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성당 게시판

떠나라, 눈 덮인 태백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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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성희 [cycramen] 쪽지 캡슐

2003-01-21 ㅣ No.4334

 

 

무박으로 떠나는 산행은 처음 이었습니다. 피곤 할 것 같고 밤 눈이 어두운 것도 있지만 나이도 생각해서 겁을 내어 엄두를 못냈습니다.

 

그러나 일행 중에는 몇 번 무박으로 산행을 하시고 또 저보다 더 나이 드신 분들이 계신데 신이 나신 표정이어서 안심이 되었지요.

 

올라갈 때는 컴컴했지만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습니다. 보름 달에 가까운 달과 백설이 있어 어둡지 않아 걸을 만 했다.

 

그런데 작년에 신던 아이젠을 정검을 안 했더니 한 쪽이 조금 걷다가 보니 자꾸 벗겨져 걸을 수가 없었다.

힘은 들고 어떻게 하나 속으로 걱정하는데 주임 신부님께서 예비로 갖고 간 아이젠 한 짝을 가방에서 꺼내 주셔서 너무 고마웠지만 말도 못했지요. 정말로 고마울때는 오히려 말을 못하는 사람입니다.신부님, 감사합니다.   

 

올라 갈 수록 나무에는 눈이 더 많이 쌓여있어 점점 보기가 좋았습니다.

 

산 입구에는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키 큰 전나무가 뻗어있고 위로는 주목이 하얀 눈을 두껍게 이고 있어  큰 사슴 뿔 같은 느낌을 주어 신비스러웠지요.

 

저는 주목을 안아보기도 하고 기대어보기도 했지요. 몇 백년 산 주목이 보면 저는 어린아이에 불과하니 귀엽게 보겠지요.그 옆에 서니 저는 아줌마가 아니라 어린 소녀가 된 것 같았지요

 

정상에 도착하니 오전 6시인데 동 트기를 기다리고 있으니 같이 간 자매님 머리가 처음엔 군데군데 하얀 브리찌 한 것 같더니 나중에는 하얀머리가 되어 있었지요. 추우니까 땀이 나 있는 부분이 전부 얼은 거지요

 

서서히 여명이 생기면서 새로운 신세계가 열리는 듯 했지요. 산 아래 멀리는 구름이 하얗게 있어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고 있는 듯 했지요. 걸어 왔던 길은 작은 철쭉들이 순 백색의 오목볼록 옷을 입고 있어 마치 바닷 속 하얀 산호초가 넓게 펼쳐져 있어 우리의 발 걸음을 자꾸 붙잡았습니다.

 

이 아름다운 장관을 못 봤으면 너무 억울 할 뻔 했지요.잠시만 시간을 내서 떠나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있는 것을... 마음이 갑자기 훤해지고 넓어진 듯합니다.어떤 일도 다 이해하는 마음 좋은 사람이 된 것 같았습니다.

 

이 여행을 떠나게 주선 하신 신자분들 복 많이 받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 감사 드리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시간이었습니다.

 

떠나라, 열심히 기도한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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