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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이레네오의 수험 이론 - 반 이단론 III에 의해서, 김태완 신부 [교리용어_recapitulati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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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27 ㅣ No.124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발행 "사목" 잡지 1987년 7월 112호에 실린, 김태완 신부님(원주 용소막본당 신부)의 "성 이레네오의 수험 이론 - 반 이단론 III에 의해서" 제목의 논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영어로 "recapitulation"로 번역되는 표현을 "수렴(收?)"으로 용어 번역하셨습니다.

감사의 말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에 대하여 직접 좋은 가르침들을 주셨던 시기에, 그리고 이어서, 1992년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초판이 발행되기 이전인, 1987년에, 국내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위하여 리옹의 성 이레네오의 "recapitulation" 개념에 대한 대단히 유익한 "내용 요약 논문"을 게재해 주신 김태완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출처 1: http://samok.cbck.or.kr/content/PrintArticle.asp?idx=5198 
출처 2: 여기를 클릭하십시오

게시자 주: 아래의 발췌글 중에서 굵게 표시한 것은 독자들의 편의를 위하여 필자가 한 것입니다.

(발췌 시작)

사목, 1987년 7월 112호

성 이레네오의 수험 이론 - 반 이단론 III에 의해서

김태완 (원주 용소막본당 신부)

서 론
啓示된 眞理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출현 이후 모든 시대의 쟁점이 되어오고 있다. 직접 목격 증인의 시대인 使徒時代가 끝나고 우리 세대와 다를 바 없는 간접 목격 증인의 시대인 초기 敎父 時代도 예외는 아니어서,특히 2세기 말 護?論者였던 성 이레네오는 예수 신앙을 거부하는 이단에 맞서 예수에 대한 信仰宣布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오늘도 살아 있는 말씀을 선포하였다. 그의 대표적 저서인「反異端論」 (Adversus Haereses) 은 그의 사상을 확실히 드러내는 훌륭한 신학적 작품으로 리옹의 주교는 이 작품 안에서 자신의 대표적 이론인 收敏理論을 폭넓게 전개 하고 있다.

이 작업의 기초는「반 이단론」3권에 의해 구성될 것이다. 먼저 수렴이란 용어의 의미와 성 바오로의 사상에서 기인한다고 보는 "收?"이란 낱말,이 안에 요약된 신학 내용을 간파하려고 노력해 보겠으며, 그 다음 넓은 의미로서 이레네오에게 있어서의 수렴에 대한 신학을 언급하겠다. 그런 다음 하나의 텍스트에 국한될 구조를 분석하며 수렴에 대한 개인적인 사고를 시도하여 볼 것이다.

I. 收?과 성 바오로

1. 收?이란 用語의 意味

이 단어는 그 기원을 회랍어에서 찾을 수있다. 희랍어 단어인 "如ατεεζ?α^αΥΟΜΥ?" 는 "우두머리를 이루는 것","한 물건의 정상" "사업의 성취"를 뜻하는 "/c#(Uaiw”과 "정상”,"-의 위에"를 뜻하는 전치사 "?να"와의 합성어이다. 이 단어가 암시하는 바 또는 그 의미는 풍부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 단어는 성서상에 아주 희귀하게 사용되며 독자적인 문학적 기원을 가지고 있다." " 이 용어는 다음과 같은 뜻을 의미 한다. "어떤 것을 정상이나 꼭대기로 가져가는 것,요약하는 것, 완전한 전부를 주는 것, 또한 손에서 한 부분을 나누는 것" 등등이다. 그러나 첫째의 의미가 지배적이다. 그리고 또한 이레네오의「반 이단론」에서도 "포괄적으로 다루다"(κεφαλαω?ν) 라는 부정형 동사의 의미를 구별하기란 매우어렵다. 이레네오,보Η. V. 29,2에서는 모든 것을 집합시키는 의미로 "?νακεφαλΜφσ?ζ", "ανακεφαλα?-狄?·를 사용한다. 수렴이란 모든 단어의 의미 중 刷新의 내용을 포함하게 될 때 이 단어는 새롭게 한다는 직접적인 의미를 지니게 된다. 예를 들어 성 이레네오의 Α.Η. III. 18,1,; 21,10; 22, 1; IV. 38,1; V. 1,2에서다. "그는 긴 인간 역사를 그 안에 수렴하였고 구원을 요약해서 마련하였다"III. 18,1). "역시 그 자신 안에 아담을 수렴하며, 말씀이 아담의 수렴인,이 代를 이어받게 되는 것은 바로 동정녀인 마리아에게서다"(III. 21,10). "그에 의해 만들어진 순수한 작품을 그 안에 수렴하며 하느님의 말씀이 된 것은 바로 같은 것이다"III. 22,1). "그가 자신 안에 모든 것을 수렴하고 우리에게 왔을 때, 그가 그 것을 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것이 아니다"(IV. 38,1). "그가 만들어진 옛 작품을 그 안에 수렴하지 않았다면 우리를 구속한 피와 살은 사실상 가지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V. 1,2).

