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 - 콜로새 1,24 [성경공부_마므레] [_마므레의참나무] [가톨릭성경공부_방법안내] [_주관적구속] 648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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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7-14 ㅣ No.1416


질문 1:

창세기에서 '마므레의 참나무'라는 부분이 몇 번 나옵니다.

이 구절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질문 추가 일자: 2013년 7월 21일]

질문 4:

루카 복음서 10,42에서,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다"

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 전후 문맥 안에서 이해가 되지 않아요.

질문 5:

콜로새서 1,24에서,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

이라는 성 바오로의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

[이상, 질문 추가 끝]


--------------------

당부의 말씀:

많이 부족한 죄인인 필자의 글들은 어떤 특정인의 감정을 자극하기 위하여 마련된 글들이 결코 아니기에, 다음의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1) 지금까지 필자의 글들을 읽고서 필자에 대한 "분노(anger)" 혹은 "질투(envy)"를 가지게 된 분들은, 혹시라도 그분들께 "걸림돌(stumbling block)"일 수도 있는, 많이 부족한 죄인의 글들을 더 이상 읽지 마시기 바랍니다. 꼭 부탁드립니다.

(2) 그리고 위의 제(1)항의 당부의 말씀을 읽고도 굳이 이 화면의 아래로 스스로 이동하여, 많이 부족한 죄인의 아래의 본글을 읽는 분들은, 필자에 대한 "분노(anger)"와 "질투(envy)" 둘 다를 가지지 않을 것임에 동의함을 필자와 다른 분들께 이미 밝힌 것으로 이해하겠습니다.

(3) 그리 길지 않은 인생 여정에 있어, 누구에게나, 결국에, "유유상종[類類相從, 같은 무리끼리 서로 사귐 (출처: 표준국어대사전)]"이 유의미할 것이라는 생각에 드리는 당부의 말씀입니다.
 























































답변:

+ 찬미 예수님!

[내용 추가 일자: 2013년 7월 21일]

게시자 주:

질문 4 대한 답변은 아래의 제4-4항에 있습니다.

그리고

질문 5에 대한 답변은 아래의 제4-5항에 있습니다.

[이상, 내용 추가 끝].


1. 들어가면서
아브라함의 자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신 "마므레의 참나무(the terebinth of Mamre)"라는 명칭에 대한 질문을 주셨군요.

여기를 클릭하면, <----- 꼭 클릭하십시오.

"마므레의 참나무"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성경의 절들, 창세기 13,18; 14,13; 18,1 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선적으로, 가톨릭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i) 창세기 13,18홀수 해 연중 제12주간 화요일 제1독서(창세 13,2,5-18)에 포함되고,

(ii) 창세기 14,13은 제1독서로 발췌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파악이 되며, 그리고

(iii) 창세기 18,1홀수 해 연중 제12주간 토요일 제1독서(창세 18,1-15)다해 연중 제16주일 제1독서(창세 18,1-10ㄱ)에 포함됩니다.

[내용 추가 일잔: 2013년 7월 21일]

다음은 창세기 18,1-15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1 주님께서는 마므레의 참나무들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다.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천막 어귀에 앉아 있었다. 2 그가 눈을 들어 보니 자기 앞에 세 사람이 서 있었다. 그는 그들을 보자 천막 어귀에서 달려 나가 그들을 맞으면서 땅에 엎드려 3 말하였다.

“나리, 제가 나리 눈에 든다면, 부디 이 종을 그냥 지나치지 마십시오. 4 물을 조금 가져오게 하시어 발을 씻으시고, 이 나무 아래에서 쉬십시오.
5 제가 빵도 조금 가져오겠습니다. 이렇게 이 종의 곁을 지나게 되셨으니, 원기를 돋우신 다음에 길을 떠나십시오.” 그들이 “말씀하신 대로 그렇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6 아브라함은 급히 천막으로 들어가 사라에게 말하였다. “빨리 고운 밀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 반죽하여 빵을 구우시오.” 7 그러고서 아브라함이 소 떼가 있는 데로 달려가 살이 부드럽고 좋은 송아지 한 마리를 끌어다가 하인에게 주니, 그가 그것을 서둘러 잡아 요리하였다. 8 아브라함은 엉긴 젖과 우유와 요리한 송아지 고기를 가져다 그들 앞에 차려 놓았다. 그들이 먹는 동안 그는 나무 아래에 서서 그들을 시중들었다.

