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동성당 게시판

가슴이 찡~~귀여운 동자승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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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희 [worship] 쪽지 캡슐

2002-06-04 ㅣ No.1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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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승과 아이가 산길을 가고 있었다.

산길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돌돌돌 소리내며 흘렀다.

아이가 산벚꽃이 핀 숲에 이르자 또다시 노승에게 쉬었다 가자고 졸랐다.

아이는 스님을 만난 지 2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철부지였다.





“스님, 다리 아파요.”

노승은 암자가 아직도 멀었으니 조금 더 가서 쉬자고 아이를 달랬다.

개울물이 붕어 옆구리처럼 반짝였다.

햇살이 쉬어 가는 양지 바른 곳에는 벌써 민들레꽃이 피어나 있었다.





“조금 더 가자꾸나. 거기서 쉬면서 내가 이야기 하나 해줄게.”

“어디쯤에서 쉬어요.”

“산굽이를 하나만 돌면 네 키 만한 바위가 하나 있지.”

“오늘은 무슨 이야기를 바랑 속에서 꺼내실 거예요?”

“음, 너와 나이가 같았던 동자승 이야기지.”

아이는 힘을 냈다.

“그 아이는 어디로 갔어요?”

“2년 전에 부처님이 계시는 하늘나라로 떠났단다.”

“제가 삼촌 집에서 스님을 따라오기 전이네요.”

“그렇단다. 네 삼촌이 너를 훌륭한 스님으로 키워달라고 나에게 맡기기 전이었지.”




아이는 삼촌 가족과 헤어지던 슬픈 기억이 떠올라 잠시 이를 꾹 물었다.

발 앞에 있는 작은 돌멩이를 툭 찼다.

돌멩이는 데굴데굴 굴러가다가 풀숲으로 숨었다.

풀숲을 기웃거려보지만 돌멩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세 살 때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부모님처럼 꼭꼭 숨어버렸다.

아이는 돌멩이를 호주머니에 넣을걸 하고 후회했다.





노승은 약속대로 바위가 있는 데서 쉬었다.

그런데 그냥 쉬는 게 아니라 노승은 노란 산수유꽃을 꺾어와 바위 앞에 놓고 합장했다.

바위가 돌부처라도 되는 양 아주 공손하게 머리를 숙였다.

“무슨 바위죠?”

“그냥 나 혼자서 이름을 지어 부르고 있단다.”

“알아맞혀 볼까요?”

“말해 보려무나.”

노승은 소리 없이 웃으며 허리를 폈다.

“촛대바위.”

“아니다.”

“스님이 지었으니까 제가 모른 건 당연하죠.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럼 맞힐 수 있어요.”

노승은 산수유꽃 향기를 맡느라고 코를 벌름거리는 동자승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면서 이야 기를 꺼냈다.





노승이 꺼낼 이야기는 2년 전 추운 겨울에 숨을 거둔 동자승 이야기였다.

그 동자승도 노승을 할아버지처럼 좋아했고 노승이 먼 마을로 탁발 나갈 때도 꼭 따라나섰 다.

동자승은 산길을 걷다가도 의문이 생기면 꼭 물었다.

생각이 깊은 동자승이었다.

“스님, 왜 탁발을 해요? 절에서 가만히 앉아 시주 받으면 편하잖아요.”

“탁발이란 그냥 받는 것이 아니다. 마음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주고받아요?”

“내가 염불을 하는 것은 내 마음을 주는 것이지.”

“스님, 염불을 듣는 사람은요?”

“역시 나에게 마음을 주지. 그러니까 먹을 양식이 부족한 데도 내 바랑에 곡식을 넣어주는 것이야."

" 그런 마음을 욕심 없는 마음이라고 하지.”

“욕심 없는 마음을 가지면 어떻게 돼요?”

“너는 어떻게 될 것 같니?”

“극락에 갈 것 같아요.”

“극락이 어디에 있는데?”

“사람이 죽어서 가는 좋은 곳이에요. 젊은 스님이 말씀해 주셨어요.”

노승은 동자승에게 다시 말했다.

“극락은 죽어서만 가는 곳이 아니다. 욕심 없는 그 마음이 바로 진짜 극락이고 행복이란 다.”





총명한 동자승은 알아들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날부터 동자승은 욕심 없는 마음이 무엇일까 하고 깊은 생각에 잠기곤 했다.

그러던 추운 겨울날이었다.

동자승은 노승 몰래 탁발을 나갔다.

그러나 염불을 아직 할 줄 모르므로 동자승에게 곡식을 주는 사람은 거의 없었 다.

그런 날은 바랑이 채워질 때까지 더욱더 멀리 길을 걷기 마련이었다.

벌써 동자승의 얼굴은 찬 바람에 멍이 들어 파랗게 변했다.

날이 저물 무렵에야 겨우 바랑이 반쯤 찼다.

노승이 있는 암자까지는 까마득하니 먼 거리였다.

바람은 매섭게 불고 눈이 내리려는 듯 하늘이 희끗희끗했다.


동자승은 돌아오는 길에 큰 다리쯤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다리 밑에서는 거지들이 깡통을 돌에 걸어놓고 죽을 끓이고 있었다.

죽은 허여멀쑥해서 맹물이나 다름없었다.

얇고 찢어진 옷을 걸친 거지들은 배가 고프고 추운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동자승은 탁발한 쌀을 거지들에게 줄까 말까 망설였다.

고생해서 얻은 쌀이니 암자로 가져가 노승과 자기가 먹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 고,

노승이 들려주었던 ‘욕심 없는 마음’ 얘기도 떠올랐다.

결국 동자승은 다리 아래로 내려가 바랑의 쌀을 다 주고는 올라왔다.

망설임이 사라지니까 마음이 후련했다.


동자승은 다시 다리 밑으로 내려가 입고 있던 속옷은 물론 양말까지 다 벗어주었 다.

헐렁한 홑겹 옷만 입고 다리 위로 올라왔다.

어느새 땅거미가 지고 하늘에서는 흰눈이 내렸다.

동자승은 쉬지 않고 걸었다.

그러나 산길로 접어들어서는 걷기가 힘들었다.

배도 고프고 너무 많이 걸어서 다리도 아팠다.

조금 더 산길을 올라갔지만 동자승은 자기 키 만한 바위에 기대어 주저앉아버렸 다.

그렇게 밤 동안 찬 바람과 눈발을 피했다.


그러나 동자승은 다음날 일어나지 못하고 말았다.

추위가 동자승의 목숨을 앗아가 버린 것이었다.

노승이 다음날 아침 바위에 도착했을 때는 마을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동자승은 꿈속에서 엄마를 만난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노승은 동자승을 업고 암자로 가는 산길을 걸었다.




노승은 하던 얘기를 멈추고 ‘관세음보살’을 외었다. 그러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그래서 나는 이 바위를 동자바위라고 부른단다.”

노승은 가다 말고 동자바위를 향해 합장을 했다.

아이도 엉거주춤 합장을 했다.

이 세상에서 동자승과 아이가 쌍둥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노승과 아이의 삼촌 가족뿐일 것이었다.

...정 찬 주 <쌍동이 동자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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