될 수 없으나(cannot be transferred), 그러나 보속은 성 바오로가 콜로새인들에게 자신 고유의 일들에 대하여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콜로새 1,24) 라고 기록하였듯이, 다른 이들에게 사용될 수 있다(can be applied 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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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국내의 개신교측에서 "indulgence"로 번역되는 표현을 "대사(大赦,indulgence)" 로 번역하지 않고 작위적/자의적으로 "면죄부"로 번역하여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은 커다란  번역 오류입니다. 특히 다음의 주소에 있는 "표준국어대사전" 에서도, "대사"에 주어져야 하는 설명을, 대단히 잘못 번역된 가톨릭 교회측에서 사용하지 않는 용어인 "면죄부(免罪符)"의 설명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은 시급히 바로잡아져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http://124.137.201.223/search/List_dic.jsp
 
2. 위의 제1항에서 지적하고 있는 바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의 자료들을 참고하도록 합시다:
 
2-1. 다음은 Modern Catholic Dictionary에 주어진 대사(indulgence)에 대한 설명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제가 한 것입니다.
 

INDULGENCE

"The remission before God of the temporal punishment due to sins forgiven as far as their guilt is concerned, which the follower of Christ with the proper dispositions and under certain determined conditions acquires through the intervention of the Church, which, as minister of the redemption, authoritatively dispenses and applies the treasury of the satisfaction won by Christ and the saints" (Pope Paul VI, Apostolic Constitution on Indulgences).

As originally understood, an indulgence was a mitigation of the severe canonical penances imposed on the faithful for grave sins. The term "indulgence" remained, however, even after these extreme penalties were discontinued. Yet until the Second Vatican Council, the norm for determining the effectiveness of an indulgenced practice was its relationship to the ancient canonical penances, as seen in the numbers, so many years or so many days, attached to every official listing of partial indulgences.

All this changed by Pope Paul VI. From now on the measure of how efficacious an indulgenced work is depends on two things: The supernatural charity with which the indulgenced task is done, and the perfection of the task itself.

Another innovation is that partial and plenary indulgences can always be applied to the dead by way of suffrage, asking God to remit their sufferings if they are still in purgatory.

대사(INDULGENCE)

"하느님 앞에서, 그들의 죄 있음(guilt)이 관련된 한, 용서받은 죄(foregiven sins)들에 기인하는 일시적인 벌[temporal punishment, 暫罰(잠벌)]의 사면(remission)을 말하는데, 이 사면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합당한 의향(proper dispositions)들과 함께 그리고 특정한 정해진 조건들 하에서, 구속의 교역자로서(as minister of the redemption), 그리스도와 성인(the saints)들에 의하여 얻어진 보속의 보고(the treasury of satisfaction)를 권위와 함께 나누어 주고(dispenses) 그리고 사용하는(applies) 교회의 개입을 통하여, 획득하게 된다." [교황 바오로 6세(Pope Paul VI,재위기간: 1963-1978년),대사들에 대한 교황령(Apostolic Constitution on Indulgences, 1967), 제8항].

원래 이해되었듯이, 대사는 중죄(grave sins)들에 대하여 신자들에게 부과되었던 엄한 교회법적 속죄 행위(penances)들에 대한 어떤 감형(a mitigation)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사"라는 용어는 심지어 이러한 극단적인 속죄 행위들이 중지된 이후에도 살아 남았습니다. 여전히 제2차 바티칸 공의회때까지, 어떤, 대사가 부착된, 실천(an indulgenced practice)의 효과 있음(effectiveness)을 정하기 위한 기준(norm)은 그 관계가, 부분 대사(한대사, partial indulgences)들의 모든 공식적 목록에 부착되어 있는, 몇 년들 혹은 며칠들이라는 그 숫자들에서 보여지듯이, 오래 된 교회법적 속죄 행위들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것을은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하여 [1967년에] 바뀌었습니다. 앞으로는 어떤, 대사가 부착된, 일이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에 대한 척도는 다음의 두 가지 것들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과 함께, 대사가 부착된, 부과된 일(the indulgenced task)이 행하여지는 초자연적 애덕(the supernatural charity), 그리고 부관된 일 그 자체의 완미(perfection). 

또 하나의 획기적인 것(another innovation)은 한대사(부분 대사, partial indulgences)들과 전대사(plenary indulgences)들이 죽은 이들에게, 만약에 그들이 여전히 연옥에 있다면 하느님께 그들의 고통들을 사면해 주실 것을 청원하는, 대신 기도(suffrage)의 방식에 의하여, 항상 적용될 수 있음 입니다.  
(이상, 졸번역 끝)

2-2. 다음은, 1997년에 라틴어 정본이 공포된,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1471항에 주어진 대사(indulgence)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당연히, 이 가르침은 위의 제2-1항에서 발췌 인용하고 있는 교황 바오로 6세의 "대사에 대한 교황령"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라틴어본)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1471 Doctrina et praxis indulgentiarum in Ecclesia arcte cum effectibus coniunguntur sacramenti Poenitentiae.