여기서 要約하는 의미가 쇄신의 것보다 더 강조되어 표현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우리는 "수렴하다"라는 동사의 목적어,즉 긴 인간 역사, 아담, 그의 작품,모든 것 등에 대한 표현에서 또 다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이러한 표현도 요약한다는 의미 뿐만 아니라,모든 만물의 머리요 으뜸인 자에게로 결합한다는 의미를 보여준다. 이 단어는 그리스도교 지역에서 사용되던 것으로서,이레네오가 이것을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는 이 것을 자신의 救援論의 주축으로 삼아서 처음으로 보여 주었다.
수렴하다(?ναχε^αλα?해似)는 동사의 구원적인 사용은 사실상 성 바오로에게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2) 수렴에 대한 이레네오의 사상을 다루기 전에 먼저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수렴"이란 단어는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대략적으로 언급할 필요가 있겠다. 그 의미를 우리 는 에페소서 1장 10절의 찬미가에서 찾 을 수있다.

2. 에패소서 1,3143)

이것은 祝福의 찬미가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 찬미가의 구조는 형태와 단어에 있어서 일정한 특수성을 보여주고 있다. 에페소 1,3-14은 자신 안에 계획 된 구원의 신적 계획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바오로 서간의 구조에 따 라 의례적으로 등장하는 은총의 행위 대신,아마도 세례의식(1,3-14)에서 따온 것으로 보이는데,구원에 대한 신적인 계획을 주제로 도입하고 있다,

이 찬미가는 모두 여섯 단계로 발전 되고 있다. 즉 서론 부분,선택,구속, 계시, 유대인들을 부름,이방인들을 부름이다. 서론 부분(1,3)은 靈的인 祝福 이다. 둘째 단계인 選擇은, 4절과 5절 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뽑으시는 선택은 사랑의 행위이며,선택받은 자들은 그 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세번째 단계인 救續은 성자의 피로써 이루어진다(1.7ㅡ8). 네번째 축복은 사도들에게 하신 당신의 啓示이다. 완성된 시간이 이르렀을 때 인간 세상뿐만 아니라 천사의 세계도 포함해서 모든 창조는 그리스도의 권위 아래에 있다 (1,9-10). 10b절에서 희귀한 동사인 "수렴하다" (ανακεφαλα??σασθα?) 를 볼 수 있다. 이 동사가 우리에게 많은 관심이 있는 것이므로 뒤에서 구체적으로 분석 하도록 하겠다. 다섯번째 단계로 유대 인들을 부르는 단계가 나온다(1,11-12). 선택된 백성은 구원자에 대한 기다림과 구원의 희망을 생생하게 간직하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었다. 여섯번째 단계는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구원을 나누기 위해 이방인들을 부르는 장면이다(1,13-14).

설명하기 아주 어려운 의미를 지닌 동사 "수렴하다" (ανακεφαλαωΟσασθα?)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 이 단어를 서술하기 위해 나름대로 이론을 정립한 세 부류의 성서주석가들을 다루어보겠다.4)

첫 번째 부류는 로마 13,9,IV. Esdras 12,25과 같은 의미로 수렴이란 단어의 의미를 해석한다. "간음하지 말라… 네 이웃을 네몸같이 사랑하라는 이 한마디 로 요약될 ^τ(?νακεφα?·.αω?τ;α?) 있읍니 다”(로마 13,9). "그들은 그의 죄를 새롭 게 하는(recapitulabant) 자들이다”(ESD 12,25). Esdras 12,25에서는 가득찬 죄와 불충실에 관계된 것으로 종말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 부류의 주석가들은 수렴 (recapitulatio) 이란 단어 를 "要約하다" 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번째 부류는 Vulgata 에 의해 제기된 생각으로, 여기서는 다시 시작하다 (instaurare) 혹은 개척하다(restaurare) 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새롭게 하다”라는 의미를 보여준다. 떼르들리아누스 역시 같은 의견을 보여준다.5) 이러한 번역은 후에 예로니모,암브로시오 그 리고 토마스 아퀴나스 때에 받아들여졌다. 이들은 "?να"라고 하는 전치사에 의해 영향받았음이 확실하다. "?να"라는 전치사는 "반복"이나 "새롭게 함"을 뜻할 수있다.6) 이 것은 "수렴"이란 단어에 새롭게 한다는 의미가 있음을 뜻 하는 것이다. 그러나 로마 13,9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 계명을 새롭게 한다는 뜻으로 말하고자 했을까는 만무하다. 그러므로 바오로가 "새롭게 하다"라는 의미를 이미 알았다거나 에페소 서간의 저자가 바오로에게 이러한 뜻을 알려줄 수 있었다는 것은 증명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부류가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에 의해 모든 우주와 교회의 으뜸이 되었 다는 것이다. 에페소 1,10에서 "하나의 으뜸인 그리스도에게로 모든 우주를 모은다"라는 구절은 그리스도를 모든 만물의 으뜸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모은다(?νακε솬αλα?οδσασ^α?) 라는 동사는 그리스도에게 "으뜸,우두머리"라는 칭호를 부여한다. 그래서 "수렴"이란 단어는 결국 하나의 으뜸,우두머리 에게로 모인다라는 의미로 번역하여야 한다.

