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게시판
성모 마리아는 누구인가?(4) |
---|
오성훈님의 글이 이어집니다.
성모 찬미가 ’마니피캇’을 살펴봄으로써 우리를 떠난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의 가엾은 처지를 알아보기로 하자.
성모께서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찾아가셨을 때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큰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 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주님께서 약속 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루가 1, 42-45)
성모와 엘리사벳이 주고받는 인사를 보라.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먼저 인사하였 다. 주님의 묵계(默啓)를 받은 성녀 엘리사벳은 사촌 동생 마리아가 온 것을 보고 놀라 감격하여 마리아의 믿음을 찬미하며 그를 복되다고 하였다. 또 태중에 계신 아들 예수를 아울러 찬양하자 엘리사벳의 뱃속에 있는 요한까지 뛰놀았다. 성령을 가득히 받은 엘리사벳이 성모 마리아께 드린 이 격외(格外)의 존경은 인간의 자연 감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오직 성령의 계시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성령 을 가득히 받은 엘리사벳이 손아래인 마리아에게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하는 황송해 하는 태도와 공경의 태도를 프로테스탄트 형제들은 주시 하라!
이 존엄한 예찬을 받으신 성모 마리아는 저 유명한 ’마니피캇’의 노래로 대답하였 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레 입니다.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입니다."(루가 1, 46-48)
성령께서 마리아의 정결하신 입을 빌을 빌어 장차 온 세상의 사람들이 그를 ’복된 이’라고 할 것임을 예언하셨으며 이는 그가 받을 모든 찬미에 대한 시인이다.
아, 얼마나 과감하고 엄숙한 예언인가! 성서에 기록된 모든 예언 중에서 이보다 더 우리의 흠숭을 자아내는 것은 없다. 멀리 세계 문명의 중심지를 떠난 시골 마 을의 한 정숙한 처녀가 받을 온 세상 사람들의 찬미에 대한 예언 - 하느님의 감도 (感導)로 쓰여진 복음 성서에 엄연히 자리잡은 이 예언의 실현을 의심할 이가 누구 냐. 세계 만방에 밤낮으로 ’마니피캇’이 낭송되는 오늘날 이 예언의 진실성을 의심 할 자가 누구냐. 마리아를 복된 이라고 찬양하여 그 예언을 성취시키고 있는 이는 곧 가톨릭 신자들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 사랑을 받는 유일한 교도(敎徒)이다.
프로테스탄트는 성모 마리아에게 드리는 가톨릭 교회의 찬미를 비웃으며 혹평한다. 그들은 마리아를 ’복되신 동정 마리아’라 부르지 않고, 다만 ’처녀’ 혹은 ’마리아’ ’예수의 어머니’라 부른다. 그들은 마리아의 입을 빌어 하신 주님의 예언, 즉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할 것이다"라고 하신 ’온 세상’ 사람의 마리아 찬양 대열에 참여하지 않으려 한다. 그들은 구약의 사라, 레베카, 에스델, 유딧과 신약의 엘리 사벳, 안나, 막달레나, 마르타 같은 부인들은 예배당 안에서 큰소리로 찬미하면서 구세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의 거룩한 이름에 대하여는 ’마리아 숭배’라는 비난을 받을까 두려워 부르기를 주저한다. 모순도 모순이려니와 정말 기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어머니에 대한 존경은 자녀에게 영예가 된다. 어머니의 얼굴을 둘러싼 빛은 자녀 의 얼굴에 반영되고 어머니의 지위가 높아질수록 자녀의 영광도 더욱 빛나는 법이 다. 자기 어머니를 마음대로 선택할 자유가 없는 뭇사람에게도 그렇거늘, 하물며 당신 스스로 마리아를 어머니로 선택하시고, 당신 어머니의 모든 영광이 곧 당신 자신의 영광이 되도록 마음대로 창조하신 주 예수께 있어서랴.
