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게시판

성모 마리아는 누구인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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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덕 [justino0601] 쪽지 캡슐

2004-04-21 ㅣ No.708

†찬미 예수님

 

 

역시 가톨릭 게시판 "오성훈"님의 글을 가져왔습니다.

 

 

 

개신교에서 성모마리아를 공경하지 않는 이유는 직설적으로 말하면 그들이

4세기와 5세기에 연달아 나타났던 아리우스파와 네스토리우스파의 설을 근

대에 재생시킨 이단이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아리우스파는 그리스도의 천

주성을 부정한 최초의 이단이었고 네스토리우스파 역시 그리스도의 페르소

나를  두개라고 주장하면서 제일 먼저 그리스도의 천주로서의 권위를 끌어

내리기 위해 시온의 문인 성모 마리아를 보통 어머니로  그 지위를 낮추어

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아리우스파와 네스토리우스파 모두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도

저히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보

는 관점은 놀라울 정도로 현대의 대부분 개신교의 관점과 유사합니다.  그

들은 십자가에 천주성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가 수난당하실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온  해괴한 주장 중의  하나가 십자가에 수난당하실

때는 그 실체 속에 천주성은 없고 단지 인성만을  지닌 예수 그리스도라고

주장을 하곤 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그들은 자연히 인간으

로서의 그리스도에 촛점을  맞추게 되었고, 급기야  가톨릭의 정통 교리인

천주의 모친(Theotokos)이 아닌  그리스도의 모친(Christokos)라고  주장을

펴게 되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를 천주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 전락시키고

말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것은 많은 개신교의  여러 교파가 예

수 그리스도의 천주성보다  수난당한 인성만을 강조해서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며 이러한 경향의 개신교 신자들에게는 천 오백년전의 네스토리우스

파가 그랬듯이 성모 마리아를 인정하지 않고 보통의 어머니로 간주하는 것

이 당연한 귀결인 것입니다.

 

 

 

 여러분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송을 받는다면 당연히 여러분의 어머니 또

한 우러러보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그 대상이 일반인인 경우에도 그러할

진대 그 대상이 우리의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이 어떠

한 대우를 받으셔야 마땅할 지는 더 이상 긴 말이 필요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이단이  맨 처음 하는 일은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깍아내리고 인성에 대한 지나친 강조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기 위해 반

드시 해야 하는 사전 작업이 있으니 그게 바로 성모 마리아에 대한 멸시와

모독을 감행하는 것입니다.

 

 

 

 가톨릭 교회의 성모 찬미의 목적은 주 예수 탄생과 구속의 은혜를 영원히

기념하려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은혜를 입어 구속 사업의

보필자가 되는 영광을 받으신 분입니다. 실상 주님의 구속 사업에 참여하

신 성모 마리아의 공적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더욱 풍부히 구세주께 대

한 진리 지식을 얻게 되며 마리아를 경애하면 할수록 더욱 구세주께 대한

충성이 열절해집니다.

 

 

이는 신앙 생활을 오래한 이들의 공통된 경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모 마리아를 무시하는 자의 영혼은 어둠에 빠지게 되는 법입니

다.

 

 

 

  거듭 말하거니와 가톨릭 교회에서 마리아를 경애하고 찬미하는 것은 곧

그 아들 예수께 대한 지극한 애정과 충성의 표현인 것입니다. 원래 성모가

지니신 모든 것은 다 지극히 성스럽고 예수께로부터 오는 것인 까닭입니

다.

 

 

 우리 가톨릭은 하느님께는 흠숭지례(欽崇之禮)를 성모 마리아에 대해서는

상경지례(上敬之禮)로서 그리고 천사와 성인에 대해서는 공경지례(恭敬之禮)

를 바치는 것입니다. 바치는 예(禮)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여기서 마리아는 하느님에 의하여 창조된 인간이요, 하느님도 아니며 여

신도 아닙니다. 그렇지만 마리아는 모든 인간 가운데 하느님에 가장 가까운 자요, 그리고

하느님 스스로도 마리아를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러니까 가톨릭 교회도 엣

부터 마리아를 특별히 존경하여 왔던 것입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개신

교는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를 낳은 보통 어머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

닌 것입니다. 오히려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를 죄인이나 예수 그리스도에게

불필요한 존재로까지 취급하여 설교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옛부터 전해 내려오는 성모 마리아에 관한 가톨릭의 가르침을

개론적으로 서술하면서 제 이야기를 마칩니다.

 

 

 

 첫째, 모든 성인 가운데 가장 뛰어난 분은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 성모 마

리아입니다. 그것은 성모 마리아가 그리스도의 참된 어머니로서 하느님의

은총을 충만히 받아, 모든 성인과 천사를 능가하는 지위를 받았기 때문입

니다.

