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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꿔!바꿔!바꿔!(연중9주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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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지종 [sjjbernardo] 쪽지 캡슐

2000-03-06 ㅣ No.1324

2000, 3, 6  연중 제9주간 월요일 복음 묵상

 

마르코 12, 1-12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그 때에 예수께서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포도원을 하나 만들어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포도즙을 짜는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 소작인들에게 그것을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포도 철이 되자 그는 포도원의 도조를 받아오라고 종 하나를 소작인들에게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을 붙잡아 때리고는 빈손으로 돌려 보냈다. 주인이 다른 종을 또 보냈더니 그들은 그 종도 머리를 쳐서 상처를 입히며 모욕을 주었다. 주인이 또 다른 종을 보냈더니 이번에는 그 종을 죽여 버렸다. 그래서 더 많은 종을 보냈으나 그들은 이번에도 종들을 때리고 더러는 죽였다.

 

  주인이 보낼 사람이 아직 하나 더 있었는데 그것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이었다. 마지막으로 주인은 '내 아들이야 알아 주겠지.' 하며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저게 상속자다. 자, 죽여 버리자. 그러면 이 포도원은 우리 차지가 될 것이다.' 하며 서로 짜고는 그를 잡아죽이고 포도원 밖으로 내어 던졌다.

 

  이렇게 되면 포도원 주인은 어떻게 하겠느냐? 그는 돌아와서 그 소작인들을 죽여 버리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맡길 것이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고 한 말을 읽어 본 일이 없느냐?"

 

  이 비유를 들은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무서워서 예수를 그대로 두고 떠나갔다.

 

<묵상>

 

  예수님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당신을 잡으려고 안달이 나 있는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에게 대놓고 당신이 앞으로 어떻게 되실 것이라는 것과 이 사람들이 당신에게 어떻게 하리라는 것을 당당하게 말씀하시니까요.

 

 그런데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도 대단한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 말씀이 바로 자신들을 향한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오히려 예수님을 잡으려고 하니 말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은 소심한 사람입니다. 군중이 무서워 예수님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으니까요.

 

   어떻게든 순간의 궁지에서만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이 안쓰럽기까지 합니다. 예수님을 붙잡아서 문제의 소지를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군중이 무서워 어찌할 수 없었던 이들은 예수님의 곁에서 떠나야만 했습니다. 괜히 예수님 옆에 더 있다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더 큰 낭패를 볼 수도 있으니 말입니다.

 

  오늘 복음의 핵심은 물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왠지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에게 시선이 갑니다.  그리고 이들에게 두려움을 주어 예수님을 잡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군중들에게 시선이 갑니다.

 

  아마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금뺏지를 얻기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입후보자들과 각 정당들, 그리고 이들을 투표로 심판하게 될 유권자인 국민들의 입장이 뒤섞여 있는 지금의 상황 때문이 아니겠는가 싶습니다.

 

   어제 모 정당(다 아실만한)의 모 최고위원이 대구에서 이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영남을 주축으로 한 정권을 창출해야 한다.... 지난 대선에서 영호남 지역감정 극복을 위해 중부권 후보를 밀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회창 씨를 지원했는데 만약 이씨가 당선됐더라면 큰일날 뻔했다.... 그때 오히려 이수성씨를 만들었으면 영남 정권을 만들 수 있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또한 같은 정당의 다른 모 최고위원은 부산에서 "이번 선거에서 우리 신당이 실패할 경우 부산 시민 모두 영도 다리에서 빠져 죽자."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이상은 한겨레 신문 3월6일 자 1면에서 인용)

 

  정권욕에 눈이 멀어 나라를 말아먹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사죄하지는 못할 망정 마지막 발악을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화합과 일치를 염원하는 국민의 뜻과 총선시민연대를 위시하여 시민 단체들의 강력한 지역감정 극복 의지를 완전히 무시하고 자기 멋대로 나가는 꼴이 가관입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들이 이 지경까지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들은 자신들만 망하는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이 길에 국민도 함께 끌어들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듯 합니다. 신당이 실패하면 자기 혼자 죽으면 되지 선량한 시민이 왜 함께 빠져 죽어야 합니까? 영남 정권, 호남 정권, 충청 정권 따로 갈라 대망의 2000년을 삼국시대의 원년으로 삼고자 하는 맹랑한 포부의 저의는 무엇일까요?

 

 도대체 국민을 자신들의 바지 저고리 정도로 아는 이들의 행태는 군중이 무서워 예수님을 그대로 두고 떠나갔던 대사제들과 율법 학자들과 원로들의 그것보다 더 한심스러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군중을 두려워했던 이들은 그나마 상황 판단이라도 제대로 할 수 있는 머리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론 다음을 노리면 예수님을 떠나간 것이긴 하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 케케묵은 지역감정을 부추기면서 이번 선거에서 요행수를 바라는 넋나간 사람들은 그러한 머리도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이 실감납니다. 앞으로 어떻게 상황이 진전될 지 무척 궁금합니다. 그러면서 문득 제 자신의 머리, 우리 국민의 머리는 과연 어떤지 돌아보게 됩니다. 매번 선거를 치르면서 느끼고 후회하면서도, 또다시 머리없는 정치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이번에도 무식함을 드러낼 것인지, 아니면 다시는 말도 안되는 지역 감정 운운하는 소리가 쏙 들어가도록 유권자 혁명을 이루어낼 것인지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군중, 예수님을 잡으려는 이들에게 두려운 존재였던 군중이 나중에 예수님을 못박으라고 외쳤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왜 군중이 이렇게 전락했는지 우리는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대사제들과 원로들의 놀음에 꼭둑각시가 되어버린 군중의 불쌍한 처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의 마지막 몇 줄을 묵상하면서, 하나의 바램을 가져봅니다. 제발 이번만큼은 우리 국민이 우매한 행동을 하지 않기를, 그리하여  제발 각 정당이나 입후보자들에게 두려운 존재가 되기를 말입니다.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곧 우리의 믿음입니다."(1요한 5,4)

 

주님 안에 사랑담아 여러분의 벗 상지종 베르나르도가 띄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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