사실상 에패소 1,10에서 "수렴하다" 동사에 알맞는 의미를 선택하기란 무척 어렵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의 사상은 수렴에 관한한 로마서에 잘 표현되어 있다. 로마 13,9에서 동사 "요약되다" {?νακεφαλαω?τα?-fe· "새롭게 하는 의미보다는 오히려 "포함하다"라는 의미가 지배적이다. 바오로 사도가 모든 계명이 이 말씀 안에 요약된다고 이야기할 때, 그것은 모든 계명은 사랑의 계명 안에 포함된다는 이야기이다. 마태오 복음서 (22,37-40)도 이레네오가 언급하는 제 2의 법에 대해서 명확히 해준다. 사랑의 계명 안에 모든 법과 예언자들의 말씀이 포함된다. 그러나 골로사이서와 고린토 전서에서 "수렴”에 대 한 바오로의 사상은 로마서 13,9의 의미와는 아주 다른 면을 보여준다. 즉 그리스도는 당신의 몸인 교회의 머리이며(골로 1,18 참조),모든 만물, 천사, 인간,영혼이 없는 창조물들의 으뜸이다. 왜냐하면 모든 만물이 그 안에, 그를 통해,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으며 보이지 않는 하느님은 그를 통해 모든 것을 창조하였기 때문이다(골로 1;15-17 참조). 또한 모든 인간의 으뜸은 바로 그리스도이며,여자의 으뜸은 바로 남자 이고 그리스도의 으뜸은 하느님이시다 (고린 11,3 참조).

이렇게 볼 때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에페 1,10)라는 구절은 "하느님께서는 그를 교회의 머리로 삼으셔서 모든 것을 지배 하게 하셨읍니다”(에페 1,22)라는 구절과 연결되며, 따라서 만물은 으뜸,즉 우두머리를 위해 복종하는 위치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으뜸에게로의 완전한 종속은 으뜸인 자와 교회와의 협동 체제 안에서 그 진가가 발휘된다. 우리는 "수럼"이란 단어를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바오로가 "수렴하다"라는 단어를 새롭게 하다라는 의미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의미도 배제하지는 않았다.

II. 收?에 대한 神學

1. ㅡ般論 : 收效

"이레네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론의 핵심은 바로 그의 수렴이론이다. 이 이론은 반 이단론의 진전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레네오는 바오로 사도의 이론을 체택하면서 예수그리스도라는 인물 안에서 이 사상을 주목할만하게 발전시키고있다."7) "예수는 사람이 되었다. 하느님의 계획은 신과 인간의 만남 속에 드러났다. 이 것은 인간의 원초 상태에로의 回復이며,그리스도의 順從으로 말미암아 인간성에 주어진 새로운 출발이다."이레네오는 불순종과 순종, 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하와와 마리아 간에 평형 형태를 사용 하고 있다. "그것은 約束과 完成의 일치된 신학적 연결로서 실추와 동시에 회복의 인간인 것이다.”9)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는 첫 인간인 아담의 불순종으 로 인해 어지럽게 된(불협화음화된) 조화를 복원한다. 이 것은 십자가 위에서 죽음으로 인해, 새로운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죄의 추락에서 인간을 이끌어 내며 완성을 가져왔음을 의미한다.

이레네오는 이러한 발전단계에 마리 아의 특별한 참여도 역시 거론한다. 이 것은 "이 몸은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저에게 이루어지소서,라고 말한 내용에 근거를 두고 있다. 불순종한 하와가 자신과 인간역사를 통틀어 죽음의 원인이 되었지만, 반대로 마리아는 순종하여 자신과 모든 인간종족을 위해 구원의 원인이 되었다. 이것은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 하와와 마리아를 연결하는 반대의 대응관계를 말한다. 순종으로 인해 제 2의 아담과 새로운 하와는 첫째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으로 인해 손상된 인간성을 다시 새롭게 한다. 바꾸어 말한다면, 아담과 하와의 불순종이 죽음을 가져왔지만,그리스도와 마리아의 순종은 생명을 가져왔다. 이와 같은 대응개념은 로마서 5장 12절과 19절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 사람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죄는 또한 죽음을 불러들인 것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게 미치게 되었읍니다" (로마 5,12).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과는 달리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될 것입니다"(로마 5,19).

그리스도는 그의 순종으로 인해 아담에게 생명을 가져다주었고 아담은 그의 불순종으로 인해 죽음을 초래하게 하였다.「반 이단론」에서는 같은 표현을 볼 수가 있다. "그의 순종으로 그들의 불순종을 속죄하며 …"에. 18,6),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죄가 이 세상에 들어 왔고, 그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만연하였듯이,한 사람의 순종으로 정의가 들어와 전에 죽었던 인류에게 생명의 과일을 주었다"(III. 21,10).