9 그들이 아브라함에게 “댁의 부인 사라는 어디에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그가 “천막에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0 그러자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내년 이때에 내가 반드시 너에게 돌아올 터인데, 그때에는 너의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다.”
(이상, 발췌 끝)

(iv) 그리고 의 다해 연중 제16주일의 제2독서콜로새서 1,24-28 (질문 4 관련) 입니다.

다음은, 콜로새서 1,24-28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이상, 발췌 끝)

(v) 그리고 다해 연중 제16주일의 복음 말씀은 루카 복음서 10,38-42 (질문 5 관련) 입니다.

다음은 루카 복음서 10,38-42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38 예수님께서 어떤 마을에 들어가셨다. 그러자 마르타라는 여자가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였다. 39 마르타에게는 마리아라는 동생이 있었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40 그러나 마르타는 갖가지 시중드는 일로 분주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 다가가, “주님, 제 동생이 저 혼자 시중들게 내버려 두는데도 보고만 계십니까? 저를 도우라고 동생에게 일러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41 주님께서 마르타에게 대답하셨다. “마르타야, 마르타야! 너는 많은 일을 염려하고 걱정하는구나. 42 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다.”
(이상, 발췌 끝)

[이상, 내용 추가 끝]

게시자 주: 이어지는 제2항에서는, 굿뉴스 서버 제공의 성경 본문에 대한 검색 기능을 사용하여, "마므레의 참나무"라는 표현과 관련된 바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함께 조금씩 넓혀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2.
(질문 1에 대한 답변)

2-1.


여기를 클릭하면,

"마므레의 참나무" 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성경의 절들, 창세기 13,18; 14,13; 18,1 을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들 정보들로부터 우리는 이 나무가 위치해 있다는 "마므레"이 "헤브론" 이라고 불리는 지역의 한 지역 명칭임을 알 수 있으며, 그리고 이 나무가 있는 바로 이 지역이 아브라함의 시절에 애초에 아모리족 소유였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2-2. 다른 한편으로,

여기를 클릭하면,

마므레 맞은 쪽 "멕팔라"에 있는, 아브라함이 히타이트 사람인 "에프론(Ephon)"에게 직접 돈을 지불하고 구입하는 "에프론 소유의 밭(Ephron's field)"에 위치한, 이스라엘 자손들의 성조들의 "동굴 무덤""막펠라(Machpelah) 동굴"과 관련된 경 본문들 창세기 제23장, 25,9; 49,29-32; 50,13 을 읽을 수 있습니다.

2-3. "에프론 소유의 밭"을 아브라함이 구입한 것은 법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다음에 발췌한 창세기 23,4에 대한 NAB 주석은 밝히고 있습니다:
 
출처: http://old.usccb.org/nab/bible/genesis/genesis23.htm

(발췌 시작)
[4] A resident alien: literally "a sojourner and a settler," i.e., a long-term resident alien. Such a one would normally not have the right to own property. The importance of Abraham's purchase of the field in Machpelah, which is worded in technical legal terms, lies in the fact that it gave his descendants their first, though small, land rights in the country that God had promised the patriarch they would one day inherit as their own. Abraham therefore insists on purchasing the field and not receiving it as a gift.