Quid sunt indulgentiae?

« Indulgentia est remissio coram Deo poenae temporalis pro peccatis, ad culpam quod attinet iam deletis, quam christifidelis, apte dispositus et certis ac definitis condicionibus, consequitur ope Ecclesiae quae, ut ministra Redemptionis, thesaurum satisfactionum Christi et sanctorum auctoritative dispensat et applicat ».

« Indulgentia est partialis vel plenaria prout a poena temporali pro peccatis debita liberat ex parte aut ex toto ». « Quivis fidelis potest indulgentias [...] sibi ipsi lucrari, aut defunctis applicare ».

(이탈리아어본)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1471 La dottrina e la pratica delle indulgenze nella Chiesa sono strettamente
legate agli effetti del sacramento della Penitenza.

Che cos’è l’indulgenza?

    « L’indulgenza è la remissione dinanzi a Dio della pena temporale per i
peccati, già rimessi quanto alla colpa, remissione che il fedele, debitamente disposto e a determinate condizioni, acquista per intervento della Chiesa, la quale, come ministra della redenzione, autoritativamente dispensa ed applica il tesoro delle soddisfazioni di Cristo e dei santi ».

    « L’indulgenza è parziale o plenaria secondo che libera in parte o in tutto
dalla pena temporale dovuta per i peccati ».80 « Ogni fedele può acquisire le
indulgenze [...] per se stesso o applicarle ai defunti ».

(프랑스어본)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1471 La doctrine et la pratique des indulgences dans l’Église sont étroitement liées aux effets du sacrement de Pénitence.

Qu’est-ce que l’indulgence ?

" L’indulgence est la rémission devant Dieu de la peine temporelle due pour les péchés dont la faute est déjà effacée, rémission que le fidèle bien disposé obtient à certaines conditions déterminées, par l’action de l’Église, laquelle, en tant que dispensatrice de la rédemption, distribue et applique par son autorité le trésor des satisfactions du Christ et des saints " (Paul VI, const. ap. " Indulgentiarum doctrina ", Norme 1).

" L’indulgence est partielle ou plénière, selon qu’elle libère partiellement ou totalement de la peine temporelle due pour le péché " (ibid, Norme 2). " Tout fidèle peut gagner des indulgences pour soi-même ou les appliquer aux défunts " ( CIC, can. 994).

(영어본)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교황청 홈페이지 제공)

1471 The doctrine and practice of indulgences in the Church are closely linked to the effects of the sacrament of Penance.

What is an indulgence?

"An indulgence is a remission before God of the temporal punishment due to sins whose guilt has already been forgiven, which the faithful Christian who is duly disposed gains under certain prescribed conditions through the action of the Church which, as the minister of redemption, dispenses and applies with authority the treasury of the satisfactions of Christ and the saints."

"An indulgence is partial or plenary according as it removes either part or all of the temporal punishment due to sin." The faithful can gain indulgences for themselves or apply them to the dead.

(우리말본)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

1471 교회 안의 대사(大赦)에 대한 교리와 관습은 고해성사의 효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사란 무엇인가?

“대사란, 이미 그 죄과에 대해서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暫罰]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활용한다.” 79)

“대사는 죄 때문에 받게 될 잠시적인 벌을 부분적으로 면제하느냐, 전적으로 면제하느냐에 따라 부분 대사와 전대사로 구분된다.” 80)“어느 신자든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대사를 얻을 수 있고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활용할 수도 있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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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바오로 6세, 교황령 Indulgentiarum doctrina, Normae, 1: AAS 59(1967), 21면.
80. 바오로 6세, 교황령 Indulgentiarum  doctrina, Normae 2: AAS 59(1967), 21면.
81. 교회법 제99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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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사항 한 개: 사족입니다만, 위에 제시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1항의 여러 지역 언어로의 번역본들을 비교/검토로부터 우리는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1항이 프랑스어본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1항를 따르고 있음을 추측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3.
3-1. (중간 결론 1)
 
따라서, 위의 제2-1항 및 제2-2항에서 비교/검토한 바로부터 우리는, 적어도 1967년 이후부터, 가톨릭 보편 교회의 문헌들에서, "공로들의 보고(the treasury of merits)" 라는 표현 대신에, "보속들의 보고(the treasury of satisfactions)" 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다고 결론내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위의 제2-1항에서 인용하고 있는, "대사 교리" 로도 불리는, 교황 바오로 6세(Pope Paul VI,재위기간: 1963-1978년)의 대사들에 대한 교황령(Apostolic Constitution on Indulgences, 1967) (클릭하여 직접 확인하십시오) 본문 어디에서도 "공로들의 보고(the treasury of merits)" 라는 표현은 전혀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유감 사항 한 개: 16세기 중반의 마르틴 루터에 의한 교회 분열 시도 이후에, 대사에 관한 교도권의 가르침의 기준 자체를 획기적으로 개선한 대단히 중요한 1967년 바오로 6세 교황에 의한 이 교황령의 우리말 번역본은, 대단히 유감스럽게도, 지금까지 제공되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여기를 클릭하면, 이것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3-2. (중간 결론 2)
그러므로 위의 제1-2항에서 지적하였듯이, 위의 제1-3항, 제2-1항 그리고 제2-2항에 의하여, 우리는 위의 제1-1항에 있는, 눗뉴스 서버 제공의 우리말 가톨릭 대사전 설명에 사용중인, 공로를 나누어 줄 수 있다는 표현 자체가 상당한 문제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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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들어가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을 위하여 강생하신 성자 하느님이심을 증거하다 순교한 자들은 모두가 의로운 자(the just)들이기에, 따라서 이 순교자들의 영혼들 모두는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의 범주에 포함되나, 그러나 이들은 

