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성당 게시판

하수구를 청소하게 된 은총과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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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이 [pear] 쪽지 캡슐

2001-01-03 ㅣ No.4193

밀레니엄이니, Y2K이니로 들뜨기도 하고 조마조마하기도 했던

1999년의 마지막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뭔가 그럴 듯한 일들이 많이 일어날 것만 같았던 대희년의 마지막을 너무 정신없이 보내고나서

또 다른 새해를 맞은 지 벌써 이틀이 훌쩍 지나가 버렸습니다.

지난 한 해 성모회장직을 부여받고 참으로 바쁜 날들을 보낸 기억이 더없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한가로운 새 첫날들에 미루어 둔 일기를 쓰는 것 같은 마음으로 게시판을 찾아왔답니다.

 

성모회 총회를 하루 앞두었던 날,   한 해동안 다 쏟아붓지 못한 것 같은 죄스러움과 또 알수 없는 허허로움과, 그보다는 한 짐 내려놓는 것 같은 가벼운 즐거움에 찬 물이라도 끼얹는 것처럼 닥친 불미스러운 일.....

 

그리고, 설상가상이라던가???   성모회의 한 해 행사중 마지막을 장식하는 중고등부 진솔제 날에 행사를 다치루고 설겆이를 하던 중 하수구가 꽉 막혀버렸습니다.

우학사님의 어머니이신 모니카 자매님의 솔선으로  하수구 청소작업이 시작되었고, 차마 고개를 돌리기조차 역겨운 일들에 손을 대었을 때,,,,,

" 주님께서는 이렇게도 내게 은총을 베푸시는구나! " 하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왔답니다.

 

가끔씩 그런 생각들을 하죠.

기도와 활동의 균등한 시간배분.

내 안에 숨어있는 마리아와 마르타의 갈등 속에서

바쁘게 바쁘게 일만하고 자신을 돌아보지 않는 날들의 공허함들을 추스리지 못한 채, 마음이 황량해져 있을 때가 종종 있었는데...

성모회 총회를 즈음하여...  저의 2000년은 그 무미건조의 극치였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었거든요.

하지만 저를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께서는 저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시더군요.

하수구 청소를 하면서 음식물이 고이고 썪어서 심한 악취를 풍기는  묵은 찌꺼기들이 마치 기도하지 않아 고여있는 내 마음의 때처럼느껴졌습니다.

 

그 묶은 때를 문지르고, 말끔하게 닦여져서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려가는 하수도를 다시 깨끗이 씻어내리면서, 어린 날 냇가에 앉아 종이배를 띠우며 물장난을 하는 아이의 모습으로까지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온 몸엔 역겨운 냄새가 묻어있는 듯 했지만 그래도 내 마음에 고인 묵은 때를 씻어 낸 것처럼 상쾌한 밤이었답니다.

 

아주 오랜만에 그렇게 맑았던 기분을 되새기면서 자주 자주 저를 닦아내는 일에 충실한 한 해를  보내고 싶습니다.

너무 많이 고여서 굳어지기 전에 늘 돌아보면서 말이죠.

한 해동안 집안 돌보는 일에 너무 불충실했답니다.

시간과 여유가 생기니 여기 저기 집안일들이 참 산적해 있지요.

아마도 그 일들 추스리면서 또 다른 일 년이 지나갈 겁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또 다른 행복과 은총에 기뻐하겠지요.

하느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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