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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독] 나해 연중 제17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나연중17주일> 832_빵늘림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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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7-23 ㅣ No.2248

게시자 주: 본글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8.htm 에 접속하면, 본글 중에서 제시되고 있는 출처 문헌들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의 인터넷 주소, http://ch.catholic.or.kr/pundang/4/q&a.htm 에 접속하면, 본글의 제목이 포함된, "가톨릭 신앙생활 Q&A 코너" 제공의 모든 게시글들의 제목들의 목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한 (i) 2006년 12월 16일에 개시(開始)하여 제공 중인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중앙협의회 홈페이지 제공의 날마다 영어 매일미사 중의 독서들 듣고 보기, 그리고 (ii) 신뢰할 수 있는 가톨릭 라틴어/프랑스어/영어 문서들 등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손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  (PC용, 날마다 자동으로 듣고 봄) [주: 즐겨찾기에 추가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m (스마트폰용) [주: 네이버 혹은 구글 검색창 위에 있는 인터넷 주소창에 이 주소 입력 후 꼭 북마크 하십시오]

 

 

나해 연중 제17주일 온라인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자료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동영상 청취 주소: http://pds.catholic.or.kr/Archives/300/1/gnattboard/2839/84/나해연중제17주일.mp4 <----- 여기를 클릭하여 청취하십시오 

가해/나해 주일 전례성경공부/영어성경공부 묵상 동영상 목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13.htm  
동영상 교재: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해 II, 가톨릭출판사, 2009년.

동영상 교안(敎案)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8.htm

 

 

시작 기도: 대성호경, 주님의 기도

 

이 십자성가 표적(表迹)으로써, (이마 위에 +)

우리의 주님이신 천주께서는 (입 위에 +)

우리의 원수들로부터 우리를 구하소서. (가슴 위에 +)

성부와 (이마 위에 손끝을 찍음) 

성자와 (배 위에 손끝을 찍음) 

성령의 이름으로. (왼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은 후에 그리고 곧바로 직선으로 이동하여 오른쪽 어깨 위에 손끝을 찍음) 

아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들을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복습 0: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미 그리스도인들인 새 교우/세례 준비자(Catechumens)들을 위한 세례명 선정 안내의 글[제목: 축일표에 따른 성인, 성녀 모음으로 바로가기.. [세례명 선정시 꼭 참고]; 게시일자: 2003-03-08] 등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50.htm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주일 전례성경 학습자들을 위한 입문자료 모음 동영상을 청취할 수 있습니다. 특히, 최근에 세례를 받으신 교우님들께서 꼭 청취하실 것을 요청드립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9.htm <----- 필독 권고

 

복습 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실재론(realism)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실재론을 인정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그리스도교 부활 신앙 등을 인정하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제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78.htm

 

복습 2: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느님이 한 말단인, 적어도 3자들 사이에 있어, "경의/존중과 함께 당연한 의무들에 대한 충실"(pie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49.htm <----- 필독 권고

 

복습 3: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판단과 절차에 있어] (수용된) 올바름’(rectitud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89.htm <----- 필독 권고

 

복습 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악"(evil), "윤리적 악"(moral evil), "죄"(sin), 원죄"(original sin) 등의 용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8.htm  <----- 필독 권고

 

복습 5: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시기"(jealousy)"질투"(envy)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envy_vs_jealousy_concept_error.htm <----- 필독 권고

 

복습 6: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자/하느님의 아드님"(the Son of God)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0.htm <----- 필독 권고

 

복습 7: (i)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은 곧 ‘하늘 나라의 도래’(the coming of the kingdom of heaven)를 말한다(LG 5).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하늘 나라(천국)"(the kingdom of heave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늘 나라(천국)의 흔적이 있는 곳과 지상의 그 현존처는 구분하여야]

 

(iii)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영성 신학 등에 있어 가장 중요한(the most important), '그리스도의 복음'(the Gospel of Christ)의 핵심(core)인, 초자연적 상태를 나타내는, ‘천국’(天國), 즉, ‘하늘나라’, 즉, ‘하늘 나라’(the kingdom of heaven)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및 출처 등을 학습할 수 있다. 특히,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천당’(天堂, heaven)은 ‘천국’(天國, the kingdom of heaven)의 옛말이 아님을 항상 기억하면서, 필독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7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87.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96.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4.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0.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H_JohnPaul_II.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concept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H_translation_errors.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kingdom_of_heaven.htm

 

(iv)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시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혹은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영어로 ‘the kingdom of God’로 번역되는 성경 용어가, 1704년 혹은 그 이전의 시기에, 이미 ‘神國’(신국)으로 번역되었고, 그리고 그 이후에 우리나라에서 ‘神國’이 우리말 표현 ‘하느님의 나라’로 번역되었는데, 그러나, 왜냐하면 그 자구적 의미에 있어 통치의 개념이 곧바로 연상되지 않는, ‘國’(나라 국) 낱글자가 번역 용어인 ‘神國’(신국)에서 사용된 것이 참으로 유감이라 아니 지적할 수 없다.