(i) 가톨릭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전례력 안에서 구체적으로
"성인(saints)들"로 불리며 특정한 날짜에 공경을 받고 있는 분들

(ii) 그렇지 않은 분들로 크게 둘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의 역사 안에서 이러한 구분은, 특히 4세기초까지 박해를 받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에 대한 직접적 증거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에서 매년 11월 1일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경축하는 데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참고: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을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 안에서 경축하게 되는 역사적 배경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필자의 졸저서인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가-II, 나-II, 혹은 다-II"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모든 성인 대축일(11월 1일) 입문을 참고하십시오.

유의 사항 한 개: 이 제4항에서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이미 "성인들"로 불리는 분들뿐만이 아니라, 이들을 포함하는,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의 공로(merits)들에 대하여 다루고 있음을 꼭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4-1. 
(질문 4-1)
그러면, 왜 "공로들은 나누어 줄 수 없다"는 것일까요?

(답변 4-1) 어떠한 경우에도, 하늘에 쌓은 공로들 자체는 다른 이에게 양도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4-2. 
(질문 4-2) 그러면 무슨 까닭으로,
하늘에 쌓은 천상 상급인 공로들 자체는 다른 이들에게 양도될 수 없을까요?

(답변 4-2) 왜냐하면, 

(i)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들의 영혼들[여기에는, 성인들과 성인으로 불리지 않는 분들의 영혼들을 포함]의 공로들을 천상 상급으로 인정하여 확정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므로, 그리고, 

(ii)
예를 들어, 세례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은 단 한번으로 종결되므로, 그리고 

(iii)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따라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하느님에 의하여 이미 결정난 것 무엇이든지간에, 유일하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어떠한 사물(여기에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도 포함됨)들에 의하여 결코 변경되거나 변화될 수 없으므로,
 
(iv) 따라서, 심지어 교회의 교도권의 권위조차도 그리스도와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쌓아 놓은 "하늘에 있는 공로들" 자체를 지상 교회 혹은 영옥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감히 양도할(transfer)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상 상급인 공로들 자체가 지상 교회 혹은 영옥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양도되는 순간에, 모든 권위의 원천인 하느님께서 이미 인정하여 결정하신 바인 천상 상급인 공로들 자체가 변경 혹은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v) 따라서, 또한 심지어 교회의 교도권의 권위조차도 그리스도와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쌓아 놓은 하늘에 있는 공로들 자체를 지상 교회 혹은 영옥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감히 나누어 줄(dispense, distribute, give, provide) 수 없습니다.
 
4-3. 지금 말씀드린 부분과 관련한, 가톨릭 보편 교회의 직,간접적 포괄적 가르침들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 성경 로마서 13,1 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918항)
"하느님에게서 나오지 않는 권위란 있을 수 없고, 현재의 권위들도 하느님께서 세우신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750항)
750
교회가 '거룩하고', '보편되며', 그리고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 추가했듯이) '하나이고',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교회임을 믿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과 분리할 수 없다. 사도 신경에서 우리는 거룩한 교회를 믿는다고 고백하지만 하느님을 믿는 것처럼 교회를 믿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하느님과 하느님의 업적을 혼동하지 말아야 하며,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 내리신 모든 선물이 하느님의 선에서 오는 것임을 분명히 하여야 한다.
 
750 To believe that the Church is "holy" and "catholic," and that she is "one" and "apostolic" (as the Nicene Creed adds), is inseparable from belief in God, the Father, the Son, and the Holy Spirit. In the Apostles' Creed we profess "one Holy Church" (Credo . . . Ecclesiam), and not to believe in the Church, so as not to confuse God with his works and to attribute clearly to God's goodness all the gifts he has bestowed on his Church.