프로테스탄트 목사들 가운데는 마리아의 성덕을 알지 못하고 그 특별한 지위를 무시할 뿐 아니라 심지어 성모 공경 행위가 무슨 성자께 욕이나 되는 듯이 성모를 훼방하기를 낙으로 삼고, 무엄하게도 성모를 죄인이라고까지 한다. 주께서 과연 불명예스러운 죄인을 당신 어머니로 삼으셨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 주께 영예스러운 일이 되는가 수치스러운 일이 되는가를 생각하여 보라! 성모를 모욕함으로 성자 예수를 모독함은 매우 심한 독성 행위임을 깊이 깨달으라.
이런 성모 모독자들은, 크리스찬 행세도 별로 하지 않던 시인 올리버 홈즈 -그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음은 물론이다- 의 성모 찬가를 들어보라.
"그대 이름 마리아런가, 아리따운 아가씨여,
거문고 소리처럼 내 귀에 울리나니,
인간 중에 가장 어여쁜 이름이여
그대밖에 누구에게 그 이름 어울리랴,
일찍이 그로써 불리신 아가씨는
세상에 태어나신 하늘 나라 사람이었나니."
가톨릭 교회는 성모 마리아를 공경할 뿐 아니라, 성모 마리아의 대도(代禱)를 간구 한다. 앞에서도 말했거니와 천상의 천사들과 성인들도 우리의 기도를 들어 도와 줄 수 있거늘, 하물며 그들을 초월하신 성모 마리아의 우리를 위한 기도야말로 그 얼마나 힘있는 것이겠는가. 지식도 하느님의 선물이다. 그 성덕이 천상 성인들을 초월하신 마리아가 지니신 지식 또한 그들을 초월한 것일 것이다.
첫 순교자 스테파노도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보니 하느님의 영광과 하 느님 오른편에 서 계신 예수님이 보였다"(사도 7, 55)고 하였다. 바오로 사도도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말"(2고린 12, 4)을 들었는데, 하물며 지금 천상에서 하느님과 함께 계신 마리아께서 우리의 현재 상태와 바램을 밝히 보지 못하실 리 있겠는가. 성인들에게는 하늘에서 지상의 사정을 보거나, 지상에서 하늘 의 사정을 보는 것이 마찬가지로 쉬운 일이다. 성모 마리아의 대도(代禱)의 힘은 천상의 모든 천사와 성인들과 예언자들의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다. 이는 성모 의 은총 지위가 그들보다 단연 탁월한 까닭이다.
하느님께서 종들의 기도를 그와 같이 인자하게 들어주실 바에야, 아들의 어머니요 가장 사랑하는 딸이신 동정 마리아의 간구를 거절하실 리 있겠는가. 죄인인 우리도 하느님께 기도함으로써 서로 도와 줄 수 있는데, 모태에서부터 천사들의 노래 가운 데 싸여 영광으로 승천하실 때까지 한결같이 결백하신 성모 마리아의 기도의 힘이 야 얼마나 크겠는가.
마리아는 어머니의 권위를 행사하셨다. 예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셨 다. "예수는 부모에게 순종하였다."(루가 2, 51)라는 기록을 보라. 또 가나 마을의 혼인 잔치에서 기적을 행하신 사실을 보라. 성모께서 "포도주가 떨어졌다"고 하시 자, 예수께서는 기적을 행하실 때가 아직 오지 않았지만 어머니의 청을 들어주셨다.
마리아께서는 ’예수의 어머니’ 라는 존칭과 권위를 하늘 나라에서도 그냥 지니고 계신다. 그가 하늘 나라에서는 예수를 하느님으로 공경하시지만 모자 관계는 그대 로 지속된다. 그러므로 성모의 기도는 예수께서 틀림없이 들어주신다.
하느님의 지고 지엄(至高至嚴)을 알고 자신의 지비지천(至卑至賤)을 아는 우리는 인자하신 성모께 의탁하지 않을 수 없다. 죄인인 우리로서 하느님께 직접 기도하 느니보다 성모의 전구(轉求)의 크신 힘에 의탁하는 것이 허락받기 쉬운 길이라고 우리는 확신한다. 신자가 아니었던 시인 롱펠로우도 성모의 전구(轉求)에 대하여 이렇게 읊었다.