이로부터, 우리는 불순명과 순명,죽음과 생명 간의 대비에서 드러나는 몇 가지 점을 주목할 수가 있다. 첫째는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온 하느님과 같이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에게 從屬되어 있는 존재 인 것이다. 우리는 창조물이 결코 창조주의 본질을 취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닌 不完全한 존재라는 이 사실이 하나의 질문을 유발시킨다. 즉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에, 하느님에 의한 인간 창조 때부터 그의 불순종으로 인해 죽음으로 이끌려지도록 숙명적으로 되어 있었는가? 사실,인간은 그의 창조주인 하느님에게 순종할 수 있었을 것이고 그로 인해 하느님에 의해 주어지는 영원한 생명을 간직할 수 있었을 것 이다. 이 점에 있어서 인간의 自由問題 가 제기된다. 분명한 것은 인간은 죽음을 가져왔지만 하느님께 순종함으로써 그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는,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 니지만 自由로운 존재이다. 하느님이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였을 때 그에게 인간과 동물 사이에 구별을 지어주는 자유를 주셨다. "너는 이 동산에 있는 나무 열매는 무엇이든지 마음대로 따먹어라. 그러 나 善과 惡올 알게 하는 나무 열매만은 따먹지 말아라. 그 것을 따먹는날,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 하느님도 아담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경고하며 그것을 어길 때 돌아오는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은 일러 주신다. 그러나 아담은 결국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먹게 되고 그로 인해 죽음을 가져오게 된다, "그는 악의 노예가 될 뿐만 아니라, 악의 권세 아래 떨어져 구원될 수 없게 되었다”(III. 18,2). "바로 주님으로 인해,스스로 구원될 수 없었던 인간들이 구원을 받게 되었다” (III. 20,3). 바오로 사도도 인간의 구원에 대한 무능력을 이야기한다. "나는 내 육체 안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안다"(로마 7,18). 이로써 바오로는 선한 것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지적한다.

따라서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죄의 권세 아래 노예가 됨으로 인간 스스로는 풀 수 없는 매듭이 그리스도로 인해 풀어졌다. 하느님에 의해 마리아로부터 땅의 본질을 이어받은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模相"(창세 1,26)이 인간과 비슷함을 간직하기 위해 인간이 되셨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만일 그리스도가 육체의 본질인 인간 존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는 인간도 하느님의 아들도 될 수 없었다"(III. 22,1). 이미 우리가 살펴 본 바와 같이, 그리스도가 육체의 본질을 취하셨는데 이렇게 육체의 본질을 취한다고 하는 것은 아담을 범죄 이전의 상태로 재위치시키기 위한 조건이었다. 그리스도는 마리아로부터 인간 육체를 받으면서, 그를 통해 창조된 순수한 작품을 구원함과 동시에 땅에서부터 나온 육체를그 안에 수렴하였다 (III. 22,2).

그런데 여기서 왜 그리스도는 이와같 이 인간족보를 따르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된다(마태 1,1-17). 마태오와 루가 복음사가는 그리스도의 자세한 족보를 소개하고 있다(루가 3,23-38). 이 두 복음사가가 그리스도의 족보에서 추측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종말을 태초에 다시 연결시키며 모든 민족, 아담으로부터뿐만 아니라, 아담까지도 포함된 모든 세대를 자신 안에 수렴한다" (III. 22,3)는 것이다.

로마 5,14에 의하면 하느님의 계획은 벌써 "장차 오실 분의 모습"이라는 표현으르써 미래의 人間性의 調和를 겨냥 하고 있다. 사도 바오로는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아들이 장차 취하게 될 미래의 인간성의 조화를 말씀이 미리 아담 안에서 윤곽을 드러내었다" (III. 22,3)라 jl 이해·§?-:]1;4 H^K

그러므로, 하느님은 결국 靈的인 인간에 의해 구원 될 肉的인 인간을 첫번 째로 조성하셨고,동시에 성자의 人間 化103 이유는 추락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계획으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 확실히 드러난다. 아담이 죽음의 근원이 되었다면,새로운 아담은 그 스스로 아담의 죄로 인해 죽었던 모든 이들이 영원한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며 삶의 근원이 되었다. 이 점에 있어서 루가 복음사가는 하와와 마리아의 비교를 보여주고 있다(루가 1,38). 즉 하와는 그녀의 불순종으로 죽음의 원인이 되었으며 이것은 구원의 원인이 되는 마리아의 순종과는 대치되는 것이다.

이레네오 역시 아담과 새로운 아담, 하와와 새로운 하와,죽음과 생명 간의 이질적인 관계를 보여주고 있지만 동시에 원초적인 것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로 인하여 인간은 원상태로 복귀하였고 구원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레네오에게 있어서 부정적인 측면 즉 하와, 아담, 죽음 등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새롭게 된다는 의미에서 살아 숨쉬는 긍정적인 면으로 대치된다.

2. 하느님과 人間

우리는 먼저 이 단락에서「반이단론」 III권의 둘째 단락에 대한 구조를 광범위하게 이야기 할 것이다. 왜냐하면「반 이 단론」ΠΙ권의 둘째 단락의 구조에 따른다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연결, 즉 수렴이론에 밀접하게 관계된 연결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다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인간 간의 연결을 부정하는 이단들,즉 二元論者 들이 주장하는 것,靈知主義者들이 부정하는 것 그리고 에비온파들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보는 바를 다를 것이다.

먼저 III권의 둘째 단락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이원론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의 이론에 반대하는 내용들이다. 2장은 에비온파들에 대해 다루어져 있으며,3장에서 이레네오는 그의 근본 사상인 수렴이론을 聖書的證言에 입각해서 전개하고 있다.