(졸번역)
750 교회가 '거룩하고' 그리고 '보편됨'을 믿는 것(to believe)은, 그리고 (니케아 신경이 추가하듯이) 그녀가 '하나이며' 그리고 사도로부터 이어옴'을 믿는 것(to believe)은 하느님이신, 성부, 성자, 그리고 성령 쪽으로 믿음(belief in)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습니다. 사도 신경에서 우리는, 하느님과 당신의 위업들을 혼동하지 않기 위하여(so as) 그리고 당신께서 당신의 교회에 수여해 오셨던 선물들 모두(all)하느님의 선함(God's goodness) 쪽으로 분명하게 돌리기 위하여, [그리하여 교회를 신앙의 최종 대상으로 의식적으로 만들어 가지지 않기 위하여(把敎會作爲信仰的最終對象)] 교회 쪽으로 믿는다(believe in the Church)가 아니라, "하나의 거룩한 교회(one Holy Church)"를 믿는다고 고백합니다(profess)(Credo . . . Ecclesiam)(로마 교리서 I, 10, 22 ).(*) 
 
[내용 추가 일자: 2014년 10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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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1) 영어본 로마 교리서(Roman Catechism), 즉, 트리엔트 교리서(the Catechism of Trent), I, 10, 22는 다음에 있다:
 
(2) 이 문장의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believe(믿다)""believe in(쪽으로 믿다)"으로 번역되는 용어들의 의미의 커다란 차이점을 알아야 하며, 이에 대한 글들은 다음에 있으니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이상, 내용 추가 끝]
 
4-4.
(질문 4-4) 그러면, "보상(reward, 즉 상)" 이라는 용어와 "공로(merit)"라는 용어는 동일한 그 무엇(something)을 나타내는 용어일까요? 아니면, 동일하지 않은 다른 어떤 것들을 나타내는 용어들일까요?
 
(답번 4-4) 다음은, 여기를 클릭하면 읽을 수 있는, "보상(상)과 공로(Reward and Merit)" 제목의 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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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이 글의 맨 아랫 부분에 다음의 인증이 있음을 또한 참고하십시오:
 

NIHIL OBSTAT: I have concluded that the materials
presented in this work are free of doctrinal or moral errors.
Bernadeane Carr, STL, Censor Librorum, August 10, 2004

IMPRIMATUR: In accord with 1983 CIC 827
permission to publish this work is hereby granted.
+Robert H. Brom, Bishop of San Diego, August 10,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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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In the second century, the technical Latin term for "merit" was introduced as a synonym for the Greek word for "reward." Thus merit and reward are two sides of the same coin. 

(졸번역)
2세기에,"공로(merit)"를 나타내기 위한 기술적인 라틴어 용어가 "보상(reward, 상)"을 나타내는 그리스어 용어의 동의어로서(as a synonym) 도입되었습니다. 따라서 공로와 보상은 동일한 동전의 양 면들입니다. 
(이상, 발췌 끝).
 
4-5. (중간 결론 3)
따라서, 바로 위의 제4-4항에서 살펴 본 바에 의하여, 우리는 

(i) 성경 본문에서, 특히 예수님의 말씀 중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 "상(reward, 보상)"
과 그리고, 

(ii) 가톨릭 교회 교리서 등의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에서 사용되고 있는 용어인, "공로(merit)"가 

사실은 동일한 그 무엇을 말하는 동의어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4-6. 그 다음 순서로, 우리는,
 
첫 번째로(4-6-1),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들 중에서, 예수님께서 "천상 상급인 상(reward, 보상)", 즉 "천상 상급인 공로(merits)"들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셨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로(4-6-2), 신약 성경의 나머지 경전들에 제자들에 의하여 기록된 부분에서 또한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세 번째로(4-6-3), 가톨릭 교회의 교부들의 가르침들 중에서 또한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번째로(4-6-4), "신앙의 유산(the deposit of faith)"에 근거한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들에 근거한 강론 말씀들에서 또한 어떻게 언급하고 있는지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4-6-1.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들 중에서
 
(마태오 복음서 5,11-12)
"사람들이 나 때문에 너희를 모욕하고 박해하며, 너희를 거슬러 거짓으로 온갖 사악한 말을 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를 받았다."
 
(마태오 복음서 6,1-6.16-18)
올바른 자선

1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2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3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4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올바른 기도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올바른 단식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17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18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0,40-42)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24-26)
24 그런데 한 탈렌트를 받은 이는 나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주인님, 저는 주인님께서 모진 분이시어서,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시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25 그래서 두려운 나머지 물러가서 주인님의 탈렌트를 땅에 숨겨 두었습니다. 보십시오, 주인님의 것을 도로 받으십시오.’
26 그러자 주인이 그에게 대답하였다. ‘이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내가 심지 않은 데에서 거두고 뿌리지 않은 데에서 모으는 줄로 알고 있었다는 말이냐? 
 
(마태오 복음서 25,40)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45)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다.’"
 
(마르코 복음서 9,41)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루카 복음서 6,23)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루카 복음서 6, 35)
"그러나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에게 잘해 주고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어라. 그러면 너희가 받을 상이 클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될 것이다. 그분께서는 은혜를 모르는 자들과 악한 자들에게도 인자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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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결론 4)
이상 살펴 본 바로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클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상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천상 상급으로 받을 상의 크기를 또한 함께 말씀하셨는데,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천상 상급으로 받을 상(공로)이 동일하지 않음을 대단히 분명하게 말씀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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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2. 신약 성경의 복음서들외의 다른 경전들 중에서
 
(1코린토 9,25)
"모든 경기자는 모든 일에 절제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화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하지만, 우리는 썩지 않는 화관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2 코린토 9,6)
"요점은 이렇습니다.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어들이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들입니다."
 
