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게시판

[중고등부] 험담, 비난, 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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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nSokKu,Lee [nikolas9] 쪽지 캡슐

1999-11-06 ㅣ No.1692

 어제 밤과 오늘 아침 사이 누군가에 대한 개인적 원한과 원색적 비난의 글이 우리 본당은 물론

모든 본당 게시판에 올라왔었기에(모두 삭제 조치..) 너무나 기가 막혀서 몇 글자 적어본다.

 그 사람이 비난과 험담, 비방을 통해 개인 주장의 전달과 그에 대한 동의를 구하기 보다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진정한 해답을 얻기를 바란다.

  

 조선 명종 때 정승 상진은 세상에 별의별 술안주들이 많지만 남의 험담처럼 맛있고 당기는

안주는 없다고 말했다.

 따지고 보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끼리 사석에서 정치·경제 등에 관해 이야기할 때의 표

정과 남의 이야기할 때의 표정은 달라진다. 덤덤해 있다가도 생기가 돌고 광채가 난다. 그리

고 그 험담 혹은 비난에 공감해 주어야 친근감이 가고 사이도 보다 더 돈독해진다. 그것 말

고도 이런 일도 있었다며 가세해 주면 더 친해지는 때도 있다. 만약 본인 없는 데서 헐뜯는

것은 나쁘다고 험담에 찬물을 끼얹으면 그 사람과는 거리가 생기고 친분이 증발해 버릴 수

도 있다. 이렇게 험담이 상승하다 어느 한계에 이르면 너무 심했다고 여겼음인지 반동을 한

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도 이런 저런 좋은 점들도 있다느니 그런 환경이나 여건이면 누군들

그러하지 않겠느냐는 등 동정까지 해가면서  씹는다. 그렇게 씹고 나서 홀가분해한다.  다만

우리의 對타인 비방은 현장에서 끝나는 일시성이어야 하며 밖으로 누설되거나 본인에게  들

어간다면 남의 험담으로 결속된 친밀에 금이 가고 그중 누군가가 배신자로 낙인찍히며 악인

이 된다. 곧 험담하는 것이 나쁜 게 아니라 험담을 누설시키는 것이 나쁜 것이다.

 

 청교도 정신이 바탕이 되어있는 미국에서 남이 없는 곳에서 헐뜯거나 비방하는 것은 원천

적인 악이라 한다. 물론 사람 사는 곳이기에 어디나 똑같겠지만 누군가의 험담을 하면 비록

그 사실에 백번 공감하더라도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의 비방은 친밀 공감대의 형성은  커녕

오히려 인격적인 결함으로 지탄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니 미국서는 험담이 재

미있지도 않고 맘 편하게 할 수도 없으며 오히려 그 험담을 본인에게 통고하고 충고하는 것

이 정의라 한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이다.(물론 두 나라 모두 정의로운 이들의 경우...)

 

 말 사랑은 문화발전의 원동력이었다. 서구 정신의 기초라는 고대 아테네 역시 지극히 말을

사랑했기에 말로 경쟁하는 경기까지 발전시켜 그 방식이 20여가지나 되었다. 말 사랑은 2천

5백년전 이곳에 이성을 꽃피웠으며  이는 희랍비극, 플라톤 철학,  기하학, 민주주의와 같은

최고의 보편 문화를 인류에게 선사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말 풍경 어떠한가... 잡담, 농담, 험담, 스트레스 푸는 말 등이 오가는

말들의 주류다. 대화를 한다면 일방적인 장광설이고, 간혹의 토론에서도 큰 목소리나 뚝심이

판을 좌우함은 나 스스로도 인정하는 동시에 나부터 반성해야할  일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우리는 말하기를 좋아하기보다는 떠들기 좋아한다는 생각이 든다.

 

 불만을 통해 빚어진 험담·비난·비방 등이 막연히 도덕적 악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

니지만 도덕적 차원을 떠나 때로는 심정적인 공감의 다리요 스트레스를 풀어 내렸던 문화수

단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어느 한 개인  혹은 집단의 감정으로 빚어진 것을

공론화 시킨다면 문제는 달라진다.

 특히 구체적으로 공인된 사실에 대해  무지한 사람들에게는 진위여부를 떠나 선점을  통한

의혹과 편견을 먼저 가져올 수도 있기에 지극히 위험하다.

 또한 험담내용의 사실여부를 떠나 몇 년전 국내에서 험담 자체가 사생활 보호범위를 침해

하는 행위로 법적 해석을 내린 사례가 있었음을 상기하면 이는 개인 사생활 침해에 해당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희랍 문화의 주축은 대화와 토론이었다. 이를 위한 조건은 진지한 주제의식,

자신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개방적 태도, 진실에 대한 관심, 무엇보다 타인의 말을 이해하려는

좋은 귀다. 생산적 토론은 많이 말하기보다 조용히 남의 말을 듣는데서 시작한다. 우리 몸은

밥을 먹고살고, 우리 마음은 말을 먹고산다. 서로 말을 주고받으면서 진실로 한 걸음 더  나

아가고 우리 정신이 고양될 때 고대 희랍과 같은 고급 문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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