이레네오는 1장 서두에서 人間化의 實在를 거부하는 영지주의 이론을 단죄하며 (ΠΙ.16,1) 성서의 증언을 인용하고 있다. 즉 요한,마태오,바오로, 마르코 그리고 루가 등이다(III. 16,2ㅡ9). 그는 성서 인용을 근거로 이단들의 주장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의 인간적 탄생의 이 유와 육체의 취함을 전개 하면서 성자의 인간화에 대한 교회의 사상을 수호한다 (III. 17,18,1-6). 1장 끝부분은 주로 아담의 수렴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2장에서 이레네오는 이단에 대한 단죄,성서에 근거를 둔 자신의 논거 등으로 1장에서의 전개 내용과 같은 내용을 수록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는 엠마누엘과 요나의 상징을 도입하고 있다. 이렇게 인간 본질을 마리아에게서 취한 그리스도의 인간화 이유를 증명한 후, 제 3장에서는 아담의 수렴을 다시 한 번 증명하고 있다,

「반 이단론」ΠΙ권의 둘째 단락 1.2장 에서 이레네오가 주장하는 바는 세 가지 이단들에 반대하여 참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인간인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원에 관한 것이다. 이레네오가 단죄 하는 세 가지 이단들이란 다음과 같다.

첫째로 二元論者들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우주의 창조자는 천사 계급 중의 하나이거나 표출 계보에 의해 이 세상에 내려온 자로서 참된 하느님에 매여있는 존재이다. 하느님과 세상 간에는 무한한 간격이 있기 때문에 이 세상에 직접 관여하는 하느님은 참된 하느님이 아니다. 또 육체를 악한 본질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리스도가 육체를 취한 사실도 거부를 한다. 결국 이원론자들은 그리스도의 神性만을 주장하게 되는 오류를 범하게 된다.

둘째는 그리스도의 인간화 실재를 부정하는 靈知主義者들이다. 이들은 그리스도의 예수 혹은 예수와 그리스도라는 식으로 예수와 그리스도를 구별한다.
영지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바를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밝힐 수 있다. "다른 존재는 그리스도로서 그는 플레로마 (Pleroma) 의 정립을 위해 모노게네스 (Monogenes)에 의해 파견된 존재이며, 다른 존재는 救援者로서,그는 성부의 영광을 위하여 보내어진 존재이고 마지막으로 調和의 예수는 고통을 당하였지만 그리스도의 모습을 지니며 구원자는 플레로마(Pleroma) 상태로 올라갔다. (111.16,1). 영지주의자들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본성을 배분하면서 하느님의 인간에 있어서 부정적인 자유를 겨냥하고 있다. 하여튼 그들은 그리스도가 인간 구원을 위하여 神人으로서 육체를 취했다는 사실을 부정한다. 이 것은 바로 그리스도를 신성으로만 제한하는 것이고 그리스도의 권한을 축소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이론에 따른다면,인간이 인간화한 성자로부터 기 인되 는 자유의 한 부분을 소유한다는 사실은 불가능하게 된다.

셋째는 에비온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실체와는 벗어난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그리스도는 단지 하느님의 창조물일 뿐이지 성부의 아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예수는 단지 요셉에 의해서 태어난 인간일 뿐이다"(III. 19,1). 이 것은 예수가 하느님에 의해서 나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단순한 창조물이라는 이론으로써 성자의 신성을 부인하며 예수의 실제 人性만을 주장하는 결과가 된다.

이상 세 가지 부류의 이단들이 주장하는 이론을 살펴보면서 우리는 몇 가지 비판적인 관점을 유추해낼 수 있다. 먼저 이원론자들은 하느님의 아들인 그리스도의 人性을 부정하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바가 사실이라면 인간의 죽음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이다. 또 죽음 후에 어떻게 되는가라는 과정 설명도 문제가 된다. 이원론자들이 주장하는 이론은 사실상 창조주와 창조물과의 모순적인 관계를 이유로 들어 어떻게 창조물이 동시에 창조주가 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만일 이 의문에만 집착되게 될 때, 인간의 하느님에 대한 아들 관계를 찾아낼 수 없고 창조주와 창조물 간에는 무한의 거리가 있게 되어 통교할 수 없는 관계로 되어 버린다.

에비온파들의 주장에 의하면,예수는 한낱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에 불과하다. 이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것으로 구원의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 만일 예수가 한 인간에 불과하다면, 로마 5,12의 말씀 대로 한 인간이 죄를 지어 이 세상에 죄가 들어왔고 또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죽음이 온 인류에 미치게 됨으로써 죽음이 태초부터 인간을 지배하는 세상이 되어버린다. 이로써 죽음을 이기고 모든 인간에게 생명을 가져다 줄 어떤 존재의 필요성에 직면하게 되는데 사실상 죽음을 이기고 부활한 인간이 존재하느냐 하는 것은 에비온파들이 해결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모든 인간들은, 예수 그리스도까지도 포함해서,죽음의 운명에 놓여 있지만 그리스도는 3일째 되던 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셨다. 이 것이 바로 그의 신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 부류의 이단들이 보여주는 이론은 한결같이 성서에 계시된 歷史的 인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있다. 이단 추종자들은 예수를 역사내의 실재 인물로서 보다는 가공인물로 묘사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서가 인간의 과거 역사뿐만 아니라 미래 역사까지도 제시한다는 것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성서에 계시된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자세는 하느님 편에서의 "구원할 의지"만을 내세우는 주장에 불과할 뿐이고,인간 편에서의 "구원될 의지"는 제외시키는 이론이다. 성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말씀,인간,하느님의 유일한 아들로 묘사되어 인간 구원의 구심점이 되고 있다. "말씀이 참 빛으로서 모든 사람을 비춘다”(요한 1,9 참조).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요한 1,14). "이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다"마태 3,17; 마르 1,11; 루가 3,22; 요한 1,32 참조).