 

 

 둘째, 그리하여 성모 마리아는 원죄에  물듦이 없었으며(원죄 없음), 원죄

의 결과인 죽음의 부패에서 벗어나, 지상에서의 생활을 마친 뒤에는 그 영

혼도 몸도 하늘 나라에 올림을 받았습니다.(성모 승천)

 

 

 셋째, 십자가에 달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 요한을 향해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고 했을때, 성모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의지와 은총으로 모든 인

류의 영적 모친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은 성서와 성전에 있는 바로서 가톨릭 교회가

귀중하게 지켜온 가르침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구노의 아베 마리아는 본디 가톨릭의 기도문인 성모

송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요한 세바스찬 바하(루터교 신자였음)도 마니피

캇(성모 찬미가)를 다수 작곡하였던 것만 보더라도 신심깊은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프로테스탄트나 가톨릭을 떠나서 성모 마리아를 공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하느님의 아들로부터 하느님의 어머니에게로-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신앙이 이토록 중대한 의의를 가지고 있는 것은 이것으로

거의 명확해졌다고 본다. 그리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신 것은 성모 마리아에 의

해서이다. 가톨릭 신앙에서 성모 마리아가 중대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

다. 그리고 같은 인간이 되신 하느님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면서 그 어머

니 마리아를 말살하여 버린 프로테스탄티즘은 너무나 부자연하다. 성모에 대한

반동적인 편견(偏見)에서 프로테스탄티즘은 그 이름이 말해주듯 반항교(反抗敎

이다. 즉 가톨릭에 대한 프로테스탄트(反抗者)로서, 스스로의 독특한 근거를 가

진 주의도 주장도 아님은 물론이다. 존재의 유일한 이유를 반항의 대상인 가톨릭

의 존재에서 얻고 있는 2차적인 것은 명백하다.

 

 

 

 루터는 가능하면 로마 교회를 쓰러뜨리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로마 교회가

설사 쓰러진다면 프로테스탄트 교회도 같이 쓰러지게 된다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

던 것 같다. 이것은 프로테스탄트만이 아니라 모든 적극적 내용을 가지지 않는

주의 주장의 운명이다. 프로테스탄트가 가진 모든 적극적 요소는 보다 풍부하게

그리고 완전히 가톨릭이 가지고 있다. 이것은 개신교의 적극성을 가진 경건한 신

자가 다행히도 그 편견을 버릴 수 있는 기회에 접하면 흔히 가톨릭으로 돌아오는

이유이다. 앞서 글에서 기술했듯이 영국 성공회의 천재 학자 헨리 뉴먼이 중심이

되어 일어났던 ’옥스퍼드 운동’ - 초대 교회의 신앙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으로(

국 참여자 모두 로마의 품에 안기게 되었던 기념비적인 운동)- 과 영국과 미국의

걸출한 석학과 대문호들이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로마로 돌아오고 있는 사실은 좋

은 실례(實例)이다.

 

 

 

 이에 반하여 부정적 경향으로 철저하게 나가는 개신교 신자는 무신앙이 되든가

좌경 운동에 몸을 던지게 되는 것을 흔히 본다.

 

 

예컨대 우치무라 칸조(內村鑑三: 일본의 유명한 개신교 지도자로 무교회주의를

주장했으며 한국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 그 영향을 받은 대표적인 인물로 개인

의 마음 속에 하느님의 영이 거하기에 눈에 보이는 교회는 필요없다고 해서 무

교회주의를 주장했던 故 함석헌 목사가 있으며 그보다 덜 유명하지만 김교신(金

敎信)이라는 목사도 있다) 문하의 우경파(右傾派)에서 가톨릭이 나오고 좌경파

(左傾派)에서 "이단자"가 배출된 것은 그 명확한 논리이다.

 

 

전자는 우치무라 씨의 권위 대신 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

들은 레싱의 Anti-Goeze에 있는 것처럼 "작은 교황은 그만두고 큰 교황으로

바꾸었다."로 하면 되는 데 반하여 후자는 우치무라 씨로부터 시작하여 반발

으로 모든 권위를 부정해 버리는 것이다. 단지 그 중간에서 방황하는 온순한 군

자(君子)나 의지나 지능 면에서 철저히 밀고 나가지 못하는 무리들이 우치무라

씨의 강렬한 인격에 끌려간다. 그들은 프로테스탄트라고 칭하여 복음적이라고 자

부할지 모르나 실은 반항적(反抗的)기분을 빼고서는 작은 교황에 의해 통솔된 사

이비(似而非) 가톨릭 교회이다. 참된 프로테스탄트 교회에는 자기의 종교적 경험

을 내세워 권력으로써 회중(會衆)에 군림하는 교황은 있을 수 없다.   