 

(v) 다른 한편으로, ‘kingdom’, 즉, ‘regnum‘이, 어원적으로, ‘king’(임금) + ‘dominion’(통치), 즉, ‘king‘s dominion’(임금의 통치)를 의미하므로, 예수님께서 지상에 개시((開始)하신(inaugurates) ’하늘 나라‘, 즉, ’하느님의 나라‘, ‘國’(나라 국) 낱글자 때문에 연상하게 되는 장소의 개념이 아닌, 원 성경 용어의 의미인, 지상에 있는 [진리 그자체인(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55항)] 하느님이라는 임금의 통치‘(the reign of God)로 이해하면 훨씬 더 쉽게 이해됨에 반드시 주목하라.

 

복습 8: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구속(救贖)/속량 신비’(the mystery of redemption)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0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2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69.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demption_objective_vs_subjective.htm <----- 필독 권고


복습 9:

(i) 다음은, 1880년에 초간된 "한불자전"에서 발췌한 바이다: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b/1830-1884_리델/1880_한불자전.htm <----- 여기를 클릭하면


필자가 어렵게 확보하여 제공하는 [제공처: 분당골 가톨릭 문서 선교 홈페이지 capax Dei], 예를 들어, 우리말 고어체 표기의 변천과정과 관련하여 대단히 중요한 문헌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 제공자가 없어서 국내의 인터넷 공간에서 전혀 구할 수 없었던, "한불자전 전문 pdf"를 다운로드할 수 있습니다.

(발췌 시작)

셩셔_셩셰_셩심_셩신_in_1880_한불자전_제404쪽.jpg

 

게시자 주: "셩심"(聖心)을 프랑스어로 설명하면서, "마음"아니라, "Cœur" (심장; 라틴어: Cor)가 사용된 것에 반드시 주목하라.

(이상, 발췌 끝)

 

(ii) 특히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heart), 즉, 성체 성혈에 의하여 구약 성경의 유관 예언들이 구현된 그리스도교 고유한 구속(救贖)/속량(Redemption) 신비와 관련하여, 구약 성경 및 신약 성경의 유관 부분을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성경 용어인 ‘Cor/heart’을, 글자 그대로, ‘심장’으로 직역 번역(literal translation)을 하지 않고, 대신에, ‘마음’(mind)으로 잘못 번역을 한 심각한 번역 오류에 대하여 지적하는 필자의 졸글들을, 꼭 읽도록 하십시오:

 

히브리서 9,28; 이사야서 53,12 :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151.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mon.htm

 

히브리서 10,7; 칠십인역 시편 40,6-8[7-9]: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63.htm 

[제목: 칠십인 역 시편 40,6-8 및 히브리서 10,5-7: 을 마련해 주셨다 vs 대중 라틴말본 및 마소라본 시편 40,7-9: 귀를 열어 주셨다???; 게시일자: 2020-06-15]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tue.htm

 

히브리서 10,12; 시편 110,1: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히브리서 10,17; 예레미야 31,33-34: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ot_3_wed.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1.htm <----- 필독 권고 

[제목: 하느님께서 접촉하시는 우리의 신체 부위는 어디?; 게시일자: 2015-01-07]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04.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16.htm <----- 필독 권고

[제목: 가톨릭 교회 교리서 본문의 우리말 번역 작업 자체가 해석/주해 작업이어서는 아니 됩니다; 게시일자: 2015-02-17]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lent_5.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8.htm  


복습 1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 제516항, 제517항, 그리고 제518항에서, (i) 성부 하느님의 계시, (ii) 구속(救贖)/속량 신비, 그리고 (iii)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신비로 구성된다고 가르치는, 예수님의 신비/오적(奧跡)(mysteries)들에 공통인 특징들 중의 하나인, 이 세상의 질서가 아담과 하와가 원죄를 범하기 이전의 원 상태, 즉, ‘코스모스(cosmos)’로 회복되기 시작하였음을 말하는, 예수님의 부활에 의하여 이미 개시된, 성경 용어인 ‘총귀(總歸)/총괄복귀’(總括復歸, recapitulation, recapitulatio)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필독하도록 하십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recapitulation_of_St_Irenaeus.htm <----- 필독 권고