3.「반 이단론」ΙΠ권

(1) 텍스트 선택

먼저 텍스트를 선택하는 것이 우선되는 일이다. 그 것은 선택된 텍스트를 분석함으로써 이레네오의 수렴이론에 관한 정확한 개념,혹은 지식의 맥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가 앞으로 다룰 내용에 상응하는 텍스트를 선택하자면「반 이단론」III권 23,1-8을 들 수 있다. 이 텍스트는 우리가 이미 수렴에 관한 일반론에서 "수렴"이란 단어의 의미를 종합하고 결론짓는 구절로 소개된다. 이레네오는 이 구절에서 아담의 죽음을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그는 먼저 인간의 불순종으로 인한 근본적인 책임자를 지적하며 성자에 의한 아담의 구원 이유를 도입하고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결과를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아담의 구원으로 이끈다. 다음,리옹의 주교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죽음으로부터의 전환점으로 놓고,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종합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말한 그리스도 "復活의 승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으로부터 生命으로의 승리이며 하느님의 자비하신 모습 이 드러나고 인간을 생기있게 해주는 선으로서의 歷史的이고도 力動的인 사건인 것이다. 텍스트 마지막 부분에서 이레네오는 역시 아담의 구원을 부인하는 이단을 단죄하고 있다.

(2) 텍스트에 대한 연구

먼저「반 이단론」ΠΙ. 23»1-8은 내용 상세 부분으로 나누어 질 수 있다.

III. 23,1-2 : 아담의 구원 23,3-7 : 하느님 의 자비 23,8 : 타티 아누스의 오류.

① III. 23,1-2

이 택스트에서 이레네오는 아담의 죽음에서 구원의 필요성으로 인간의 전환을 꾀한다. 그는 調和 (dispositio, οικονομ?α) 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보다 보편적인 전망에서 이 용어의 의미를 확대시키고 있다. "조화라는 것은 그리스도의 오심 뿐만 아니라,이 오심을 드러내주는 구약성서의 암시 말씀 그리고 창조 이래 그리스도에 의해 실현된 하느님의 모든 계획을 뜻한다."1 "특히 유의할 점은 이 텍스트에서 ''조화"라는 단어는 "수렴” 이란 용어와 함께 소개되고 있다는 점 이다. ''대단히 거대한 4조화,를 수렴하면서.."(III.3,1). 이 "조화"라는 개념이 다른 곳에서는 聖靈에 대한 지칭이 기도 하다. ''예언자들에 의해 하느님의 조화를 예언한 성령에게 …,'(예) 반 이단론 III에서는 다른 표현과 어울려져서 나름대로의 뜻을 부여하고 있다, 예 를 들어 "肉化의 조화”(III, 16,3),"苦難 의 조화” (III. 18,4) , "聖靈의 조화"(ΠΙ. 17,4), "聖子의 조화"(ΠΙ. 13,1) 등이다. 이레네오는 이 용어틀 여러번 사용함으 로써 구원 역사의 모든 계획을 지칭하 는 의미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 근본적인 요소로 이 단어를 이해하는 듯하다.

III. 23,1에서,이레네오는 인간 구원의 조화,즉 성부의 뜻에 일치하는 "조화"로서 이 용어를 강조하고 있다. 이 것은 바로 하느님께서 인간과 가지고 싶어하는 관계 양식,즉 말하자면 성부의 성자께 대한 관계를 지칭하는 것이다. 바로 이 때문에 이레네오는 그의 저서「반 이단론」이을 통하여 "한 분의 하느님,한 분의 그리스도"라는 명칭으로 소개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ㅡ致를 발전시켜 나가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여기서 "조화"라는 용어는 모든 인간 구원의 역사를 내포한다고 볼 수 있다. 타락한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의해 다시 원상태로 회복된 것은 바로 하느님과 인간, 성부와 성자 간의 조화인 것이다. 그러므로 상반 관계에 놓여 있는 순종과 불순종,첫째 아담과 둘째 아담, 하와와 마리아, 죽음과 생명 등이 성부와 성자의 조화에 참여하게 된다. 따라서 "조화"라는 개념은 수렴이란 개념을 내포한다고 보여진다. 하여튼 이레네오는 아담의 추락 안에서 인간 구원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는 인간을 자신의 죄 상태 에 영원히 버려질 수 없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이 자신의 죄로 인해 죄의 상태로 추락되었지만 하느님은 "그리스도의 모상,모든 육적인 모상으로 만든 인간을 죽음의 상태로 내버려두지 않으신다. 그 것은 바로 죄의 책임이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담을 유혹한 악마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M. Harnack 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악마와의 대비 관계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포로가 된 人間性을 위해 악마에게 지불된 포로 석방금이다."13) 이 점에서는 이레네오도 같은 의견을 보이고 있다. 아담은 죄로 인해 악마의 포로가 되어 악의 권세에 노예가 되었으며 악마는 정의에 반대되는 세력이다. 하느님은 정의롭게 권능을 떨치시며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그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다. 그래서 결국 "그리스도는 그 자신 안에서 모든 정의와 믿음을 종합할 것이다. "13)