"너무도 너그러운 아버지를
너무도 노엽게 한 아이들이
너무도 부끄럽고, 뉘우치고, 그러면서도
혼자 감히 그 앞에 나아갈 면목 없어서
문 앞에서 누나에게 고백하고 부탁하여
먼저 가서 빌어 주기를 기다리듯이
사람들은 악행을 뉘우치면서도
노하신 아버지의 귀에 가까이
하소연을 사뢰려 당돌하게 못 나아가
마리아께 기도와 고백을 드릴 제
하늘의 성모께서 대신 빌어 주시도다 " Golden Legend
성모 마리아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능력은 지니셨겠지만, 과연 우리를 사랑하는 의욕까지 가지고 계실까, 혹은 하늘 나라 영복의 바다에 잠겨 있는 그가 과연 비 천한 우리의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까 하는 걱정을 품을 만도 하다. 그러나 "여인 이 자기의 젖먹이를 어찌 잊으랴!"(이사 49, 15). 비록 성모께서 하늘 나라의 영 복 속에 계실지라도 결코 우리를 잊으실 리가 없다.
성모께서 양자(養子)인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는 예수께 대한 그의 지극한 사랑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아기 예수는 어머니 마리아의 젖을 먹고, 마리아가 지어 준 옷을 입고, 마리아의 품안에서 폭군 헤로데의 칼날을 면하였으며,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신 뒤 다시 마리아의 무릎 위에서 얼굴의 피를 씻기우셨다.
우리는 예수의 형제들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거리낌없이 형제라고 부르신다고 바오로는 말한다.(히브 2, 11 참조). 성모께서도 우리를 양자로 삼으시고 우리를 ’아들’이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 위에서 요한 사도를 대표로 온 인류를 당신 아들로 삼으셨 으므로(요한 19, 26 참조) 예수를 사랑하시던 그 지성으로 우리의 영혼과 육신을 위하여 온갖 힘을 다 쓰신다. 성모는 곧 하느님과 한 손발로, 은총으로 우리를 먹 여 기르시고 깨끗이 씻어 주신다.
우리와는 전혀 이질적인 존재인 천사들도 우리를 몹시 동정하며 죄인의 회개를 보 면 기뻐하시는데(루가 15, 7참조), 어찌 같은 조상의 후손이며 같은 혈육을 가지고 우리가 경험하는 인간고(人間苦)를 다 맛보신 성모 마리아께서, 불쌍한 당신 아들인 우리를 깊은 동정과 자애로 돌보지 않으시랴.
가톨릭 신자가 아니었던 시인 애드거 알렌 포우조차도 하늘의 성모께 기도드리기 를 꺼리지 않았다.
"아침에나! 낮에나! 황혼에나!
마리아여! 나의 노래를 들으셨나니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좋을 때나 언찮을 때나
천주의 성모시여, 나와 함께 계시옵소서
내 시절이 찬란하게 피어 오르고
하늘에 구름 한 점 안 가리웠을 제
내 영혼이 곧바로 걷기 위하여, 그대 은혜는
아드님과 그대께로 나를 인도하셨나니
시방 운명의 사나운 비바람이
오늘과 어제를 어둠으로 덮을 제도
내 앞날을 빛나게 밝혀 주소서
그대와 아드님의 따뜻한 희망으로."
"성모께 기도드리는 것은 무익할 뿐 아니라, 피조물을 창조주 하느님과 동등하게 대하는 독성 행위다"라고 하는 이가 있다. 가톨릭 교회를 이해하지 못하면 이런 망발도 나오는 법이다. 「천주교 요리문답」을 읽은 신자라면 그 누가 하느님께만 드릴 흠숭지례(欽崇之禮)를 피조물에게 바치겠는가. 우리는 또 마리아를 한 피조물 로 인정하고 마리아가 누리는 모든 특권은 오로지 하느님의 선물임을 확신한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흠숭과 성모께 대한 존경을 분명히 구별하는 이상, 마리아 의 전구(轉求)를 간청하는 행위가 어찌 하느님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행위가 된다 고 할 수 있겠는가. 이는 가톨릭 교회의 기도문 양식을 보아도 밝혀지는 사실이다. 마리아께 기도할 때는"우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라고 한다. 이는 인자하신 하느님 앞에서 우리를 위해 성모께서 ’대도(代禱)’해 주시기를 부탁하는 말이다. 하느님께 기도할 때에는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고 한다. 이는 곧 자비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대한 직접 기원이다.