(1코린토 15,40-41)
40 하늘에 속한 몸체들도 있고 땅에 속한 몸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몸체들의 광채가 다르고 땅에 속한 몸체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41 해의 광채가 다르고 달의 광채가 다르고 별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별들은 또 그 광채로 서로 구별됩니다.
 
(갈라티아 6,7-10)
6 말씀을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과 좋은 것을 모두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7 착각하지 마십시오. 하느님은 우롱당하실 분이 아니십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것을 거두는 법입니다. 
8 자기의 육에 뿌리는 사람은 육에서 멸망을 거두고, 성령에게 뿌리는 사람은 성령에게서 영원한 생명을 거둘 것입니다. 
9 낙심하지 말고 계속 좋은 일을 합시다. 포기하지 않으면 제때에 수확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10 그러므로 기회가 있는 동안 모든 사람에게, 특히 믿음의 가족들에게 좋은 일을 합시다.
 
(2티모테오 4,8)
"이제는 의로움의 화관이 나를 위하여 마련되어 있습니다. 의로운 심판관이신 주님께서 그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그분께서 나타나시기를 애타게 기다린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 10,35)
"그러니 여러분의 그 확신을 버리지 마십시오. 그것은 큰 상을 가져다줍니다."
 
(야고보 1,12)
"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1베드로 5,4)
"보십시오, 그대들의 밭에서 곡식을 벤 일꾼들에게 주지 않고 가로챈 품삯이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곡식을 거두어들인 일꾼들의 아우성이 만군의 주님 귀에 들어갔습니다."
 
(요한 묵시록 2,10)
"네가 앞으로 겪을 고난을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이제 악마가 너희 가운데 몇 사람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을 받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겪을 것이다. 너는 죽을 때까지 충실하여라. 그러면 내가 생명의 화관을 너에게 주겠다."
 
(요한 묵시록 3,11)
"내가 곧 간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지켜, 아무도 네 화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여라."
(요한 묵시록 12,1)
"그리고 하늘에 큰 표징이 나타났습니다. 태양을 입고 발밑에 달을 두고 머리에 열두 개 별로 된 관을 쓴 여인이 나타난 것입니다."
 
(요한 묵시록 14,14)
"내가 또 보니 흰 구름이 있고 그 구름 위에는 사람의 아들 같은 분이 앉아 계셨는데,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손에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계셨습니다."
 
(요한 묵시록 22,10-15)
10 천사가 또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이 책에 기록된 예언 말씀을 봉인하지 마라. 그때가 다가왔기 때문이다. 
11 불의를 저지르는 자는 계속 불의를 저지르고, 더러운 자는 계속 더러운 채로 있어라. 의로운 이는 계속 의로운 일을 하고 거룩한 이는 계속 거룩한 채로 있어라.”
12 “보라, 내가 곧 간다. 나의 상도 가져가서 각 사람에게 자기 행실대로 갚아 주겠다. 
13 나는 알파이며 오메가이고 처음이며 마지막이고 시작이며 마침이다.
14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그 도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  
 
참고: 그리고, 여기를 클릭하면,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따른 주일/주간 독서들 및 복음 말씀들 중에서 "reward"라는 단어가 언급된 구절들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읽을 수 있습니다.
 
(중간 결론 5)
이상 살펴 본 바로부터 우리는, 신약 성경의 다른 경전들에서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천상 상급으로 받을 상(공로)이 동일하지 않음을 대단히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4-6-3. 교부들의 가르침들 중에서
 
"From now on there is no further combat; all you must do is hold on to the merit you have won, and you will not lose your reward [...]. No further combat is called for: all that is necesary is perseverance. Just hold out and you will gain your laurels; you have already suffered all you need to obtain them--contentions, chains, pain, loss of property. What more could you have done? All that remains for you to do is wait patiently for the prize to be given you. If there is a delay, it will only be for a short while" [St John Chrysostom,  "Hom. on Heb., ad loc."].
 
"And you, are you annoyed because you have not received your reward? What should Abel do, then. He was the first to gain the victory, but remained uncrowned. And Noah? And all those of those times who are waiting for you and for those who will come after you? Do you not see how much better off we are? That is why he says: God in his providence had arranged something better for us. And, in order that it should not be thought that those people were superior to us because they received their crown earlier, God disposed that all should be crowned at the very same time; and he who won his many years earlier will be crownedalong with you [...]. For if we are all the one body, this body will the more rejoice if all are crowned at the same time and not one by one" [St John Chrysostom, "Hom. on Heb.", 28].

"If you give bread and it makes you sad to do so, you lose both the bread and the reward" [St Augustine, "Enarrationes in Psalmos", 42, 8].
 