이렇게 볼 때 구조적인 면에서 하나의 일정한 도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III. 23,1에서 아담은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으로 인해 죄의 상태로 추락되었다. 그러나 죄의 상태로 떨어진 아담을 버려두지 않고 하느님의 선한 의지는 작동된다. 그래서 제2의 아담인 그리스도가 등장하게 되고 인간 구원의 시대가 열린다. 이 것을 도식으로 표현하자면 아담의 범죄ㅡ하느님의 선한 의지ㅡ제 2의 아담ㅡ속죄의 형태로 구성된다. 이 것은 바로 하느님과 인간과 의 조화를 뜻한다. III. 23,2는 23,1의 도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텍스트라 볼 수 있다. 아담의 추락된 상태를 전쟁에서 적군이 승리함에 따라 노예화 된 상태로 비유하면서 이 상태를 아들과 아버지 관계로 승화시키며 모든 인간의 아버지인 하느님의 입장에서 노예가 된 아들을 그냥 버려두시지 않는다는 혈연관계로 표현하고 있다. 이 점에서 구원의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② III. 23,3-7

이 텍스트에서 이레네오는 반복해서, 죄로 인해 첫째 아담의 즉음이 초래되었음을 설명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선하셔서 인간을 지주하시지 않고 오히려 인간의 범죄의 원인인 악마를 저주의 대상으로 삼고있다. 이같은 도치법에서 이레네오가 얻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구원 가능성이며 원초적인 죄의 근원이 무엇이냐 이다. 사실상「반 이단론」 III은 근원적인 죄의 책임자를 밝혀냄으로써 인간의 범죄로 인한 추락 상태를 보다 옹호하는 입장에 있다고 보아야겠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한 신과 인간의 연결점이 되며, 또한 인간은 하느님 앞에 자신의 무력함을 드러내어 인간 편에서의 하느님의 필요성을 정당화시킴을 볼 수 있다. 특히 이레네오가 이 텍스트에서 모든 이단의 제 종류를 배교의 근원으로 보는 점은 주목해야 할 일이다. 이단들을 "배교의 창시자"로 보는 이레네오의 태도는 자신의 신앙뿐만 아니라 당시 시대상황의 절박성도 함께 표현해준다 하겠다.

아담을 카인의 경우와 비교하면서 이레네오는 두 사람의 근본적인 동질성과 상이점을거른한다. 이 둘의 同質性이라 함은 아담이나 카인이나 모두 죄에 떨어진 상태로 하느님과의 단절 상태를 드러 낸다는 점이고,相異點이라 함은 아담은 죄의 상태로 떨어졌지만 곧 하느 님께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자신의 몸을 숨겼고(창세 3,9), 자신의 몸을 나무 잎으로 가렸다(창세 3,9). 반면에 죄를 범한 후에도 카인은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보다는 자신의 거만한 대답으로 자신의 잘못을 점점 배가시키는 일을 저지른다(창세 4,9). 즉 이 둘의 차이는 하느 님께 대한 두려움이 문제가 된다. 이렇게 아담과 카인의 상이점에서 이레네오는 보다 아담에게로 근접하는 태도를 보여 人間救援의 必要性을 전개하고자 한다. 그것은 그가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지혜의 시작"으로 보는 이유 때문이다 (지혜 1,7; 9,10; 시편 110,10). 즉 하느님을 두려워 한 아담은 카인의 경우와는 달리 보다 지혜로운 행동으로 인하여 회개로 초대받았음을 의미한다. 여기에 선하신 하느님의 개입의 가능성을 개방하고 있다. 하느님의 善性은 아담의 죄의 위치에 재배치되고 아담의 회개로 인해 성부와 인간과의 父子 관계는 성립된다. 이 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아버지이신 성부에게 순종함으로써 보여준 성부一성자 관계의 암시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전개 방법 가운데,이레네오는 인간 해방을 바로 죽음의 멸망임을 밝히면서 바로 그리스도가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열고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위한 생활이 되도록 人間化하였다는 인간화 실재 이유를 분명히 한다. 이렇게 볼 때 이 텍스트는 앞서 거론한것 과 같은 순서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다. 이레네오는 III. 23,1-7의 텍스트에서 아담의 죄의 상태로의 추락을 때문에"라는 또 다른 죄의 책임소재를 밝힘으로써 인간의 구원 가능성을 열어놓았으며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의 인간화, 그의 고난, 죽음, 부활의 덕분으로 죄의 결과인 죽음의 멸망을 가져왔다고 밝힌다. 죽음이 아담뿐만 아니라 그 후의 모든 인간들에게 미친 것 같이(로마 5,12) 그리스도의 구원이 모든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준 것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이레네오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의 수렴이라 함은 과거의 아담의 죄와 그 외의 모든 인간들? 그리고 미래의 모든 인간의 죄의 결과인 죽음에 그리스도로 인한 새로운 생명의 대치인 것이다. 하느님의 善性으로 인한 그리스도의 神人으로의 인간화 사실이 모든 인류 역사를 하느님에게로 귀결시켜주는 사건이 되고 있다. 이 것은 마치 그리스도로 인하여, 깨어진 질그릇이 다시 원형의 상태로 환원됨을 의미하며 이레네오의 표현대로 만들어진 "가구"의 역할을 통해 하느님의 선성을 표현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다.