주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내 아버지께서 나에게 왕권을 주신 것처럼 나 도 너희에게 왕권을 주겠다.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시며 옥 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를 심판하게 될 것이다."(루가 22, 29-30)라고 하 셨다. 또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천사들까지도 심판하게 될 것을 모르십니까"(1고 린 6, 3)라고 하였다. 만약 사도들이 하느님의 권위를 손상하지 아니하면서 하늘 나라에서 주님과 같은 식탁에 앉을 수 있다면, 어찌 은총이 충만하신 성모 마리아 께서 하느님의 권위를 조금도 침범하지 않으시면서 우리의 대언자(代言者)로서 주 님 앞에 서지 못하시겠는가. 사도들이 예수의 심판권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열 두 지파를 심판하고, 또 천사들까지도 심판하는 무서운 권위를 지녔다면, 어찌 주님 어머니이신 마리아께서 아들의 지존하신 대언권(代言權)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대 언자(代言者) 노릇을 하실 수 없겠는가.
심판관의 직권은 대언자의 직권보다 더 크다. 주님의 제자들이 심판권을 갖는 것 에는 놀라지 않으면서 마리아가 대언권을 갖는 것에는 시비를 가리려 드니, 대체 무슨 심사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성모 마리아의 탁월하신 특권은 우리가 마땅히 공경하여야 하며, 그 거룩하신 전 구(轉求)의 힘에는 사랑으로 매달려야 하며, 그 성덕의 생활은 반드시 힘써 본받아 야 한다. 가톨릭 교회가 마리아를 이처럼 찬양하고 공경함은 그가 하느님의 어머 니라는 특권을 지녀서라기보다, 또는 우리를 위한 그의 전구(轉求)의 힘 때문이라 기보다, 차라리 그의 성덕 수범(聖德垂範) 때문이다.
사회나 가정이나 개인 성화의 원동력으로 절대적인 영향을 미쳐 온 인류를 선도하 시는 분은, 주 예수 다음에는 성모 마리아뿐이시다. 성모는 특히 온 가톨릭 사회의 자모(慈母)이시다. 보라! 아무리 허술한 성당이라도 성모 마리아의 성상(聖像)이나 그림을 받들지 않는 성당이 어디 있으며, 또 마리아의 성화를 모시지 않은 신자 가 정이 어디 있는가. 성직자든 평신도든 빈부 귀천도 현우(賢愚)도 따질 것 없이 다 성모의 자애로우신 권능과 은덕에 승복한다.
가톨릭의 힘으로 이교(異敎) 세계가 교화(敎化)의 빛을 받게 되자, 부부의 믿음과 사랑, 부녀자의 정덕(貞德)과 여성의 지위가 현저히 향상되었다. 이는 오로지 성모 마리아의 성덕의 힘 때문이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한 여인을 간택하여 당신 어머 니로 삼으신 놀라운 사실이 일어난 이래, 남자가 여자를 노예처럼 대하는 불의가 없 어졌을 뿐 아니라 도리어 여자를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교회에서 이처럼 성모 마리아를 본받으라고 권장하는 것은 성모께서 아드님의 가 장 완전한 거울이 되시는 까닭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성모 마리아의 자녀들로서 시인 롱펠로우가 성모의 성덕(聖德)을 찬양하며 다음과 같이 읊조렸듯이 다같이 겸손되이 우리의 시(詩)를 읊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이곳은 참으로 복된 땅!
동정녀요 경애하는 구세주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땅!
모든 마음은 그 이름 앞에 오직 감동되고 부드러워지나니
손에 피묻은 산도적이거나
사제거나 왕후거나 선비거나 농부거나
실행하는 사람이나 꿈을 쫓는 사람이나
오직 그를 받들어 섬기도다!
비록 우리의 믿음으로 얻어 가지는 바가
온 여인 가운데 모범되시는
온순하고 인자하고 굳세고 선하고
참을성 있고 평화스럽고 충성스럽고
자애와 순결의 본보기이신 그대 한 분뿐일망정
예로부터 알려진 모든 신조보다도 더욱 숭고하고
진리임을 증거하기에 넉넉하나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