"They did not escape death, not because God was not looking after them but so that they might obtain eternal life, which is a more excellent thing than being set free from any present affliction or being raised up again to this life" [St Thomas writes, "Commentary on Heb.", 11, 5].
 
참고: 지금까지 제4항에서,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에 의하여 "성인(saints)들"로 불리면서 공경을 받고 있는 영혼들을 포함하는, 더 일반적인,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의 공로가 동일하게 인정되지 않는 근거들을 살펴 보았습니다.
 
5.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의 가르침들에 근거한 강론 말씀들에서
 
5-1. 다음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1997년 교리 교육 강론 말씀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특히 이 강론 말씀에서는 유난히도 그 근거 자료들을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2. My venerable Predecessor Pius XII, in his Encyclical Ad coeli Reginam to which the text of the Constitution Lumen gentium refers, indicates as the basis for Mary’s queenship in addition to her motherhood, her co-operation in the work of the Redemption. The Encyclical recalls the liturgical text: "There was St Mary, Queen of heaven and Sovereign of the world, sorrowing near the Cross of our Lord Jesus Christ" (AAS 46 [1954] 634). It then establishes an analogy between Mary and Christ, which helps us understand the significance of the Blessed Virgin’s royal status. Christ is King not only because he is Son of God, but also because he is the Redeemer; Mary is Queen not only because she is Mother of God, but also because, associated as the new Eve with the new Adam, she co-operated in the work of the redemption of the human race (AAS 46 [1954] 635).

In Mark’s Gospel, we read that on the day of the Ascension the Lord Jesus "was taken up into heaven, and sat down at the right hand of God" (16:19). In biblical language "to sit at the right hand of God" means sharing his sovereign power.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he establishes his kingdom, God’s kingdom. Taken up into heaven, Mary is associated with the power of her Son and is dedicated to the extension of the Kingdom, sharing in the diffusion of divine grace in the world.

In looking at the analogy between Christ’s Ascension and Mary’s Assumption, we can conclude that Mary, in dependence on Christ, is the Queen who possesses and exercises over the universe a sovereignty granted to her by her Son.

3. The title of Queen does not of course replace that of Mother: her queenship remains a corollary of her particular maternal mission and simply expresses the power conferred on her to carry out that mission.

Citing Pius IX’s Bull Ineffabilis Deus, the Supreme Pontiff highlights this maternal dimension of the Blessed Virgin’s queenship: "Having a motherly affection for us and being concerned for our salvation, she extends her care to the whole human race. Appointed by the Lord as Queen of heaven and earth, raised above all the choirs of angels and the whole celestial hierarchy of saints, sitting at the right hand of her only Son, our Lord Jesus Christ, she obtains with great certainty what she asks with her motherly prayers; she obtains what she seeks and it cannot be denied her" (cf. AAS 46 [1954] 636-637)(*).

교황 비오 9세의 교황령인 Ineffabilis Deus를 인용하면서, 이 위대한 교황(즉, 비오 12세 교황)께서는 복되신 동정녀의 이러한 모성적 양상을 다음과 같이 두드러지게 합니다: "우리를 위한 어머니의 애정을 가지고 계시면서 그리고 우리의 구원을 염려하고 계시면서, 성모님께서는 인류 전체에 대한 당신의 돌보심을 확대하십니다. 주님에 의하여 하늘과 땅의 여왕으로 임명되시어, 천사들의 계급(choirs of angels)들 모두 및 성인들의 천상 계층 구조 전체 위로 들어 올려져, 당신의 외 아드님이신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그리스도의 오른 편에 앉아계시면서, 성모님께서는 당신 자신에 의한 어머니의 기도들과 함께 청원하신 바를 커다란 확신과 함께 획득하시며, 그리고 당신께서는 자신이 추구하는 바를 획득하시며 그리고 당신의 요구라면 거절될 수 없습니다" (AAS 46 [1954] 636-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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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역자 주: 다음의 주소에 있는 자료의 제636-637쪽을 참고하라: http://www.vatican.va/archive/aas/documents/AAS%2046%20[1954]%20-%20ocr.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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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 결론 6)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강론 말씀으로부터 우리는, 적어도 세 분의 교황님(즉, 교화 비오 9세, 교황 비오 12세, 그리고 교황 바오로 2세)들께서 천상의 천사들 사이에 계급(choirs)들이 있을뿐만이 아니라, 또한 천상 성인들 사이에도 계층 구조(hierarchy), 즉 등급이 있다고 가르치셨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이 강론 말씀은, 

(i) "하느님의 어머니(에페소 공의회 431년)"이시고,
 
(ii) "평생 동정(라테란 공의회 649년)"이셨기에, 

(iii)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선행 구속(先行救贖, pre-redemption)"으로 잉태되는 순간에 성화 은총으로 입혀져 그리하여 원죄로부터 제외되어 "원죄없이 잉태되신 분(교황 비오 9세 1854년)"이시기에, 그리고 