[4] 이방인며 거류민: 글자 그대로 "체류자이고 이주자," 즉, 장기의 거류 이방인을 말합니다. 그러한 자는 부동산을 소유할 권리를 통상적으로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기술적인 법률 용어들로 표현된 막펠라에 있는 아브라함에 의한 이 밭의 구입의 중요성은 이 구입이 그의 후손들에게, 장차 그들이 그들의 소유로서 상속받을 것이라고 하느님께서 이 조상(patriarch)에게 이미 약속하셨던 지역에서, 비록 작지만, 첫 번째 토지 소유권을 제공하였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 밭을, 선물로서 이 밭을 수락하는 것이 아니고, 구입하는 것을 주장합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게시자 주: 지금까지, "마므레의 참나무" 라는 표현에 있어 "마므레" 라는 지명과 관련하여 성경 구절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어지는 제3항에서는 "마므레의 참나무(the terebinth of Mamre)" 에서 우리말로 "참나무"로 차용 번역 번역되고 그리고 영어로 "terebinth" 혹은 "oak(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으로 번역되는 나무(tree)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질문 1에 대한 답변 계속)
3-1.
다음은,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II" (<----- 클릭하십시오)(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6주일 제1독서(창세 18,1-10ㄱ)의 제1절 첫 문장에 대한 해설 전문입니다:

(발췌 시작)
마므레(Mamre)의 뜻은 분명하지 않으나, 마므레는 헤브론(Hebron) 근처의 장소로 생각된다. 이 장소는 아브라함(지금의 독서에서), 이사악(창세기 35,22에서), 그리고 야곱(Jacob)과 관련되어 있다. 마므레의 동쪽에 동굴이 있는데(창세 23) 그 안에 아브라함, 사라, 이사악, 레베카(Rebekah), 레아(Leah), 그리고 야곱이 묻혔다. 이 장소는 지금 헤브론(Hebron)에 위치하고 있으며 회교 사원(回敎寺院, mosque)이다. 이 장소는 고대에 성소(a place of sanctuary)였던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여기서 ‘참나무’로 번역한 표현을 NAB에서는 ‘terebinth’로 번역하였다. 참나무(terebinth)는, 진이 많은 액체[a resinous liguid, 송진(松津)]를 내는, 지중해 지역에 토착(native to)인 작은 나무이다. 이 나무는 때로는 ‘turpentine tree’로 불린다. 다른 번역들은 (예를 들어, 칠십인 역 그리스어 구약 성경의 영문본), 키가 큰 그늘을 주는 나무(shade tree)인, ‘oaks(떡갈나무)’를 나타낸다.

-----
(*) 다음의 헤브론 지도 및 헤브론 성지순례 안내를 참고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Ancient_Hebron.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pilgrimage/hebron_tombs_of_
the_patriarchs.htm
-----
(이상, 발췌 끝).
 
3-2.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마므레의 참나무(the terebinth of Mamre)" 에서 우리말로 "참나무"로 차용 번역 번역되고 그리고 영어로 "terebinth" 혹은 "oak(떡갈나무, 상수리나무)" 등으로 번역되는 이 나무(tree)가 구약 시대에 신성시되었다는 설명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bible_food/terebinth_tree_kr.htm

게시자 주: 이상, 질문 1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즉, 성경 본문의 자구적 의미에 해당하는, 답변을 드렸습니다.

4.
이 글의 마지막으로서, 이번 항에서는,

다해 연중 제16주일의

(i) 제1독서,
(ii) 복음 말씀, 그리고
(iii) 제2독서

사이의
내용 연결에 대하여 함께 고찰하도록 하겠습니다.

4-1. 바로 이 "마므레의 참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은, 한창 더운 대낮에 (나중에 알고보니 주님과 천사들로 밝혀진) 전혀 알지도 못하는 세 명의 나그네들의 방문을 받았으며, 그리고 그곳에 이방인 체류자로 머물고 있던 아브라함과 사라가 이들에게 환대(hospitality)를 베풀었다는 것이 창세기 18,1-10ㄱ 의 이야기입니다.

4-2. 질문 2: 창세기 18, 1-10ㄱ은, 가톨릭 교회 전례력에 있어, 왜 다해 연중 제16주일 제1독서로 발췌되었을까요?