③ III. 23,8

이 텍스트의 마지막 부분에서 이레네오는 또 하나의 오류인 타티야누스의 이론을 단죄하고 있다. 타티아누스는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되찾은 아담의 생명을 부인한다. 그는 논증이 되는 근거를 바오로서간에서 찾고있는데, "아담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죽는다"(1고린 15,22)라는 표현을 인용해서 모든 사람,아담까지도 포함해서 죽었기 때문에 하느님 은총의 수혜 대상자가 없음을 아야기한다. 따라서 아담의 구원은 인정될 수 없음을 밝힌다. 이러한 논리 앞에 이레네오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살게 될 것이다”(1고 린 15,22)라는 논거를 내세우며,아울러 "법이 생겨서 범죄는 늘어났지만 죄가 많은 곳에는은총도 풍성하게 내렸다" (로마 5,20)라는 이유를 들어 죽음이 결코 하느님의 은총을 능가할 수 없음을 증거한다. 이 것을 통하여 볼 때 수렴이라는 용어의 의미는 죽음의 생명으로의 전환을 뜻한다. 이로써 인간의 구원 역사는 그리스도 사건의 정점을 향해 모여지게 되는 것이다.

結 論

이 조그만 연구를 통해 이레네오의 저서인「반 이단론」III권에서 수렴이론은 바로 리옹의 주교가 2세기에 이단과 맞서서 주장한 그의 신앙이었으며 구원 역사에 대한 그의 성서 해석법이었음을 알 수 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느님과 인간과의 父子 관계가 깨어지고 인간에게는 풀 수 없는 매듭이 지어졌지만, 선하신 하느님은 죄의 책임자가 악마이기에 인간을 죄의 상태에 그냥 버려두지 않으시고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열어 당신의 아들을 파견해 주신다. 성자의 인간화는 하느님과 인간과의 재차 만남이며 인간의 추락된 상태를 원상으로 회복함이며 전 구원 역사의 구심점이다. 이러므로써 모든 인간의 죽음은 생명으로 대치되어 처음 인간의 상태로 되돌아 간다.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은 처음의 인간 역사와 그 역사의 마지막까지도 포함하는 "종합적인 사건"임은 분명하다. 이 것은 하나의 점이 점의 집합체인 선을 대신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 이다. 이레네오의 수렴이론은그렇기 때문에 인간 구원 역사의 논리적 해석인 것이다.
이 이론은 바로 이레네오의 신앙 고백으로 표현되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신앙을 단순히 2세기의 것으로만 국한시킬 수는 없다. 그것을 초월하는 것이기에 이레네오의 이 수렴 사상은 바로 오늘 우리에게 선포하는 하느님의 말씀이며 그의 신앙은 바로 현대인의 신앙인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앙은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 몇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예수는 하느님이며 인간임을 모든 이에게 선포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 현대의 우리도 여타 종류의 이단 내지는 신앙 고백의 소홀함에서 벗어나 모든 인간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함과 동시 에 하느님의 善性을 밝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원 역사의 논리적 해석과 인간 삶의 장이 어우러 질때에야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은 우리가운데 보다 생동감있게 안착될 것이다.

1) G. Kittel, 신약성서에 대한 신학사전,Vol III. 1974, New York, p.681.

2) A. d’Ales, 성 이레네오에게 있어서 수렴 이론,R.S.R. 6(1916), p. 185.

3) C. Masson,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바오로 서간, Commentaire du Nouvean Testament IX. 1953, pp. 151-152 참조.

4) Μ. Barth, Erhesians 1-3, 1974,New York, pp. 128-130.

5) Monogamia 5 참조.

6) ?να^ν?ω(재생),dvaxamycris(새롭게 함); 1배드 1,3; 디도 3,5.

7) J. Quasten, 교부들에 대한 입문,Tome. 1,p.339.

8) A. Benott, 성 이레네오 그의 신학에 대한 연구 입문,1960,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p. 226.

.9) H.U. von Balthasar, 영광과 십자가,1967,Aubier, p.45.

10) 肉化대신에 人間化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肉化라는 단어를 육체에 인간 나자렛 예수를 적용하고 인간 영혼의 한 부분에 그리스도를 적용하는 이단과 구분하기 위해서이다.

11) A. Benoit, 상게서 p.223.

12) Μ. Harnack, Dogmengesch, I3, 564.

13) A. d'Ales, 상게서,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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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발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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