(iv) 지상에서의 삶을 마치고 "몽소승천(교황 비오 12세 1950년)"하게 되신 분이시기에 [이상은 성모님에 대한 4대 교의(dogmas, 믿을 교리)들임], 
 
그리하여 모든 피조물들 중에서 가장 커다란 공로를 인정받은 분이시기에, 심지어 천상의 모든 천사들보다도 더 높은 지위에 계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5-2. 다음은 Fr. Hathaway FSSP 에 의한 2003년 12월 23일[Mater Dei Latin Mass Community, Sunday within Octave of Christmas]자 강론(제목: The Resurrection of the Body)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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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Hathaway 신부님은 FSSP 소속이며, FSSP = Fraternitas Sacerdotalis Sancti Petri = The Priestly Fraternity of St. Peter는, 수도회 서원을 하지 않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사제들을 위한 단체로서 1998년 7월 18일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에 의하여 교회법적으로 설립되었다고 합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이 단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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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췌 시작)
 
St. Paul summarizes the manner of the resurrection of the just in I Corinthians 15:39-44. “All flesh is not the same flesh, but one is the flesh of men, another of beasts, another of birds, another of fishes. And there are bodies celestial and bodies terrestrial; but one is the glory of the celestial and another of the terrestrial. One is glory of the sun, another the glory of the moon, another the glory of the stars. For star differs from star in glory. So also i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What is sown in corruption, shall rise in incorruption. What is sown in dishonor, shall rise in glory. What is sown in weakness, shall rise in power. What is sown a natural body, shall rise a spiritual body.”In this brief passage, notice two things: one, there is a hierarchy among saints in heaven; two, the bodies of the saints will change in four ways. “As star differs from star, so is the resurrection of the dead.” There is a hierarchy in heaven among creatures. Ranking of saints is in proportion to the grace they have earned from God. The more grace, the more glory, and a higher place at the eternal banquet. “He (Christ) will render to everyone according to his works.” (Mt 16:27); “the vision of God is according to merit” (Florence, 1434). Said again: there is no equality in heaven; there is no affirmative action program in the celestial sphere. This is most evident in the fact that the Blessed Virgin is superior even to the highest angel in heaven while that angel surpasses any other material creature.  Opposed to this doctrine, some Christians, however, believe that everyone is equal in heaven. Luther taught as Christ externally imputes His grace, so all receive an equal measure. And so many Christians say, “Mary was a holy woman, but not greater than other holy women; yes, she bore the Christ Child but God could have chosen any holy woman for that task!” But such wrong thinking does injury to what God did do. Besides this, God does man no injustice by favoring some of His creatures over others. Thus those who play a more important role deserve a higher reward, as those do who fight more bravely in overcoming an adversary, than those who do neither. In the measure that we strive to know, love, and serve God while in this valley of tears, so shall the just man merit a proportionate crown at the end of his life. Besides different degrees of glory, the risen bodies of saints shall have four qualities: impassibility, brightness, agility, and subtilty. ...
 
성 바오로(St. Paul)는 1코린토 15,39-44에서 의로운 자들의 부활의 방식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육체라고 다 같은 육체가 아닙니다. 사람의 육체가 다르고 집짐승의 육체가 다르고 날짐승의 육체가 다르고 물고기의 육체가 다릅니다. 하늘에 속한 몸체들도 있고 땅에 속한 몸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늘에 속한 몸체들의 광채가 다르고 땅에 속한 몸체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해의 광채가 다르고 달의 광채가 다르고 별들의 광채가 다릅니다. 별들은 또 그 광채로 서로 구별됩니다. 죽은 이들의 부활도 이와 같습니다. 썩어 없어질 것으로 묻히지만 썩지 않는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비천한 것으로 묻히지만 영광스러운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약한 것으로 묻히지만 강한 것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으로 묻히지만 영적인 몸으로 되살아납니다. 물질적인 몸이 있으면 영적인 몸도 있습니다.". 이러한 간략한 구절에서, 다음의 두 가지에 주목합니다: 하나, 천상에서 성인들 사이에 계층 구조가 있으며, 그리고 둘, 성인들의 몸들이 네 가지 방식으로 변화될 것이다. "별이 별과 다르듯이, 마찬가지로 죽은 이들의 부활도 그러합니다." 피조물들 중에 하늘에서 어떤 계층 구조가 있습니다. 성인들의 등급(ranking)은 그들이 하느님으로부터 이미 얻었던 은총에 비례합니다. 은총을 더 많이 받을 수록, 더 많은 영광을, 그리하여 영원한 연회에서(at the eternal banquet)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천사들과 함께 올 터인데, 그때에 각자에게 그 행실대로 갚을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16,27). "(사후에) 하느님을 뵈옵는 것(至福直觀. Beatific vision, the vision of God)은 공로에 따라서이다." [플로렌스 공의회(Council of Florence), 1434년]. 거듭 말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에는 평등(equality)이 전혀 없으며, 그리하여 천구(the celestial sphere)에는 차별 시정 프로그램(affirmative action program)이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복되신 동정녀께서 하늘에서 가장 높은 천사보다, 비록 바로 이 천사가 어떤 다른 물질적 피조물을 능가함에도 불구하고, 더 탁월하다는 사실에서 가장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 교리에 반대하여, 일부 그리스도인들은 모두가 하늘에서 평등하다고 믿습니다(believe).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년)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은총을 외부적으로 나누어 주시기에(externally imputes), 그리하여 모두가 어떤 동일한 척도로 받는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대단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리아는 거룩한 여인이었으나, 그러나 다른 거룩한 여인들보다 더 거룩하지는 않았는데, 그렇다, 그녀는 아이인 그리스도를 임신하였으나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로 이 과업을 위하여 다른 거룩한 여인들을 선택하실 수 있으셨다!" 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된 생각은 하느님께서 정말로 행하셨던 바를 해칩니다. 이것 이외에,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들 중의 일부를 다른 이들보다 총애함으로써 어떠한 불의도 사람에게 행하지 않으십니다. 따라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자들은, 어떤 적대자를 이겨냄에 있어 더 용감하게 싸우는 자들처럼, 아무쪽도 행하지 않는 자들보다 어떤 더 높은 보상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deserve). 이 슬픔의 골짜기(*)에 있는 동안에 우리가 하느님을 알게되고, 사랑하며 그리고 봉사하기 위하여 노력함이라는 기준(measure)으로, 마찬가지로(so) 의로운 사람은 자신의 삶의 마지막 시점에 어떤 비례하는 화관(crown)을 상으로 받을 만할 것입니다(shall merit). 영광의 상이한 정도들 이외에, 성인들의 부활하게된 몸들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들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해를 입지 않음(impassibility), 빛남(brightness), 민첩(agility), 그리고 섬세함(subtilty).
(이하 생략)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9월 16일]
 
