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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1387 정순옥 자매님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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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준 [bopark] 쪽지 캡슐

2000-06-30 ㅣ No.1389

먼저 아가의 세례를 축하드립니다.

11월 성인 중에는 여자성인이 별로 없는 것 같아서 "엘리사벳"이 어떨까?하구요.

프로필은 아래에 있습니다. 축일은 11월17일 입니다.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

1207년에 태어났다. 헝가리의 왕 안드레아의 딸로서 어린 나이에 튀린지아의 루드비히 4세

와 결혼하여 세 아이를 낳았다. 천상 사정에 몰두하였으며, 남편이 죽은 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요양소를 세워 병자들을 돌보았다. 1231년 마르부르크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엘리사벳의 영적 지도 신부였던 마르부르크의 콘라트가 쓴 편지에서

엘리사벳은 가난한 이들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사랑했다

엘리사벳은 그때부터 덕행에 있어 특출함을 보이기 시작했다. 항상 가난한 이들을 위로해

왔지만, 자기 궁 옆에다 병원을 짓게 하여 거기에서 온갖 종류의 환자들을 수용하기 시작할

때부터 어려운 이들을 돌보아 주는 데 온전히 헌신하기 시작했다. 그 병원에 도움을 구하러

오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자기 남편의 관할 지역에 있던 모든 이들에게도 혜택의 선물을 너그러이 나누어 주곤 했다. 그래서 자기 남편이 관할하는 4개의 영토에서 가지고 있던 모든 재원을 모조리 나누어 주고 심지어는 자기 귀중품과 값비싼 옷들마서 팔아 거기서 얻은 돈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다.

하루에 두 번씩 즉 아침과 저녁에 모든 환자들을 몸소 방문하는 관례를 가져 가장 흉한 환자

들을 직접 간호해 주었고 어떤 이들은 먹이고 어떤 이들에게 침상을 마련해 주었으며 또 어떤이들은 업고 다니고 하여 자신의 자비심을 여러 형태로 그들에게 보여 주었다. 그러나 그렇게 할 때 생전에 남편의 뜻을 어긴 일이 없었다. 그리고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완덕에 더 가까이 이르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 눈물을 흘리면서 나에게 와 자기가 문전 걸식을 하도록 허락해 달라고 청했다.

어느 성금요일 날 제대보가 벗겨져 있을 때, 자기가 프란치스꼬회 회원들에게 기증했던 궁중 성당의 제단 위에 손을 얹고는 친한 벗들 앞에서 자신의 의지와 세상의 모든 허영 및 구세주께서 복음에서 버리라 권고하신 모든 것들을 포기했다. 이렇게 한 후, 남편과 함께 살 때 모든 이들로부터 공경을 받았던 그 곳에서 계속 머문다면 세상의 소란과 세속의 영광이 자기 마음을 끌어 잡아당길 그런 위험이 있지 않을까 염려하여, 내가 그것을 원치 않았는데도 나를 따라 마르부르크로 가기로 했다. 거기다 병원을 세워 많은 환자들과 불구자들을 모으고는 가장 버림받은 비참한 이들에게 식탁에서 시중들어 주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단지 그녀의 외부로 드러난 활동에 불과했다. 나는 하느님 앞에서 그녀에 대해 이 말을 하고 싶다. 이 여인만큼 관상에 깊이 젖어 들어간 이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는 점이다. 수사들과 수녀들이 여러 번 목격했듯이 그녀가 기도의 은밀함에서 나올 때 그 얼굴은 광채로 빛나 그 눈에서 태양 광선과 같은 빛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세상을 떠나기 전 나는 그의 고해를 들었다. 남기고 가는 재산과 의류를 가지고 무엇을 하면 좋겠느냐고 내가 물어보자, 자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모두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고 대답하면서, 자기가 그때 입고 있던 낡은 옷을 제외하고는 (그 옷을 입고 묻히기를 원했다.)

전부를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달라고 간청했다. 이 말을 마치고 주님의 몸을 영했다. 그리고나서 저녁 기도 때까지 자기가 전에 설교 말씀에서 들은 거룩한 이야기를 되새겼다. 마침내 열렬한 신심으로 주위에 모인 모든 이들을 하느님께 맡겨 드리면서 평온히 잠들 듯 숨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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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이모님은 "마리아"가 어떨까요? 축일은 9월 8일이고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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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성탄

축 일

 

 

크레타의 성 안드레아 주교의 강론에서

(Oratio 1:PG 97,806-810)

 

옛 것은 사라지고 모든 것은 새롭게 되었도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종결이십니다." 우리를 율법의 문자에서 끌어내시고 또 그 정신에로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율법이 성취되었습니다. 입법자이신 그 분은 당신 손

으로 만물을 만드시고 완성시키시고는 율법의 문자를 그 정신으로 변모시키시고 만물을

당신 안에 총화 하셨습니다. 그 분은 율법을 은총으로 살리시어 율법을 은총에 종속시키시고

은총을 율법과 조화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각각의 특성을 혼합시키지 않으시고 놀라운 방법