 

그리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새 창조’의 핵심 성경 용어인 'recapitulation/recapitulatio'의 차용 번역 용어로서 채택된 ‘총귀(總歸)’라는 용어의 출처와 기원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15.htm  <----- 필독 권고

 

복습 1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은총"(grace)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를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7.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5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62.htm <----- 필독 권고

 

복습 12: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영광"(glory) 이라는 용어와, "영광을 발하는"(glorious), "영광을 더하다"(glorify), "자랑하다"(glory in) 등의 그 파생어들의 정의(definition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8.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98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7.htm <----- 꼭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1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45.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lory.htm <----- 필독 권고

 

복습 13: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225-1274년)"신학 대전"(Summa Theologiae)에 제시된 '애덕'(charity)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한 글[제목: 애덕(charity)이라는 덕; 게시일자: 2013-11-04]을 학습할 수 있다[본문 중에 포함된 key word: Christoph Cardinal Schönborn]: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전통적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그리스도교(Christianity, 즉, 예수님의 가르침)의 가장 중요한 용어들인, 예수님의 새 계명의 이해에 필수적인, 오늘의 복음 말씀과 제2독서에서 사용되고 있는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명사 ‘사랑’(love, agape, charitas, charity, amore)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 및 차용(借用) 번역 용어인 동사 ‘사랑하다’(to love, agapao, diligere, amor)의 자구적 어의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 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51.htm [가해 부활 제6주일 말씀전례 묵상]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47.htm [번역 용어인 사랑하다의 의미] <--- 꼭 제일 먼저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52.htm [사랑들의 차이점 -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08.htm [하느님의 뜻(의지, will)]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65.htm [애덕(charity)이라는 덕(신학대전여행)]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5.htm   [사랑/애덕의 정의(definition) 외]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070.htm [하느님의 사랑]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00.htm [사랑의 의미는?]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437.htm [애덕의 결여/부재(cupiditas)는 모든 죄의 뿌리]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04.htm [Ubi caritas et amor 혹은 Ubi caritas est vera?]

 

(iii)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신성(神性)적 사랑(divine love)인성(人性)적 사랑(human love)의 차이점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1.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693.htm [3자들 사이의 자연적 사랑 dilectio 에만 신성적 사랑(divine love)이 가능하다]

 

(iv) 더 나아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이들 용어들의 자구적 어의(語義)(literal sense)에 대한 추가적인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또한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concept_of_love.htm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05.htm

 

복습 14: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그리스도교 교의 신학, 성서 신학, 그리고 영성 신학에 있어 핵심 용어인 '완미(完美)'(perfection)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erfection.htm <----- 필독 권고

 

복습 15: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의로움/올바름’(righteousness)‘정의’(justice)의 차이점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묵상 동영상을 꼭 청취하도록 하라. 특히, ‘정의로운 자(the just)들’ 중에서만 오로지 ‘의로운 자(the righteous)들’이 있을 수 있음을 항상 기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1.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5.htm <----- 묵상 동영상 필청취 요망

 

(ii) ‘의로운 자들’(the righteous), 즉, ‘의인들’‘의로운 일들’(piety), 즉, ‘선행들’(good works)을 실천한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있을 수 있는데,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예수님께서 직접 나열하신 ‘의로운 일들’, 즉, ‘선행들’에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iety.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good_works.htm <----- 필독 권고

 

복습 16: (i)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credere Deum’(信天主, 신천주), ‘credere Deo’(信賴天主, 신뢰천주), 그리고 ‘credere in Deum’(信仰天主, 신앙천주)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므로 필히 학습하도록 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ii) 혹은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믿다"(believe)"쪽으로 믿다"(believe in)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8.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49.htm <----- 필독 권고

 

복습 17: (a) 영어 번역문들에서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형이상학적 의미가 잘 보존되도록 우리말로 직역 번역을 하고자 한다면, 천주교회가 이미 존재하는 지역에서, 즉, 예수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中保)/중개자 역할(요한 복음서 14,6)이 알려진 지역에서, 다음의 인과 관계들이 성립함과 모순되지 않도록 번역되어야 함을 항상 유념하도록 하라:

(i)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믿는 자들, 즉, 예수 그리스도 쪽으로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세례를 받는 자들, 즉, 하느님의 자녀들로서 입양되는 자들이 있을 수 있고, 그리고
(ii) 세례를 받은 자들 중에서만 오로지 장차 영원한 생명(eternal life)을 얻는 자들, 즉, 천상영복을 누리는 자들이 있을 수 있다.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 so that ... may/might ...’ 문장 구조를 사용하여 전달하고자 한, '인과 관계'라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관한 용례(usage examples)들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meaning_of_so_that_statement.htm <----- 필독 권고

 

복습 18: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기적’(miracle), ‘이적’(wonder). ‘표징’(sign)의 차이점에 대한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9.htm <----- 필독 권고 

 

복습 19: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정(情, passion)’이라는 용어의 정의(definition)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passions.htm <----- 필독 권고

(이상, 복습 끝) 

 

복습 20: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절망’/‘자포자기’(despair, hopelessness)이 포함되는, 성령에 거스르는 죄들 여섯 개에 대한 글들을 학습할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blasphemy2Holy_Spirit.htm <----- 필독 권고

 

복습 21: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를 들어, 라틴어, 프랑스어, 영어, 그리고 우리말 등의 지역 언어들의 한계 때문에 동일하게 ‘새로운(nova, nouveau, new)’으로 번역되는, 그러나 동일한 의미를 결코 나타내지 않는, 두 개의 그리스어 단어들인 ‘새로운'(kainos, 카이노스)‘새로운'(neos, 네오스)의 자구적 의미(literal senses)들의 커다란 차이점에 대한 글 등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kainos_vs_neos.htm <----- 필독 권고

 

 

<나연중17주일> 나해 연중 제17주일

 

2열왕 4,42-44; 요한 복음서 6,1-15; 에페소 4,1-6

 

"가톨릭 교회의 말씀전례에 따른 성경공부 해설서", 나 II, 제191-204쪽

 

오늘의 제1독서 중에서:

 

"이 군중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2열왕 4,43ㄴ)

 

오늘의 복음 말씀 중에서:    

 

그들이 모았더니, 사람들이 보리빵 다섯 개를 먹고 남긴 조각으로 열두 광주리가 가득 찼다. (요한 복음서 6,13)


오늘의 제2독서 중에서: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unity)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 (에페소 4,3) 

 

 

오늘의 전례성경이 가르치는 바를 학습하기 위하여,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 합시다.       

 

A.
(i)
히브리어 글자들에는 모음이 없는데, 이것을, 기원전 3세기경부터, 이미 자음과 모음을 가지고 있었던 그리스어로 번역을 하다 보니 그 번역문의 분량이 약 50% 이상 증가하게 된 것이 이렇게 두 권으로 분리하게 된 이유이라고 알려져 있다.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을 읽을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60.htm <----- 필독 권고

 

(ii) 지역 언어로의 성경 번역과 관련하여, 다음의 주소에 있는 글을 꼭 학습하도록 하라. 필독을 강력하게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279.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52.htm <----- 필독 권고

 

B.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오병이어’(五餅二魚)라는 신조어 번역 용어의 출처 및 기원의 실증적 고증/입증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083.htm <----- 필독 권고

 

C. 복습 18: 성경 학습과 관련하여, 이적(wonders), 기적(miracles), 그리고 표징(signs)의 의미는 분명하게  구별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i) 표징(signs)들 중에는, 자연적 표징(natural signs)들도 있으므로, 기적(miracle)이 아닌 것이 있을 것임에 유의하자. 예를 들어, 천둥(thunder)은 폭풍(storm)에 대한 하나의 자연적 표징(natural sign)이나, 즉 천둥은 조만간 폭풍이 있을 것임을, 자연 현상의 결과로서, 우리로 하여금 예상하게 하는 자연적 표징이나, 천둥 그 자체는 하나의 자연 현상에 불과하므로 결코 기적이 아니다. 역으로, 기적들은 모두 초자연적(신성적) 표징들이므로, 기적은 표징이다. 이는 신성의 개입(divine intervention)을 필요 조건으로 가지고 있는 표징[즉, 초자연적(신성적) 표징]은, ‘기적’의 정의(definition)에 의하여, 기적이기 때문이다.