 

 

루터의 성모관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모순은 성모에 대한 신앙에 관하여 가장 노골적으로 나타

나 있다.  이 견지에서 루터의 성모관은 가장 흥미 있는 것이다. 1521년경 그가

바르트부르크 체재 중에 기초한 마니피캇 주석(Auslegung  des Lobgesanges Mari

as Magnificat)은 로마 교회의 마리아 공경에 대한 종론서(宗論書)이면서도 "지

극히 축복받은 동정" "주님의 다정한 어머니"의  찬양, 특히 마리아의 신앙(물론

루터적  의미에서)과 겸손에 대한 찬미의 우아한 말을 늘어놓아 그가 후에 배척

한 전구(轉求)도 반대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사도 신경에 따라 그리스도 탄생

후 마리아의 동정을 인정하고 1522년에 출판한 기도서 중에는 성모송을 보전하였

을 뿐 아니라 파계 이전에 그가 속하였던 성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전통을 지

켜 1527년경까지는 (당시 아직 교회의 도그마로서 선포되지 않았다.) "성모의 무

염시태(無染始胎)"도 믿었다.

 그러나 이들의 가톨릭적 신앙은 "마리아는 영험(靈驗)이 뚜렷한 여신이 아니다

(Keine helfende Gottin)." 라는 등 조롱하는 말로 상처를 주고 있다. 아름다운

성모에 대한 존경은 단지 로마 교회의 특징이라는 이유로 해서 "개혁된 교회"로

부터 쫓아냈다.

 

 

성모 없는 교회와 인류의 고민

 

그러나 예수가 있는 곳에 어머니이신 마리아가 없어서는 맞지 않는다. 아들을 참

으로 사랑하는 이상 그 어머니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마리아를 찾는 소리는 과

연 공허해진 프로테스탄트 교회에서 일어났다. 내가 영국 체재 중 이른바 개혁자

가 열심히 파괴한 오래 된 교회의 마리아 상이 새로이 복구된 것을 본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여기 어머니를 축출한 불효자의 대표적 외침을 번역하여 본다. 이것

은 1차 대전이 끝난 후인 1919년 11월 19일 기도의 날에 마크스 융그니켈이 베를

린 일간지 Die Post에 기고한 논문에서 발췌한 것이다.

 

 

복음 교회는 차가워졌다…. 누가 이것을 따뜻하게 해 줄 것인가…. 우리는 어머

니 마리아를 다시 모셔와야 한다. 이것은 결코  대담한 희망이 아니다. 루터 자

신도 이것을 인정하여 줄 것이다. 그는  바르트부르크에서 마니피캇 주석을 쓰

지 않았던가. 지극히 축복받으신 자애로우신  하느님의 어머니는 파도를  헤쳐

가는 그의 마음의 방주(方舟) 위의 비둘기 같은 것이 아니었더냐.  우리는 어머

니 마리아를 모셔와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그 어머니의  귀향을 축하하자.

그렇다. 어머니는 결국 우리  교회로 돌아오셨다. 우리는 어머니에게  기도하며

노래 부르자. 또 어머니의 거룩하신 결백을 교리 문답 속에도 짜서  넣자…. 우

리에게 빠진 것은 성모 마리아다. 우리는 그녀를 다시 모시기를 원한다. 그리하

여 그녀는 우리 교회의 차가운 돌 속에서  장미꽃과 같이 피어날 것이다.  Ich

grusse dich, holdselige Mutter!

 

 

또 하나, 가톨릭 교회 밖에 있었던 사람들의 성모 신앙에 대한 동경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아름다운 일화이기에 번역한 것이다.

 

 

그것은 몇 년 전, 로마의 성 베드로 대성당 쪽의 조용한 자그레스차 광장, 독일

인 묘지로 삼목과 유칼립투스 노목들이 자라고 있는 곳이었다. 나는 마침 소아시

아에서 돌아와 그 견문을 들려주던 한 노인과  산책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톨릭

사제가 때때로 경험하는 것이지만 그 때도 그러하였다. 교회와는 아무런 인연도

없고 막연히 범신론적 세계관을 가지고 살아온 이 사나이는 가톨릭 사제에게 그

마음 속을 털어놓아야 할 부득이한 형편이 되었다. 설사 그 사람이 아무리 비참

한 인간적 약점의 소유자라도 그에게 필요한 냉정과 침착한 마음만 있으면 가톨

릭 사제에게는 비신자나 타종파 신도까지도 이상하게 신뢰를 느끼게 하는 일종의

초자연적인 신성과 품위가 그 신분과 생활에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나는 그러한