질문 2에 대한 답변: 그 이유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다해 연중 주일 전례력에 있어, 루카 복음서에서 복음 말씀을 발췌하는 다해의 연중 제16주일의 복음 말씀이, 교황청 경신성사성에 의하여, 루카 복음서 10,38-42로 선정되었으며, 그리고 구약 성경 본문에 있어서의 이 복음 말씀의 예형(type)으로서 창세기 18,1-10ㄱ 이, 또한 동일한 교황청 경신성사성에 의하여, 선정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때에, 대응하는 루카 복음서 10,38-42창세기 18,1-10ㄱ대형(antitype)이리고 불립니다. 여기서, 예형(type)대형(antitype)이라는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370.htm <----- 필독 권고

4-3. 질문 3: 그렇다면, 루카 복음서 10,38-42는 어떠한 이유로, 교황청 경신성사성에 의하여, 다해 연중 제16주일의 복음 말씀으로 선정이 되었는지요?

질문 3에 대한 답변: 이것은 다음에 발췌한 교황청 경신성사성 문헌 "미사 전례 성경 총지침서[Ordo Lectionum Missae, General Instruction to Lectionary, 25 May, 1969 (1st Version) & 21 January, 1981 (2nd Version)]"에 제시된 배려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말 번역은 필자가 한 것입니다:

출처 1: http://www.liturgyoffice.org.uk/Resources/Rites/Lectionary.pdf
출처 2: http://www.ewtn.com/library/CURIA/CDWLECT.HTM
출처 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942.htm

(발췌 시작)

Table III

표 III

Order for Gospel Reading for Sundays in Ordinary Time

연중 시기에 있어 주일들을 위한 복음 말씀들에 있어서의 순서

YEAR C: YEAR OF LUKE

다해: 루카의 해

     Luke’s Gospel represets Jesus’ journey from Galilee to Jerusalem - 
a journey which is completed in the Acts of the Apostles by the journey of the Church from Jerusalem ‘to the ends of the earth’. The Lectionary in the year of Luke represents faithfully his ‘Travel Narrative’(chapters 9-19) - Jesus’ journey to death, to resurrection and his return to the Father (see Sundays 13-31). Luke’s vision of the journey is not geographical or chronological. Rather it is seen as a journey for the whole Church and for the individual christian, a journey towards suffering and glory. Each Gospel passage should mean a great deal more to preacher and reader when it is seen in the context of the whole programme of readings for Year C.

     루카의 복음서는 갈릴래아로부터 예루살렘까지 예수님의 여행을 나타내는데, 이 여행은 사도 행전에서 예루살렘으로부터 '땅의 끝들까지' 교회의 여행에 의하여 완성되는 한 개의 여행입니다. 루카의 해의 독서집은 그의 '여행 이야기' (제9-18장들) - 죽음을 향한, 부활을 향한 예수님의 여행, 그리고 성부를 향한 당신의 되돌아가심 (제13-31 주일들을 보라)을 충실하게 나타냅니다. 이 여행에 대한 루카의 시각은 지리학적인 것도 아니고 그리고 연대순인 것도 아닙니다. 그보다는 그것은 전체 교회를 위한 그리고 개별 그리스도인을 위한 한 개의 여행으로서, 고통 받음과 영광을 향하는 한 개의 여행으로서, 이해됩니다. 각 복음서 단락은 다해를 위한 독서들의 전체 프로그램의 문맥 안에서 이해될 때에 설교자와 독자에게 훨씬 더 많은 것을 의미할 것입니다.

(중간 생략)

Unit IV The first part of the ‘Travel Narrative’: Sundays 13-23
         The qualities Jesus demands of those who follow him

제4단원 '여행 이야기'의 첫 번째 부분 : 제13-23 주일들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특성들