 

(ii) 기적(miracle)의 정의(definition): 다음은 미국 천주교 주교회의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에 사용하고 있는 용어 모음집에 주어져 있는 기적의 정의인데, ‘초자연적 이적[supernatural(divine) wonder] 혹은 초자연적 표징[supernatural(divine) sign]’을 기적(miracle)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서 괄호 안의 번호 547은 마지막 문장이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547항에서 인용/요약한 것임을 나타내고 있다:

 

MIRACLE: A sign or wonder, such as a healing or the control of nature, which can only be attributed to divine power. The miracles of Jesus were messianic signs of the presence of God's kingdom (547).

 

기적(miracle): 치유 행위 혹은 자연 현상의 통제 등과 같이, 신성적 힘(divine power)에 오직 귀속될 수밖에 없는 표징(sign) 혹은 이적(wonder)을 말한다. 예수님의 기적들은 하느님 나라의 현존에 대한 메시아의 표징(messianic signs)들이었다(547)(엮은이 번역).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cc_glossary.htm

 

참고: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이적(wonders), 기적(miracles) 그리고 표징(signs)의 차이점들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의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wonders_miracles_signs.htm <----- 필독 권고

 

(iii) 요약하면, 기적은 이적이나 그 역은 일반적으로 성립하지 않으며, 기적은 표징이나 그 역은 일반  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단 NAB 요한 복음서 입문에 언급되어 있듯이, 요한 복음서 본문에서, 기적과 표징은 ‘동일한 표현’, 즉, 논리적으로 동치(logically equivalent)인 표현임에 유의하라.

 

D.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예수님에 의하여, (i) 진복팔단이 선포되었던 산 언덕, (ii) 5병2어 기적이 일어났던 장소 등에 대한 예수님의 공생활 당시의 카파르나움 지역 및 그 근처 지역들에 대한 성지 순례 정보를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62.htm <----- 필독 권고

 

(b) 그리고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i) 산중성훈(山中聖訓)/산중수훈(山中垂訓)/산상수훈(山上垂訓)(마태오 제5-7장)에서 山中垂訓 등 신조어 번역 용어들의 출처 등, 특히 (ii) 산상수훈(山上垂訓)이라는 잘못된 번역 용어의 출처 및 일제 강점기 시절에 한반도에 전달되는 과정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2.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126.htm <----- 필독 권고

 

E. 알곡식 추수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본 해설서의 성령강림 대축일 입문에 있으니 참조하라. 

 

F.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빵들의 증식 기적(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을 다루는 졸글/졸고 등을 읽을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27.htm <----- 꼭 필독 권고
[졸고; 제목: 빵 늘림 기적(the miracle of the multiplication of the loaves)에 대하여] [바로 이 단락에 기술된 바를 신약 성경의 4복음서들 중의 유관 구절들에 근거하여 논증하는 글이므로, 특히, 성직자들, 수도자들 및 목회자들의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26.htm <----- 꼭 필독 권고
[제목: 예수님의 빵 늘림 기적에 대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들 외][안병철 신부님의 가르침]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32.htm <----- 꼭 필독 권고
[제목: 심각한 수준의 번역 누락 한 개 – 가톨릭교회교리서1335항][송봉모 신부님의 가르침]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miracle_of_mult_of_loaves.htm [주: 유관 글들의 모음]

 

G. 기원후 1세기 초기 교회 시절의 중요한 교회 문헌인 디다케(The Didache)에 대한 설명은 본 해설서의 나해 연중 제15주일 복음 말씀(마르코 복음서 6,7-13) 해설의 각주에 있으니 참조하라.

 

H. 다음에 나열된 네 개의 바로오의 서간들은 ‘옥중 서간들(captivity epistles)’이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이들이 바오로가 로마에서 수인(prisoner)으로 갇혀있는 기간 중에 쓰였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에페소서, 필리피서, 콜로새서, 그리고 필레몬서.

 

I.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습관’(habit)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habit.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htm [제목: 성 토마스 아퀴나스 용어집]

 

(b) 다음의 주소들에 접속하면, (i) ‘덕’(德, virtue)이라는 차용 번역 용어의 정의(definition), (ii) ‘지성덕’, ‘윤리덕’, 그리고 ‘향주덕’으로 구분되는 대분류 등에 대하여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virtue.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585_moral_virtues.htm <----- 필독 권고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intro2virtues.htm  <----- 필독 권고

 

(c) ‘윤리덕(moral virtues)들에 대한 그리스 문화적 나열들’은, (i) 현명(prudence, 지덕), (ii) 정의(正義, justice, 의덕), (iii) 용기(fortitude, 용덕), 그리고 (iv) 절제(temperance, 절덕)로 구성된, ‘사추덕[four cardinal virtues, 네 개의 주된 인간에 대한 덕(대인덕, 윤리덕, 자연덕, human virtues)들]’들을 말한다.