경험을 되풀이한 일이 있다. 또한 같은 사제직에 있는 내 동료들도 여러 가지 경

험에서 이 사실을 증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저녁에도 이 신뢰에  용기를 얻어 세계를 돌아보고 다닌 범신론자인

그가 나이도 훨씬 아래며 서로 내면적으로는 전혀 교섭이 없는 나에게 마음속을

털어놓아 주었다. 대화 도중에 그는 별안간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나는 믿을

수만 있다면 가톨릭 신자가 되겠소.  왠지 아십니까. 정결한 마리아의 신조 때문

에…." 나는 전연 의외였다. 이것만은 참으로 뜻밖이었다. 어찌하여 정결하신 하

느님의 모친에 관한 도그마가, 이전에 가톨릭 신자였던 경험도 전혀 없고 범신론

자가 되어버린 북부 독일의 프로테스탄트를 가톨릭 교회의 애호가로 만든 것인가.

내가 노골적으로 놀라움을 나타내자 그의 답변은 이러하였다.

 

 

 

 "만일 교회의 도그마가 진리를 전한다면 이 신조 때문에 인류에게 일찍이 적어

도 한번은 그리스도처럼 인간이었으며 동시에 하느님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인간이었으며 또한 죄로 더럽히지 않은 한 영(靈)이 현재에도 있다는 것을 확실

히 알 수 있다고 나는 당신에게 단언하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나는 상당히 넓

게 세상을 보고 인류의 죄악의 더러운 흐름을 배워 알았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이 죄악의 탁류에 일찍이 한 방울도 더럽히지 않았던 한 영(靈)이다.우리

는 우러러볼 수 있는 죄 없이 순결한 영(靈)을 가지고 싶다. 인간의 신뢰를

얻기 위하여 다행히도 믿을 수 있는 순결한 당신네 가톨릭의 성모를 우리는

 필요로 하고 있다."(크레브스 박사, Dogma und Leben, I, SS. 477-479).

 

 

성모 공경은 가톨릭의 힘

 

 

 

 종교 생활의 궁극의 이상인  신인 합일(神人合一) 이란 살아  있는 현실이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것은 그리스도교의 힘이요 생명이다. 이처럼 표현된 아담의

자식들의 마음속에서부터의 소원이 상상에 그치지 않고 살아 있는 성모 마리아에

게 실현되었다는 신앙은 가톨릭 교회의 힘이요 오래 된 교회로 하여금 영원히 젊

고 인간적으로 따뜻하게 하여 주는 연유이다.  그리스도교로부터 오래 된 교회에

서 길이 번영한 이 성스럽고  정결한 모성애를 내던져 버린 개신  교회는 불쌍한

고아로, 마크스 융그니켈이 고백하고 있는 것처럼  차가운 돌덩어리가 되어 버렸

다. 그가 부르짖은 대로 성모의 신앙은 이 돌 사이에서 장미꽃처럼 피어나 가엾

은 고아의 마음을 따뜻이 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성모의 집은 옛날처럼 오래 된 교회로서 새 교회는 아니다. 성모를 되돌

아오게 하는 것은 결국 로마 교회로 되돌아오는 것이다. 이것은 독일의 호흐 키

르케(高敎會派, High Church) 운동이 루터에게 돌아간다고 하며 사실은 로마

로 돌아가고 있는 연유이다.

 

 성모 공경은 사람이 된 하느님이신 예수의 전통적 신앙에, 그리하여 하느님이요

인간인 예수의 신앙은 그 친히 세우신 유일 무이의 세계적 교회에 대한 신앙으로

까지 이끌어 가야 한다. 이 3자를 연결하는 불가분의 관계는 앞서 말한 네스토리

우스의 이단 이래, 전통 교회 내에 점점 깊게 인식되어 왔다.  가톨릭 교회는 오

늘도 축복하며 노래 부른다. "당신 혼자 모든 이단을 멸망시키셨다(Tu sola interemisti omnes haereses)."

 성모에 관한 신조는 결코 있어도 되고 없어

도 되는 그리스도교의 부가물이 아니라 이것 없이는 참된 그리스도교는 성립하지

않는 계시의 중요한 일부로 되어 있다. 그리스도교의 근본 신조에 관한 오해는 필

연적으로 성모에 대한 오해가 된다. 이에 반하여 성모 공경의 올바른 이해는 이론

적으로 그리스도교의 완전한 전체적 파악에까지 인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머니

있고서 아들이요 하느님의 아들 있고서 성모이다.

 

 

읽으시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신림동성당 신자들은 잘도 읽습니다. 화이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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