SUNDAY 13    *The journey to Jerusalem begins        Lk 9:51-62
SUNDAY 14    *The mission of the seventy two         Lk 10:1-12.17-20
SUNDAY 15    *The Good Samaritan                     Lk 10:25-37
제15주일     *착한 사마리아인                        루카 10,25-37
SUNDAY 16    *Martha and Mary                        Lk 10:38-42
제16주일    * 마르타와 마리아                    루카 10,38-42
SUNDAY 17    *The importunate friend                 Lk 11:1-13
SUNDAY 18    *The parable of the rich fool           Lk 12:13-21
SUNDAY 19     The need for vigilance                 Lk 12:32-48
SUNDAY 20    ‘Not peace but division’              Lk 12:49-53
SUNDAY 21     Few will be saved                      Lk 13:22-30
SUNDAY 22     True humility                          Lk 14:1. 7-14
SUNDAY 23     The cost of discipleship               Lk 14:25-33

Note: Passages marked with an asterisk are found only in the Gospel of Luke.

주: * 로 표시된 단락들은 오로지 루카 복음서에서만 발견됩니다.

(이상, 발췌 및 일부 문장들에 대항 우리말 번역 끝).

4-4. 다해 연중 제16주일 제1독서로서 창세기 19,1-10ㄱ을 그 예형(type)으로 선정한, 가톨릭 그리스도교 신학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동일한 주일의 대형(antitype)인, 다해 연중 제16주일 복음 말씀루카 복음서 10,38-42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10.htm <----- 필독 권고

게시자 주: 특히 루카 복음서 10,42"그러나 필요한 것은 한 가지이다" 라는 우리말 번역이 번역 오류/미숙이라는 지적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대신에, 예를 들어, 거기에는 다만 한 가지 일에 대한 결핍/부족(need)이 있다  혹은 다만 한 가지 일에 대한 결핍/부족(need)이 있다 로 번역되었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 복음서 단락은, 여형제간인 마르타와 마리아가 예수님의 방문에서, 마리아에 의하여 추가된 "영적 환대"예수님께서 "좋은 몫", "부족한/필요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로 그것 때문에, 그 예형인 창세기 18,1-10ㄱ에서의 물적 환대뿐인 극진한 식사 대접보다 훨씬 더 뛰어난 물적 및 영적 환대(hospitality)를 제공하는 장면을 제시합니다.

게시자 주: 루카 복음서 10,38-42는 가톨릭 보편 교회의 전례력에 있어 대단히 오랜 기간에 걸쳐 1950년까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몽소 승천 축일의 복음 말씀으로 발췌되어 왔습니다.

     그런데, 진정한 "환대(hospitality)"는 항상 "봉사(service)"와 "수용(reception)"을 필연적으로 수반함(involve)에 주목하십시오.

4-5. 그리하여, 루가 복음서 10,38-42에서 활동적 및 관상적 환대(active and contemplative hospitality)의 귀감으로 제시되고 있는, 역시 동일한 주일인 다해 연중 제16주일의 제2독서인, 콜로새서 1,24-28에서,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콜로새 1,24)

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권고하는, 성 바오로에 의한 바로 이 (마르타에 의한) 활동적 및 (마리아에 의한) 관상적 환대/삶(active and contemplative hospitality/life) 의 구체적인 수용(reception)/참여(participation)[주관적 구속(subjective redemption)](*)의 예시를, 우리는 다해 연중 제16주일 미사 중의 말씀 전례에서 귀로써 들으며 그리고 또한 묵상하게 됩니다.

-----
(*) 게시자 주: "주관적 구속(sbjective redemption)""객관적 구속(objective redemption)" 의 차이점에 대한 글은 다음에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2.htm 
-----

     이제 지금 말씀드린 바를 염두에 두면서, "가톨릭 교회의 말씀 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다-II" (<----- 클릭하십시오) (출판사: 가톨릭출판사, 엮은이: 소순태), 연중 제16주일 제2독서(콜로새 1,24-28)의 제24절에 대한 해설에서 발췌하고 있는 다음의 나바르 성경 주석서콜로새서 1,24-28의 제24절에 대한 해설을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c_ot_16.htm <-- 필독 권고

그리고, "그리스도의 환난"에 대한 다음의 글도 또한 읽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97.htm <----- 또한 필독 권고


이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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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작업에 소요된 시간: 약6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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