 

다음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I 연중 제16주일 3분 복음/교리 묵상에서 발췌한 것이다:
 

CCCC 379. 주된 인간에 대한 덕(대인덕, 對人德)들은 어떤 것들로 구성되어 있는지요?

CCC 1805, 1834

 

인간에 대한 주된(principal, cardinal) 덕들, 즉, 주된 윤리덕들은 추덕(cardinal virtues, 樞德, 방위 덕)들이라고 불리는데, 이 덕들 아래에 모든 다른 윤라덕들이 분류가 되며 이 추덕들은 고결한 삶의 경첩(hinges)들입니다. 추덕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사추덕(四樞德, four cardinal virtues), 즉, 현명[prudence, 지덕(智德)], 정의[正義, justice, 의덕(義德)], 용기[fortitude, 용덕(勇德)], 그리고 절제[temperance, 절덕(節德)](엮은이 번역).

 

주: 히브리 수비학에서 숫자 4는 온전히 그대로의 이 세상을 나타낸다. 예: 네 개의 방위(4 winds, 方位, 즉 동서남북)들, 네 개의 방위 기점(基點)(4 cardinal points of the compass)들, 그리고 네 개의 방위 덕(4 cardinal virtues)들, 즉 ‘네 개의’ 추덕(사추덕)들. 그러므로 사추덕은 곧 ‘이 세상의’ 주된 기본 덕들을 말한다.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a_ot_16_c1805.htm

 

참고 1: 그리스도교의 저술들에 있어 1테살로니카 1,3에서 최초로 언급되고 있는, 믿음, 희망, 사랑으로 구성된 초자연덕들인 향주덕(theological virtues, 대신덕, 하느님 쪽으로 향하는 덕)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I, 연중 제10주일, 연중 제15주일, 그리고 연중 제18주일의 3분 복음/교리 묵상들에 있으니 참조하라.

 

참고 2: 사추덕에 대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집(CCCC)[및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설명은 본 해설서 시리즈의 가해-II, 연중 제15주일, 연중 제16주일, 그리고 연중 제17주일의 3분 복음/교리 묵상들에 있으니 참조하라.

 

참고 3: 초자연덕들인 향주덕(theological virtues, 대신덕)들과 자연덕들인 윤리덕(human virtues, 대인덕)들을 그리스도 신앙적으로 고찰하는 것은, 성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년)로 대표되는, 중세 스콜라 철학에서 그리스도교의 전통적 윤리 신학(moral theology)으로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다. 특히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은 이들 두 범주의 덕들 사이의 관계를 신학적으로 잘 밝히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아래의 참고 4에 안내되어 있는 엮은이의 졸글들에서 출처를 밝힌 인터넷 자료들을 필히 참고하도록 하라.

 

참고 4: 사추덕들 중에 특히 정의(正義, justice, 의덕)의 정의(定義, definition)는 한자를 사용 하는 동양 문화권에는 없는 개념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실린 정의(正義, justice)의 정의(定義, definition) 및 이와 관련된 엮은이의 졸글들은 다음에 있다:

 

참고 자료 1: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799.htm [정의의 정의(definition)에 대하여

참고 자료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0.htm [의로운 자 vs 의롭게 된 자]

참고 자료 3: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805.htm [서양의 justice vs 동양의 義]

 

J.

참고 5: 다음은 영어 가톨릭 대사전에 실린 ‘겸손(humility)’이라는 덕의 정의(definition)이며, 이 정의에 따라 ‘겸손’은 사추덕들 중의 한 덕인 ‘절제(temperance)’에 첨부된다(annexed):

겸손(humility)이라는 덕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것입니다: “(겸손이란) 하나의 특성인데, 이것에 의하여, 자신의 결함들을 생각함에 있어,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낮은 견해를 가지며 그리고 하느님을 위하여 자기 자신을 하느님께 그리고 다른 이들에 기꺼이 종속시킨다." 성 베르나도(St. Bernad)는 이 덕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하나의 덕인데, 이것에 의하여, 참된 현재의 자기 자신을 알게 됨에 있어, 사람은 자기를 비하한다." 이들 정의들은 다음과 같이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에 의하여 주어진 정의(definition)와 일치합니다: "겸손이라는 덕은, 자신 위의 것들에 손을 뻗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또한 자신보다 우수한 사람(one's superior)에게 복종함으로써, 자신 고유의 영역 안에 스스로 머무르는 것을 말한다.” (Summa Contra Gent., bk. IV, ch. lv, tr. Rickaby)(엮은이 번역).