게시자 주: 위의 문장에서 "슬픔의 골짜기(the valley of tears)" 라는 오래된 표현의 성경 근거 및 가톨릭 보편 교회의 핵심 문헌들/기도문들에서의 사용 예들은 다음의 글들에 있으니 필독하도록 하라:
 
[이상, 내용 추가 끝].   
 
6. 다음은, 지금까지 이 글에서 도출하였던 중간 결로들로부터 마련된 요약문입니다: 
 
(i)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들의 영혼들[여기에는, 성인들과 성인으로 불리지 않는 분들의 영혼들을 포함]의 공로들을 천상 상급으로 인정하여 확정하시는 분이 바로 하느님이시므로, 그리고, 

(ii)
예를 들어, 세례와 마찬가지로, 하느님께서 결정하시는 일은 단 한번으로 종결되므로, 그리고 

(iii)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따라서 최고의 권위를 가지신 하느님에 의하여 이미 결정난 것 무엇이든지간에, 유일하신 하느님이 아닌, 다른 어떠한 사물(여기에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교도권도 포함됨)들에 의하여 결코 변경되거나 변화될 수 없으므로,
 
(iv) 따라서, 심지어 교회의 교도권의 권위조차도 그리스도와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쌓아 놓은 "하늘에 있는 공로들" 자체를 지상 교회 혹은 영옥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감히 양도할(transfer)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천상 상급인 공로들 자체가 지상 교회 혹은 영옥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양도되는 순간에, 모든 권위의 원천인 하느님께서 이미 인정하여 결정하신 바인 천상 상급인 공로들 자체가 변경 혹은 변화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v) 따라서, 또한 심지어 교회의 교도권의 권위조차도 그리스도와 "하늘에 있는 의로운 자의 영혼들"이 쌓아 놓은 하늘에 있는 공로들 자체를 지상 교회 혹은 영옥 교회의 구성원들에게 감히 나누어 줄(dispense, distribute, give, provide) 수 없습니다.
  
(vi) 그러나, 보속의 경우는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다음의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471항을 보십시오:

출처: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발췌 시작)

1471 교회 안의 대사(大赦)에 대한 교리와 관습은 고해성사의 효과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대사란 무엇인가?

“대사란, 이미 그 죄과에 대해서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暫罰]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활용한다.” 79)

“대사는 죄 때문에 받게 될 잠시적인 벌을 부분적으로 면제하느냐, 전적으로 면제하느냐에 따라 부분 대사와 전대사로 구분된다.” 80)“어느 신자든지 자기 자신을 위하여 대사를 얻을 수 있고 또는 죽은 이들을 위하여 활용할 수도 있다.”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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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바오로 6세, 교황령 Indulgentiarum doctrina, Normae, 1: AAS 59(1967), 21면.
80. 바오로 6세, 교황령 Indulgentiarum  doctrina, Normae 2: AAS 59(1967), 21면.
81. 교회법 제994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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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vii) 따라서, 우리말본 가톨릭 교회의 여러 문헌들(예를 들어, 여기에는, 연도책자도 포함)에서, "공로를 나눈다"는 표현들은 모두 "보속을 나눈다"는 표현으로 조속히 바로잡아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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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성에 소요된 시간: 약40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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