으로 모든 것을 변모시키시어 힘겹고 노예 상태에 처해 있으며 억압받는 것을 모두 다 가볍

게 해주고 또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이제 사도가 말하는 것처럼

"세상 것들의 노예가 되는 일이 없고" 율법의 문자에 더 이상 노예 상태로 매어 있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신비의 계시, 이 신성의 비하, 그리고 하느님이 사람이 되심으로 말미암은 사람의 이 신격화-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총의 절정입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찬란하고 영광스러운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방문에는 우리가 구원의 위대한 선물을 받기 전 어떤 기쁨의 서곡이 있어야 했습니다. 오늘의 축일은 이것을 기념합니다. 이 서곡은 하느님의 모친의 탄생으로 시작되고, 신성과 인성이 결합될 때 종료됩니다. 그래서 한 동정녀가 태어나시어 젖을 먹고 자라나 영원의 임금님, 하느님의 모친이 되실 채비를 갖추십니다.

  이날의 신비에서 우리는 이중의 이득을 얻습니다. 이날의 신비는 진리에로 우리를 이끌어

주고 또 율법의 문자에 매인 생활에서 자유의 생활에로 이끌어 내 줍니다. 그런데 어떻게 또무엇 때문에 이렇게 됩니까? 확실히 어둠은 들어 오는 빛에 물러서고 은총은 문자 대신에 자유를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축일은 신약과 구약 사이에 놓인 경계선입니다. 이 축일은 상징과 예표에 실재가 뒤따르고 옛 계약에 새 계약이 뒤따름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오늘 모든 피조물은 노래하고 춤추어 이날에 축제와 환희의 성격을 부여해야 합니다. 오늘 이날을 천상의 무리와 지상의 무리와 다 함께 경축하고 이 세상에 있는 것들과 세상위에 있는 것들이 하나가 되어 즐겨야 합니다. 오늘 만물의 창조주께서 새 성전을 건설하시어 창조주의 거룩한 거처로서 한 피조물의 태를 새로이 마련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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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이모님은 "데레사"가 어떨까요? 축일은 10월15일이고 프로필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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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의 저서에서

(Opusc., De libro vitae., cap.,22,6-7,14)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마음에 간직하도록 합시다.

 

  그렇게도 좋은 벗이고 그렇게도 훌륭한 지도자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겉에 계신다면 무슨 일도 견디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분은 늘 도와주시고 견고케 해주십니다. 필요할 때 돌보아 주시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분은 참되시고 성실하신 벗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많은 은총을 베풀어 주시기를 바란다면, 하느님의 엄위께서는 당신 마음에 드는 분이라고 말씀하신 이 거룩한 인성의 손을 빌어 그것을 주고 싶어하신다는 것을 나는 명백히 보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을 자주자주 체험했습니다. 주님께서도 나에게 그것을 말씀해 주신 적이 있습니다.

전능하신 엄위께서 우리에게 크나큰 신비들을 보여 주시길 우리가 원한다면 바로 이문을 통해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나는 분명히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관상의 정상에 이르렀다 해도 다른 길을 찾지 말아야 합니다. 이 길로 가면 틀림이없습니다. 선한 모든것이 우리에게 전달되는 것은 이 주님을 통해서입니다. 그분이 그것을 가르치실 것입니다. 그분의 생활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좋은 모범이 없습니다.

  이렇게도 좋은 벗이 우리 곁에 계시는 것 이상으로 더 바랄 게 더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분은 우리가 수고와 근심 걱정 가운데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하듯 그렇게 우리를 버리시지 않습니다.

그분을 참으로 사랑하며 항상 자기 곁에 모시고 있는 사람은 복됩니다. 영광스러운 바울로를 생각합시다. 마음속에 늘 예수를 모신 사람으로서 그의 입에서 주님의 이름이 떨어질 날이 없었습니다. 내가 이런 것을 깨달은 후 성 프란치스꼬와 파도바의 성 안또니오, 성 베르나르도,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와 같은 관상 생활에서 뛰어난 이들의 생활을 유심히 보았는데, 그들이 가는 길도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 길로 걸어갈 때에는 하느님의 손에 의탁하여 언제나 자유로움을 느껴야 합니다. 엄위께서 우리가 당신의 밀실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면, 우리는 거기에 기꺼이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그분이 얼마나 큰사랑으로 우리에게 그렇게도 숱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지 생각하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그렇게도 큰 사랑의 보증을 주실 때 얼마나 큰 사랑을 보여 주셨는지 명심합시다. 사랑은 사랑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항상 생각하여 우리 마음에서 그런 사랑을 일으키도록 합시다. 하느님께서 당신의 은총으로 우리 마음에 이 사랑을 한 번 새겨 주신다면, 우리는 만사가 용이하게 되어 짧은 시간에 발전을 거두며 아무 어려움 없이 일할 것입니다.

 

성가정을 아루심에 진심으로 축하드리고 늘 주님의 은총이 함께 하시기를 ....

 

박재준(비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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