 

출처 1: http://ch.catholic.or.kr/pundang/4/ce_humility.htm
출처 2: http://ch.catholic.or.kr/pundang/4/summa/3161.htm

 

K.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영어로 "peace"로 번역되고, 히브리어 "shalom"에 대응하는 성경 용어가, 1583년과 그 이후에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예수회 소속의 신부님들에 의하여, 애초에, ‘평화’(平和)가 아니고, ‘화목’(和睦)으로 번역되었음에 대하여 실증적으로(positively) 입증/고증하는 글을 학습할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1752.htm <----- 필독 권고

 

L.

(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세례’라는 용어가, 추안 급 국안에 기록된, 주문모 신부님(1752-1801)이 사용한, 한문 문화권 천주교회의 고유한 신조어 번역 용어임에 대한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19.htm <----- 필독 권고

 

(ii)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우리나라에서 196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어온 ‘성세성사’라는 용어 대신에, 1970년대에 갑자기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 ‘세례성사’라는 표현이 어법에 맞지 않음을 지적하는 글을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27.htm <----- 필독 권고

 

M.  

(a)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교황청에서 사용 중인 RSVCE (Revised Standard Version Catholic Edition)에서 발췌된 오늘의 제2독서 전문을 읽을 수 있다. 오늘의 제2독서가 ‘교회의 일치/단일성(unity)’의 성경 근거이라고 제시하는, 가톨릭 보편 교회 교도권에 매우 출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해설을 또한 필독하라: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7.htm

(b) 다음에 발췌된 "새 번역 성경",  에페소서 4,6의 해설의 실증적 근거(positive evidences)들 등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발췌 시작)

에페소 4,6 만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 분이십니다. 그분은 만물 위에, 만물을 통하여, 만물 안에 계십니다. 

 

여기서 네 번에 걸쳐 모두 ‘만물’로 번역된 표현은, 전후 문맥 안에서, 자칫 한문 문화권 내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만유신론’(萬有神論)/‘범신론’(汎神論)을 성 바오로가 지지하는 듯한 오류의/잘못된 느낌(feeling)을 독자들에게 야기할 수도 있으므로,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제172항 제249항의 성경 근거로서 인용되고 있는, 특히 에페소서 4,6의 해석이 포괄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에페소서 4,4-6의 해석에 따라, 
 

(i) (인류의 신앙과 윤리의 범주로 제한할 경우) 이들 중의 네 번째는, 중국 본토에 선교사로 파견된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의 장 바쎄 신부님에 의하여 1704년쯤에 중국어로 번역된, 그 번역대본은 "대중 라틴말 성경"(Clementine Vulgate)인, 에페소서 4,6에서처럼, ‘만물 안에 계십니다’ 대신에, ‘그리하여 우리들 안에/가운데에 계십니다’(而在于吾中者)로 [부득불 의역] 번역되어야 혹은 해석되어야 하거나,

 

혹은

 

(ii) (그러한 제한을 두지 않는 에페소서 1,10의 경우) 이들 중의 첫 번째는, RSVCE에서처럼, ‘만물’ 대신에, ‘우리들 모두’(us all)로 [부득불 의역] 번역되어야 혹은 해석되어야

 

할 것이다.

(이상, 발췌 끝)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읽을 수 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49.htm <----- 또한 필독 권고

 

N.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개신교회 목회자에 의하여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부여된 물로 씻음(baptism)"은 대부분의 경우에, 정의에 의하여(by definition), ‘대세’(代洗, private baptism)에 해당함에 대한 졸글/졸고를 읽을 수 있다. 필독을 권고드린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soh/2228.htm  <----- 필독 권고


 

O. 다음의 주소에 접속하면, 가톨릭 교회의 교황 교도권에 매우 충실한 "나바르 성경 주석서"의 오늘의 독서들에 대한 해설들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http://ch.catholic.or.kr/pundang/4/navarre/b_ot_17.htm <----- 필독 권고 

[주: (내용 추가 일자: 2021년 7월 25일) 제2독서(에페소 4,1-6)에 대한 해설의 일부(후반부)는 우리말로 번역이 완료되었으며, 대단히 중요한 내용이기에, 필독을 권고드림]

 

P. 출처: http://ch.catholic.or.kr/pundang/4/clerus/homilies/b_ot_17.htm <----- 전문 필독 권고

[주: 교황청 성직자 및 수도자들을 위한 홈페이지 제공]   

(발췌 시작) 

THEME of the READINGS

 

One of the fundamental principles of Christian faith is God’s extreme generosity towards the universe and especially towards man. This principle is the predominant theme of the liturgical texts. In the first reading, twenty loaves are enough for Elisha to feed one hundred men. In turn, in the Gospel Jesus Christ satiates the hunger of 5,000 people with only five loaves and two fish, and what’s more, "They picked them up and filled twelve large baskets with scraps left over from the meal of five barley loaves." Finally, in the second reading the unity of the Christian community (Church) is the abundant fruit yielded by the Eucharistic bread that reaches every Christian, wherever he may be.

 

오늘의 독서들의 주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Christian faith)의 근본 원리들 중의 하나는 우주 쪽으로 향하는 그리고 특별히 사람(man) 쪽으로 향하는 하느님의 극도(極度)의 관용(寬容)(God's extreme generosity)입니다. 바로 이 원리(prunciple)는 오늘의 전례 본문들의 지배적인 주제입니다. 제1독서에서, 스무 개의 빵들은 엘리사가 백 병의 사람들을 먹이는 데에 충분합니다. 이번에는(in turn), 오늘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오로지 다섯 개의 빵들과 두 마리의 물고기들로써 오천 명의 사람들의 배고픔을 충분히 만족시키시며(satiates), 그 위에 또한, "제자들은 다섯 개의 보리빵들에 기인하는 식사로부터 남은 조각들을 모아서 열두 개의 광주리들을 이들로 채웠습니다" (요한 복음서 6,13). 끝으로, 오늘의 제2독서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교회)의 일치/단일성(unity)은, 그가 누구이든지간에, 각각의 그리스도인에게까지 이르는(reaches) 성체(聖體)라는 빵(the Eucharistic bread)에 의하여 산출(產出)되는 풍부한 열매(abundant fruit)입니다.

(이상, 발췌 및 우리말 번역 끝)

 

 

� 3분 복음/교리 묵상

 

CCCC 275. 성체성사의 이름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요?
CCC 1328-1332


바로 이 성사의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풍요로움(richness)은 이 성사의 다양한 모습들을 일깨우는 다른 이름들로 표현됩니다. 이 성사의 가장 통상적인 이름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찬례(the Eucharist), 거룩한 미사(Holy Mass, 미사성제), 주님의 만찬(the Lord’s Supper), 빵 나눔(the Breaking of the Bread), 성찬 경축(the Eucharistic Celebration), 주님의 수난, 죽음 및 부활의 기념(the Memorial of the passion, death and Resurrection of the Lord), 거룩한 희생 제사(the Holy Sacrifice), 거룩한 신성적 전례(the Holy and Divine Liturgy), 성스러운 신비들(the Sacred Mysteries), 제대의 지극히 거룩한 성사(the Most Holy Sacrament of the Altar), 그리고 거룩한 영성체/통공(Holy Communion)(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17_c1328.htm 

 

CCCC 276. 성체성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서 어디에 꼭 맞는지요(fit)?
CCC 1333-1344


성체성사는 옛 계약(the Old Covenant)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해마다 유다인들에 의하여 경축되었던, 이집트로부터의 그들의 황급한, 해방의 이주(departure)를 기억하기 위하여 누룩을 넣지 않은 빵(unleavened bread)과 함께 하는, 매년 파스카 식사(Passover meal)에서, 예견되었습니다(foreshadowed). 예수님깨서는 당신의 가르침에서 이것을 사전에 말씀해 주셨으며(foretold) 그리고 당신의 사도들과 함께 하는 파스카 식사에서 최후의 만찬(the Last Supper)을 경축하실 때에 이것을 제정하셨습니다.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1코린토 11,24)라는, 주님의 명령에 충실한 교회는, 특히 예수님 부활의 날인 주일(Sunday)에, 이 성체성사를 항상 경축해 왔습니다(엮은이 번역).

 

주: 교황청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영어 등의 외국어로 된 위의 CCCC 문항들 및 한국 천주교 중앙협의회 제공 우리말 ‘가톨릭 교회 교리서(CCC)’의 해당 항목들은 다음의 인터넷 주소에 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http://ch.catholic.or.kr/pundang/4/b_ot_17_c1333.htm
 

 

마침 기도: 성모송, 영광송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님 또한 복되시나이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아멘.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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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교수 소순태 마태오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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